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아담안에 있는 죄인들이 하나님께서 열어놓으신 구원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해석하느냐의 문제입니다. 이미 이스라엘을 통해서 드러 났습니다. 철저하게 자기 구원중심(자기중심)입니다. 유월절 어린양피만을 자랑하는 일은 없습니다. 자신들은 이미 구원받았기에(개방성)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 영광돌릴까에 관심(자기중심)을 둡니다. 유월절 어린양은 잠시잠깐, 가끔씩 필요할 뿐입니다.
이 행위가 바탕이 되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
유월절 어린양만이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는 사실을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이유는 선악과를 따먹었기 때문입니다. 자신들의 행위에서 벗어날수가 없습니다. 특히 율법은 이들의 사고방식을 더욱더 확고하게 하는 역할을 해 버립니다. 보아라. 우리의 생각이 맞지 않느냐?
이것을 바탕으로 깔고 오늘날 성도를 보아야 하지 않을까요?
이렇게 되면 구원은 철저하게 폐쇄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 폐쇄성(십자가) 안에 구원이 자리 잡게 됩니다.
따라서 성도는 십자가만 자랑하도록 하게 하십니다. 더 이상 예수님의 피 외에 하나님께 영광돌릴 방법이 없다는 사실을 믿는 자가 성도입니다.
철저하게 단절되고 폐쇄된 것을 바탕으로 깔지 않는 구원은 유대교와 다를 것이 없습니다.
결국 자기 중심으로 흐를 수밖에 없습니다. 이들에겐 십자가만 자랑한다는 사도바울의 말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이들은 여전히 예수님을 죽인 유대인들 처럼 살아갑니다.
오늘도 이런자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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