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모데전서

강해1

푸른 섬 2008. 8. 28. 11:04

헛된 교훈에 빠짐

디모데전서1:3-11

이 땅에 사는 죄인들의 특징은 진리엔 관심 없고 헛된 것에 관심을 갖는 것입니다.

특히 헛된 것을 가르치면 어찌 그리 속속 귀에 잘 들어오는지 모릅니다.

여기에서 헛된 것이라 해서 돈 되지 않는 것, 남을 속이는 것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용어와 이 세상에서 통용되는 용어는 항상 하늘과 땅 차이의 다른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하늘의 사고방식, 주님의 나라의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과, 지옥 갈 자들의 사고방식이 그럴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지옥 갈 자들은 결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들은 자신들이 생각하는 것이 결코 헛된 것이라 여기지 않습니다.

참이요 진리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것을 위해 시간을 바치고 몸도 바치고 돈도 바치고 목숨도 바치는 일이 일어납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주님께서 보시기에 헛된 것들입니다.

전도서 1:14절을 보게 되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내가 해 아래서 행하는 모든 일을 본즉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

13절을 봅시다.

 

“마음을 다하며 지혜를 써서 하늘 아래서 행하는 모든 일을 궁구하며 살핀즉 이는 괴로운 것이니 하나님이 인생들에게 주사 수고하게 하신 것이라”

이런 사실을 모르고 자꾸 해 아래서 행하는 모든 일에 의미를 두려고 하니 참으로 한심한 노릇이 아닙니까?

주님께서는 해아래 서 행하는 모든 것이 바람을 잡으려는 것과 같이 헛된 일이라고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런 반문을 합니다.

 

그러면 해아래서 행하는 모든 일이 헛된 것이라면 아무것도 안하면 되겠네요.

이렇게 생각합니다.

이런 생각이 바로 헛된 일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행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를 둔다는 것입니다.

그것에 무슨 진리가 있지 않겠느냐는 생각으로 행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성도라면 알아야 하는 사실은 우리 죄인들이 이 땅에서 행하는 어떤 일에서도 진리를 찾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아는 것입니다. 단지 하나님께서 죄인들에게 주사 수고하게 하신 일들만이 해 아래서 행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도 모르고 자꾸 이 땅에서 행하는 일이 자신을 구원시켜 줄 수 있지 않을까? 어찌되었든지 나를 살려주지 않을까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남보다 돈을 많이 벌어도, 권력을 가져도 이 모든 것들이 헛됨을 알지 못하는 인생이라면 참으로 헛된 인생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끔 스포츠경기를 봅니다.

 

축구를 보든, 농구를 보든 이런 경우가 있지요.

골을 넣었는데 골 넣은 당사자가 그 전에 반칙을 하게 되면 그 골을 골로 인정합니까?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경고를 받습니다.

인생들이 꼭 이런 모습으로 이 땅을 살아갑니다.

 

이제 오늘 본문으로 돌아와서 디모데전서 1장6절을 보겠습니다.

“사람들이 이에서 벗어나 헛된 말에 빠져”

성도들에게 나타나는 것은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으로 나는 사랑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이것에서 벗어나 헛된 말에 빠진다는 것입니다.

헛된 말이 빠져버리면 어떻게 됩니까?

율법의 선생이 되려고 한다는 사실입니다.

참으로 희한한 일이 아닙니까?

 

십자가의 사랑이 흘러나오는 자들이 성도인데, 율법이 그 입에서 나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함께 갈라디아서3:15-23절을 읽어 봅시다.

“형제들아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사람의 언약이라도 정한 후에는 아무나 폐하거나 더하거나 하지 못하느니라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하나를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하나님의 미리 정하신 언약을 사백삼십 년 후에 생긴 율법이 없이하지 못하여 그 약속을 헛되게 하지 못하리라 만일 그 유업이 율법에서 난 것이면 약 속에서 난 것이 아니리라 그러나 하나님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아브라함에게 은혜로 주신 것이라 그런즉 율법은 무엇이냐 범법함을 인하여 더한 것이라 천사들로 말미암아 중보의 손을 빌어 베푸신 것인데 약속하신 자손이 오시기까지 있을 것이라 중보는 한 편만 위한 자가 아니나 오직 하나님은 하나이시니라 그러면 율법이 하나님의 약속들을 거스르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만일 능히 살게 하는 율법을 주셨더면 의가 반드시 율법으로 말미암았으리라 그러나 성경이 모든 것을 죄 아래 가두었으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약속을 믿는 자들에게 주려 함이니라”

 

율법은 인간의 범죄 때문에 더하여 주신 것입니다.

죄를 더욱 죄 되게 드러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모든 것을 죄 아래 가두어 두셨다는 사실을 만천하에 공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직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 얻음을 말씀하십니다.

그러니 성도에게서 나와야 하는 것은 십자가의 사랑이지 결코 율법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런데 십자가의 복음을 듣고도 인간들은 이런 헛된 교훈에 빠져 든다는 것입니다.

 

율법의 매력에 빠진다는 것입니다.

율법의 매력이 무엇입니까?

바로 믿는 것 같다는 것입니다.

내가 소속되어 있다는 느낌을 확실하게 줍니다.

그리고 자신의 존재의 의미를 명확하게 드러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십자가의 복음은 어떻습니까?

1장 14절에서와 같이 나는 죄인 중의 괴수니라, 오직 긍휼을 입은 자이다라는 고백을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만 자랑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십자가의 복음이 매력이 있습니까?

물론 있을 때도 있지요.

자신이 나쁜 짓을 많이 했을 때 십자가의 죄용서는 매력이 있습니다.

그러나 불과 몇 초, 몇분 후에 어떤 생각을 합니까?

그러면 내가 무엇을 해야 하지.

이런 생각을 합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우리들은 생각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왜 죄인들을 자꾸 율법의 매력에 빠져 듭니까?

그것은 죄 아래 가두어 졌기 때문입니다.

죄 아래 가두어 졌기 때문에 자꾸 율법의 매력에 빠져 다는 것입니다.

물론 자신은 죄 아래 가두어 졌다는 사실을 모릅니다.

안다면 결코 율법의 매력에 빠져 들 수 없겠지요.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죄 아래 가두어 졌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율법의 매력에 끌린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지금 이 본문을 보는 우리들에게 해당되는 말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래서 오늘 본문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너희들은 근본적으로 헛된 교훈, 즉 율법의 매력에 빠질 수 밖에 없는 자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 헛된 교훈에서 벗어 날 수 있다고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8절에 나오듯이 사람이 율법을 법있게 쓸 인간은 아무도 없습니다.

만일 그러했다면 성경은 엉터리가 되고 맙니다.

그뿐 아니지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은 헛된 일이 되고, 이것이야 말로 헛된 교훈에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 제발 헛된 교훈에 빠지지 마시고, 십자가의 은혜를 더욱더 깊이 알아가는 주님의 백성이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바울처럼 죄인 중에 내가 괴수라는 고백으로 십자가의 은혜를 더욱 깊이 알아가는 하루하루의 삶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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