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마태복음20:1-16

푸른 섬 2013. 10. 21. 13:50

누가 천국에 갈수 없는가?

마태복음20:1-16

여러분, 천국은 누가 갈수 있다고 생각 하십니까?

아마 여러분들은 이렇게 답변할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천국간다라고 말입니다.

어린아이들에게 물어 보아도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예수님 믿으면 천국 간다고 생각하시지요?

그러면 반대로 부처를 믿으면 천국 갑니까 못갑니까? 못가지요. 그렇다면 여러분 자신을 믿는다면 천국갈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역시 갈수 없겠지요.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데 어떤 예수님을 믿는고 하면 자신이 믿는 예수님을 믿어요.

말이 좀 어렵지요.

쉽게 말씀드리면 자신이 만들어 낸 예수님을 믿습니다.

제 말이 좀 낯설게 느껴지지요.

예수님이면 같은 예수님이지 자신이 만든 예수님이 어디 있습니까? 그렇다면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예수님이 따로 있다는 말입니까? 이렇게 질문하실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에는 수많은 예수가 있어요. 뿐만 아니라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예수님이 따로 있어요.

문제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으면 무조건 천국 간다고 생각해요. 왜 그렇습니까?

성경에 나와 있거든요.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네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이렇게 약속하셨으니 예수님을 믿으면 천국가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여러분들도 그렇게 생각하지요.

사람들이 교회에 나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 당연히 그 예수는 우상이 아니라 참 하나님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의심 없이 목사가 설교하는 내용이 진리라 생각하고 아멘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큰 문제점이 있지요.

성경은 분명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믿음이 어디로부터 온다고 합니까?

주님이 성령을 보내 주셔서 믿게 하십니다.

그렇다면 앞서 내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말이 문제가 됩니까 되지 않습니까? 문제가 되지요.

내가 믿는다고 아무리 외쳐도 그 믿음을 성경에서는 인정해 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주님의 영이 임한 사람만 주님의 은혜로 구원을 얻었음을 고백하지요. 그러니 교회에 나와서 나 예수님을 믿어요. 그러니 천국갈수 있다고 확신하는 사람은 사실 성령과 상관없는 사람입니다. 다르게 말씀드리면 주님께서 흘리신 피와 상관없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들의 특징은 구원이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은 천국갈 자격이 충분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자신은 예수님을 믿을 뿐만 아니라 주일마다 예배당에 나와서 말씀도 듣고 찬양도 드립니다.

또한 성경공부, 새벽기도회도 열심입니다. 헌금도 열심히 하지요.

그러니 이렇게 희생하고 이렇게 헌신하는 자신을 주님께서 구원하시지 않을 리 없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본문으로 들어가 봅시다.

천국에 대한 비유를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포도원이 있고 포도원 주인이 있습니다. 포도원 주인이 이른 아침에 포도원에서 일할 품꾼을 고용하려고 품꾼을 찾아 나섰습니다. 품꾼을 찾아서 하루 한 데나리온씩 품꾼들과 약속하여 포도원에 들여보냈습니다. 일당 한국 돈 8만원이라 생각하면 됩니다.

그리고는 제 삼시(오전 아홉시)에 장터에 나갔는데 그곳에서 놀고 있는 사람을 발견했어요. 이들도 포도원으로 들여 보냅니다. 물론 일한만큼 주겠다고 하고서 들여 보냈습니다.

그리고 제 육시(정오 열두시), 제 구시(오후세시)에도 그렇게 했습니다.

그리고 제 십일시(오후 다섯 시)에도 나가보니 종일토록 놀고 있는 사람을 발견했습니다.

이들은 이렇게 말하지요. 우리를 품꾼으로 쓰는 이가 없어서 이렇게 종일 놀고 있다고 말합니다.

여기까지가 포도원에 들어간 일꾼들의 면면입니다.

여기에서 제일 이른 시간에 포도원으로 일하러 들어간 품꾼들을 살펴봅시다.

이들은 제일 일찍 인력시장에 나와서 포도원 주인의 택함을 받아 포도원에 일하러 들어갔습니다.

이들은 하루 일당, 한 데나리온의 약속을 받아서 들어갔습니다.

이들에게 주어지는 한 데나리온은 자신들이 일한 시간에 대한 정당한 대가입니다. 그러니 이들은 당연히 한 데나리온을 받는다고 생각하겠지요.

그런데 오전 아홉시나 정오, 즉 낯 열두시, 오후 세시, 오후 다섯 시에 온 사람들은 자신들이 얼마를 받을지를 모릅니다. 다만 자신들은 할 일 없이 놀고 있었습니다. 할 일 없이 노는 자신들을 벌써 노동시작시간이 몇 시간이 지났고 벌써 끝나 가는데 포도원 주인이 일할 기회를 주었습니다.

상황이 이런 상황입니다.

자 이제 하루 일이 끝났습니다.

포도원 주인이 일한 값을 품꾼들에게 줍니다.

그런데 주인이 품삯을 누구부터 줍니까?

오후 다섯 시에 온 사람부터 시작하여 가장 이른 아침에 온 사람 순으로 품삯을 주라고 청지기에게 명합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발생했습니다.

오후 다섯 시에 온 사람들이 한 데나리온씩을 받았습니다. 주인의 셈법이 참 독특하지요.

품삯은 분명 하루 일당 한 데나리온인데 일 끝나갈 때 온 사람이 한 데나리온을 받았다. 이게 있을 수 있는 일입니까?

어린 아이들도 도무지 받아 들일 수 없는 일 아닙니까?

학교에는 맨날 종회할 때 들어와서 출석체크만 해요. 시험도 안쳐요. 당연히 공부 못하겠지요. 그런데 선생님이 백점을 줘 버려요. 그러면 어떤 아이들이 화를 낼까요?

당연합니다. 아침 일찍학교와서 자습하고 선생님 말씀잘듣고, 공부 열심히 해서 시험 잘 쳐서 백점맞은 아이들이 화를 내겠지요. 물론 백점 맞은 아이들만 화를 낼까요? 아닙니다. 비록 백점은 못 맞았어도 자신들은 매일 종회 때문 오는 아이보다는 훨씬 더 착한 학생이고, 공부도 저 아이 보다 더 열심히 했으니 당연히 기분 나쁘겠죠?

이 느낌 알잖아요. 만날 노는 것 같은데 시험 치면 점수 잘 나오는 친구들 있잖아요. 괜히 기분 나쁘잖아요.

포도원 주인의 행동에 먼저 온 자들이 굉장히 기대를 걸었습니다.

이들은 화를 내지 않아요. 왜 그럴까요?

자신들은 백점이 아니라 이백 점, 삼백 점을 줄 거라 확신했습니다.

10절에 보면 먼 저온 자들이 와서 더 받을 줄 알았더니 라는 말씀이 나오지요.

계산 빠릅니다. 나는 오후 다섯 시에 온 사람보다 몇 시간을 더 일했지. 그렇다면 나는 다섯 데나리온 정도는 받겠지.

이미 확신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앞서온 모든 사람들이 다 한 데나리온씩 받았습니다.

오후 세시에 온 사람, 정오에 온 사람, 오전 아홉시에 온 사람, 이른 아침에 온 사람. 모든 사람들이 한 데나리온씩 받았습니다.

그러자 이들이 주인을 원망합니다.

이른 아침에 온 사람들만 원망하면 우리들이 좀 이해할 수 있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오전 아홉시, 정도, 오후 세시엔 온 사람들도 모두 주인을 원망했습니다.

12절에 보면 오후 다섯 시에 온 사람들은 한 시간을 일했다고 나오지요. 한 시간 일한 사람이 한 데나리온이라면 온 종일 수고하며 더위를 견딘 사람들에겐 더 많은 돈을 주셔야 당연하지 않습니까?

여러분 생각은 어떻습니까?

이른 아침부터 일한 사람과 한 시간만 일한 사람에게 똑 같은 돈을 준다면 여러분들은 어느 시간에 가서 일하겠습니까?

그야 당연히 오후 다섯 시에 가서 일하겠다고 하지 않겠습니까?

아닙니까?

어차피 똑 같은 돈 받는데 굳이 아침 일찍부터 일할 필요 있나요? 차라리 하루 종일 빈둥 놀다가 막판에 가서 일하고 일당 받으면 최고잖아요.

그런데 만일 이런 식으로 생각한다면 이런 식의 사고방식이 누구와 사고방식과 일치합니까?

바로 이른 아침에 온 사람의 사고방식과 일치합니다. 그렇지요.

한 시간만 일하고 한 데나리온을 받겠다는 심보가 바로 온 종일 일했으니 한 시간만 일한 사람보다는 훨씬 많은 돈을 주셔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과 동일한 마음입니다.

여러분 생각은 어떻습니까?

포도원 주인이 합당하다고 여겨집니까. 합당하지 않다고 여겨집니까?

합당하지 않지요?

합당하게 여겨진다면 그런 사람은 이상한 사람이지요.

그런데 보세요. 주인이 뭐라고 말합니까?

친구여 내가 네게 잘못한 것이 없다고 하지요. 나는 한 데나리온을 약속했고 약속대로 주었다고 하지요. 그리고 하는 말이 나중 온 사람에게 너와 똑깥은 돈을 주는 것이 주인의 뜻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하는 말이 15절입니다. 함께 읽어 봅시다.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것이 아니냐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게 보느냐”

누구것이라 합니까?

주인 거라 하지요. 품꾼 것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애당초 없었지요. 주인의 것을 주인 마음대로 하는데 품꾼이 그렇게 하는 것은 악합니다라고 할 수 있습니까? 없지요?

그런데 지금 품꾼이 주인을 어떻게 평가합니까? 악하다고 평가하지요.

본래 품꾼은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품삯을 받을 수 없는 빈둥빈둥 시장 모퉁이에서 노는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데려다가 품삯을 받을 자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런데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주인이 한 시간만 일한 사람에게 먼저 품삯 한 데나리온을 줌으로 말미암아 앞서 온 품꾼들의 마음을 확 뒤집어 놓아 버렸습니다.

그리고 16절에서 이 비유의 말씀의 결론을 내립니다.

“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

이 말씀은 이미 마태복음19장30절에서 하신 말씀입니다.

그렇데 19장29절을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또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라라”

그리고 하신 말씀이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라고 하시면

오늘 우리들이 살펴보는 20장1절에서16절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품꾼들이 어떤 일을 한다는 말입니까?

주님의 이름, 예수님의 이름을 위하여 집도 버리고 형제도 자매도 부모도, 자식도, 전토를 버렸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버리는 것도 버리는 기간이 있잖아요.

예를 들면 스무 살에 예수님을 만난 사람, 50세 때 만난 사람, 90세 때 만난 사람 다 다르지요.

또한 버리는 것도 상당히 다르지요. 어떤 사람은 형제를 버린 사람이 있고, 부모를 버린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전토를 버린 사람이 있습니다.

그 값어치가 다 다르지요.

성경말씀이 간단하지 않지요. 예수이름을 위해 집, 형제, 자매, 부모, 자식, 전토를 버린 자가 영생을 상속받는다 하셨습니다. 우리 하고는 상당히 거리가 멀다고 느껴지지요. 그런데 어떤 사람에게는 예수님을 믿기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난 사람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앞서 언급했듯이 새벽기도 나오지요. 주일 예배 참석하지요. 제사 지내지 않지요. 헌금하지요. 어찌 되었던 이런 일들이 예수님을 믿는 자들에게 일어나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이런 사람은 당연히 천국갈수 있다고 생각하겠지요. 누구와 비교해서. 이렇게 버리지 않은 자와 비교해서. 아이면 자신과 비교해서 자신보다 더 적게 버린 사람과 비교해서 그렇지요.

그런데 이런 자는 천국갈수 없다고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십니다. 천국은 이런 자를 골라내서 지옥 보내버리는 것이 천국이라는 것입니다. 참 독특하지요? 어떻게 골라냅니까? 아주 일찍 예수님을 믿게 합니다. 충성을 다하게 합니다. 죽도록 충성하게 해서 지옥 보내 버립니다.

이렇게 되면 다시 반발하는 사람들이 생깁니다. 그러면 난 죽을 때 예수 믿고 천국 가겠어요. 그런 사람 많이 봅니다.

예수님만 믿으면 천국 간다면서요. 그러면 난 죽을 때 예수님을 믿고 천국갈래요.

이런 사람이 어떤 사람에게 해당되는 사람입니까? 이른 아침부터 일했으니 당연히 한 시간 일한 사람보다 더 많은 돈을 받아야 된다는 사람과 똑 같은 사람입니다.

제가 설교 서론에서 우상 예수에 대해서 말씀드렸습니다.

우상 예수의 특징이 무엇인고 하면 자신이 수고한 만큼 주님께서 주실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자신이 열심히 기도했으니 나의 삶이 잘 풀릴 것이라는 생각. 자신이 헌금을 많이 했으니 주님께서 더 많이 축복해 주실 것이라는 생각. 자신이 예배를 빠지지 않았으니 나에게 우한이 생기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

사실 이런 것들은 기복신앙에 불과하지요.

그런데 한 걸음 더 나아가, 오직 예수님의 이름 때문에 처나 자식, 부모, 형제, 전토까지 버렸으니 천국에는 당연히 들어갈 것이라는 생각. 이런 생각이 바로 우상 예수의 특징입니다.

즉 예수가 자기 손안에서 놀아나고 있지요.

그런데 예수님께서 15절에서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것이 아니냐. 라고 하시지요.

성도는 자신의 것이 없습니다.

주님께서 사용하시는 대로 사용되어질 뿐입니다.

자신은 단지 빈둥빈둥 노는 자, 즉 죄인일 뿐입니다. 오히려 처를 버리게 하시고, 자식을 버리게 하시고, 전토를 버리게 하시고, 헌금하게 하시는 것도 주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그러니 나의기도, 눈물, 희생, 헌금, 봉사 등을 계산하는 자는 지옥 갑니다.

이렇게 되면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반박하겠지요. 그렇다면 누가 교회에 봉사하고 헌금하겠습니까?

누가 전토를 버리고, 자식 버리고, 처를 버리고 예수님을 따르겠습니까?

보세요. 주님 것이라 했는데 아직도 자기 것이라 생각하지 않습니까?

오늘 본문은 누가 천국에 갈수 없는 자인가를 말씀하시는 본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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