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 강해

강해18

푸른 섬 2008. 3. 25. 12:59
 

왕제도

사무엘8장10-22                          138 449  428    

여러분,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여러분이 왕이 되기를 바랍니까? 아니면 다른 어떤 사람이 종이 되어 왕의 명령에 복종하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까?


여기계신 어떤 분도 종이 되기를 바라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왕이 되었으면 되었지 죽어도 종이 되기는 싫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들이 읽은 본문을 보면 참 이상한 내용이 나옵니다.

방금 우리들이 바램과는 전혀 다른 내용이 나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왕을 요구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왕이 어떤 왕입니까?


모든 백성을 종으로 부리는 왕이 아닙니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왕의 제도란 어떤 제도인가?


11절을 봅시다.

“가로되 너희를 다스릴 왕의 제도가 이러하니라 그가 너희 아들들을 취하여 그 병거와 말을 어거케 하리니 그들이 그 병거 앞에서 달릴 것이며 ”

12절입니다. 

“그가 또 너희 아들들로 천부장과 오십부장을 삼을 것이며 자기 밭을 갈게 하고 자기 추수를 하게 할 것이며 자기 병기와 병거의 제구를 만들게 할 것이며”

13절을 봅시다.

“그가 또 너희 딸들을 취하여 향료 만드는 자와 요리하는 자와 떡 굽는 자를 삼을 것이며”

14절 

“그가 또 너희 밭과 포도원과 감람원의 제일 좋은 것을 취하여 자기 신하들에게 줄 것이며 ”

15절 

“그가 또 너희 곡식과 포도원 소산의 십일조를 취하여 자기 관리와 신하에게 줄 것이며”

16절

“그가 또 너희 노비와 가장 아름다운 소년과 나귀들을 취하여 자기 일을 시킬 것이며”

17절
“너희 양떼의  십분 일을 취하리니 너희가 그 종이 될 것이라”


결론적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원하는 왕, 그 왕의 제도는 왕 한 사람을 중심으로 모든 사람이 그의 종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생각은 어떻습니까?

이런 왕이 있다면 좋겠습니까?


여러분의 것을 빼앗아가는 왕인데, 여러분이 종이 되는데, 그런데도 왕을 구하시겠습니까?

아마 제정신인 사람들은 결코 왕을 요구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스스로 자신이 종이 된다는 것이 말이 되는 것입니까?

누구나 높은 자리에 앉고 싶고, 왕의 자리에 앉아서 행세를 하고 싶어하지 않습니까?


나의 모든 것을 소유하는 왕이란 정말 싫은 왕이 아닙니까?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미쳤는지, 정신이 어떻게 되었는지 스스로 종이 되겠다고 하면서, 왕을 달라고 요구합니다.


그 이유를 살펴보면 우리가 이들의 요구가 과연 정신이 온전하지 못해서 왕을 구했는지 그렇지 않은지 알수 있습니다.


20절을 봅시다.

“우리도 열방과 같이 되어 우리 왕이 우리를 다스리며 우리 앞에 나가서 우리의 싸움을 싸워야 할 것이니이다”

당시 전쟁이 그러했던 모양입니다.


모든 힘의 집결지인 왕을 중심으로, 그 용감한 왕이 싸움을 할지 전쟁에서 승리도 하고, 그 승리로 인해 그 왕께 속한 종들 같은 사람들은 평안을 누렸던 모양입니다.


지금 이스라엘 백성은 이것이 부러운 것입니다.

왕이 없으니 힘이 없다는 것입니다.


누구를 중심으로 뭉쳐야 할지 모릅니다.

누구 말을 들어야 할지도 모릅니다.


사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하고, 제사장들의 말을 들어야 하는 이스라엘 백성인데, 이들의 눈에는 말씀이 시시해져 버린 모양입니다.


하기에 한번 보세요. 사사시대가 어떻게 흘러갑니까?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는 시대가 아닙니까?


무언가 주도하는 사람이 없으니, 다른 말로 하면 사람들이 느끼기에 권력을 꽉 진 사람이 없으니 각자 소견에 옳은대로 행합니다.


물론 성경말씀도 다 자기 소견에 옳은대로 행하고요.

그런데 놀랍게도 하나님께서는 그런 중에서도 하나님의 언약을 이루어가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언약엔 관심이 없습니다. 어떻게 하면 다른 나라처럼 왕이 있어서, 힘의 구심점이 있어서 강력한 힘을 갖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리저리 힘이 분산 되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자신들이 종이라도 되어도 좋으니 왕을 달라는 것입니다.


이들의 관심은 하나님의 말씀이 땅에서 어떻게 이루어 지는가? 하나님의 은혜성이 어떻게 증거되는가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들은 오직 자신들이 자신들의 삶의 현장에서 강한 힘을 갖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들이 밟고 있는 땅에서 힘과 평안을 누리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남의 종이 되어도 좋다는 것이지요.


좀 이상하죠, 서론에서 제가 말씀드렸듯이 인간들은 왕이 되기를 바라지 결코 종이 되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은 이후 인간들은 철저하게 하나님처럼 되려고 하는 것이 그 본성입니다.

하나님처럼 된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왕이 된다는 것이 아닙니까?


그래서 창세기4장에 보면 가인이나 그 후예들이 왕 노릇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전권을 그들이 쥐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까불면 죽여 버립니다.


이게 첫째 아담안에 있는 인간들의 본성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와 반대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종이 되어도 좋으니 왕을 달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인간의 본성이 바뀌었다는 말입니까?

아닙니다.

이들이 원한 왕은 결국 누구를 위한 왕입니까?


자신들의 아들들을 갖고 가고, 딸들을 갖고 가고, 말과 소산물을 갖고 가더라도 결국 그 왕이 누구를 위합니까?

자신들을 위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왕이지만 이 왕은 자신들을 위한 왕. 힘과 권력과 모든 것이 왕에게 속해 있지만 그 모든 것이 누구를 위해 있는가? 그 최종 지향점이 누구의 것인가?

바로 왕을 요구한 자신에게 있습니다.


종이지만 그 종을 위해 왕이 존재하는 것이지요.

그러니 인간의 본성은 바뀌지 않습니다.


살기 위한 본성, 죽지 않으려는 본성, 이것을 위해 그 겉모습은 왕의 모습으로, 또는 종의 모습으로 변합니다.

인간 카멜레온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자신들이 기꺼이 종이 되겠다고 하면서 왕을 달라는 모습에서 겸손한듯 보입니다. 그러나 그 속은 바로 이런 모습을 갖고 있습니다.


하나님도, 제사장도, 내가 원한 왕도, 율법도 다 나를 위해, 나의 평강을 위해, 건강을 위해, 부를 위해 존재해야 된다는 것이 이들의 본모습입니다.

왕의 제도가 자신들을 종으로 삼는 제도라고 일러 주었습니다. 그래도 좋다고 받아 들이는 이유를 아시겠습니까?


이게 오늘날 교회에서 일어나고 있고, 일반 사회에서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스스로 사람들의 종이 되어, 사람을 왕으로 세우는 이유는 다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무언가 자기에게 떨어지는 것이 있기 때문에 철저하게 사람을 왕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교회라는 울타리로 들어가 보면 사람들이 왜 자꾸 목사 한 사람에게 집중합니까?

그 이유가 오늘 본문에 나와 있습니다.


첫째는 성령을 받지 않아서, 즉 예수님을 믿지 않기 때문이요. 둘째는 그 이유로 인해 자신은 복을 받아야겠다는 것입니다.


가인과 그 자녀들이 살았던 것 처럼 나도 그렇게 살고 싶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눈에 보이지 않으시는 주님은 어차피 계시지 않으니 그냥 두고, 눈에 보이는 목사를 앞장세워 신앙이 있는냥, 믿음이 있는냥 해 보겠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함으로, 종국적으로 땅의 큰 복도 받고, 하늘의 큰 복도 받아 보겠다는 노림수입니다.


인간은 자신이 잘 살기 위해서는, 땅에서 부자되고 건강하고, 복 받기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런 인간의 속성을 알아야 합니다.

이 속성을 여기 앉아 있는 우리도 그대로 갖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면 우리들의 고민이 무엇입니까?

우리도 똑 같은 속성을 갖고 있다면 저들과 나의 차이점이 무엇입니까?


이게 우리들의 고민입니까?


저쪽은 더욱더 큰 복을 받기 위해, 왕을 요구하고, 종이 되기를 마지 않습니다. 이 쪽은 십자가의 은혜를 너무 크게 알아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자들과 싸움을 하면서 말입니다.


오늘본문을 보면서 참 성도는 주님의 십자가의 은혜가 아니면 인생은 마귀의 종으로, 일생에 매여 종노릇하면서 끝나는 인생임을 아는 자입니다.

그러나 성도 아닌 자는 뭐라고 따질까요?

그래 아는 것이 다냐? 그럼 행위는 어떠냐? 라고 따질 것입니다.


한쪽은 십자가의 공로를 더욱더 드러내는 자로 살아가지만, 성도 아닌 자는 오히려 인간의 행위가 어떠해야 하는가를 내세웁니다.

마치 오늘 본문을 보면서, 우리는 저들과 같이 왕을 요구하지 말자라는 결심을 하면서 말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결심한다고 안 됩니다. 오히려 우린 정말 왕을 할 수밖에 없는 인생입니다. 늘 지금도 눈에 보이는 왕, 힘을 가진 왕을 요구하는 인생입니다. 그러나 이런 죄인을 주님께서 구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이런 구원을 주신 주님의 공로를 앞장 세우는 자가 성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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