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4장1-13

푸른 섬 2010. 7. 25. 22:45

 죄란?

누가복음4장1-13

R.C 스프라울이라는 사람이 죄의 증상에 관해 쓴 시입니다.


죄의 증상  

    

죄의식을

느끼게 되는 이유는

아마도 당신이 죄를

지었기 때문일 것이다.

당신의 죄 문제에 대한 해답은

합리화나 자기 변호가 아니라

바로 용서다.

- R. C. 스프라울


그리고 어떤 사람이 저에게 보내 온 글입니다.


  우리의 죄에 대해

책임감을 갖는 것은

변화의 시작이 됩니다.

우리의 본성은

죄를 지은 이유에 대해

그럴듯한 변명을

찾거나 만들려고 하지만,

주님께서는 그 분 앞에서

우리의 죄를

인정하기를 원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회개의 시작입니다.


 방금 읽어 드린 시와 글에 대해서 어떤 생각이 듭니까?

죄를 지었다. 죄를 지었기에 자기 합리화를 하거나 자기 변호를 하면 안된다. 오직 용서를 구해야 한다. 용서를 받아야 한다. 어떻습니까?


그리고 그 다음 글에서 우리의 죄에 대해 책임감을 갖는다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죄에 대해 책임감을 갖는 모습이 어떨까요? 그것은 변명않고 주님 앞에 우리의 죄를 인정하는 것.


여러분 생각에는 이런 모습이 문제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사람들은 늘상 죄에 대해 변호하거나 합리화 하는 것이 기본아닙니까?

그런데 이런 모습을 보면 꼴도 보기 싫죠.


그래서 스프라울이라는 사람이 죄에 대해서는 합리화하거나 변호하지 말고 용서를 구해야 한다고 합니다.

얼마나 멋진 말입니까?


그런데 여러분 한번 생각해 봅시다.

스프라울이라는 사람의 말을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에게 말하면 어떨까요?

전혀 부담감이 없죠?

세상의 윤리와 동일한 것이 아닙니까?


그러니 예수님을 믿든지 믿지 않든지 누구나 다 동의할 만한 그런 내용입니다.


사람들은 늘상 찾아 나섭니다.

무엇을 말입니까?


자신에게서 나오는 것과 동일한 것이 성경에 있을 것이라고 말입니다.

성경의 핵심도 자신이 원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기독교방송을 보는데 수천명이 모인곳에서 미국목사가 설교를 했습니다.

물론 저는 밑에 자막을 읽었지요.


그런데 그 사람 설교의 핵심은 말씀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된다는 것이지요.


긍정의 힘으로 살아라는 것입니다.

대충 무슨 뜻인지 아시겠지요?


복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성공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믿음으로 말입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말입니다.


이 목사도 마찬가지죠.

성경에서 꺼집어 내는 것은 인간의 탐욕입니다.


이 탐욕과 조금 전 죄에 대한 인식과 한 점에서 만납니다.


죄의식을 없애려고 하는 탐욕과 땅에서 자신의 소망을 이루려고 하는 탐욕.


이들은 무엇을 모릅니까?

죄를 몰라요.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죄도 모르고 예수님을 믿어요.


오늘 본문을 한번 살펴 볼까요?

예수님께서 성령의 충만함을 입었습니다.


그런데 너무나 이상한 것은 성령충만 입은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마귀에서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물론 성령님께 이끌린 상황에서 마귀의 시험을 받으신 것이지요.


우린 이렇게 생각합니다.

성령 충만하면 마귀랑 상관없는 자가 될 것이다.


마귀가 얼씬도 못한다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마귀가 함께 놉니다. 그래서 그 사람이 성령님과 상관있는 사람인지 아닌지 드러나게 하십니다.


마귀가 함께 하지 않으면 그 사람이 성령충만을 입었는지 입지 않았는지 알수가 없어요.


그래서 성령을 입지 못한 사람은 당연히 마귀가 함께 논다는 것을 몰라요.


그러나 성도는 늘상 마귀가 함께 합니다.

그래서 성도가 어떤 자인가를 마귀가 활동함으로 밝히 드러냅니다.


앞서 예를 든 그런 사람들이 활동하는 것을 성도만 알아 차릴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그런데 시험 내용이 재미있죠.

사십일 동안 아무것도 잡수지 않으셨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마귀가 이 상황에 딱 막는 시험을 가져 옵니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이 돌들에게 명하여 떡덩이가 되게하라”

우리가 늘 부딪히는 시험아닙니까?


이런 시험 안 해 봤습니까?

마귀는 상황에 맞게 시험을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떡으로만 살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산다고 하셨습니다.

물론 누가복음에서는 말씀으로 산다는 말씀이 빠졌습니다 마는.


사람들은 굶주릴때 생각하는 것이 밥입니다. 떡입니다.

사람이 떡으로 살지 다른 무엇으로 산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 않나요?

다른 것으로 산다는 것을 생각해 보신적 있나요?


성도라면 해 보셨겠죠?


그러자 마귀가  예수를 이끌고 순식간에 천하 만국을 보여 줍니다.

네가 내가 절하면 이모든 권세와 그 영광을 예수님께 주겠다고 합니다.


마귀가 이렇게 말하죠.

이것은 내게 넘겨준 것이므로 나의 원하는 자에게 주노라


마귀가 지금 장난치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 마음대로 할수 있다는 것이지요.


자기에게 절만하면 주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기록하기를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천하만국의 권세와 영광보다 주님되신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분만을 섬기라는 말씀으로 응수하셨습니다.


여러분, 천하만국의 권세와 영광을 택하겠습니까 아니면 주님만 경배하는 것을 택하겠습니까?

아마 우리 같으면 주님도 경배하고 천하만국의 권세와 영광도 동시에 달라고 할 것입니다.


우리의 노림수가 그런 것이지요.

주님만 경배하면 천하만국의 권세와 영광을 마귀에게서 뺏어 우리에게 주실 것이다라고 말입니다.


마지막으로 마귀가 예수님을 성전꼭대기에 세우고 성경구절을 언급합니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여기서 뛰어 내리라

기록하였으되 하나님이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사 너를 지키게 하시리라 하였고

또한  저희가 손으로 너를 받들어 네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시리라 하였느니라”


밥도 안되고 세상권세도 안되니 이제 말씀을 갖고 시험을 합니다.

말씀대로 해 보라는 것이지요.


우리속에 마귀가 살고 있죠?

그렇지 않습니까?


무슨 말인지 잘 이해가 안가나요?


12절에서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하였느니라


우린 이렇게 말합니다.

저는 하나님을 시험하려고 그런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어서 그렇습니다.


그러니 말씀대로 이루어 주세요, 능력도 주시고, 병도 낫게 하시고, 죽은 자도 살게 하시고, 물위도 걷게하시고.


말씀을 믿으니 믿음대로 해 주세요.


그러니 마귀와 어찌 그리 똑 같습니까?


마귀는 굶주리는 자에게 밥을, 그리고 세상 권세와 영광을, 그리고 말씀대로 능력을 보이라고 시험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 본문과 서론에서 말씀드린 죄와 무슨관계가 있습니까?


그걸 찾아 보고 오늘 설교 마치겠습니다.


마귀는 지금 예수님과 자신을 어떤 관계에 놓습니까?

별개의 관계입니다.


독립적 관계입니다.


아니 독립적 관계를 뛰어 넘어 예수님을 주도적으로 자신의 편으로 끌어 오려고 하죠.

자기 편 만들기입니다.


이게 죄입니다.

예수님을 자기 편으로 끌어당기는 것이 죄입니다.


이것으로는 좀 부족합니다.

예수님을 자기 편으로 끌어당긴다는 말은 예수님을 철저하게 이용만 해 먹겠다는 것이지요.


이것은 예수님께서 지신 십자가와 상관없이 살겠다는 것입니다.

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피 흘려 죽으셨는지를 몰라요.


그러니 죄를 모르는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님만 이용해 먹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죄의식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죄 속에 살고 있다는 것을 몰라요.


쇠똥구리가 똥속에서 굴러 다니듯이 죄 속에서 떼굴떼굴 굴러 다니는 것을 몰라요.

마귀가 예수님을 시험하는 그 짓을 우리 자신이 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아요.


그러니 죄를 예수님의 피흘리심과 관련짓지 못하고 자꾸 자신이 행한 나쁜짓을 죄라고 생각해요.


마귀가 무슨 나쁜짓 했나요?

배고플때 돌로 떡덩이로 만들어라가 무엇이 잘못되었습니다.


세상권세 영광을 주겠다는데 그게 무슨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나요?

단지 한번 마귀에게 절할 뿐인데.


말씀대로 해보라는 것이 뭐가 문제입니까?

사람들은 늘상 말씀말씀하지 않습니까?


마귀에게 절한다는 것이 나쁘다면 무엇이 마귀에게 절하는 것인지를 알아야 하지 않습니까?

마귀에게 절한다는 것은 정직하지 못하게 돈을 번단든가 하는 짓을 생각해요.


그런 것이 아닙니다.

마귀에게 절한다는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 피를 부정하겠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고하면 돈을 벌기 위해서 세상 권세를 위해서 십자가 피와 상관없이 살겠다는 것이지요.


아니면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고 땅에서 복을 받기 위해서 십자가 피를 이용해 먹겠다는 것이지요.

마귀의 근본 사고 방식과 똑 같죠. 

여러분은 주님되신 예수님이 흘리신 피와 관련 있게 삽니까 아니면 피와 상관없이 살아갑니까?

'누가복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구유에 누우신 예수님  (0) 2010.12.27
18장1-8   (0) 2009.08.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