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

사사기강해 5

푸른 섬 2012. 1. 11. 13:44

사사기강해 5

옷니엘과 에훗




음성


사사기3장7-31

사사들이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제일처음 나오는 이름이 옷니엘입니다.

옷니엘을 이렇게 소개합니다.

갈렙의 아우 그나스의 아들 옷니엘이라고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왜 옷니엘을 세우셨습니까?

이스라엘 자손들이 여호와 앞에서 악을 행했습니다. 이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바알과 아세라 신들을 섬겼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왜 잊어 버렸을까요?

여러분, 자식 키우고, 돈 벌기 바쁜데, 노후대책세우는데 바쁜데 예수님 생각할 겨를 있습니까?

물론 있겠지요. 예수님께서 자식 잘되게 하시고, 돈 많이 벌게 해 주시고, 노후 대책 잘 마련해 주시는 분이라면 항상 기억하겠지요.

사람들은 이런 예수를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런 예수는 우상예수입니다.

여기 우리 사는 동네 어떤 교회에 문제가 일어난 모양입니다.

목사옹호파와 반목사파가 갈려져 있는 모양입니다.

혹 이 설교를 그 교회분이 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들이 싸우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둘 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합니다. 둘 다 십자가를 이야기 합니다.

그런데 왜 싸움을 하는가?

한쪽은 무조건 목사편이랍니다. 사람을 위한 설교, 십자가만을 전하지 않는 설교,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는 설교 아무런 문제없답니다. 직장생활 계속하기 위해 자기편만 챙기는 목사, 반대편들을 숙청하는 목사 아무런 문제없답니다.

그러면 반대편 사람들은 무엇을 주장하는가?

쉽게 말하면 상식적으로 하자는 것입니다. 달리 말하면 말씀대로 해 보자는 것입니다.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목사가 되어라는 것이지요.

그래서 이들은 목사를 쫓아내려고 합니다. 물론 자신들이 투표에서 졌습니다. 한 표로 지던 두표차로 지던 법은 법이지요. 사실 이것이 상식 아닙니까?

법대로 통과 되었으면 인정하고 받아 들여야 할 터인데 그들의 상식이 그런 상식 아니지요. 사람이 그렇게 쉽나요. 복잡합니다.

이들 또한 십자가에 달려 피 흘리신 예수님께 관심 없습니다.

이들은 목사가 십자가 복음 전하지 않는다고 시비 걸지 않습니다. 적어도 사람들이 상식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행동을 해 달라는 것이지요.

이들이 목사에 대해 갖고 있는 불만은 왜 자기 말을 안 듣느냐는 것입니다.

왜 지금도 살아계신 주님의 말씀을 듣지 않느냐에 불만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왜 나의 말을 듣지 않고 왜 나를 섭섭케 대하느냐 말입니다.

지금 이들은 교회에서 주도권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이들에게 십자가 지신 예수님이 생각나겠습니까?

물론 난다고 하겠지요.

그러나 저들이 생각하는 예수님은 자신들을 위한 예수입니다.

바알과 아세라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잊어 버렸다는 말을 여러분들은 어떻게 이해하십니까?

여호와 하나님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잊어 버릴 수 있을까요?

절대로 잊어버릴 수 없습니다.

부모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가르치지 않았을까요?

가르쳤습니다. 이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모른 것이 아닙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하신 일들을 기억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들에겐 지금 바알과 아세라가 최고입니다.

마치 예수님을 믿는 모임이라 하고 교회라 해 놓고 하는 짓이 자기 주도권 싸움하는 자들이랑 똑 같습니다. 성경말씀을 매일 읽으면서 자신이 더욱더 예수님을 닮아간다고 도 닦는 자들과 같다 말입니다.

이들은 예수님을 잊어 버렸지요. 왜 그렇습니까? 눈에 자기 자신밖에 안 보입니다.

십자가가 눈앞에 밝히 보이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에게 여호와께서 진노하셨습니다.

그래서 메소보다미아 왕 구산 리사다임의 손에 파셨습니다.

표현이 참 재밌다고 해야 하나요?

팔아 버렸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이렇게 하셨습니다.

악하고 악한 왕에게 이스라엘을 팔아 버렸습니다.

왜 이렇게 하셨을까요?

부르짖음을 만들어 위해서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 있을 때에 부르짖은 그 부르짖음을 만드시기 위해 악하고 악한 왕의 지배하에 이스라엘을 두셨습니다.

8년 동안 악한 왕의 지배하에 있으니 저절로 부르짖음이 나오지 않겠습니까?

이스라엘의 본질이 이렇습니다.

구원의 은혜를 쉽게 잊어버립니다. 은혜를 잊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의 원수로 생활합니다.

이사야1장2,3절을 한번 봅시다.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을 깨닫지 못하는도다 하셨도다”

이스라엘이 어떠하다 말입니까?

짐승만도 못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 대한 평가입니다.

소나 나귀보다 못한 자들입니다.

5절을 보면 매를 더 맞으려고 더욱더 패역한다고 합니다. 이게 이스라엘의 본모습입니다.

어떻게 하면 여호와 하나님께로부터 한 대 더 맞을까 연구하는 자들 같습니다.

정확히 찾아내어 얻어맞습니다.

그래서 성한 곳이 한 곳도 없습니다.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이런 상황에서 구원자를 보내 주셨습니다.

이런 상황이라면 여러분 어떤 구원자를 기대합니까?

자신이 평소에 믿던 바알과 아세라신, 이들과 견주어도 전혀 부족함이 없는 구원자를 기대하지 않을까요?

적어도 자기 자신보다 더 나은 사람이 자신들을 구원해 주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런데 갈렙의 아우 그나스의 아들 옷니엘입니다.

우리야 별 느낌 없지요.

어찌되었던 옷니엘은 우리들 생각에는 대단한 사람이라 생각되니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갈렙을 생각할 때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갈렙은 에서의 후손입니다.

갈렙이나 옷니엘에게 항상 따라다니는 호칭이 그나스 사람이라는 호칭입니다.

우리와 별 상관없는 민족들이라서 별로 느낌이 없지요.

이렇게 표현하면 어떨까요?

일본사람이 구원자다. 이것도 별로 와 닿지 않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에겐 아주 기분 나쁜 호칭입니다.

그냥 옷니엘 하면 좋은데, 그나스 사람 옷니엘이라고 부르면서 그를 사사로 세웠습니다.

이스라엘 중에는 이러한 사람이 없다는 말입니까?

옷니엘 정도 되는 사람이 없을까요?

왜 없을까요? 옷니엘과 비교해도 절대 뒤지지 않는 사람이 어디 한 둘이겠습니까?

그런데 왜 그나스 사람 옷니엘을 사사로 세웠느냐 말입니다.

그것은 구원이라는 것은 너희들이 예상하는 구원이 없다는 것을 말씀하시기 위해서입니다.

물론 이것은 너희들이 구원받으면서도 너희들이 얼마나 악한 자들인가를 알게 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조치입니다.

오늘 두 번째 본문을 보면 왼손잡이 에훗이 나옵니다. 왼손잡이라는 것은 병신이라는 말입니다.

오른손이 병신이 되어 왼손을 쓴다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어요.

왜 이런 사람을 사사로 세우셨을까요?

오른 손 잡이도 넘쳐 날 터인데.

에훗이 모압왕 에글론을 죽입니다. 뿐만 아니라 에훗이 앞장서서 모압 사람 일만 명가량을 죽였고

모압사람이 이스라엘에 항복했습니다.

이스라엘 무리가 에훗을 따르고 싶었겠습니까?

물론 여호와 하나님께서 에훗을 따르게 하셨지요.

그러나 무리는 에훗을 절대로 따르고 싶지 않았습니다. 목사님이 어떻게 그렇게 단정하십니까?

적어도 에훗이 모압왕 에글론을 죽이지 않았습니까? 라고 반문하시겠지요.

여러분, 에훗같은 사람이 와서 설교하면 사람들이 잘 들을까요?

안 듣습니다.

전하는 내용도 안들을 뿐 아니라 그 사람 자체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이게 제 이야기가 아닙니다.

열왕기 상22장을 보면 미가야 선지자가 유다왕 여호사밧왕과 이스라엘왕 아합의 연합군이 아람군대와 싸우기 전에 하늘에서 본 말씀을 전했습니다.

19-23절입니다.

“미가야가 가로되 그런즉 왕은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소서 내가 보니 여호와께서 그 보좌에 앉으셨고 하늘의 만군이 그 좌우편에 모시고 서 있는데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누가 아합을 꾀어 저로 길르앗 라못에 올라가서 죽게 할꼬 하시니 하나는 이렇게 하겠다 하고 하나는 저렇게 하겠다 하였는데 한 영이 나아와 여호와 앞에 서서 말하되 내가 저를 꾀이겠나이다 여호와께서 저에게 이르시되 어떻게 하겠느냐 가로되 내가 나가서 거짓말 하는 영이 되어 그 모든 선지자의 입에 있겠나이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너는 꾀이겠고 또 이루리라 나가서 그리하라 하셨은즉 이제 여호와께서 거짓말하는 영을 왕의 이 모든 선지자의 입에 넣으셨고 또 여호와께서 왕에게 대하여 화를 말씀하셨나이다”

라고 했습니다.

이 일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고 하면 이스라엘 왕 아합이 선지자 사백 명을 모아서 길르앗 라못에 올라가 싸울까 말까를 물었습니다.

그러자 사백 명쯤 되는 선지자들이 모두 이구동성으로 올라가소서 주께서 그 성을 왕의 손에 붙일 것이라고 예언을 했습니다.

그런데 미가야 선지자가 이런 소리를 했습니다.

어떻게 되었을까요?

기사대기를 한 대 맞았습니다.

상상해 보십시오. 사백 명의 목사가 다 전쟁에서 승리할 것이라 하는데 한 목사가 그것 아니요라고 했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나아나의 아들 시드기야가 미가야의 뺨을 치면 말합니다.

여호와의 영이 나를 떠나 어디로 말미암아 가서 네게 말씀하더냐

참으로 놀라운 말 아닙니까?

자신은 여호와의 영을 입어 전쟁에서 승리할 것이라 예언했다는 것입니다. 사백 명 되는 목사들이 말입니다.

결국 미가야 선지자는 옥에 갇혔고 고생의 떡과 고생의 물을 마시게 되었습니다.

우리야 그 결과를 알고 있지요.

아합왕이 죽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 현실이 바로 왼손잡이 에훗이 사사가 된 현실이라는 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에훗을 따랐던 것은 결코 그들이 원해서가 아닙니다.

여호와께서 왼손잡이 에훗을 사사로 세우셨듯이 이스라엘이 에훗을 따르게 하신 것입니다.

이사야 53장1-3절을 보겠습니다.

“우리의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뇨 여호와의 팔이 뉘게 나타났느뇨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 버린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않음을 받는 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구원자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이 이렇습니다. 믿을 마음이 생기지 않습니다.

오히려 멸시합니다. 꼴도 보기 싫습니다. 이런 모습으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십자가에 달려 피 흘리시는 분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러니 누가 이런 예수님을 지지하겠습니까?

마태복음16장을 보면 베드로가 절대로 예수님께서는 고난 받고 죽으시면 안 된다고 합니다.

이 마음이 누구의 마음입니까? 사단의 마음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으로 이 땅에 오신 이유가 이것입니다.

너희들은 사단의 자식이다를 밝히기 위해서입니다.

너희들이 구원받는 것은 너희들이 구원자를 믿어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너희들은 오히려 구원자를 조롱하고 비웃고, 멸시하고, 죽이는 자들임을 고발합니다.

우리들은 절대로 예수님을 믿을 수가 없습니다.

이유는 우리의 본성이 거부합니다.

십자가는 무조건 싫습니다.

사람들이 왜 교회 주도권을 쥐려고 하는지 아시지요.

이들에게 복음을 전해 보세요. 안 듣습니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 아닙니까?

십자가 복음 들을 것 같지요. 무조건 싫습니다. 비웃습니다. 조롱합니다.

이들이 하는 말이 무엇인지 아세요. 상식적으로 살자입니다. 윤리적이고, 도덕적으로 살자고 합니다.

제발 민주주의방식으로 교회를 운영하자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의 지지를 받는 목사가 되어라입니다.

십자가에 달려 피 흘리신 예수님조차 자신들의 지지를 받는 예수가 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들에게 십자가 지신 예수님은 멸시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십자가 지신 예수님을 철저하게 우리를 죄인으로 규정하시면서 다가오십니다.

예수 안에 있는 자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는 말이 이런 의미입니다.

결코 정죄함이 없다는 의미를 제대로 아는 자가 성도입니다.

나 죄 없다가 아닙니다. 그렇습니다. 나는 구원자를 거부하는 자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구원자 되신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런 고백이 나오는 자가 성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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