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강해

창세기46장28-47장12

푸른 섬 2007. 7. 16. 12:47
 

고센정착과 나그네 세월

창세기46장28-47장12

야곱이 죽었다고 생각했던 잃어 버렸던 요셉을 다시 만남으로 그가 요셉을 잃어 버렸고 지금까지 살아온 심정이 밝혀 집니다.


30절을 보면“이스라엘이 요셉에게 이르되 네가 지금까지 살아 있고 내가 네 얼굴을 보았으니 지금 죽어도 가하도다”

그의 마음이 어떠했는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어제 밀양이라는 영화를 봤습니다.


신애라는 여인이 아들 준과 함께 교통사고를 죽은 남편의 고향 밀양에 정착해 피아노 학원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던중 그는 자신이 돈이 많은 사람인냥 흉내내기 위해 땅을 사겠다고 합니다.


땅을 산다는 말에 돈이 많은 줄 안 아들 준의 웅변학원 원장이 준을 납치해 죽여버립니다.


이 일로 상처받은 준의 엄마는 가슴이 엄청난 엉어리를 품고 하루하루를 겨우 살아가던 중 약국 집사의 전도로 교회에 나가게 됩니다.


신앙생활하면서 그녀의 엉어리는 풀리는 듯 합니다. 밀양역에 나가서 찬양도 하고 전도도 합니다.

자신이 이제야 자신에게 이런 일을 일으키신 하나님의 뜻을 알겠고 기쁘고 평안하다라고 간증까지 합니다.


그러던 중 그는 교도소에 있는 자신의 아들 준의 유괴범이자 살인범을 찾아가 자신이 직접 용서해 주려고 합니다.

그런데 교도소에 있던 그 살인범이 뭐라고 하는고 하면 자신도 이미 하나님의 용서함을 참으로 감사속에서 살고 있다는 말을 합니다.


이 말을 들은 준 엄마는 안색이 변해 버립니다.


자신이 피해자인데 자신도 용서하지 않는 살인자를 하나님이 용서했다는 것을 용납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집회중 기도하는 시간에 그는 거짓말이야라는 가요를 틀어 버리고, 자신을 전도한 집사의 남편인 장로를 유혹해 하나님을 조롱합니다.


내용이 더 있지만 여기까지 말씀드리고,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자신의 아들을 잃은 슬픔에 대한 어머니의 분노와 엉어리.


이 여인은 하나님의 믿으면서 예수님께서 왜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셨는지, 그리고 그 아들의 희생에 대해서는 일체 고려하지 않는 모습으로 나옵니다.


물론 영화에서도 의도적으로 예수님의 십자가 이야기를 빼버리고, 마지막 장면 가까운데서 차량앞에 둔 십자가만을 보여 줍니다.


사람들이 자신의 아들이 죽는 문제에 대해서는 이렇게 펄펄뜁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아들이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 가셨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의 삶을 나그네로서 험악한 세월을 보내게 하신 이유가 바로 하나님의 아버지의 마음을 알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자신이 하나님의 언약속에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은 바로 하나님 아버지의 희생, 낮아지심으로 인해 하나님의 언약속에 들어 있음을 알려 주시기 위해 그 험악한 세월을 살게 하셨고, 요셉을 잃어버리는 경험을 하게 하신 것입니다.


성도의 삶이 그렇습니다. 이 땅에서는 나그네로서 험악한 세월을 살면서 자신이 가진 중요한 것들을 잃어 버리는 삶을 살게 됩니다.


마태복음10장37절을 보면 “아버니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너무 극단적인 말씀을 하시고 계신 것입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인간들은 자신의 입장만 말합니다. 내 아들 죽었는데, 내 딸 죽었는데.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인간들이 무엇을 가장  사랑하는지를 잘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가장 사랑하는 자식을 언급하고 부모를 언급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사랑하는 것들을 부인하라고 합니다.

예수님 위에 이들이 가 있는 것에 대해서는 용납하지 않으시겠다는 것입니다.


자기 목숨 잃어라고 까지 말씀하십니다.


너무 심한 말씀이 아닙니까?


그러나 하나님의 낮아지심, 독생자의 죽으심을 인간들은 고려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희생은 가볍고 자신들이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너무나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이 마음이 야곱의 마음이었고, 이 마음을 바꾸는 작업이 요셉을 잃어버리게 하는 사건이었습니다.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삶을 살면서 우리가 사랑하는 것, 귀하게 여기는 것들을 잃어버리는 경험을 갖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제 말이 아니라 예수님을 말씀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늘의 상은 없습니다.


또한 성도는 나그네로서 험악한 인생을 살게 됩니다.


요한복음 15장18,19절을 봅시다.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할 줄을 알라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터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세상에서 나의 택함을 입은 자인고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세상이 어떠 하길레 성도들을 미워합니까?


갈라디아서 6장14절입니다.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세상이 성격이 어떻습니까?

13절에 나옵니다.

“할례 받은  저희라도 스스로 율법은 지키지 아니하고 너희로 할례 받게 하려 하는 것은 너희의 육체로  자랑하려 함이니라”


세상은 육체로 자랑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바울의 자랑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이지만, 세상은 육체로 자랑하는 것, 즉 자기자신을 자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자신들이 행하는 것을 두고 자랑하는 자들, 자신의 몸에서 일어나는 것을 두고 자랑하는 자들로 인해 누가 미움을 당하는고 하면 십자가만 자랑하는 자들이 미움을 받는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성도는 이 땅에서 잃어버리는 자로 나그네로서 험악한 세월을 살게 됩니다.


히브리서 11장 13절에서 16절을 봅시다.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라 증거하였으니 이 같이 말하는 자들은 본향 찾는 것을 나타냄이라 저희가 나온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저희를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고센 땅에 정착하는 이유도 더 나은 본향, 즉 약속의 땅이 가나안 땅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본향이 하늘을 바라보는 믿음에서 고센 땅에 정착했습니다.


성도가 동일한 믿음이 있습니다.

성도는 본향을 바라보고 사는 자들입니다.


그래서 이 땅에서 나그네로 험악한 세월을 보내며,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것들을 잃어버려도 결코 주님이 주신 믿음은 변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미움당하면 당할수록 본향이 더욱더 뚜렷히 보입니다.


그러니 여러분 예수님을 믿은 이후 우리의 삶은 다 나그네의 삶이요 험악한 세월을 사는 삶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뿐만 아니라 이 삶속에서 나의 소중한 것들을 잃게 된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그렇게 소중히 여기는 생명도 언젠가는 주님께서 빼앗아 가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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