말라기

말라기강해 2

푸른 섬 2011. 4. 11. 07:50

 


function file_download(link, file) { document.location.href=link; } window.[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onload=function() { resizeBoardImage(600); drawFont(); } 어떻게 주의 이름을 멸시하였나이까?

말라기1장6-14 

사도행전5장을 보면 아나니아와 삽비라라는 부부가 나옵니다.

이들은 함께 의논해서 소유를 팔아 헌금했습니다.

물론 판매대금의 일부를 감추었습니다.

문제는 여기에서부터 시작됩니다.

3,4절에 보면 “베드로가 가로되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단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 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땅이 그대로 있을 때에는 네 당이 아니며 판 후에도 네 임으로 할 수가 없더냐 어찌하여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었느냐 사람에게 거짓말 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

아나니아는 이 말을 듣고 죽었습니다.

젊은 사람들이 이 사람을 메어 장사했습니다.

세 시간 쯤 지났습니다.

그의 아내 삽비라는 이 사실을 모르고 들어 왔습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묻지도 않습니다. 따지지도 않습니다.

“너희가 어찌 함께 꾀하여 주의 영을 시험하려 하느냐 보라 네 남편을 장사하고오는 사람들의 발이 문 앞에 이르렀으니 또 너를 메어 내가리라 한 대”9절

여러분이 보시기에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문제점이 무엇입니까?

물론 이렇게 대답하실 것입니다.

성령을 속였다고 말입니다.

헌금의 일부를 떼먹었으니 잘못되었다고 말입니다.

그런데 헌금 쫌 떼어 먹었다고 죽을 일입니까?

여러분은 헌금을 얼마나 떼어 먹었습니까?

아마 벌써 골백번 더 죽었을 것입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생각과 행동을 한번 따라 가 봅시다.

이들은 믿는 무리 속에 들어 있는 자들입니다.

타인이 보기에 이들은 틀림없는 믿음 있는 자입니다.

은혜를 받은 자입니다.

특별히 이들이 자신의 소유를 팔아 헌금한 것은 어느 누구도 나무랄 일이 아닙니다.

도대체 무엇이 잘못되었다는 말입니까?

사도베드로의 말대로 소유는 이들의 소유였습니다.

소유한 것을 판매한 값의 일부를 좀 빼고 헌금했다고 그것이 죽을 일이냐는 말입니다.

표면적으로 나타나는 일을 볼 때 아니나니와 삽비라는 별 문제 없는 사람입니다.

오히려 이들은 믿음이 좋은 사람입니다.

이들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예수님을 믿는 사람입니다.

지금 어느 누가 소유를 팔아 헌금합니까?

물론 복받으려고 투자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사도들이 전한 복음은 십자가의 복음이었습니다.

그러니 투자가치가 없습니다.

오히려 고난 속으로 십자가 속으로 빨려들어갈 뿐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소유를 팔아 헌금했습니다.

그 의도가 무엇일까요?

이들의 문제는 성령을 속였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주님을 속인 것입니다.

사람들은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얼마를 감추었는지 알수 없습니다.

이들 눈에는 사도들밖에, 성도들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니 누가 알겠느냐는 말입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알고 있습니다.

물론 베드로가 안 것이 아니라 주님이 아신 것이지요.

성령은 주님의 영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고 삼일만이 부활하시어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주님이 되셨습니다.

그런데 누가 봤습니까?

주님이 되셨다는 것은 사도들의 증거에 불과합니다.

그러니 땅에서 일어나는 일은 결국 사람의 손에 달렸을 뿐입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도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를 입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겉 모습으로는 알수가 없습니다.

제가 지금 아나니아와 삽비라를 말씀드리는 것은 이들이 도대체 무엇이 잘못되었느냐 말입니다.

오늘날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열심히 기도합니다.

열심히 성경봅니다.

열심히 전도합니다.

열심히 봉사합니다.

헌금에도 열심을 냅니다.

목사는 열심히 설교를 합니다.

이들에게 당신들 전도, 기도, 성경보는 것, 봉사, 열심 다 엉터리다라고 해 보세요.

이들이 여러분들에게 뭐라고 하겠습니까?

내가 기도하고, 전도하고, 봉사하고, 열심내는 것은 다 주님의 은혜라 할 것입니다.

나의 열심히 아닙니다. 라고 할 것입니다.

아니니와 삽비라를 보아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얼마나 열심입니까?

열심내는 사람을 잘못되었다라고 말하는 것은 문제가 있는 것 아닙니까?

재산 팔아 헌금하는데 그게 무엇이 잘못되었다는 말입니까?

오늘 본문을 보면 제사장들이 나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들에게 ‘너희들은 나의 이름을 멸시했다’라고 하십니다.

나를 공경하지 않았다고 하십니다.

그러면 우린 당장 이런 생각을 합니다.

그래, 제사장들이니 이들이 자신의 일을 게을리 했구나.

하나님의 말씀대로 제사를 드리지 않았구나 라고 할 것입니다.

그런데 제사장들은 당당합니다.

제당당입니까?

우리가 어떻게 주의 이름을 멸시하였나이까?

지난주 우리들은 하나님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나이까라는 말씀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참으로 당당하지 않습니까?

우린 결단코 주의 이름을 멸시한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주님께 할만큼 다 했다는 것입니다.

자신들 만큼 주의 이름을 높인 자들이 있는지 나와 보라는 것이지요.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의 답변은 어떻습니까?

이들의 열심을 부정했습니까?

이들의 헌신을 부정하셨습니까?

아닙니다.

이들의 열심히나 헌신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얼마나 많은 것을 드렸느냐를 따지시는 것이 아닙니다.

주의 이름에 대한 멸시를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어떤 행동이 주의 이름에 대한 멸시입니까?

7절에 보면 더러운 떡을 나의 단에 드렸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제사장들은 우리가 어떻게 주를 더럽게 하였나이까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은 이들의 마음을 아십니다.

이들은 주의 상을 경멸히 여기고 있습니다.

겉으로야 그럴듯합니다.

물론 이런 마음은 겉으로도 나타납니다.

눈 먼 희생, 저는 것, 병든 것으로 드립니다.

사람인 총독에게 바쳐도 받지 않을 것을 여호와께 드렸습니다.

그래서 여호와께서 성전문을 닫아 버렸으면 좋겠다고 하십니다.

결국 11절로 가게 됩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해 뜨는 곳에서부터 해 지는 곳까지의 이방민족 중에서 내 이름이 크게 될 것이라 각처에서 내 이름을 위하여 분향하며 깨끗한 제물을 드리리니 이는 내 이름이 이방 민족 중에서 크게 될 것임이니라"

12-14절을 봅시다.

"그러나 너희는 말하기를 여호와의 상은 더러웠고 그 위에 있는 실과 곧 식물은 경멸히 여길 것이라 하여 내 이름을 더럽히는도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또 말하기를 이 일이 얼마나 번폐스러운고 하며 코웃음하고 토색한 물건과 저는 것, 병든 것을 가져 왔느니라 너희가 이같이 헌물을 가져오니 내가 그것을 너희 손에서 받겠느냐 여호와의 말이니라 떼 가운데 수컷이 있거늘 그 서원하는 일에 흠 있는 것으로 사기하여 내게 드리는 자는 저주를 받으리니 나는 큰 임금이요 내 이름은 열방 중에서 두려워하는 것이 됨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제사는 귀찮습니다.

그러나 제사 드리지 않으면 쫌 찝찝한 모양입니다.

그래서 좋은 것들은 자신들이 다 챙기고 값이 없는 것, 맛 없는 것들만 , 자신들이 좋아하지 않는 것들만 여호와께 드립니다.

이들 귀에는 여호와의 저주가 들리지 않습니다.

이들이 여호와의 저주를 두려워했다면 이렇게 했겠습니다.

오랜 경험으로 미루어볼때 여호와의 저주 별것 아닙니다.

다른 나라 사람들도 다 겪는 것이고, 아니 사람이라면 다 겪는 것인데 그런 저주쯤은 얼마든지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현재의 삶입니다.

지금 자식 잘키우고, 건강하고, 행복한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까?

앞날, 앞날 좋아하지 말라 말입니다.

우리 조상들을 보니 앞날 보다가 끝나 버렸습니다.

실제로 그렇지 않습니까?

도대체 그들은 너무 어정쩡하게 살다가 가 버린 것이 아닙니까?

그럴 것 같으면 차라리 지금 챙길것 제대로 챙기고 살자 말입니다.

지금 말라기 시대를 함께 살고 있는 제사장들, 오늘날로 말하면 목사같은 자들이라고 볼수 있습니다.

물론 목사가 제사장이라는 말은 아닙니다.

매일 새벽기도 하고, 설교하고 성경 묵상하고, 모든 것을 드려 주님께 헌신한다 말입니다.

그런데 백날 이렇게 해 봐도 중요한 것은 돈이라는 것입니다.

천국은 죽어봐야 알 것 아닙니까?

누가 천국 가 봤습니까?

그러니 돈만 챙기자 말입니다.

이게 오늘날 목사들이 하는 짓 아닙니까?

여기 앉아 있는 우리들도 그렇습니까?

제사장들은 도를 통했습니다.

자기 조상들의 삶을 쭉 연구해 보니 뭐니 뭐니 해도 머니가 최고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러니 전통은 지켜 줍니다.

그래야 자신들의 호주머니가 채워지니 말입니다.

이것마저 날려 버리면 호주머니에 들어올 것이 없지요.

이미 직업화 된 것입니다.

제사드리는 일이 직업입니다. 돈벌이입니다.

목사가 그렇습니다. 직업이 된지 오래되었습니다.

말라기를 보니 그렇지 않습니까?

죽어라고 그 자리에 두었는데 생존하려고 그 자리를 이용합니다.

그러니 11절에서 누가 깨끗한 제물을 드립니까?

바로 이방민족입니다.

제사장들은 날아가고 이방민족이 오히려 주의 이름을 경외하며 주의 이름을 높입니다.

사실 이스라엘 중심은 제사장들입니다.

제사장들이 드리는 제사가 없다면 이스라엘은 그야 말로 저주아래 있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율법에 근거하여 여호와 하나님의 저주가 퍼부어집니다.

그런데 제사장들이 도를 통했다 말입니다.

그런 저주 별것 아니다라고 말입니다.

지진나도 별것 아닙니다. 원자력 발전소가 폭발해도 별것 아니지요.

몇일전에 제 딸이 다니는 학교의 학생이 죽었습니다.

놀다가 죽었습니다.

만일 내 딸이 죽으면 어떻겠습니까?

내 자식이 죽으면 어떻겠습니까?

그 학교가 미션써쿨입니다.

학생들이 성경도 배웁니다.

그런데 학생들이 이 사건에 대해 이런 질문을 했답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면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느냐고 말입니다.

제가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무슨 생각했는지 아십니까?

바로 이 모습이 사람의 본모습이다라고 말입니다.

일본에 지진이 일어나고 쓰나미가 덮쳤을땐 남의 이야기였습니다.

나름대로 기도하고 성경 배우고 찬송부르고 했습니다.

그들을 위해 기도도 했습니다.

그런데 죽음의 사건이 나를 덮칠땐 어떻게 됩니까?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제사장들이 이것을 알았어요.

주의 이름을 높이는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아요.

이들은 주의 이름이 별것 아님을 알았었습니다.

속으로 조롱합니다.

실제로도 비웃지요.

지금 예수님이 어떤 대접을 받습니까?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예수님이 만유의 주님이시다라고 하면 사람들이 뭐라고 합니까?

놀고 자빠졌네라고 하지요.

문제는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이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잘 믿는다고 하는 목사, 장로, 집사들이 이런 말을 합니다.

이들에게 있어서 삶의 목적은 오직 돈 밖에 없습니다.

늘그막히 편안히 살다 죽는 것입니다.

그러니 떼를 쓰든지 사기를 치든지 무슨 짓을 해서라도 돈을 끌어 모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제가 지난번 한국에 갔을때 경산에 아주 큰 예배당에 가 보았습니다.

가서 맛있는 과일 쥬스도 마셨습니다.

물론 유료입니다.

장사를 하고 있었지요.

예배당이 장사하는 곳으로 바뀌었습니다. 물론 간판은 선교사업이라고 합니다.

왜 이렇게 할까요?

십자가의 복음은 돈이 안됩니다.

사람이 안 모입니다.

그러니 사람을 끌어 모으는 방법을 만든 것이지요.

물론 그곳엔 유아영어교육이라든가 아니면 노인들 모임 같은 것들도 잘 조직되어 있겠지요.

그래야 사람들을 끌어 모을 수 있지 않겠어요.

목사들이 장로들이 왜 이 짓을 합니까?

다 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살아계시지 않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말라기서를 보면서 오늘날 교회가 보입니다.

제사장들의 모습이 오늘날 교회의 모습입니다.

돈벌이를 위해 제사를 드렸습니다.

돈벌이를 위해 설교합니다.

돈벌이를 위해 예배드립니다.

돈벌이를 위해 기도합니다.

돈벌이를 위해 전도합니다.

돈벌이를 위해 헌금합니다.

돈벌이를 위해 충성합니다.

몇 년전 인천에 갔을 때였습니다.

사람들로부터 헌금을 각출하기 위해 무슨 전도대장을 불러 왔는데 잘 기억은 나지 않습니다.

한국에 가면 고구마 전도대장, 무슨 전도대장 등등 별별 전도대장이 다 있습니다.

이들의 특징은 간증하면서 먹고 살 걱정을 해소했다는데 있습니다.

이들이 십자가 복음 전해서 사람들로부터 초청을 받을까요?

아닙니다.

말라기에 나오는 제사장처럼 살아보자고 외치기 때문에 사람들이 초대하고 듣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겉모습이야 예수님을 어떻게 전했다고 하지만 내용을 들어보면 말라기에 나오는 제사장들의 신앙입니다.

십자가가 제거된 복음 말입니다.

그러나 주의 이름은 이럴 수록 더욱더 높임을 받습니다.

이방민족들로부터 주의 이름이 높아집니다.

그래서 성도는 오히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돈을 위해 사는 자들을 보면서 감사하는 자입니다.

주의 이름이 어떻게 높임을 받는 지를 알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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