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모데전서

강해16

푸른 섬 2008. 8. 28. 11:36

처절한 싸움

디모데전서6:20-21

20절을 다시 한번 보겠습니다.

“디모데야 네게 부탁한 것을 지키고 거짓되이 일컫는 지식의 망령되고 허한 말과 변론을 피하라”

성도가 지켜야 할 것과 피해야 할 것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지금까지 우리들이 디모데 전서를 보아 오면서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바로 십자가 복음입니다. 그러면 피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십자가 복음 이외의 것이지요.

 

그러면 우리는 당장 이런 질문을 던질 수가 있습니다.

십자가 복음 외에는 왜 모든 것을 피해야 하는가라고 말입니다.

그 이유야 지옥가기 때문입니다. 영생과 상관없기 때문이지요.

 

여기에서 우리는 잠시 사람들이 왜 십자가 복음외에 것에 관심을 갖는지 생각해 봅시다.

디모데전서에 나오는 과부나, 그의 가족들, 아니면 감독, 집사, 돈 많은 교인들을 생각해 봅시다.

이들은 항상 십자가 복음외 다른 것에 마음을 둘 가능성이 높은 사람들입니다. 이들이 그렇다면 모든 사람들이 그렇다는 것이지요.

 

도대체 왜 자꾸 십자가 복음 외에 다른 것에 마음을 두려고 합니까?

그야 뻔하지요.

우리의 본성, 죄인들의 본성이 그러하기 때문이지요.

항상 자기중심적인 생각 즉 하나님의 자리에 자신이 올라서려고 하는 것입니다.

 

디모데 전서6:5절을 보게 되면 경건을 자기 이익의 재료로 생각하는 자들이 나옵니다.

자신의 삶의 고상한 모습을 통해, 자신을 높이려는 처사입니다.

사람들이 알아주기를 바라는 모습입니다.

 

사람들이 기도를 많이 하고, 성경을 많이 보고, 교회에 봉사를 열심히 하는 이유들이 어디에 있는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왜 장로가 되려고 하고, 집사가 되려고 하는가를 생각해 봐야 합니다.

왜 목사가 되려고 하는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자신속의 탐욕을 그대로 두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장로가, 집사가 목사가 무언가 대단한 것이라 여기는 것입니다. 남을 지배할 수 있는, 자신의 권리를 행세할 수 있는 자리라고 여기는 것입니다.

 

이 뿐만 아니지요. 요즘은 이런 사람들도 있습니다.

목사가 뭔데, 아무것도 아닌데. 이런 식으로 나오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 말을 들으면 여러분은 , 어 자기가 목사라고 저렇게 말하는가?

게는 가재 편이라더니.

 

사람들이 왜 목사와 동일하게 되려고 합니까?

그야 뻔하지요. 나도 잘 났다는 것입니다.

복음을 안다는 모임이 있습니다. 우리와 같이 십자가 복음만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저들은 모두 다 잘 나서 목사를 청빙하지 않습니다.

 

우리끼리 돌아가면서 설교하고, 기도하고, 또 강사를 불러서 예배드리고 성경공부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말이야 맞지요.

그런 때 막상 그곳에 들어 가보면 저들은 결코 배울 마음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좀 말씀대로 한다는 모임에 가보면 거의다가 그렇습니다.

우리들도 그 중에 한 모임인지 모릅니다.

 

이유는 마음이 강퍅해서 그렇습니다.

주님의 십자가의 복음을 받을 마음은 없고, 내가 이렇게 잘 났네 하면서 고개를 쭉 내밀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런 자들에게는 복음이 자신을 방어하기 위한 수단이고, 남을 공격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합니다.

말씀 앞에 낮아지려는 마음이 없는 것이지요.

어린아이가 전하든 집사가 말하든, 목사가 말하든 주님의 증거하는 말씀이라면 겸허히 귀를 기울여야 할 터인데 그럴 마음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생활이야 많은 절제도 하고, 말씀도 많이 보고 그렇게 합니다마는 결국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시는 피해야 하는 것을 피하지 못하는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거짓되이 일컫는 지식의 망령되고 허한 말과 변론을 좋아하는 자들입니다.

 

21절에서 이것을 좇는 사람들은 믿음에서 벗어났다고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런 질문을 던질 수 있습니다.

구원이 우리 손에 달렸습니까? 라고 말입니다.

그런 것이 아니지요.

 

민수기23장20,21절을 보겠습니다.

“내가 축복의 명을 받았으니 그가 하신 축복을 내가 돌이킬 수 없도다 여호와는 야곱의 허물을 보지 아니하시며 이스라엘의 패역을 보지 아니 하시는도다 여호와 그의 하나님이 그와 함께 계시니 왕을 부르는 소리가 그 중에 있도다”

야곱의 허물을 보셨다면 야곱은 미움의 대상입니다. 저주의 대상이지요. 그러나 여호와는 야곱의 허물을 보시지 않으셨습니다. 태어나기도 전에 사랑하셨습니다.

 

그러니 그의 허물이 어떠하든지 간에 주님의 긍휼이 그를 사로잡아 인도하신 것입니다.

성도가 바로 이런 자들입니다.

그러면 오늘 본문은 어떻게 해석됩니까?

우리의 허물을 보면서, 주님의 십자가 사랑이 얼마나 큰지를 알아가게 하시는 말씀이지요.

성도는 결코 십자가복음 외에 다른 것을 쫄쫄 따라 나서는 자들이 아닙니다.

 

그것이 생명 이냥, 영생 이냥 따라 나서는 자들이 아니지요.

오히려 전쟁을 치열하게 벌이는 자들이 성도들입니다.

누가 주님이신가 하는 싸움을 처절하게 하는 자들이지요.

그런 가운데 십자가의 사랑을 깊이 알아가는 자들이지요.

디모데 전서를 마치면서 우리는 우리 자신이 얼마나 큰 죄인인가를 알았고, 십자가의 사랑이 얼마나 큰지도 알았습니다.

 

그리고 성도라는 자는 얼마나 처절한 싸움을 하는 자인지도 알았습니다.

맹탕 맹탕 노는 자들이 아님을 알았습니다.

예수님의 증인으로 살아가는 자들임을 알았습니다.

우리 모두 이런 복된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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