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강해

로마서강해 25 8장31-39

푸른 섬 2013. 4. 15. 22:28

로마서강해 25 8장31-39

환난 속의 구원

음성설교

로마서8장31-39

앞부분에서 피조물과 성령께서 무엇을 한다고 했습니까?

피조물들도 탄식과 고통 중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했지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기를, 즉 예수님께서 강림 하시기를 탄식과 고통 중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것은 자신들이 원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셨습니다. 이렇게 말씀하심은 성도는 살아가는 모든 환경자체 속에서 주님께서 원하시는 바가 무엇인지를 확인하며 살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문제는 성령이 거해야 가능하겠지요.

사도바울은 성령 받은 자로서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성령께서도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성도들을 위해 간구하십니다. 우리를 위해 간구하십니다.

문제는 누구입니까?

성도라는 자는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고 기도하는 자입니다.

우리 생각에는 성도가 피조물보다 훨씬 더 수준 높다고 생각했지요. 그런데 수준이 아주 낮습니다. 피조물들은 마땅히 빌 바를 알고 있습니다. 그 역할을 하도록 지음을 받았지요.

시편 19편을 한번 살펴봅시다.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날은 날에게 말하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하니 언어도 없고 말씀도 없으며 들리는 소리도 없으나 그의 소리가 온 땅에 통하고 그의 말씀이 세상 끝까지 이르도다 하나님이 해를 위하여 하늘에 장막을 베푸셨도다 해는 그의 신방에서 나오는 신랑과 같고 그의 길을 달리기 기뻐하는 장사 같아서 하늘 이 끝에서 나와서 하늘 저 끝까지 운행함이여 그의 열기에서 피할 자가 없도다”

언어도 없고 말씀도 없고 들리는 소리도 없으나 피조물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피조물들이 철저하게 하나님의 말씀이 세상 끝까지 이르도록 선포합니다. 그렇다면 피조물들이 선포하는 말씀이 무슨 말씀일까요?

그 내용이 19편 7절부터 나오지요. 바로 율법입니다. 피조물들은 율법을 선포하고 있어요. 즉 하나님사랑 이웃사랑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어렵나요. 로마서를 보면서 이미 우리들이 배웠지요. 율법은 누구를 증거합니까? 십자가 지신 예수님을 전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하나님사랑 이웃사랑을 완성했습니다. 다 이루었습니다.

피조물들은 햇빛을 비추면서, 달빛을 비추면서, 별빛을 비추면서, 봄에 꽃을 피우면서 십자가 피를 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인간들은 이런 피조물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하지요.

시편 19편이나 로마서8장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해요. 그러나 피조물들이 말하는 바는 십자가의 피를 전하고 있어요.

시편 19편13절을 봅시다.

“또 주의 종에게 고의로 죄를 짓지 말게 하사 그 죄가 나를 주장하지 못하게 하소서 그리하면 내가 정직하여 큰 죄가에서 벗어나겠나이다”

누구의 시입니까? 다윗의 시이지요. 그런데 이런 기도가 그에게 소용 있어요 없어요. 소용없어요. 오히려 이렇게 기도하는 자가 고의로 죄를 지은 자로 드러났지요.

로마서 3장4절에서 “그럴 수 없느니라 사람은 다 거짓되되 오직 하나님은 참되시다 할지어다 기록된바 주께서 주의 말씀에 의롭다 함을 얻으시고 판단 받으실 때에 이기려 하심이라 함과 같으니라”

피조물들나 율법이 한결같이 전한 것은 십자가의 피 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들은 피조물을 통해 하나님과 소통하려고 하지요. 그러니 이런자들은 마귀에게 속한 것이 분명합니다. 이미 말씀을 통해 피조물들이 어떤 말씀을 선포하고 있는지를 말씀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저들은 십자가의 피를 믿는 자가 아니라 피조물을 통해, 혹은 하나님의 말씀, 율법을 통해 하나님과 소통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새들로부터 하나님의 계시를 받았다고 하는 자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미 새들이 짹짹 소리내는 것, 바람이 부는 것, 봄 날씨가 변덕스러운 이 모든 것들은 예수님의 피를 증거하고 있습니다. 제가 지금 피조물에 대해서 삼주 정도 계속해서 언급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피조물의 탄식소리에 인간들은 무엇을 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인간들은 무얼했습니까?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가 합심하여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물론 지금은 예수님이 땅 끝까지 전파됨으로 말미암아 더 이상 핑계할 수 없는 심판의 근거가 마련되는 시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조물들은 여전히 성도들을 위해 자신들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피조물을 언급하는 이유는 성령을 말씀하시기 위해서 언급했습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말은 바로 오늘 본문입니다.

31절을 읽어 봅시다.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지금 일을 누가 하고 계십니까?

이미 앞서서 성도는 이미 성령을 받았기에 누구의 증인으로 살아간다고 하셨습니까?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감사하는 삶, 예수님의 증인으로 살아갑니다.

이런 상황에서 성도는 고난을 받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의 영을 받았기 때문이지요. 모든 인간들이 다 죄인이며 오직 십자가의 피만이 구원을 가져다 줍니다라고 전하게 되면 예수님을 죽였듯이 성도들도 고난 받고 죽음에 넘기우게 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피조물의 탄식과 성령의 탄식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일에 대해 우리 인간들이 무슨 할 말이 있습니까? 할 말이 없지요. 다 하나님께서 하신일, 즉 주님께서 일을 하셨습니다. 성도가 여기에 보탬 된 것 없습니다. 오히려 빌 바를 알지 못하는 부정적인 일만 했지요.

그러니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 주신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하나님이 성도편, 그리고 하나님 우편에 계신 주님도 성도를 위해 간구하십니다.

그러니 성도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있는 것이 있을까요 없을까요?

지금 인간들이 손댈 수 없는 네 가지를 언급했습니다.

첫째 피조물, 둘째는 성령, 셋째는 하나님, 넷째는 죽으시고 부활하신, 하나님 우편에 계신 그리스도, 즉 주님입니다.

물론 이 네 가지는 하나를 말씀하고 있지요. 바로 십자가 지신 주님입니다.

주님께서 성도를 위해 간구하시기 때문에, 이것을 사중적으로 말씀하시는 이유는 성도의 구원이라는 것이 결코 어떤 상황이 와도 탈락되는 일이 없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35절을 말씀하십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참 이 말씀을 하시기 위해 피조물의 탄식과 성령의 탄식,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시는 것, 주님의 탄식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성도가 어떤 상황으로 내 몰리게 된다는 말입니까?

환난, 곤고, 박해, 기근, 적신, 위험, 칼을 만난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결코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

그러면서 이 말씀을 하나로 정리해 버립니다.

36절입니다.

“기록된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바로 십자가의 길입니다.

죽음의 길입니다.

그래서 피조물의 탄식, 성령의 탄식,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시는 것, 주님의 간구 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거꾸로 말하면 성도가 얼마나 큰 고난을 당하게 됨을 말씀하십니다.

37절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성도는 넉넉히 이깁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깁니까? 성도가 이깁니까 아니면 다른 분이 이기게 하십니까?

성도가 터치 할 수 없는 네 부분을 말씀하셨지요.

성도 자신이 이긴다고 하면 이 말씀과 상관없는 자입니다.

사실 자신의 목숨을 버리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는 많이 있습니다.

나라를 위해, 자신을 위해, 가족을 위해, 신을 위해.

그렇다면 이들이 다 주님의 사랑을 받은 자들입니까?

아니지요. 성도 아닌 자들도 얼마든지 죽음을 맞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로마서에서 말씀하시는 죽음은 무슨 죽음입니까?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의 재현입니다. 주님께서 반드시 이 길을 걷게 하는 죽음입니다. 이것은 자신의 의지도 아니요, 노력도 아니요 주님의 능력에 의해 이 길에 빨려 든자입니다.

그래서 38-39절입니다.

“내가 확신 하노니 사망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은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느니라”

이 말씀은 성도가 살면서 만나게 되는 모든 일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오늘날 이 땅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어떤 상황, 어떤 일을 만나도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어지지 않는 자가 성도입니다.

사람들은 오늘 본문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할 것입니다.

그래 난 이제 보장받았다. 어떤 상황에서도 구원받는다.

그러나 오늘 본문은 이것을 말씀하시는 것이아닙니다.

어떤 상황에 놓여도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어지지 않는다. 그러니 너는 죽음의 길로 가야한다.

이것이 오늘 하시는 말씀의 핵심입니다.

십자가의 길을 걷는 것은 결코 피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빌립보서 1장29절에서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십자가의 피를 전하지 않으면 고난이 없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성도는 확정되어 있습니다.

고난 속에서 구원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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