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사항

룻기강해 1 1장1-5

푸른 섬 2012. 7. 8. 13:26

엘리멜렉

룻기1:1-5

1절에서 룻기는 사사들이 치리하던 때라고 말씀합니다.

그렇다면 사사들이 치리하던 때라는 말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단순히 시간적 의미를 담고 있습니까 아니면 다른 의미도 담고 있습니까?

시간 뿐만 아니라 공간적 의미도 담고 있고 그 속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모두 담고 있습니다.

룻기 4장17절을 보게 되면 “그 이웃 여인들이 그에게 이름을 주되 나오미가 아들을 낳았다 하여 그 이름을 오벳이라 하였는데 그는 다윗의 아비인 이새의 이비였더라”

이 말씀에 근거하여 시기를 추정하여 보면 1절에 나오는 시기가 주전1100년 경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룻기 1장1절을 보면 우리 성경에는 나오지 않는 단어가 히브리어성경에 나옵니다.

접속사가 나옵니다. 그리고라는 접속사입니다.

그리고 라고 하면 사사기21장 25절 뒤에 붙여야 한다는 말이지요.

문제는 그리고라는 접속사가 순차적인 의미로 사용되는 것이 아닙니다.

사사기를 할 때에 우리들이 보지 않았지만 삼손이 죽는 사사기 16장과 17장 미가 사건을 말씀하실 때에도 그리고 라는 접속사가 있습니다.

시기적으로 보면 삼손이 주전1100-1060년이 됩니다. 그러나 17장 사건은 주전1380년 사건입니다.

따라서 그리고 라는 접속사는 시간의 순서를 말씀하시려고 사용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한국말에 그리고라는 말은 병열적 의미가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쓰인 접속사 와우는 이런 의미가 아닙니다.

병열도 아니고 시간적 순차도 아니면 무슨 의미를 갖습니까?

1절에 그리고 사사들이 치리하던 때라는 말씀의 의미는 사사기 전체를 담고 있고 더 나아가 창세기부터 사사기까지의 사건 전체를 담고 있습니다. 물론 이 사건은 시간과 공간 안에서 일어난 사건들입니다.

왜 그런고 하면 출애굽기 1장1절에도 그리고라는 접속사가 있고, 레위기, 민수기, 여호수아, 사사기에도 그리고라는 접속사로 시작합니다. 물론 신명기는 1장1절에는 없습니다.

룻기 1장을 하면서 왜 이렇게 머리 아픈 이야기를 합니까?

유대인들이 성경을 읽으면 일차적으로 그 내용의 의미를 정확하게 파악을 합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성경을 읽으면 일차적인 내용도 파악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1장1-5절까지 읽었는데 말씀의 의미가 속 들어 옵니까?

우리들은 이렇게 이해하지요.

사사시대 때에 그 땅에 흉년이 들어 유다베들레헴 사람 엘리멜렉과 나오미가 모압땅으로 갔다. 그곳에서 십년쯤 살면서 남편 죽고 두 아들 기룐과 말론이 죽고 나오미와 두 며느리 오르바와 룻이 남았다.

이것이 오늘 본문 내용이지요.

물론 표면적으로는 이 내용이 맞아요.

그러나 제가 서론에서 접속사 와우라는 단어를 길게 설명 드렸지요. 그렇게 본다면 이 짧은 구절이 엄청나게 많은 것을 내포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지요.

1절부터 한번 봅시다.

사사들이 치리하던 때에 라고 하지요.

사사들이 치리하던 때가 단순히 어떤 한 시점을 말하지 않는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이것은 사사기전체 사건을 기본으로 룻기를 기록하겠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룻기를 이해하는 기본으로 사사기를 바탕에 깔아 놓으신 것입니다.

그러니 사사기를 알지 못하면 룻기를 이해하기 힘들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사사들이 치리하던 때는 어떠했습니까?

그야 말로 간단합니다.

사사기21장25절입니다. 사사기 마지막 장 마지막 절입니다.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각 그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왕이 없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각각 그 소견에 옳은 대로, 즉 각각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했습니다.

옷니엘, 에훗, 드보라(바락), 기드온, 입다, 삼손 등의 사사가 있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사사들을 보내셔서 이스라엘을 다스렸지만 사사들의 말도 청종하지 않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사사들도 여호와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그야 말로 자기 마음대로 , 기분 내키는 대로 살아가는 시대였습니다.

사사들이 치리하던 때, 즉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하는 시대에 또한 인간이 자기 소견대로 하는 자가 있었다는 말입니다.

그 땅에 흉년이 들었다고 합니다. 여기에 그 땅이라는 말이 나오지요.

그 땅에 어떤 땅입니까?

유대베들레헴으로 대표되어지는 약속의 땅이지요. 기업으로 받은 땅입니다.

이 말씀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냥 엘리멜렉과 나오미가 살던 땅이라고 생각하시면 곤란합니다.

거주하는 그 땅에 흉년이 들어 모압땅으로 이사갔다라고 생각하시면 곤란하다는 말입니다.

여기에서 말씀하시는 그 땅은 분명 이스라엘 땅입니다. 가나안 땅이지요.

그런데 그 땅은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언약하신 약속의 땅입니다.

그러니 보통 땅과는 다르지요. 어떻게 다릅니까?

그 땅에 흉년이 들었다고 합니다.

이번에 한국은 너무너무 가물었답니다. 가물었다는 말을 우리 아이들이 잘 모르죠. 오랫동안 비가 오지 않는 날씨를 가뭄이라고 합니다. 오랫동안 비가 오지 않으면 물이 부족하겠지요.

그런데 이젠 비가 너무 많이 올지 모른다고 말합니다.

이렇게 되면 농사를 제대로 지을 수 없지요.

지금과 사사시대는 전혀 다르지요. 품종부터 다르고, 병충이나, 가뭄에 견디는 것도 다 다릅니다.

열매를 맺는 과수나무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흉년이 들었다라는 것은 우리들이 드라마나 영화에서나 볼 수 있듯이 그냐 말로 먹을 것이 없어 굶어 죽는 사람도 있다는 말입니다.

한해 흉년이 들었다면 별 문제가 아니지요. 성경본문에는 나오지 않지만 엘리멜렉이 더 이상 살수 없는 상황을 맞이했기 때문에 모압땅으로 이사 간 것입니다.

그러면 왜 이런 흉년이 들었습니다.

신명기28장15절에서 68절을 보면 저주에 관한 말씀이 나옵니다.

18절을 봅시다.

“네 몸의 소생과 네 초지의 소산과 네 우양의 새끼가 저주를 받을 것이며”

11절을 보면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 복을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순종하지 않으면 저주받고 결국 68절에 보면 애굽으로 끌려가게 하실 것을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지금 거룩한 전쟁, 여호와 전쟁을 통해 약속의 땅에 들어 왔지만 이 땅에 흉년이 든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간단합니다. 여호와의 말씀에 순종치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땅, 곧 약속의 땅에 흉년이 든 것입니다. 사사가 치리하던 때라는 말은 여호와의 말씀에 순종치 않고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할 때라는 다른 표현입니다. 물론 여호와 하나님이 왕이심을 거부하는 시대라는 말이지요.

흉년이 들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말씀에 의하면 여호와의 말씀에 순종해야 하겠지요.

그런데 엘리멜렉이라는 사람은 약속의 땅, 그 땅을 버립니다. 그리고 이방 땅, 모압땅으로 이사 가 버립니다.

미련 없이 떠나 버립니다.

엘리멜렉이라는 뜻이 무엇인고 하면 여호와는 왕이시다. 왕이신 여호와라는 뜻이에요.

정말 아이러니 하지요. 아이러니라는 말은 겉으로 드러난 것과 실제 사실 사이의 괴리를 말합니다.

이름과 실제 행동하는 것과 너무나 큰 차이가 있지요.

여호와는 왕이시다라는 이름으로 사는 모습은 여호와 하나님의 왕되심을 부정합니다.

여기에서 유다베들레헴이라는 지명이 나옵니다. 그리고 에브랏 사람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베들레헴의 뜻은 떡집이라는 의미고, 에브랏이라는 의미는 열매를 많이 맺는다는 뜻입니다.

베들레헴과 같은 지명이지요. 베들레헴 에브랏 이라는 말을 연속적으로 사용함으로 얼마나 그곳의 소출이 풍성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흉년이 든 것이지요. 소출이 풍성하고 떡이 많을 때에는 약속에 땅에 살고 있었지만 흉년이 들게 되니 뒤돌아 보지 않고 모압땅으로 가버립니다. 그것도 두 아들을 데리고 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냥 자기 아들이 아닙니다. 약속의 아들입니다. 그러나 엘리멜렉에게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은 먹을 것 보다 못한 존재이지요.

그런데 그 두 아들의 이름을 한번 봅시다.

하나는 말론이고 하나는 기룐입니다.

말론의 뜻이 무엇인지 아세요? 진멸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어요. 기룐은 병든 이라는 뜻을 담고 있어요.

이름을 희한하게 지었지요. 엘리멜렉이 왜 자신의 아들들의 이름을 이렇게 지었는지는 알수 없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이들 두 아들은 그 이름대로 둘 다 죽었습니다.

그 아내 이름은 나오미입니다.

나오미의 뜻은 기쁨, 즐거움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흉년이 드니 즐겁겠습니까?

또 두 이름이 나옵니다. 오르바와 룻이지요.

오르바의 뜻은 목이 뻣뻣한 의미를 담고 있어요. 룻의 의미는 추가된 이웃, 친구라는 뜻을 담고 있어요.

그런데 이들은 모압사람입니다.

분명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방여인과 결혼을 금지하셨습니다.

그러나 약속의 땅을 떠난 이들이 과연 결혼문제에 대해 고민하겠습니까?

그런데 문제는 모압땅으로 온지 십년가까이 되었을 때 남편 엘리멜렉이 먼저 죽었고 두 아들도 모두 죽었다는 사실입니다.

이들이 왜 죽었는지 아시지요.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하면 심판입니다.

말씀에 순종치 않은 자들에 대한 심판이지요.

이제 나오미와 두 며느리만 남게 되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구원하실 때에는 인간이 더 이상 소망을 둘 수 없는 상황에서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자기 자신에게 더 이상 소망을 두지 못하도록 만드시지요.

그러나 인간들은 자신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합니다.

지금도 주님의 십자가가 아니면 우리들은 지옥가야합니다. 구약에서는 저주로 표현되지만 예수님이 오신 후에는 지옥입니다.

그러니 우리들이 오늘 본문을 보면서 주님의 십자가의 능력 제대로 보는 것입니다.

우리의 바탕을 제대로 드러나니 십자가가 선명하게 보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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