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모데전서

강해12

푸른 섬 2008. 8. 28. 11:28

숨길 수 없다.

디모데전서5:19-25

사람이 모이는 곳이면 사람의 허물 즉, 죄악들이 줄줄 흘러나옵니다.

사람들이 모이지 않을 때에는 보이지 않는 악함 들이 사람들이 모이니 드러납니다.

평소에 속에 들어 있던 욕망들이 사람과 사람이 만남으로 꿈틀꿈틀, 마치 봄에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듯이 올라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모이면 함께 힘을 합쳐 나쁜 짓도 하고, 사람들이 모이면, 편 가르기가 되어 서로서로 욕을 하는 경우를 쉽게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모습이 교회바깥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도 그대로 있다는 사실입니다.

어쨌든 다른 사람의 허물을 만들어 내어 그 사람을 끌어 내리려고 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입지를 더욱더 높이려고 하지요.

교회에 장로가 세워졌습니다.

 

그러면 어떤 일이 발생합니까?

그 장로를 좋아하는 무리와 그렇지 않은 자들이 나타납니다.

초대교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자들이 있으면 예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장로의 허물을 고발합니다.

이럴 때 교회는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가 했을 때에, 두세 증인이 없으면 받지도 말라고 합니다.

이런 말씀이 성경에 있다는 것은 인간들이 얼마나 악한 마음을 품고 교회에 나오는가를 말씀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십자가의 긍휼로 구원받은 사실은 벌써 과거의 일이 되어 버립니다.

이제 관심은 교회에서 주도권을 갖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주도권을 갖고 내가 하나님이네 하는 행세를 해 보려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범죄한 장로도 그렇습니다.

왜 죄를 범합니까?

자신의 탐욕 때문에 그렇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우리를 놀라게 하는 말씀이 20절에 나옵니다.

“범죄한 자들을 모든 사람 앞에 꾸짖어 나머지 사람으로 두려워하게 하라”

오늘날 이런 일이 가능하겠습니까?

이렇게 하면 아마 교회에 남아 있을 사람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이 말씀을 곰곰이 생각해 보면, 범죄한 일이 도대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게 됩니다.

범죄란 십자가의 긍휼을 져버리는 행위 일체를 말하는 것인데, 우리가 범죄하지 않을 때가 있습니까?

우리의 생각, 행동들이 항상 범죄치 않습니까?

아니 얼마나 되는 시간을 범죄치 않고 살아갑니까?

 

우리는 이 말씀을 너무 쉽게 이해하려고 합니다.

드러나 범죄, 예를 들어 교회공금을 횡령했다든지, 공공연히 간음을 했다든지 하는 것을 두고 생각해 버립니다. 오늘날 교회가 그러하지요.

그러다 보니 하나님의 말씀이 엄중하게 대하기는 커녕, 그냥 대충 대하려고 합니다.

무슨 말씀인지 아시겠지요.

산상설교 같은 주님의 말씀으로 오늘 본문을 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말씀 앞에서 우리가 얼마나 큰 죄인인가를 알아가는 인생이 아니라 내가 얼마나 의로운 인간인가를 생각합니다.

 

나는 공금을 횡령하지 않았어. 나는 간음하지 않았어. 나는 십일조를 꼬박꼬박했어.

나는 주일날 예배를 빠지지 않아서. 물론 요즘 이런 사람도 많지 않습니다마는 이런 식으로 말씀을 경하게 대해 버리는 것입니다.

범죄가 무엇입니까?

 

십자가의 사랑은 잊어버리고 자신의 욕망대로 살아가는 모든 것이 범죄지 않습니까?

그러면 그렇지 않을 인간이 있겠습니까?

그러니 말씀 앞에 성도들이 모였을 때 하나님의 긍휼을 구할 수밖에 없고 회개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죄를 범한 사람이든 그렇지 않은 사람이든 모두가 주님을 두려워하는 삶을 사며, 주님의 긍휼을 구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말씀이 그냥 개인주의 적으로만 받아야 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모이는 자들이 엄연히 존재합니다.

이럴 때에는 분명히 잘잘못을 가려 십자가의 긍휼이 증거되는 모습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럴 때 또 어떤 일이 발생합니까?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은 좋게 생각하려고 하고, 그렇지 않는 사람은 나쁘게 생각하려고 하는 것이 우리들 모습이 아닙니까?

 

뿐만 아니라 아무리 경솔히 안수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누가 그 사람의 마음을 알겠습니까?

안수 받은 이후에 장로가 된 이후에 죄를 범할 인간인지 아닌지 어떻게 알겠습니까?

또한 다른 사람의 죄에 끌려 들어가지 말고, 자신을 지켜 정결케 하라고 하는데 이것이 어디 쉽습니까?

사람과 사람이 만나지 않는 이상 이런 일들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24-25절을 함께 읽어 봅시다.

“어떤 사람들의 죄는 밝히 드러나 먼저 심판에 나아가고 어떤 사람들의 죄는 그 뒤를 좇나니 이와 같이 선행도 밝히 드러나고 그렇지 아니한 것도 숨길 수 없느니라”

어떤 사람들은 지금 당장 그 죄악이 드러나지만 그 죄가 드러나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지요. 그러나 이런 것도 드러난 죄와 마찬가지로 다 심판에 나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이와 같이 십자가 지신 주님 앞에 우리가 숨길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내가 사람들 앞에서 범죄함이 드러나지 않았다 하더라도 주님 앞에서 그 범죄함을 숨길 수 없습니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모인다 하더라도 여전히 우리들 마음속에는 욕망들이 가득 차 있습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남으로 이런 죄들이 시너지 효과를 냅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의 죄는 눈이 보이게 나타나지만, 어떤 사람의 죄는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눈에 드러나는 죄는 책망을 받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마치 의로운 사람처럼 간주합니다.

사람은 속일 수 있고, 사람에게는 숨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 앞에서는 숨길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보이는 사람 앞에서 살아가는 인생이 아니라 지금도 살아계신 주님 앞에서 살아가는 인생임을 아셔야 합니다.

 

이럴 때 우리가 얼마나 주님의 사랑을 무시하고, 긍휼을 져버리고 살아가는 인생임을 알 것이고, 십자가의 은혜를 참 깊이 알아갈 것입니다.

제발 눈에 보이는 대로 살아가는 인생이 아니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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