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 강해

사무엘 상 강해15

푸른 섬 2008. 3. 3. 10:00
 

중보자

사무엘 상7:5-17                                            257,427,341

하나님께서 언약하신 것은  사람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달라지거나 바뀌어 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항상 본성적으로 쉽게 생각합니다.


내가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시지 않겠는가라고 말입니다.

구약 성경을 보면서 항상 반성하는 태도를 견지합니다.


그래서 구약성경을 보면서 반성하면서 저렇게는 하지 말아야지라고 다짐합니다.

물론 훌륭한 사람이 나오면 당장 우와 저와 같은 삶을 살아야지라고 다짐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

우리가 이런 식으로 결심을 한다고 다짐을 한다고 그렇게 살수 있다고 하십니까?


오랜만에 창세기 이야기를 좀 해보겠습니다.

25장에 보면 이삭의 아내 리브가가 잉태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삭이 그를 위해 기도하니까 잉태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이것을 두고 또 흉내 내려고 합니다.

내가 자식이 없으니 기도하면 주시겠지.

아니면 이삭 같은 우리 목사님께서 기도하면 주시겠지.


적어도 우리 성도들은 이런 식의 성경해석은 하시지 않으실 것이라 생각됩니다.

여러분이 잘 알듯이 이 기도의 응답으로 에서와 야곱이 태어납니다.


그런데 이들이 태어나기도 전에 하나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십니다.

22절 23절입니다.

“아이들이 그의 태속에서 서로 싸우는지라 그가 가로되 이같으면 내가 어찌할꼬 하고 가서 여호와께 묻자온대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는 어린 자를 섬기리라”


지금 둘이서 태어나기도 전에 뱃속에서 싸움을 합니다.

그런데 뱃속에서부터 싸움을 했다면 둘 다 혼나야 하겠지요?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들이 장차 어떻게 될 것인가를 결정하시는데,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길 것이라고 결정을 하셨습니다.


이것을 두고 로마서9장13장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그런데 놀랍게도 이들은 이 말씀은 근거하여  이삭, 리브가, 에서, 야곱 모두는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따라, 자신들의 방식으로 말씀을 이루려고 합니다.


물론 섬김을 받는 쪽에 되어 보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삭과 에서는 나름대로 이 말씀을 자신들이 유리한대로 해석합니다.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긴다.

그래 내가 큰 자가 되어서 어린 자를 섬기면 되지. 장자권,축복권을 받아서 어린 자 야곱을 섬기면 되지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물론 자신들의 탐욕에 근거하여서지요. 물론 말씀에 근거했다고 자신들은 주장할 것입니다.


한편 야곱과 리브가는 어떻습니까?

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눈이 먼 아버지를 속여서라도 축복권을 따 내고 싶은 것입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장자권만 따내면 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어떻게 되었습니까?

누가 이겼습니까?

야곱이 이겼지요.


야곱이 장자권을 따냈습니다.

그런데 야곱이 어떻게 됩니까?


야곱이 죽지요.

언제 죽습니까?

얍복강가에서 천사와 씨름하다가 얻어터지지 않습니까?


그곳에서 그는 이름을 바꾸게 됩니다.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으로 말입니다.


그렇게 힘을 의지하고 자신의 지략을 의지하든 야곱이 이제는 지팡이 짚는 신세가 됩니다.

그리고 오히려 모든 것을 내어주는, 오히려 두려움이 많은, 이전에 볼 수 없었던 모습을 보입니다.


그렇게 자신 만만하던 야곱이 어디로 갔습니까?

또한 야곱은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요셉을 잃어버리는 경험을 당하게 됩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자신의 말씀을 이루시는 방식은 하나님의 방식이 따로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그래도 야곱이 속여서라도 장자권을 따냈으니 복을 받았다고 말입니다.


그게 무슨 복입니까?

그 인생살이를 한번 보세요.


그 전 인생살이와 더 괜찮습니까?


하나님께서 언약을 이루시는 방식이 이렇습니다.

언약을 주셔놓고, 말씀을 주셔 놓고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방식대로 그 말씀을, 언약을 이루시고, 인간은 인간대로 그 말씀을 자신의 방식으로 이루려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결국 인간은 죽어야 당연하다는 것을 알려 주십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긍휼, 언약이 어떤 것인가를 증거하는 도구로 사용하십니다.

한 쪽은 진노의 그릇으로, 다른 한 쪽은 긍휼의 그릇으로 말입니다.


그러니 성경 말씀을 갖고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해 보겠다는 발상 자체가 엉터리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게 되면 사무엘 선지자가 대 활약하는 장면을 보게 됩니다.

사무엘의 기도와 중보로 이스라엘은 블레셋의 공격을 받지 않습니다.


이것을 보면 실제 블레셋이 이스라엘보다 힘이  강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젖 먹는 어린양을 취하여 번제를 드리는 중에 블레셋이 쳐들어 왔습니다.

저들에겐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런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언약궤의 활약 말입니다.


그것을 기억한다면 블레셋이 그렇게 쉽게 이스라엘을 치지 못할텐데.


그리고 이스라엘이 이것을 안다면 블레셋을 두려워하지 않아야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언약궤는 날아가 버립니다.


그 언약궤 역할을 지금 사무엘이 하고 있습니다.


블레셋 군대의 예상이 빗나갑니다.

하늘에서  큰 우뢰를 발하여 그들을 어지럽게 하여 블레셋이 이스라엘 앞에서 패하게 하십니다.


너무나 신이 나는 장면이 아닙니까?

결국 사무엘 선지자가 사는 날 동안은 블레셋이 이스라엘 경내에 감히 들어 올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오늘 같은 본문을 보면서 또 한 번 꿈을 꿉니다.

우리에게도, 나에게도 이런 선지자가 있었으면.


그래서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목사를 중보자로 여기는 것입니다.

자신의 기도는 시시하고 목사의 기도는 무언가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자신도 이런 중보자의 능력이 있다고 착각하는 사람도 있고요.


그래서 목사님이나 그런 자신만 있다면 오늘 본문에 일어났던 일이 나에게도, 다른 사람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제가 앞서서 에서와 야곱을 말씀드렸습니다.

왜 제가 에서와 야곱을 이야기 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것은 우리 자신의 형편을 알아라는 것입니다.

물론 성경을 보면서 우리는 흉내를 내어 보려고 하고 꿈도 꾸는 것이 우리들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경말씀을 보면서 먼저 알아야 하는 것을 결론입니다.

이미 결판이 났습니다.


모든 것은 주님의 언약이 어떤 언약인가? 그 언약 자체를 증거하시 위해서 모든 인간들이 존재하고 모든 일들이 일어난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을 보여주는 내용이 성경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보면서 흉내 내고, 그러한 꿈을 꾸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내가 어떤 마음을 갖고 있는가를 들키고, 드러나고 발각되는 일을 당해야 합니다.


이것이 성도의 참 모습입니다.


예수님께서 왜 십자가 지셨습니까?

사람들은 자꾸 생각합니다.

내가 부족해서 십자가 지셨다고 말입니다.


아닙니다. 부족해서 십자가 지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죽어야 하는 인생이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십자가 지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성경 말씀을 통해 우리는 죽어야 하는 인생임을 알게 하시고, 오직 주님의 피로만 승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참 중보자 되신 주님은 지금도 살아계셔서 늘 기도 하십니다.

자기 백성들을 위해서 말입니다.


그래서 성도는 원수마귀로부터 승리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이기고, 잘 살고 하는 것이 아니라, 늘 십자가 앞에서 죄를 알며 그 은혜에 대해 무한 감사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이런 자들을 세상이 감당치 못한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싸움 자체, 내용이 세상과 영 딴판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우리들도 늘 성경말씀을 부지런히 묵상하는 가운데 주님의 큰 은혜를 더 깊이 알아가는 인생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또한 오만가지 일들이 일어나는 가운데서도 늘 승리하셨음을 확인하는 인생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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