엣세이

부고

푸른 섬 2015. 7. 15. 10:12

 

자녀들은 혈과 육에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을 함께 지니심은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 또 죽기를 무서워 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 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라(2:14,15).”

 

예수님의 죽음은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는 죽음이셨다. 예수님의 죽음은 죽기를 무서워 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다.

 

오늘 한 사람의 죽음을 통보받았다. 육신의 아버지다. 이 죽음은 어떤 역할을 하는가?

예수님 죽음의 능력을 증거하는 죽음인가 아니면 예수님의 죽음의 능력을 증거하지 못하는 죽음인가? 아벨처럼 예수님의 죽음 안에서 헛됨을 전하는 죽음인가 아니면 가인처럼 죽지 않기 위해 발악하다 죽는 죽음인가? 주님은 모든 죽음들을  주님의 주되심을 증거하는 것으로 이용할 뿐이시다.

 

건강할 때 십자가 복음을 그렇게도 싫어하고 미워했다. 그러다 병들어 복음을 들을 정신도 없이 병원에 머물다 죽음이 닥쳤다

죽음이 닥치기 전 우리들은 영원히 살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살아간다. 말씀은 우리를 안개라고 하지만 우린 한 순간도 안개라고 인정할 마음이 없다.

 

죽음이 일상화된 지금 타인의 죽음이 발생하면 내 육신에 어떤 이익과 손해가 있는지를 생각하지 말씀 속으로 들어갈 마음이 없다.

 

주님께서는 이 죽음 하나를 통해서도 주님의 주되심을 증거하고 계시지만 인간들은 십자가 지신분의 주되심을 찬양하기 보다는 내 혈통의 단절을 슬퍼한다. 그리고 울며 자신의 가슴을 치며 지금까지 자신이 부모님께 행동해 온 행위를 반성한다. 또 아니면 육신의 부모가 나에게 남겨준 재산을 계산한다. 장례식으로 인한 내 직장에서, 사업에서 나의 이익과 손실관계를 생각한다.

 

주님의 십자가 사랑이 아니면 우리는 죽음의 세력에 멱살 잡혀 지옥가는 인생이다.

죽은 자만 헛된 것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내가 살아가는 것이 헛된 짓 하면서 살아가는 인생임을 알게 하신다.


오늘은 죽음이라는 소식을 통해 유일하게 헛되지 않은 십자가 사랑이 찾아 오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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