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 강해

강해27

푸른 섬 2008. 6. 2. 12:35
 

전쟁의 방식

사무엘상14장1-15

이번에 사천성에 아주 큰 지진이 일어났었습니다.

텔레비전을 보면 아주 참혹한 현장이 우리 눈에 들어옵니다.


지진의 진도가 8.1이라고 합니다.

이런 지진이 일어날 때 사람들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지진가 맞서 한번 싸워보자고 할 것입니까? 아니면 지진이 일어나기 전에 피하거나, 지진이 일어날 때 안전한 곳에 엎드려 숨어야 하겠습니까?


아마 어떤 사람도 그런 큰 지진이 일어날 때 한번 싸워보자, 우리가 이겨보자고 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싸워봤자 백전백패가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면 이런 큰 지진과 싸우려고 덤비는 자가 나옵니다.

요나단입니다.

요나단은 사울의 아들입니다.


사울은 이스라엘의 왕이지요.


요나단은 자기 병거를 든 소년과 함께 블레셋 사람의 부대로 건너갑니다.

둘이 건너간 것입니다.

이들이 특공대입니까?

아니면 유격대 입니까?


그렇게 볼수도 있죠.

그러나 요나단이 블레셋 사람의 부대로 건너간 것은 그들의 실력이 특공대 실력이 되어서 적진을 교란하고 돌아올수 있는 실력이 있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오직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고 적진으로 뛰어든 것입니다.

6절을 봅시다.

“요나단이 자기 병기 든 소년에게 이르되 우리가 이 할례 없는 자들의 부대에게로 건너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일하실까 하노라 여호와의 구원은 사람의 많고 적음에 달리지 아니하였느니라”


참으로 놀라운 말이 아닙니까?

여호와의 구원이 사람의 많고 적음에 달리지 않았다는 말 말입니다.


적들의 수를 볼 때 싸움을 해 보았자 뻔합니다.

백전백패입니다.


그런데 요나단이 뭐라고 합니까?

구원은 사람의 많고 적음에 달리지 아니하였다고 합니다.


이게 상식적으로 가능한 말입니까?

완전히 정신 나간 사람이 아닙니까?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무기도 좋아야 하고, 군사들도 적보다 많아야 하지 않습니까?

하기에 전쟁사를 보면 아주 적은 군사로 아주 많은 군사들을 이긴 기록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전쟁과 오늘 본문에 나오는 전쟁은 내용이 다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전쟁은 여호와께서 붙이시는 전쟁입니다.


이것은 이들이 힘이 강해서, 전략과 전술이 뛰어나서 승리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여호와께서 붙이시는 전쟁을 이해하려면 여호수아를 보면 가장 잘 알 수 있습니다.


여호수아6장을 보면 이스라엘백성이 여리고성을 점령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6장2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여리고와 그 왕과 용사들을 네 손에 붙였으니” 라고 하십니다.


여호와께서 붙이시는 전쟁입니다.

이들이 여리고 성을 엿새동안 하루에 한바퀴식 돕니다. 그리고 제사장 일곱은 일곱 약각 나팔을 잡고 언약궤 앞에서 행하고 제칠일에는 성을 일곱 번 돌며 제사장들을 나팔을 불라고 하십니다.

제사장들이 양각 나팔을 길게 울려 불어서 그 나팔소리가 너희에게 들릴 때에는 백성은 다 큰 소리로 외쳐 부를 것이라 그리하면 그 성벽이 무너져 내리리니 백성은 각각 앞으로 올라 갈찌니라라고 하십니다.


전쟁을 희한하게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무슨 소리를 지르면 성벽이 무너집니까?

이스라엘백성들의 목소리 진동이 지진을 일으키는 파동과 막먹습니까?

그래서 튼튼한 성벽을 무너뜨리는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정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대로 하니 여리고성을 점령했습니다.


별로 이해가 안됩니까?

그러면 하나더 보겠습니다.


여리고성 점령후 아이성을 공격합니다.

그런데 아이성은 여리고성에 비하면 너무나 약하고 작은 성입니다.


그래서 여리고 성을 칠 때에는 이스라엘 모든 백성이 전쟁에 나섰지만 아이성을 칠때에는 이 삼천명만 보냅니다.


그런데 첫 번째 아이성전투에서 패합니다.

백성들의 마음이 물같이 되었습니다.

덜덜덜 떨고있는 것이지요.


왜 전쟁에서 패했는지를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알려 주셨습니다.

여리고성전투에서 그 승리의 전리품을 여호와께로 돌리지 않고 자신의 전리품으로 빼돌린 아간의 죄 때문이었습니다.

아간의 죄로 인해 여리고성에 비하면 너무나 손쉽게 취할 수 있던 아이성 전투에서 패한 것입니다.


결국 아간을 여호와의 명대로 아골골짜기로 가서 돌로 치고 불사른 후에야 아이성 전투에서 승리를 하게 됩니다.


전쟁이란 결코 힘이 강하다고, 무기가 좋다고 승리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호와께서 붙이실때에만 승리하는 것이 구약의 이스라엘 전쟁 승리 방식입니다.


그러니 지금 우리들이 보면 본문 사무엘 상14장에서 나오는 요나단의 말은 결코 자신이 지어낸 말이 아닙니다.

요나단은 이러한 과거 역사를 제대로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전쟁이라는 것이 결코 힘으로 , 군사의 수로,  좋은 무기로 승리하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붙이실때에만 승리하는 것이 전쟁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후의 전쟁이라는 것은도 결코 인간의 힘과 능력으로 승리할 수 있는 전쟁이 아닙니다.

오직 십자가로 승리하는 방법입니다.


골로새서 2장을 봅시다.

8절부터입니다.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노략할까 주의하라 이것이 사람의 유전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좇음이요 그리스도를 좇음이 아니니라 그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 너희도 그 안에서 충만하여졌으니 그는 모든 정사와 권세의 머리시라 또 그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육적 몸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니라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한 바 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 또 너희의 범죄와 육체의 무할례로 죽었던 너희를 하나님이 그와 함께 살리시고 우리에게 모든 죄를 사하시고 우리를 거스리고 우리를 대적하는 의문에 쓴 증거를 도말하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정사와 권세를 벗어버려 밝히 드러내시고 십자가로 승리하셨느니라”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닙니까?

전쟁의 승리는 다른 사람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 못박히심으로 말미암아 승리하시는 전쟁입니다.


성도란 예수님께서 십자가로 승리하심으로 얻으진 전리품입니다.

성도에게 믿음이란 주님의 십자가의 승리로 주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요나단 처럼 진짜 칼을 들고 적진에 뛰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에베소서6장10-20절입니다.

함께 보겠습니다.

“종말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띠를 띠고 의의 흉배를 붙이고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화전을 소멸하고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스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고  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벌려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 이일을 위하여 내가 쇠사슬에 매인 사신이 된 것은 나로 이 일에 당연히 할 말을 담대히 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오늘날 성도의 싸움은 이런 싸움입니다.

그래서 누구를 이긴다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담대히 전하는 것이 이긴 삶입니다.


요한계시록12장10,11절을 보겠습니다.

“내가 또 들으니 하늘에 큰 음성이 있어 가로되 이제 우리 하나님의 구원과 능력과 나라와 또 그의 그리스도의 권세가 이루었으니 우리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 곧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참소하던 자가 쫓겨났고 또 여러 형제가 어린양의 피와 자기의 증거하는 말을 인하여 저를 이기었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


이것이 전쟁에서의 승리입니다.

어린양의 피를 증거하는 것 때문에 죽음을 당하는 것이 곧 마귀를 이긴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싸움이 이런 싸움입니다.

땅에서 이기고 지는 싸움이 아니라 믿음의 싸움입니다.


사람들은 요나단을 보면서 이 땅에서 살아남고 이 땅위에서 승리하는 것을 꿈 꿉니다.

그러나 요나단의 믿음은 오늘날 우리 성도들에겐  죽음으로 승리하는 비법을 알려 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처음에 이런 말씀을 드렸습니다.

8도가 넘는 지진에 맞서 싸우는 인간이 없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니 요나단 같은 사람, 아니면 사도 바울 같은 사람, 그리고 승리한 성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들은 결단코 인간의 상식으로 인간의 방식으로 나타나는 자들이 아닙니다.


오직 십자가의 승리로 태어난 자들입니다.

그래서 성도의 승리는 완벽하게 보장되어 있는 것입니다.

성도는 요나단을 보면서 승리의 비법을 보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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