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강해

로마서강해 51 권세자들에게 복종하라

푸른 섬 2013. 11. 24. 20:16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로마서131-7

오늘 본문을 이해하려면 마태복음 2215-22절을 먼저 살펴봐야 합니다.

바리새인들이 어떻게 하면 예수를 말의 올무에 걸릴까 할까 서로 의논했습니다.

그리고는 바리새인들의 제자들을 헤롯 당원들과 함께 예수께 보내어 말합니다.

 

선생님이여 우리가 아노니 당신은 참되시고 진리로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시며 아무도 꺼리는 일이 없으시니 이는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아니하심이니이다

 

예수님을 잔뜩 높여 줍니다. 그리고는 자신들의 본색을 드러냅니다.

 

그렇게 당신이 잘났으면 이 문제 한번 풀어 보라는 것이지요.

 

그러면 당신의 생각에는 어떠한지 우리에게 이르소서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옳지 아니하니이까

 

왜 이런 질문을 하는 지 아시겠습니까?

바리새인들은 수준이 보통수준이 아닙니다. 이들이 다나엘서를 알까요 모를까요? 당연히 알겠지요.

그렇다면 가이사가 어떤 사람인이 이들이 알고 있잖아요.

 

다니엘서를 알고 있다면 지금 로마의 황제는 당연히 짐승이며 이 짐승은 당연히 하나님의 대적자임을 알고 있겠지요.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짐승의 지배를 받고 있는 짐승인 헤롯왕과 한 편이 되어 예수님을 잡아 죽일 궁리를 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들은 예수가 정말 하나님께로부터 보냄을 받았다면 틀림없이 다니엘서에서 말씀된 대로 답변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자신들은 어떤가요? 자신들은 오히려 짐승 편임을 자인하고 있을 뿐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의 악함을 아시고 말씀하셨습니다.

 

18절에 보면 외식하는 자들아 어찌하여 나를 시험하느냐

 

이 말씀에 의하면 바리새인들의 악함이 어떤 악함입니까?

 

누가 누구를 판단하려고 합니까? 바리새인들이 주님을 판단하려고 합니다.

짐승인 주제에 주님을 시험하고 있어요.

 

예수님의 답변이 어떻습니까? 19절입니다. 세금 낼 돈을 내게 보이라 하시니 데나리온 하나를 가져 왔거늘

데나리온에 형상과 글이 있습니다.

형상은 월계관을 쓴 황제 티베리우스의 얼굴이, 글은 만인의 주 신성한 아구스도의 아들 티베리우스 가이사 라는 글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우리 같으면 이렇게 답변하겠지요. 이런 짐승에겐 세금을 바칠 필요가 없다고 말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뭐라고 하십니까?

그런즉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셨습니다.

 

그들이 말씀을 듣고 놀랍게 여겨 예수를 떠나갔다고 합니다.

 

우리가 들으니 어떻습니까? 예수님의 말씀이 놀랍습니까 놀랍지 않습니까?

별로 놀랍지 않지요. 그러면 저들이 놀란 이유가 무엇일까요?

 

세금은 당연히 내냐 한다는 말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쳐야 합니다.

처음 바리새인의 의도는 이 둘은 함께 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가이사의 것과 하나님의 것이 양립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다니엘서에서도 똑 같이 나옵니다.

 

다니엘에 짐승의 나라에 잡혀 있지요. 그런데 그 짐승의 나라를 누가 만들었습니까? 하나님께서 만드셨어요. 다니엘은 그곳에서 아주 높은 직위에 오릅니다. 그러면 그 직위에서 무슨 일을 했습니까?

철저하게 짐승의 나라를 위해서 일을 했습니다. 나라를 위해 일하지 않았다면 느부갓네살 왕이 그 자리에 두겠습니까? 두지 않지요.

 

그러나 사건이 발생합니다.

느부갓네살 왕이 발악하죠. 금으로 신상을 만들고 그곳에 절하라고 합니다. 누구든지 엎드려 절하지 아니하는 자는 즉시 맹렬히 타는 풀무불에 던져 넣으리라 하였더라.

 

이런 협박에 다니엘의 세 친구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넘어가지 않습니다.

이들은 평소에는 느부갓네살 왕을 위해 열심히 일을 했습니다. 바벨론 지방의 일을 다스렸습니다. 이들은 그 지방을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지방으로 만든게 아닙니다.

다니엘도 마찬가지지요.

 

그런데 사건이 발생합니다. 느부갓네살 왕이 금신상을 만들어 절하라고 하면서 절하지 않으면 죽인다고 했습니다. 평소에는 느부갓네살 왕과 부딪힐 일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건에서 느부갓네살 왕과 부딫히지요.

 

느부갓네살 것은 느부갓네살에게 열심히 받쳤지요. 그러나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쳤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풀무불에 던져졌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이들을 살리셨습니다.

 

다니엘도 마찬가지입니다. 바벨론을 멸망시킨 메데바사의 왕 다리오가 자기의 뜻대로 고관 백이십 명을 세워 전국을 통치하게 했습니다. 이들 위해 총리 셋을 두었는데 그 중에 하나가 다니엘입니다,

 

바벨론왕국에서도 왕에게 인정받아 높은 자리에 있었고 그 다음 왕국에서도 높은 관직을 받았습니다.

왕이 이렇게 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이익이 되기 때문입니다. 왕에게 이익이 안 된다면 높은 관직에 둘 이유가 없지요. 그런데 총리들과 고관들이 다니엘을 싫어합니다. 그래서 다니엘을 고발할 근거를 찾았는데 그 방법이 삼십일 동안 왕 외에 어떤 신이나 사람에게 무엇을 구하면, 기도하면 사자 굴에 던져 넣는 법을 만들었습니다.

 

다니엘이 하루 세 번식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것을 저들이 알고 있어요. 그래서 왕에게만 기도하는 법을 만들었어요. 그런데 다니엘이 이 법에 굴복하지 않죠. 결국 사자 굴에 던져 졌지만 살았났고 오히려 다니엘을 참소한 자들이 사자 밥이 되어 버렸습니다.

 

다니엘이나 다니엘의 세친 구는 그리스도의 영이 있는 자들이기 때문에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증거합니다.

 

다시 마태복음으로 돌아와서 보게 되면 예수님의 말씀은 철저하게 다니엘과 그 세친구의 삶을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을 저들이 알아들었어요. 그러니 얼마나 대단합니까? 그런데 알아 들으면 뭐하나요? 예수님을 죽이는데.

 

예수님께서는 그냥 잡혀가셨습니다.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심과 인자가 권능의 우편에 않자 있는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대재사장이 예수님의 얼굴에 침 뱉으며 주먹으로 치고, 어떤 사람은 손바닥으로 때리며 이르되 그리스도야 우리에게 선지자 노릇을 하라 너를 친자가 누구냐 하더라 마26:64-68

 

그리고는 총독빌라도에게 넘겨졌습니다. 예수님은 한마디도 대답하지 않습니다. 바라바를 놓아주고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는 것에 대해 반항하지 않습니다.

 

저들의 권세는 저들의 권세대로 행해야 함을 인정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쳤습니다.

 

평소에는 부딪힐 일이 없지요. 그러나 때가 되면 사건이 발생합니다. 그 사건이 발생될 때 가이사의 것과 하나님의 것이 갈라집니다. 갈라지는데 가이사가 하나님의 것을 철저하게 핍박하고 죽이는 것으로 갈라집니다.

사실 하나로 합쳐지지요.

 

오늘 본문은 이것을 말씀하십니다.

1절을 봅시다.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를 하나님께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

다니엘237절을 보면 왕이여 왕은 여러 왕들 중의 왕이시라 하늘의 하나님이 나라와 권세와 능력과 영광을 왕에게 주셨고

 

이 세상의 모든 왕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왕이고 그들이 휘두르는 권세도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권세입니다. 독제자가 되었던 어떤 사람이 되었던 모든 자를 하나님께서 세우신 권세입니다.

 

그러니 2절의 말씀처럼 권세를 거스리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름입니다. 하나님의 명을 거스리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합니다. 참으로 놀라운 말씀이지요.

 

로마가 예수님을 믿는 자를 핍박하잖아요. 이것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하나님의 명을 거스리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한다고 말입니다.

 

왜 이 말씀을 하실까요? 주님은 우리 인간들의 마음을 너무나 잘 아십니다. 우린 짐승의 나라니 여기에 대해 궐기하자, 대항하자라고 할 것은 뻔 한 일입니다. 로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이라고 그런 마음 없을까요?

 

국가가, 통치자가 힘으로, 국민을 속여 정권을 잡은 것을 인정할 수 있을까요?

인정하지 않지요. 특히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더더욱 그렇지 않습니까? 그런데 주님은 그 권세 주님이 주셨다고 합니다.

 

주님은 절대로 우리 인간 편을 들지 않습니다.

 

3절을 보면 다스리는 자들은 선한 일에 대하여 두려움이 되지 않고 악한 일에 대하여 되나니 네가 권세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려느냐 선을 행하라 그리하면 그에게 칭찬을 받으리라

 

다니엘과 세 친구를 살펴보았지요. 선한 일에 대하여 두려움이 됩니까 안 됩니까?

되기도 하고 안 되기도 하고.

왕이 볼 때 선하면 두려움이 되지 않아요. 그런데 왕이 볼 때 악하고 , 주님이 보시기에 선할 때에는 저들이 두려움을 가져 오죠. 죽인다고 말입니다.

 

그러니 선을 행하라 그리하면 그에게 칭찬을 받으리라는 말씀은 성도는 철저하게 주님의 나라에 속한 자임을 알아라는 말입니다.

 

요한복음1836절을 봅시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라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겨지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예수님께서 빌라도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린 무엇을 꿈꾸는고 하면 자신이 왕이 되려고 해요. 성도는 십자가의 피를 전하라고 부름을 받은 자들입니다. 십자가의 피를 전하는 자들은 자신의 나라가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님을 아는 자입니다.

 

오히려 이 나라는 십자가의 피를 제대로 보여주기 위한 바탕종이가 된다는 사실을 알아요.

 

4절을 보세요.

그는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네게 선을 베푸는 자니라 그러나 네가 악을 행하거든 두려워하라 그가 공연히 칼을 가지지 아니하였으니 곧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악을 행하는 자에게 진노하심을 따라 보응하는 자니라

 

이 말씀을 예수님께 적용해 보세요.

 

5절을 보면 그러므로 복종하지 아니할 수 없나니 진노 때문에 할 것이 아니라 양심을 따라 할 것이라

역시 예수님께 적용해 보세요. 어떤 결과가 나왔습니까?

 

6절을 보면 너희가 조세를 바치는 것도 이로 말미암음이라 그들이 하나님의 일꾼이 되어 바로 이일에 항상 힘쓰느니라

 

다니엘서에서 말씀하신대로 왕들은 하나님의 일꾼들입니다. 어떤 일꾼입니까? 짐승역할 하는 일꾼들입니다. 짐승 역할 충실히 하라고 조세를 바치라는 것입니다.

 

우린 짐승이니 조세 바치지 말자라고 하고 싶죠? 왜 그런 마음이 들까요?

주님께서는 철저하게 성도를 이 땅에서 살게 하십니다. 이 땅에서 사는 사람들과 전혀 다르지 않게 살게 하십니다. 그런 가운데 그리스도의 피를 전하는 자로 살게 하십니다.

 

7절 끝부분을 보면 두려워 할 자를 두려워하며 존경할 자를 존경하라

문장구성에서 보면 권세자들이라고 볼 수 있지요.

 

그런데 로마서 전체에서 도대체 누구를 두려워 해야 하고 누구를 존경해야 합니까?

주님입니다. 모든 것이 주로 인하고 주로 말미암고 주께로 돌아간다고 하셨습니다.

진노를 누가 내리십니까?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자들에게 내립니다. 주님이 심판하십니다.

주님의 피로 죄용 서함을 받지 못한 자들은 주님의 심판을 받습니다.

그러니 진짜 두려워할 자, 진짜 존경할 자를 누구를 보면서 확인합니까?

권세자들을 보면서 .

 

주님의 피로 구원받은 형제들은 세상 사람이 사는 방식으로 똑 같이 살면서 그 속에서 두려워 할 자를 보면서 진짜 두려운 분을, 존경할 자를 보면서 진짜 존경할 자를 만나고 사는 자들입니다.

 

실상 저들은 전혀 두려워 할 자가 아니고 전혀 존경할 자가 아닙니다. 오직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예수님만이 두려워해야 할 분이고 존경해야 할 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