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강해

로마서강해 57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

푸른 섬 2014. 1. 12. 23:17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

로마서1417-18

하나님의 나라는 어떤 나라라고 생각합니까?

마태복음 5장을 보면 천국은 누구의 것이냐를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 애통하는 자, 온유한 자,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긍휼히 여기는 자, 마음이 청결한 자, 화평하게 하는 자,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자가 복 있는 자입니다. 천국은 이들의 것입니다.

그리고 11절에서는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다고 하십니다. 즉 천국은 이런 자들의 것입니다.

그 이유는 12절에서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심령이 가난하고, 애통하고, 온유하고, 의에 주리고 목마르고, 긍휼히 여기고 마음이 청결하고 화평하게 하고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선지자들은 박해를 받았습니다.

베드로 전서110-12절을 봅시다.

이 구원에 대하여는 너희에게 임할 은혜를 예언하던 선지자들이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펴서 자기 속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이 그 받으실 고난과 후에 받으실 영광을 미리 증언하여 누구를 또한 어떠한 때를 지시하시는지 상고하니라 이 섬긴 바가 자기를 위한 것이 아니요 너희를 위한 것임이 계시로 알게 되었으니 이것은 하늘로부터 보내신 성령을 힘입어 복음을 전하는 자들로 이제 너희에게 알린 것이요 천사들도 살펴보기를 원하는 것이니라

선지자들 속에는 그리스도의 영이 있었습니다. 선지자들은 그리스도를 전했습니다. 그 모습이 심령이 가난하고, 애통하며, 온유하고, 의에 주리고 목마르며, 긍휼히 여기고, 마음이 청결하고, 화평하게 하고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았습니다.

 

이런 다양한 모습들은 한분으로 모아집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을 증언합니다.

마태복음2333-36절을 봅시다.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선지자들과 지혜 있는 자들과 서기관들을 보내매 너희가 그 중에서 더러는 죽이거나 십자가에 못 박고 그 중에서 더러는 너희 회당에서 채찍질하고 이 동네에서 저 동네로 따라다니며 박해하리라 그러므로 의인 아벨의 피로부터 성전과 제단 사이에서 너희가 죽인 바라갸의 아들 사가랴의 피까지 땅 위에서 흘린 의로운 피가 다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것이 다 이 세대에 돌아가리라

예수님께서 좀 좋은 말씀을 하셔도 되는데 독기를 품은 사람처럼 말씀하시고 계시지요.

여기에 심령이 가난함, 애통함, 온유함, 의에 주리고 목마름, 긍휼히 여김, 마음이 청결, 화평을 찾을 수 있습니까?

그런데 이런 모습을 가진 자를 어디에 집어넣었습니까? 죽임 당하는 자, 십자가에 못 박히는 자, 채찍질 당하는 자, 박해 당하는 자속에 집어넣었습니다. 그 예를 아벨과 사가랴를 대표자로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아벨은 천국백성이라는 말씀입니다. 사가랴도 마찬가지고요.

그러면 우리들은 아벨에게서 무엇을 볼 수 있을까요?

심령이 가난한 모습, 애통하는 모습, 온유한 모습, 화평한 모습 등등을 볼 수 있어야 하겠지요.

그런데 이것에 대해서는 우리들이 잘 찾아 볼 수 없고 예수님 증언하다가 죽임 당했다는 것만 확실히 남아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아벨을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심령이 가난한 자로, 애통하는 자, 온유한 자,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로, 긍휼히 여기는 자로, 마음이 청결한 자로, 화평케 하는 자로 평가를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511-12절에서 말씀하셨지요. 자기를 위해 핍박받는 자는 복이 있다고 하시면서 선지자들을 예로 드셨지요. 그 선지자들은 그리스도의 영을 받아서 예수그리스도의 피를 증언했습니다.

이 모습이 주님 보시기에 참으로 심령이 가난한 자, 애통하는 자, 온유한 자, 화평케 하는 자,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긍휼히 여기는 자, 마음이 청결한 자,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입니다.

그러니 우리들이 생각하는 심령이 가난하고, 애통하고, 온유하고, 화평케 하고 의에 주리고 목마르고, 긍휼히 여기고, 마음이 청결하고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말씀이 그래서 어렵습니다. 사람들이 사용하는 용어를 사용하셔서 하늘나라 말씀을 하시니 땅의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가 없습니다. 기껏해야 땅의 언어로 이해해서 그렇게 살려고 하지요.

느헤미아1323-25절을 봅시다.

그 때에 내가 또 본즉 유다 사람이 아스돗과 암몬과 모압 여인을 맞아 아내로 삼았는데 그들의 자녀가 아스돗 방언을 절반쯤은 하여도 유다 방언은 못하니 그 하는 말이 각 족속의 방언이므로 내가 그들을 책망하고 저주하며 그들 중 몇 사람을 때리고 그들의 머리털을 뽑고 이르되 너희는 너희 딸들을 그들의 아들들에게 주지 말고 너희 아들들이나 너희를 위하여 그들의 딸을 데려오지 아니하겠다고 하나님을 가리켜 맹세하라 하고

<!유대가 바벨론포로로 잡혀 갔다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포로에서 돌아옵니다. 느헤미야는 유대총독이 되어 3차포로귀환 때 유대인들을 데리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옵니다. 돌아와서 예루살렘 성벽중건을 마친 후에 포로에서 돌아온 유대인들이 모세율법대로 살도록 합니다. 그 과정에서 이런 일을 했습니다.

 

여기에 보면 느헤미아가 책망하고, 저주하고, 때리고 , 머리털을 뽑습니다.

여러분 한번 상상을 해 보세요.

율법대로 살도록 하기 위해 느헤미아가 하는 이런 행동에 동의가 됩니까?

아마 이런 행동에 동의가 되는 사람들은 로마제국시절 교회가 행동했던 것들을 합리화 할지 모릅니다.

기독교를 국가종교로 만들어 말 듣지 않는 자들을 죽이는 것이 정당했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그런데 느헤미아처럼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성전 안에서 이런 일을 하셨습니다.

성전 안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는 사람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 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며 상을 엎으시고2:14,15

이런 모습이 심령이 가난한 모습, 온유한 모습, 애통하는 모습, 화평케 하는 모습입니다.

천국 주인의 모습을 드러내니 사람들이 주인을 어떻게 대우했습니까?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것은 그들이 원한 천국주인의 모습이 아니지요.

그들이 원한 천국주인은 적어도 자신들이 행하는 행동에 동의를 해주는 분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천국주인은 매사 부정적입니다. 조금이라도 인정해주면 어디가 문제가 됩니까?

긍정이라곤 하나도 없어요.

 

요한복음1장에서 세상을 어둠이라 말씀하십니다.

세상을 어둠이라 하지 말고 대부분 어둠이라고 하시면 듣는 사람 얼마나 기분이 좋을까요?

그런데 혈통과 육정으로 난 사람들은 모두 부정해버립니다.

천국은 혈통과 육정으로 난자는 못 들어갑니다.

천국은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자만 들어갑니다.

따라서 혈통과 육정이 생각하는 내용으론 천국에 들어 갈수가 없습니다.

혈통과 육정이 생각하는 내용이란 어떤 것입니까?

그야 말로 착한 사람되기, 종교적인 사람되기, 말씀지키기 이런 것이 혈통과 육정이 생각하는 내용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로마서를 읽어 보면 항상 비교를 하시지요.

부정하지 않고 긍정적인 것만 말씀하시면 듣기 편할텐데.

우리들이 사람들과 대화를 할 때 긍정적인 말만하면 듣기 좋잖아요. 부정적으로 말을 하면 좋지 않지요.

그런데 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실 땐 꼭 이런 식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런 것이다라고 해 버리면 좋은데, 왜 꼭 부정하는 것을 집어넣어 말씀하실까요?

예수님의 비유를 보아도 그래요. 그냥 좋은 것만 말씀하시면 되는데 꼭 부정적인 것을 집어넣어 말씀하시지요.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먹는 것과 마시는 것, 이게 중요합니까 중요하지 않습니까? 중요하지요.

한국 오락 프로그램 중에 정글의 법칙 이란 것이 있어요. 그걸 보면 사람들이 먹는 것 마시는 것 빼면 할 게 없어요. 물론 자는 것하고.

지금 로마서에서 먹는 것 마시는 것을 언급했지만 사실 이것은 인간에겐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이지요.

먹는 것 마시는 것, 입는 것이 없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 있나요?

요즘 얘들은 먹는 것이 넘쳐서 문제라 보이지만, 먹는 것 없어 보세요. 마실 것이 없어 보세요. 난리치지 않겠습니까?

마태복음6장에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방인들은 무엇을 구하는가?

이방인들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를 구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방인들은 지옥 가는 자들입니다. 즉 천국백성이 아닌 자들이지요.

천국백성 아닌 자들은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입을까를 구하고 살아갑니다.

우리가 하는 일이 다 이런 일 아닌가요?

지금 로마서14장에서 이런 말씀을 하시는 겁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에 있지 않다고 하면 사람들은 당황합니다.

사람들에게 있어서 가장 기본은 먹는 것이고 입는 것이고 마시는 것 아닙니까?

다르게 표현하면 사람들이 살아가는 것 빼고 하나님나라를 생각할 수 있느냐의 문제입니다.

사람들은 육이 있는 한 먹는 것 포기 못해요.

우리는 이런 생각 가져요. 예수님을 믿으면 먹는 생각, 입는 생각 안 하고 살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어도 먹는 것 입는 것, 마시는 것 끊임없이 욕구나 솟아 나와요.

항상 의와 평강과 희락 속에서 살면 얼마나 좋을까를 생각하고 꿈을 꾸지요.

그런데 문제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는 것도 자기 육체와 관련지어 생각합니다.

즉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도 얼마든지 생각해 낼 수 있는 의, 평강, 희락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는 성령 안에서 라는 표현을 하시지요.

이 말씀은 인간에게서는 절대로 나올 수 없는 의, 평강, 희락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의, 평강, 희락은 세상이 절대로 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세상이 주는 평강, 희락을 오늘 말씀에 대응시킨다면 역시 먹고 마시는 일속에 포함된 일일 뿐입니다.

따라서 성령 안에서 의, 평강, 희락은 십자가의 피로 주어진 것입니다.

인간들은 마실 것이 있고 먹을 것이 있으면 평강하고 즐겁지요.

이 추운 날 집이 없고, 돈이 없어 난방이 안 되는 집에 산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런 사람들이 많지요. 그런 사람들 평강이 있겠습니까? 희락이 있겠습니까?

그런데 주님의 말씀은 이런 사람들을 약 올리는 것 같아요.

하나님의 나라는 집도 아니고 따뜻한 난방도 아니고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왜 하나님 나라를 말씀하시면서 부정적인 말을 사용하시는지를 아시겠습니까?

주님께서 성도를 다루실 때 이런 식으로 다루시는 겁니다.

그냥 육적인 필요 없는 자로 살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이 땅에 살면서 땅에 것이 없으면 안 되는 자로 살게 하시면서 십자가의 피와 만나게 하시는 겁니다.

우린 오늘 본문을 보면서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으로 살고 싶지요. 이게 하나님의 나라라고 하셨으니.

그런데 이것은 십자가 지신 주님이 이런 의, 평강, 희락을 가져오시는 분임을 믿게 합니다. 성령 안에서라는 말씀을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 자신과 분리시킵니다. 우리 자신을 부인시키십니다. 왜 우리 자신이 부인됩니까?

우린 눈만 뜨면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입을까를 염려하잖아요. 그러니 하나님 나라는 십자가 지신분이 만드셨고, 그분이 만드신 곳에 그분의 영을 보내 주셔서 그분만이 만드셨음을 자랑하라고 성도를 그 속에 집어 넣으셨습니다.

모든 것이 주로 인하고 주로 말미암고 주께로 돌아간다고 하셨지요. 시작과 과정, 결론 어디한부분에도 우리 인간이 부정되지 않으면 주님이 주님행세 못하신 겁니다. 달리 표현하면 인간이 주님행세한 것이 되어 버립니다.

18절을 보면 이로써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느니라고 하시지요.

성도는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입니다. 그리스도를 섬긴다는 것은 끊임없이 주님이 하신 일만을 증언하는 사람들이라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자기 일은 자기 일로 드러나야 하겠지요.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를 말씀하실 때 부정적인 것을 말씀하시면서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고 말씀하신 겁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요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는 것입니다.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는다고 했을 때 우린 또 생각해야겠지요.

예수님이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받았는지? 사도바울이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받았는지?

여기에 나오는 사람들이란 사도바울 같은 사람들입니다.

성도는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이지 자신을 섬기는 자가 아닙니다. 다르게 말하면 성도는 그리스도의 종입니다. 그리스도가 여러분의 종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