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댜강해

강해1

푸른 섬 2009. 12. 6. 20:13

오바댜의 묵시

오바댜1장1-9

요즘 세상에 예수님을 이야기 한다는 것은 참으로 할 일 없는 사람이 하는 짓 같습니다.

우리의 삶 가운데 예수님이 들어갈 자리가 있습니까?


돈 버는 곳, 자식 키우는 곳 어디를 가도 예수님의 자리는 없습니다.

물론 교회도 마찬가지죠.


교회 안에서도 예수님이 들어갈 자리가 없습니다.

돈버는 곳의 중심은 돈이 되고, 자식 키우는 곳은 자식이 중심이 됩니다.


그러면 교회의 중심은 무엇일까요? 그야 당연히 교회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이 교회의 중심에 설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목사는 어떨까요?

목사도 마찬가지입니다.

목사는 목사짓이라는 것에 마음이 빼앗겨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예수님이 설 자리가 없습니다.


사람이 가는 곳 마다 사람이 주인 행세해야 합니다.

사람이 주인이 되지 못하는 곳은 쓸데 없는 짓 하는 모임이나 쓸데없는 사람 취급 받습니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거리의 분위기가 달라집니다.

그런데 반짝이는 불빛 속에 무엇이 들어있습니까?


십자가 지신 예수님이 들어 있습니까?

아니죠. 


돈만 들어 있습니다.

자본만 들어 있습니다.


사람의 행복 즐거움만 가득가득 들어 있습니다.

어디를 가도 예수님의 자리는 없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게 되면 오바댜의 묵시라고 합니다.

이런 말씀은 자신들만의 세상을 꿈꾸는 사람에겐 참으로 듣기 싫은 말입니다.


왜냐하면 묵시가 개입되면 묵시를 인정하든 말든 역사라는 것이 산산조각나 버리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땀과 수고의 대가가 박살 나 버립니다.


그래서 묵시를 인정하든 하지 않든 인간들은 묵시 자체를 거부하고 싫어합니다.


무엇을 근거로 그렇게 말하느냐고 하신다면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가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란 인간자체를 완전히 박살냅니다.


인간 자체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인간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은 인간이 만들어낸 것들을 다 부정한다는 말입니다.


부정하는 정도가 아니라 인간의 흔적이 있는 곳을 아예 불로 다 태워 버리시겠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흔적이 있는 땅은 없애버려야 합니다.

그래서 새땅을 만드십니다.


인간이 보았던 하늘도 없애버립니다.

그래서 새 하늘을 만듭니다.


자신이 살고 있는 세상이 전부인 인간에겐 묵시라는 것은 즉각 없애 버려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무엇입니까?


아무리 없애버리려고 해도 주 여호와의 전쟁은 에돔을 덮쳐버립니다.

피할 수가 없습니다.

2절을 보면 주 여호와께서 에돔을 열국 중에서 미약하게 하였으므로 네가  크게 멸시를 받는다고 하십니다.


참으로 희한한 말씀이죠.

오늘날 세상을 보세요.


나라가 잘 살고 못 살고, 흥하고 망하는 것이 누구에게 달렸습니까?

사람에게 달렸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엄청나게 부자이며 군사적으로 강대국인 미국을 보세요.

미국의 멸망이 여호와께 달려있는 것 같습니까?


세계 강국들을 보세요. 그들의 흥망성쇠가 누구에게 달려 있습니까?

가난한 국가는 왜 가난합니까?


그런데 성경 말씀을 보게 되면 잘 살고 못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랍니다.

주 여호와의 심판의 대상이 될 뿐입니다.


다니엘2장을 보면  세상의 모든 국가는 우상에 불과합니다.

뜨인 돌에 의해 박살나야 하는 우상에 불과합니다.


국가를 누가 세웁니까?

인간이죠.

국가가 우상이요 산산조각날 대상이라면 인간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 자체가 우상입니다.

다니엘서에 의하면 짐승입니다.


국가가 짐승이요 사람도 짐승입니다.

그런데 이 짐승은 그냥 짐승이 아닙니다.


동물의 수준이 아니라 마귀새끼입니다.

그러니 짐승취급 당하면 그래도 좋은 대접입니다마는 인간은 짐승취급받는 것이 아니라 마귀취급받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기분나쁩니까?


지금 에돔은 마귀취급을 받고 있습니다.


3-4절을 보세요.

“바위 틈에 거하며 높은 곳에 사는 자여 네가 중심에 이르기를 누가 능히 나를 땅에 끌어내리겠느냐 하니 너의 중심의 교만이 너를 속였도다 네가 독수리처럼 높이  오르며 별 사이에 깃들일지라도 내가 거기서 너를 끌어내리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였니라”


이 말씀은 무슨 의미입니까?

반드시 멸망시키신다는 말씀입니다.


아무리 강하고 높은 자리에 있더라도 끌어내려 멸망시키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호와께서 왜 에돔을 멸망시키시려고 합니까?

그 이유는 형제 야곱에게 행한 포학때문입니다.


에서의 후손이 에돔입니다.

그러면 야곱과 어떤 관계입니까?


형제 관계였지요.


그렇다면 형제관계에 있는  이스라엘을  포학히 대했기 때문입니까?

물론 성경에는 그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게 또한 사실입니다.


형제였던 자가 형제에게 포학히 행했기에 멸망당하는 것은 아닙니다.

멸망의 이유는 오직 한가지입니다.


좀 어려우니 거꾸로 봅시다.

십자가 입장에서 보면 간단합니다.


에돔이 행하는 행동 하나하나가 십자가의 피를 부정하는 행동입니다.

그래서 멸망당하는 것입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사람들이 별별 일을 다 행하고 살죠.

얼마나 다양하게 살아갑니까?

어떤 사람은 가난한 사람을 돕는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사람을 죽이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돈을 열심히 버는 사람도 있고, 그 돈을 자신을 위해 사용하는 사람, 남을 위해 사용하는 사람.

별의 별 사람들이 다 있습니다.


그런데 누가 지옥가고 누가 천국갑니까?

그 기준은 하나입니다.

바로 십자가의 피능력을 믿느냐 믿지 않느냐입니다.


그래서 십자가의 피 능력 안에 있는 자는 무슨 짓을 해도 천국가야 할 이유가 됩니다.

그런데 십자가의 피 능력 밖에 있는 자는 무슨 짓을 해도 지옥 가야 될 이유가 되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아시겠습니까?


에돔에는 갓 태어난 아이가 없었을까요?

가난한 자를 도와 주는 사람이 없었을까요?


서로 사랑하며 사는 사람이 없었을까요?

기부하는 사람이 없었을까요?


사람 사는 세상에 이런 모습이 없겠습니까?
그런데 이 모든 것들이 멸망의 이유가 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십자가의 피 능력 밖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기부 천사라는 사람이라도 예수님의 피 밖에 있는 자는 기부천사는 천사인데 기부마귀천사에 의해 움직여지는 사람에 불과합니다.


요한복음5장24절을 봅시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너무 간단하지 않습니까?

무슨 심판의 기준이 이런 것이 다 있습니까?


차라리 형제 나라에 대해 선하게 대하면 심판하지 않겠다라고 하면 납득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어야 생명이 있다고 하니 이걸 어떻게 받아 들이라 말입니까?


그러니 오바댜를 엉터리로 읽는 것입니다.

오바댜를 읽으면서 형제나라에 대해 선하게 하자, 착하게 살자라고 하면 멸망의 대상에 불고합니다.


심판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은 한가지 밖에 없습니다.

바로 십자가 지신 예수님을 믿는 것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문젠 어떻게 예수님을 믿느냐는 것이지요.


요한복음6장65절을 읽고 마치겠습니다.

“또 가라사대 이러하므로 전에 너희에게 말하기를 내 아버지께서 오게 하여 주지 아니하시면 누구든지 내게 올수 없다 하였노라 하시니라”


예수님의 피 능력만이 예수님을 믿는 자를 만들어 냅니다.

이런 자만이 주님의 심판에서 제외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피 능력에서 제외된 자들은 무슨 일을 해서 심판의 이유가 되며 심판의 대상이 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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