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 강해

강해 20

푸른 섬 2008. 4. 6. 18:17
 

부르짖음과 돌아보심

사무엘상 9장 15-27             

출애굽기 2장 23절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여러해 후에 애굽 왕은 죽었고 이스라엘 자손은 고역으로 인하여 탄식하며 부르짖으니 그 고역으로 인하여  부르짖는 소리가  하나님께 상달한지라.

24절에서는 

하나님이 그 고통 소리를 들으시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그 언약을 기억하사 이스라엘 자손을 권념하셨다라 라고 합니다.


과거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의 압제에서부터 탈출 하게 된 계기가 방금 읽은 본문에 나옵니다.

이스라엘의 부르짖음과 하나님의 언약 기억입니다.

그래서 그 부르짖음을 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응답이 이스라엘의 부르짖음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출애굽 과정을 조금더 살펴 보면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응답과 이스라엘의 부르짖음이 서로 맞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세와 아론을 먼저 이스라엘 백성가운데로 보냅니다.


출애굽기 4장 30,31절입니다.

“아론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모든 말씀을 전하고 백성앞에서 이적을 행하니 백성이 믿으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돌아보시고 그 고난을 감찰하셨다함을 듣고  머리 숙여 경배하였더라”

이 구절에서 주의해서 볼 내용은 이적을 행하니 머리숙여 경배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모세와 아론이 바로 왕에게 가서 이렇게 말합니다.

이스라엘 하나님이 말씀에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광야에서 내 앞에 절기를 지킬 것이니라  하셨나이다.


바로가 이 말을 듣고 더 화가 나서 고역을 더 심하게 시킵니다.

벽돌 만드는데 필요한 짚을 주지 않고 스스로 줍게 하여 벽돌 만들 것을 명합니다.


모세와 아론 때문에, 여호와 하나님 때문에 이제 고생을 더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들이  모세와 아론을 만나 뭐라고 하는지 봅시다.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우리로 바로의 눈과 그 신하의 눈에 미운 물건이 되게 하고 그들의 손에 칼을 주어 우리를 죽이게 하는 도다 여호와는 너희를 감찰하시고 판단하시기를 원하노라”


이들이 고역으로 인해 하나님께 간구한 것은 육신이 편안하게 사는 것이지, 오히려 이렇게 힘든 상황으로 몰려 가는 것을 원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니 모세와 아론이 기적을 행할때엔 좋아라 난리법석을 떨더니 좀 힘드니 여호와께서 너희를 감찰하시고 판단하시기를 원한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너희들을 혼내 주기를 바란다는 의미이겠지요.


이렇게 해서 결국 바로가 하나님께서는 내리시는 열가지 재앙, 이적을 보고 난 후에야 이스라엘을 내 보냅니다.


출애굽이 이렇게 해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관심은 하나님이 언약이 아니었습니다.

이들의 관심은 자신들 육신의 편안함입니다.


지금 당장 힘들지 않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는 것이지요.

이게 우리들의 바램아닙니까?

그러니 탄식이 우리 입에서 흘러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 제발 좀 편안하게 살 수 있도록 해 주세요라고 말입니다.


이런 인간의 탄식과 간구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언약을 기억하시어 이들의 기도를 들어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도를 들어주시는 과정을 보면, 너희들이 구한 기도가, 간구가 엉터리임을 분명히 밝히시고 그 기도를 들어주셨다는 사실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택하신 이유는 너희들의 복지, 행복을 위해서가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밝히시면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해 내셨습니다.


오늘 본문 사무엘 상 9장 16절을 봅시다.

“내일 이맘 때에 내가 베냐민 땅에서 한 사람을 네게 보내리니 너는 그에게 기름을 부어 내 백성 이스라엘의 지도자를 삼으라 그가 내 백성을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구원하리라 내 백성의 부르짖음이 내게 상달하였으므로 내가 그들을 돌아 보았노라 하시더니”


블레셋 때문에 너무 힘들어 하는 이스라엘, 열방과 같은 강력한 힘을 가진 왕, 국가를 갖고 싶은 이스라엘, 이들의 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으시사,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구원하실 것을 말씀하십니다.


왕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6장을 한번 보겠습니다.

큰 무리가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로 장정 오천명을 먹이셨습니다.


이들을 먹이심은 저들의 요구가 있어서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먼저 이들의 필요를 아시고 먹을 것을 주셨습니다.


그러자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요한복음6장14,15절입니다.

“그 사람들이 예수의 행하신  이 표적을 보고 말하되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 하더라 그러므로 예수께서  저희가 와서 자기를 억지로 잡아 임금 삼으려는 줄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 가시니라”


요구가 있기 전에 예수님께서는 이미 이들의 요구를 아신것이지요.

그리고 이 요구를 채우 주심으로 저들의 본성이 드러났습니다.

왜 예수님을 이렇게 열심히 따라다니는지를 말입니다.

먹을 것도 제대로 준비 못한 채로, 쫄쫄 굶어야 하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이들의 바램이 얼마나 간절했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오늘 우리들이 보는 이스라엘의 간절함과 비교해도 전혀 손색없는 간절함입니다.


얼마나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를 기대하고 기대했겠습니까?

얼마나 하나님께 간구하고 간구했겠습니까?


굶주린 저들을 능력으로 먹여주니는 분, 이 분이야 말로 하나님의 기도에 대한 응답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들에게 아주 기분나쁜 말씀을 하시기 시작합니다.

배부르게 하셨으면 그냥 계속 기분좋게 해 주시면 얼마나 좋을까요?


예수님은 꼭 판을 깨 버리시는데 일가견이 있으신 분이십니다.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사실이지요.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속내를 그대로 드러내셨습니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얻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


옛날부터 지금까지, 조상들부터 오늘날까지 항상 썩는 양식을 위해서만 살아온 저들에게 이 말씀이 먹히겠습니까?


그러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의 인치신 자니니라.


예수님께서 영생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저들이 이 말을 알아 들을수 있겠습니까?

처음부터 끝까지 마음속에 가진 생각은 이 땅에서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입을까에 대한 염려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이들은 육적으로 묻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

방법만 알려주면 하나님의 일을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생을 얻겠다는 것이지요.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그러자 표적을 보여 잘라고 합니다.

당신을 믿을 만한 근거를 보여 달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을 근거해서 당신을 믿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뭐라고 하십니까?

예수님이 생명의 떡이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저들에게 뭐라고 하시는고 하면 너희는 나를 보고도 믿지 아니하는도다.

예수님을 눈으로 보고 기적도 보았지만 안믿는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께서 저들을  예수님께 주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이것을 모릅니다.

자신들의 기도, 간구, 땀, 수고를 이용하면 얼마든지 영생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그 선지자가 오면 당연히 자신들이 믿을 수 있는 자격과 능력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보내주시지 않는 자는 결코 예수님께로 올수 없습니다.

그 증거로 예수님께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로다.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내 살을 믿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하나니.


이런 말씀을 하니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보입니까?

제자중 여럿이 듣고 말하되 이 말씀은 어렵도다 누가 들을 수 있느냐 한 대.

어렵다라는 말이 정말 어렵다는 뜻일까요?


미친소리 한다는 것입니다. 이제까지는 예수님의 제자로 따라 다녔는지 지금 들어보니 완전히 미친소리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제자중에 많이 물러 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 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들이 평소 원한 왕. 그렇게 기도하고 간구하고 기다려온 왕. 그 왕은 그들의 기대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이스라엘의 부르짖음에 하나님께서 응답하신 것은 이런 맥락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인간들은 평소에도 자신의 욕심을 따라, 땅의 필요를 늘상 간구하고 기다리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우리에게 다가오심은 이런 우리의 본성을 다 들추어 내시면서, 그분의 십자가의 피로 다가 오신다는 사실입니다.


이유는 예수님이 세상의 주님이심을 증거하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성도에게 주님의 일방적 택하심과 은혜 주심이 얼마나 크고 놀라운지를 알게 해 주십니다.


이렇게 되면 예수님을 믿는 이유가 달라져 버립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항상 나의 육적인 필요를 위해서 간구했지만 예수님을 만난 후에는 오히려 이것이 죄인 줄 알고 예수님만이 참 생명임을 증거하는 자로 살아갑니다.


오늘본문에 나타난 저들은 여호와께서 자신들을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결코 우리를 위해 존재하시는 분이 아니라 예수님 자신을 위해  존재하고 계심을 알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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