엣세이

세월이 가면 2

푸른 섬 2009. 2. 5. 21:47

장례식이 진행되고 있었다.

그런데 이게 왠 일인가?

 

죽었던 사람이 살아 있는 것이 아닌가?

이 사람이 절규한다.

난 살고 싶다. 살고 싶다 . 살고 싶다.

 

장례식을 치루던 사람들은 놀라 자빠진다.

 

꿈이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심은 일생에 매여 종노릇 하는 우리를 구해 주시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인간은 이 말씀의 위력과 능력을 알지 못한다.

 

과거에 복음을 알았던 어떤 친구가 이런 이야기를 한다.

 

세상은 복음대로 자신을 부인하고 살아 가는 사람에겐 기회를 주지 않는다고.

 

내용을 살펴 보면 이렇다.

 

자신는 십자가 복음을 알고 믿고 살았다. 그러나 이상하다. 타인의 삶을 보면 자기 부인하지 않는다. 오히려 저런 인간이 어떻게 저렇게 잘 나갈까?

 

세월이 흘러서야 정신이 들었다. 그래 세상은 치열하다. 자신을 부인하는 겸손은 결코 생존경쟁에서 밀릴 수 밖에 없다.

 

이젠 이 복음은 걷어 치워야 한다.

 

그래서 교회와 단절한다.

 

그래 정말 된다. 복음을 생각지 않으니 오직 한가지만 생각할 수 있다.

성공.

 

그러니 지금은 더더욱 복음을 생각할 겨를이 없다. 아니 생각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사람들은 착각한다. 예수님을 따르면 공짜로 밥얻어 먹고 쉽게 나의 욕망을 채울 수 있을 것이라고. 아니 작은 자신의 소망을 이루어 주실 것이라고.

 

그러나 십자가는 밥먹여 주지 않는다. 밥을 먹으려면 땀을 흘려야 한다.

 

이것은 주님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심으로 주어지는 은혜의 삶이다.

 

그러나 인간은 땀흘리기를 싫어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이니까.

 

그래서 십자가 복음을 이용해 자신의 게으름을 감추는 인생은 냉혹한 현실앞에 자신의 생존본성과 그 마음속에 감추어진 작은 소망, 욕망을 드러내고야 만다.

 

이렇게 되면 성경말씀은 하나의 소설이요 신화에 지나지 않는다.

 

주의 말씀이 살아서 운동력이 있어 우리를 찔러 쪼갠다는 말씀은 이미 이들과 상관없는 말씀이다.

 

세월이 흘러 이제 아득한 추억속으로 남겨져 있을 뿐이다.

 

성경을 읽고 들으면서 성경말씀을 자신들이 꿈꾸는 모습으로 상상한다.

요셉을 생각해보면 그가 얼마나 열심히 자신의 업무를 수행했는가를 생각지 않는다.

 

총리대신이 되었으니 그냥 놀았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다. 그는 또한 애굽의 바로왕을 위해 충성을 댜한 사람이다.

이것 또한 꿈속에서 신앙생활하는 사람은 받아 들일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주님은 이런 상황속에서 그 약속을 이루어가시고 요셉을 사용하셨다.

 

다니엘은 어떠한가?

그가 누구를 위해 일했는가?

 

그러면 우리가 좋아하는 에스더는 누구의 왕비로 평생 살았는가?

 

우리는 정말 구별되고 다른 세상의 아일랜드에서 살고 싶어 환장한 인생들이다.

 

그래서 십자가를  그렇게 이해하고 받아들인다.

 

십자가는 우리에게 밥먹여 주지 않는다. 그러나 십자가 복음은 영생을 주신다.

이보다 기쁜 소식이 어디있는가?

 

그래서 복음이라 하지 않는가?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진 인생.

 

그래서 이 일을 이루신 주님되신 예수님을 증거하라고 냉혹한 현실속에 성도를 살게 하심이 아닌가?

 

아마 우리들은 상상도 못할 것이다. 다니엘이 그런 상황에서 주님을 증거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다니는 직장이 다니엘이 마주한 상황과 다를까?

 

돈이 신인 이 세상에서 성도는 다니엘과 결코 다르지 않는 삶 속에 놓여 있다.

 

주님은 이런 곳으로 성도를 밀어 넣어셔서 온 만유의 주님이 누구신지를 그 속에서 고난 당하는 성도를 통해 증거하신다.

 

총리대신 되는 것이 죄가 아니다. 나라의 둘째 셋째 치리자가 되는 것이 죄가 아니다. 부자로 사는 것이 죄가 아니다.

하루벌어 먹는 인생이 의가 되는 것이 아니다.

거지처럼 사는 인생이 의로운 인생이 아니다.

 

주님의 피흘림 속에 거하는 자가 의로운 자다.

 

복음을 족히 수년 들었다면 이제 가르치는 자가 되어도 벌써 되어야 하는데, 도의 초보가 아니라 완전히 다른 세상에 살고 있으니 탄식하지 않을 수 없다.

 

마침 장례식에서 만났기에 죽음과 지옥를 말하였다.

 

우리도 곧장 저 앞에 있는 사람 처럼 될 터인데 참 소망을 모르는 인생이 얼마나 불쌍한 인생인가?

 

많은 돈을 벌었는지 어느정도 자신의 욕망을 이루었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얼마나 불쌍한 인생인가?

많은 돈을 벌었는 것을 문제 삼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 지신 주님의 말씀이 그 사람속에 역사하지 않는 사실이 불쌍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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