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강해

창세기 26장17-35 여호와 이름

푸른 섬 2007. 7. 16. 12:20
 

여호와 이름

창세기26:17-35

이삭이 블레셋 사람들의 시기를 받아 그랄 골짜기로  쫓겨납니다.

그곳에서 이삭은 아버지 아브라함이 팠던 우물을 다시 팠습니다.

이전에 분명 아브라함이 팠던 우물인데 왜 다시 파는가 보니, 그 우물을 블레셋 사람들이 메워버렸기 때문입니다.


우물이 갖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요한복음4장에 보면 야곱의 우물이 나옵니다.

12절을 보면 “우리 조상 야곱이 이 우물을 우리에게 주었고 또 여기서 자기와 자기 아들들과 짐승이 다 먹었으니 당신이 야곱보다 크니이까”


우물이 없으면 생존할 수 없습니다.

특별이 우물을 누가 팠느냐, 또한 그것이 누구의 소유냐에 따라 그 곳의 주인이 누구냐를 말하는 근거가 됩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팠던 우물들을 블레셋 사람들이 다 메워 버린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이삭이 다시 그 우물을 파고 있습니다.

처음 우물은 에섹이라는 우물입니다. 20절에 나옵니다.


왜 에섹이라고 불렀습니까?

에섹의 뜻은 다툼이라는 뜻인데 그랄 목자들이 이삭의 목자와 다투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동하여, 실은 쫓겨났다라고 보는 것이 옳습니다. 왜냐하면 지금 이삭은 블레셋 지방이 흉년을 피해 들어와 있는 상태이고, 이 땅 주인은 블레셋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그는 또 다른 우물을 팠습니다. 싯나라는 우물입니다.

이 뜻은 적대를 의미합니다.

또 다툼이, 싸움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래서 이삭은 또 다른 곳으로 가게 됩니다.

그곳에서 우물을 파는데 우물 이름을 르호봇이라고 합니다.

르호봇이라고 한 이유는 22절 하반절에 나옵니다.

이제는 여호와께서 우리의 장소를 넓게 하셨으니 이 땅에서 우리가 번성하리로다 하였더라.


그러나 이곳에서도 잠시뿐 다시 이삭은 브엘세바로 올라 갑니다. 브엘세바는 이전 아브라함이 자신의 우물을 늑탈한 일에 대해 블레셋 족속 그랄 왕 아비멜렉을 책망했던 곳입니다. (창21:22-34)

그리고 이곳에서 아브라함과 그랄왕 아비멜렉이 서로 언약을 세운 곳입니다.


실상 나그네 되는 아브라함에게 오히려 땅 주인격인 그랄 왕 아비멜렉이 찾아와서  자신들에게 후대해 달라고 요청하는 상황입니다.

창세기21장22-23절입니다. 

“때에 아비멜렉과 그 군대 장관 비골이 아브람에게 말하여 가로되 네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시도다 그런즉 너는 나와 내 아들과 내 손자에게 거짓되어 행치 않기를  이제 여기서 하나님을 가리켜 맹세하라 내가 네게 후대한 대로 너도 나와 너의 머무는 이 땅에 행할 것이니라”


그래서 아브람도 맹세 했습니다.

아브라함이 22장에서는 브엘세바에 살았는데 23장으로 넘어오면 다시 가나안 땅 헤브론에 살았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곳은 헷족속 땅입니다.

이곳에서도 물론 아직 자신들의 땅이 없습니다.

단지 하나님의 약속만 있습니다.


이 땅을 주실 것이라는 약속말입니다.


그리고 26장에서는 다시 흉년 때문에 헤브론을 떠나 블레셋 땅으로 떠나온 것입니다.

그런데 어제 우리들이 보았듯이 본래 이삭의 계획은 애굽으로 내려가는 계획이었지만 하나님께서 이들을 블레셋 땅에 머무르게 하십니다.


그 이유가 어제 본 3-5절입니다.

“이 땅에 유하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고 내가 이 모든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 내가 네 아비 아브라함에게 맹세한 것을 이루어 네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케 하며 이 모든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을 인하여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 이는 아브라함이 내 말을 순종하고 내 명령과 내 계명과 내 율례와 내 법도를 지켰음이니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 약속을 이루시기 위해서 애굽으로 내려가지 못하게 하시고 블레셋 땅에 머무르게 하십니다.


그런데 블레셋 사람들이 이삭의 복 받음에 대해 싫어 하여 이삭을 떠나라고 합니다.

그런데 떠나가도 여전히 다투고, 싸우고, 또 쫓겨 갑니다.


그러고는 이제 브엘세바에 도착했습니다.


이곳에서 하나님께서는 다시 약속한 것을 말씀하십니다.

24절입니다. 

“그 밤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나타나 가라사대 나는 네 아비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니 두려워 말라 내 종 아브라함을 위하여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으로 번성케 하리라 하신지라”


이 말씀들 듣고 이삭은 단을 쌓아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단을 쌓았다는 것은 제사드리는 단을 쌓았다는 뜻인데 이렇게 한 이유는 나중에 가면 그 의미가 분명히 드러나게 됩니다.


이스라엘에게 제사 제도가 주어지는데, 그 제사를 통해 이스라엘은 자신들의 생존이유를 알며 제사라는 것을 통해 하나님의 언약이 완성된다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이것이 히브리서10장에 잘 나와 있습니다.

이삭이 하나님의 약속을 받고 그냥 힘이 나서 단을 쌓은 것이 아니라 그가 믿는 믿음의 내용이 분명 담겨 있는 단을 쌓는 행위입니다.


그리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는 것은 그냥 찬양했다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그 약속을 반드시 이루실 것을 믿는 믿음의 찬양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나중에 예수님께서 여호와의 이름으로 오셔서 하나님의 언약, 즉 아브라함에게 하신 언약의 말씀을 완전히 이루십니다.


결국 아비멜렉이 이삭을 찾아 옵니다.

아비멜렉과 그 일당들이 이삭을 미워해서 결국 브엘세바에 왔는데, 어찌하여 왔느냐고 묻습니다.

저들의 대답이 이러합니다.

“그들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으므로 우리의 사이 곧 우리와 너의 사이에 맹세를 세워 너와 계약을 맺으리라 말하였노라 너는 우리를 해하지 말라 이는 우리가 너를 범하지 아니하고 선한 일만 네게 행하며 너로 평안히 가게 하였음니니라 이제 너는 여호와께 복을 받은 자니라”


비록 떠돌이 같이, 그리고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는 것이 요원하고 자신에게 말씀하신 것이 요원하지만 이러한 아비멜렉의 행동을 통해 궁극적으로 이 땅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땅이 될 것을 보여주고 계십니다.


이제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언약하신 그 언약이 이루어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흉년도 맞게 되고, 적들로부터 미움도 받고, 쫓겨다니는 인생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언약은 반드시 이루어내고야 만다는 사실을 이삭은 믿고 있습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들이 보아야 할 중요한 핵심입니다.


적들이 굴복하는 것도 이것에 포함되는 내용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몸을 드리심으로 이 언약을 이루셨습니다.

이전까지의 적들은 눈에 보이는 적들이었지만, 실상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심으로 말미암아 그 배후의 세력이 분명히 밝혀 졌습니다. 그것은 바로 공중권세 잡은 자 마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귀의 일을 멸하시고 자신의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셔서 성령안에서 주님과 함께 하는 삶을 살게 하셨습니다(요1서3:8).


그렇다면 성도는 어떠한 삶을 살아가게 됩니까?

이삭처럼 믿음으로 사는 삶을 살게 됩니다.

믿음으로 사는 삶을 살게 되니 당연히 이삭처럼 핍박받는 삶을 살게 됩니다.


실상 아비멜렉과 같은 자들은 육체를 따라 난 자들의 대표주자들입니다.

그래서 갈라디아서 4장28,29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 그러나 그 때에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핍박한 것 같이 이제도 그러하도다”


율법아래 있고자 하는 자들이 믿음으로 사는 자들을 핍박한다는 말씀입니다.

왜 율법아래 있는 자들이 믿음으로 사는 자들을 핍박하는가? 그것은  자신들의 종이 되지 않고 오직 예수님만 믿고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갈라디아서 4:17절입니다.

“저희가 너희를 대하여 열심내는 것이 좋은 뜻이 아니요 오직 너희를 이간붙여 너희로 저희를 대하여 열심 내게 하려 함이라”


자신들의 종을 삼기 위해 열심을 내고, 결국 이들이 꺼집어 내 놓는 것이 율법이라는 것을 갈라디아서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도는 언약의 완성자이신 예수님을 믿는 자입니다.

그러나 율법이라는 것은 눈에 보이는 어떤 행위를 믿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성도는 성령을 받은 자입니다.

그래서 성도는 어떤 행위를 믿는 것이 아니라 언약의 완성자 되신 예수님만 믿고 살아가는 자입니다.


그 삶이란 실상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이삭처럼 쫓겨다니기도 하고 항복받기도 하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사도행전의 사도들이 이러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쫓겨가는 곳 마다 복음을 전했고, 그런 곳에서 회개하며 돌아오는 자들을 만났습니다.

뿐만 아니라 엄청난 미움도 받았습니다.


여러분 오늘 하루도 이삭처럼 믿음의 사람으로 사시기를 바랍니다.

비록 쫓겨다니더라도, 아니면 복음에 항복하는 것을 보더라도 이 모든 것이 지금도 살아 계신 주님되신 예수님의 능력임을 믿으며 오늘 하루 주 예수님의 증인으로 사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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