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다곤인가?
사무엘상5장1-5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가장 신나는 장면이 오늘 본문에 나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마음속으로 가장 바라는 것이 있다면 바로 이런 모습이 아닐까요?
예수님을 믿는 내가 있는 자리에는 이 땅에서 바라는 축복이 일어나고, 병자도 치유함을 받고, 죽은 자도 살아나는 것이 얼마나 신나는 일입니까?
제가 어릴 때 가장 가기 싫은 곳이 절간이었습니다.
그곳에 가면 향 냄새도 못 맡을 지경이었습니다.
초등학교 때 학교 앞 산에 있는 절 쪽에 소풍을 갔는데 그 맛있는 김밥을 못먹을 지경이었습니다.
어릴 때 절간 같은 곳에 가면 생각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일이 그곳에서도 일어났으면 하는 바램 아닙니까?
부처상이 무너지고, 절간이 확 무너져 버렸으면 하는 바램.
그래서 한국에서 얼마 전에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단군 상을 학교 같은 곳에 설치 하니까 친히 하나님의 군대가 되어 그 단군상의 목을 잘라 버렸습니다.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할까요?
물론 믿지 않는 사람들의 생각은 뻔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요?
잘했다라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저렇게라도 해야 되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마치 자신이 하나님편이 되어 하나님의 종으로 행동하는 것이지요.
하나님의 궤가 블레셋 사람 손에 넘어 갔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을 이겼다라고 자만했습니다.
자신들의 신이 하나님을 이겼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궤를 다곤의 당에 들어가서 다곤의 곁에 두었습니다.
그러자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다곤이 여호와의 궤 앞에서 엎드러져 그 얼굴이 땅에 닿았습니다. 이튿날 다곤을 일으켜 다시 그 자리에 세웠습니다.
그런데 이제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여호와의 궤 앞에서 다곤이 엎드러져 얼굴이 땅에 닿았고, 그 머리와 두 손목은 끊어져 문지방에 있고 다곤의 몸둥이만 남았습니다.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것이지요.
오늘날 첨단 과학 시대를 사는 사람들이 이런 사실을 믿겠습니까?
하기에 텔레비전을 보면 무속인을 믿고 귀신을 믿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마는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사실을 믿는 사람은 아마 거의 없을 것입니다.
제가 먼저 이 말을 언급하는 이유가 무엇인고 하면 우리는 워낙 철저하게 과학적인 교육을 받다 보니 이런 일들은 하나의 신화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옛날 호랑이 담배 피는 시절 이야기라는 것이지요.
왜냐하면 오늘날 실제로 이러한 일들이 우리 눈앞에 펼쳐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물론 어떤 인간들은 이런 일이 일어난다고 하는데, 대부분 사기가 아닙니까?
오늘 같은 본문은 오늘을 사는 우리들의 사고 방식을 양쪽에서 공격하고 있습니다.
한 쪽은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믿지 않는 부류를, 또 하나는 하나님을 이용해 자신이 신의 자리를 차지하려는 자들 모두를 공격합니다.
이런 죄를 고발하지요.
과학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이러한 말씀은 참으로 황당한 말씀이지요.
제가 왜 이런 말씀을 드리는고 하면 이렇게 되어 버리면 예수님의 오심이 부정되기 때문입니다.
무슨 이런 좋은 세상, 과학적으로 얼마든지 증명할 수 있는 세상에 예수님 좋아하네라고 하지 않습니까?
이러한 생각이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 중에서 여전히 작용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어떻게 살아갑니까?
오직 자신을 위해서만 살지 않습니까?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인생이 아니라 주님이 오시지 않았으면 하는 인생으로 살아갑니다.
또한 부류를 생각해 봅시다.
오늘 본문을 이용해 영웅이 되려는 자들입니다.
이들은 이런 말씀만 보면 신이 납니다.
왜냐하면 자신을 철저하고 하나님의 궤 편이라는 것입니다.
자신이 다곤 편이라고 생각도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자신을 반대하는 자는 모두가 다 다곤 신을 섬기는 자들 부류에 집어 넣어버립니다.
이러한 사고가 누구를 죽입니까?
예수님을 죽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편인데 우리는 결코 망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하나님 편이 되어 생각하고 활동해야 하는데 하나님을 자신의 편으로 끌어당기니 당연히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 하나님도 자신들의 종이 되어야 되지요.
그러니 하나님께서 보내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여 버립니다.
하나님은 나의 편이시다. 이것은 불변하는 진리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가끔 이런 꿈을 꿉니다.
내가 가는 곳이 복을 받는 장소가 되기를, 내가 기도하면 병자가 낫기를.
내가 기도하면 응답되기를.
하나님께서 진정 살아 계시다는 증거를 보여 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것이 우리의 간절한 소망이 아닙니까?
그런데 놀라운 것은 다곤처럼 되어지는 것이 곧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증거가 아닙니까?
이게 무슨 말이냐고요?
예수님이 주님으로 살아계시니 지금 우리가 이렇게 모이고 있고, 믿지 않는 자들은 모두가 다 자신을 위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왜 돈을 위해 명예를 위해 발악합니까?
이것은 다 주님이 살아계시고 활동하시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왜 예수님을 싫어하고 참 복음을 멀리합니까?
복음을 들어도 왜 그 복음에 미치지 못합니까?
그 이유는 다 주님이 살아계시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친히 그렇게 만드시기 때문에 그러한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왜 불합리한 일들이 일어납니까?
주님이 계시다면 그렇지 않아야 하지 않습니까?
그러니 우리는 우리 자신 편이라는 것입니다.
주님이 살아 계시기 때문에 악은 악대로 진행 되어야 하고, 주님의 기쁘신 뜻대로 세상은 돌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성도가 이땅에 존재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바로 지금도 십자가 지신 예수님이 주님이심을 증거하기 위해서입니다.
이것이 성도의 존재 이유입니다.
죽어도 이것을 전해야 하고 살아도 이것을 전하는 자가 성도입니다.
그래서 믿지 않는 사람들이 우리들을 볼때 우리를 미쳤다 라고 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성도는 앞서 말한 자신이 신이 되고자 하는 자가 아닙니다.
오히려 자신이 죽어야 주님이 증거됨을 아는 자입니다.
헌금을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자기를 죽이는 것입니다.
기도를 왜 합니까?
자신을 죽이는 것이지요.
왜 성경 봅니까?
왜 예배에 참석합니까?
이 모든 것이 자신이 죽는 일이 아닙니까?
자기 부인이 없이는 이 모든 일은 오직 자신이 신이 되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성도를 두고 모든 것을 잃어버린 것 같지만 모든 것을 가진 자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런 믿음이 있는 자가 복된 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