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 강해

강해22

푸른 섬 2008. 4. 25. 09:11
 

왕의 등장

 사무엘상10장17-27                   471  496  184

인간들은 꿈을 꿉니다.

자신의 탐욕, 욕망이 간절히 이루어지기를.


Maslow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인간이 5가지 단계로 욕구가 있다고 합니다.

첫 번째 단계는 생리적 욕구 즉 생존욕구입니다. 물, 음식 같은 욕구. 두 번째 단계는 안전과 안정에 대한 욕구가 있다고 합니다. 세 번째는 사회적 욕구인데 사람들에게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입니다. 네 번째 단계는 자기존경, 자아존중의 욕구 즉 성취욕구입니다.

마지막 다섯 번째 단계가 자아 실현에 대한 욕구입니다. 이것은 자기 만족에 대한 욕구이며 무엇인가 창조하고픈 욕구입니다.


지금 왕을 요구한 이스라엘은 무슨 욕구 단계에 있습니까?

안전과 안정에 대한 욕구, 즉 두 번째 단계에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제가 지금 이 사람 이야기를 언급하는 이유는 인간이라는 것은 욕망 속에 살아간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어서입니다.


마지막으로 창조하고픈 욕구, 자기 만족의 욕구가 있는데 이것이 가능한 이야기입니까?

하나 만들면 또 만들고, 하나 만족하면 또 다른 만족을 바라는 것이 인간의 본성입니다.


그러니 인간은 욕망의 화신이 되어 평생 살아가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러한 인간을 두고 죄인이라고 합니다.

불순종한 인생이라고도 하고, 마귀의 종이라고도 합니다.


인간은 이 테두리를 벗어 날 수 가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성경에는 두 종류의 영웅이 등장합니다.


한 부류는 철저하게 하나님과 대적하여, 자신이 하나님과 같이 되어 보겠다는 영웅입니다.

또 다른 부류는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영웅입니다.

두 부류모두가 다 사람들이 존경할 만하고 따를 만한 영웅이라는데 공통점이 있습니다.


동시에 두 영웅 모두가 다 인간의 죄악을 저 밑바닥까지 보여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데도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보내신 영웅, 즉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사울을 통해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는 일이 무엇일까요?


먼저 본문을 한번 봅시다.

사무엘이라는 영웅이 백성을 미스바로 불러 모아 새로운 영웅을 이스라엘 백성가운데 소개합니다.

그런데 소개하는 과정이 아주 흥미롭습니다.

18절부터 봅시다.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고 애굽인의 손과 너희를 압제하는 모든 나라의 손에서 건져내었느니라 하셨거늘 너희가 너희를 모든 재난과 고통 중에서 친히 구원하여 내신 너희 하나님을  오늘날 버리고 이르기를  우리 위에 왕을 세우라 하도다 그런즉  이제 너희 지파대로 천명씩 여호와 앞에 나아오라 하고”


그렇게 바라는 영웅, 왕을 주시려면 그냥 주면 되실 것을 꼭 기분 나쁘게 말을 해야 합니까?

얼마나 기분 나쁜 말입니까?

지금 자신들이 하나님을 믿지 않겠다는 것도 아니고 하나님을 버리겠다는 것도 아닌데 하 말이 하나님을 버렸다고 선언해 버립니다.


일방적이지요.

오늘날 교인들에게 말하면 아마 돌들고 사무엘을 칠 것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말하는 사무엘에 대해 이스라엘 백성들은 왜 잠잠히 있을 까요?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들의 가장 큰 욕망, 즉 왕을 준다는데 그런 이야기가 귀에 들어오겠습니까?

왕만 있다면 열국처럼 강력한 힘을 소유한 국가가 되고, 그러면 나 자신이 얼마나 자라 살수 있겠는가? 평안하게, 그리고 나의 꿈을 마음껏 펼칠 수 있지 않겠느냐는 꿈에 사로 잡혀있습니다.


그러니 사무엘의 기분 나쁜 소리는 공허한 소리로 들릴 뿐이지요.

물론 자신들은 나름대로 하나님께 잘 순종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8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라고 하니까 하나님을 잘 믿는 다고 하는 자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남의 종이 된 적이 없거늘 어찌하여 우리를 자유케 되리라 하느냐,.


놀라운 말이 아닙니까?

지금도 로마지배하에 있고, 과거에도 앗수르나 바벨론 포로가 되었지 않습니까?

그런데 한번도 남의 종이 된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들의 말은 영적으로 한번도 하나님을 떠난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들에게 뭐라고 하십니까?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고 합니다.


자신들 스스로는 하나님을 잘 믿고 있고, 항상 하나님을 믿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종이지 결코 마귀의 종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런 예수님의 말씀에 이들은 어떻게 합니까?

돌로 예수님을 치려고 하지 않습니까?


오늘 본문에서와 상황이 다르지요.

사무엘을 향해서는 돌로 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향해서는 돌로 치려고 하죠.

사무엘 상에서는 그들의 욕구를 이루기 위해 그런 수모쯤은 견딜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요한복음8장에서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자신들에게 욕망을 이루는데 도움을 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만일 욕망을 이루는데 도움이 된다면 이런 모욕쯤은 참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은 저들을 도저히 참지 못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인간이 인간의 마음을 숨기지 못하도록 화를 치밀어 올라오게 해서 폭발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그래서 성경을 제대로 보는 사람들의 반응은 두 가지로 나타납니다.

하나는 예수님께 항복하는 쪽이고, 다른 쪽은 기분 나빠 가버리는 쪽입니다.


그런데 중립자들이 매우 많습니다.

무슨 말인고 하면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이스라엘 백성과 같은 자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기분 나쁜 소리를 해도 반응이 나오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예수님께 항복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니 이들의 마음은 왕을 간절히 바라는 이스라엘과 맞닿아 있습니다.

무엇인가 기대하는 것을 갖고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이지요.


그러니 십자가 지신 예수님 설교를 들어도 참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십자가가 무엇입니까? 우리 인간은 죽어도 싸다 싸라는 것이 아닙니까?

지옥가야 정상이다는 말이지 않습니까?


우리 인간를 무시해도 이만 저만 무시하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인간 능력은 다 죄다. 인간에게서 나올 수 있는 의는 하나도 없다가 아닙니까?


그런데 이런 말을 듣고도 꾹 참는다는 것은 , 돌을 던지지 않는 것은 무언가 예수님께 기대할 만한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교회를 다닐 만하다는 것이지요.


이들은 처음부터 십자가 지신 예수님을 믿은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어떤 예수님을 믿었는가?


오늘 우리들이 살펴보는 본문에 나오는 이스라엘식의 예수님을 믿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예수님의 오심을 통해 인간들이 믿는 하나님과 예수님의 아버지의 하나님이 다름을 다 밝혀 내셨습니다.

이스라엘식의 하나님은 가짜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왕을 주신 하나님이 가짜가 아니라 그런 식으로 믿는 하나님은 그들이 만들어낸 가짜 하나님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심으로 말미암아 분명히 밝혀집니다.


이스라엘이 진정으로 원한 왕은 십자가 지는 왕이 아니라 오늘 본문에 나오는 왕, 사울 왕과 같은 왕. 기분 나쁜 것도 참을 수 있을 정도로 자신들에게 유익을 주는 왕입니다.


이들이 믿는 하나님은 이런 하나님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버린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 지셨다는 것은 이런 인간임을 선언하는 것입니다.


너희들은 하나님을 버렸다. 너희들은 나를 믿지 않는다. 처음부터 너희들은 마귀의 자식이다.

그러나 내가 나의 피로 너희를 너희 죄에서 구원하여  하나님의 자녀로 삼았다.는 것입니다.


처음에 제가 두 종류의 영웅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 땅에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곧 영웅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하나님께서 보내신 영웅은 곧 인간의 죄악을 고스란히 고발하는 영웅입니다.


사울 왕을 주신 것이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사울왕은 예수님을 증거하기 위해 미리 앞서서 등장한 인물입니다.


사울 왕이 옳다 그르다에 관심이 없습니다.

인간은 이런 것에 관심이 있죠. 왜냐하면 사울 왕을 보면서 자신의 욕망을 채우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오히려 이런 사울 왕을 통해, 이스라엘을 통해 장차오실 예수님을 증거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하시는 일이 어떤 일인가?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증거하고 있습니다.


성도가 그렇습니다.

성도란 일평생 예수님의 증인으로 살아가는 자입니다.

죄를 안 짓는다, 이제 더 이상 욕망이 없다가 아닙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이스라엘처럼 그런 욕망이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성도는 십자가의 은혜를 안다는 것입니다.


그래 예수님의 죽으심이 이것 때문이지. 그래 맞아 맞아.

주님 너무 너무 감사합니다 라는 고백이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성도는 일평생 주님의 은혜만 증거하는 인생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어떻게 말입니까? 자신의 속을 꼭꼭 숨기고, 참으면서가 아니라 자신의 욕망이 다 노출 되며, 주님께 항복하며 예수님을 증거하는 인생으로 살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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