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습
사무엘상8:1-4
최근 한국에서는 목사 세습이라는 문제로 일반 언론에서 많이 시끄러웠습니다.
사실 이 세습 문제는 벌써 오래된 문제입니다.
교인 수가 조금 많으면 어떻게 하면 세습을 할까 그 묘수를 찾고 있습니다.
마치 교회가 완전히 목사 자신의 개인 사업장과 같다고 할까요?
여기에 장로들이나 집사들도 쌍수를 들고 환영합니다.
물론 반대하는 사람도 있지요.
여기에서 찬성하는 사람들이나 반대하는 사람들이 복음에 관심이 있느냐는 것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세습을 하던지 하지 않던지 그것은 사실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왜 세습을 하려고 하느냐는 것입니다.
그것은 탐욕 때문이지요.
탐욕 때문에 자신의 지경, 고원을 갈아버린다는 것은 자신의 모든 것을 잃게 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와 같은 자들은 애당초부터 은혜라는 것을 도무지 모르는 자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 맡긴다. 믿는다는 말은 다 허풍에 불과하고 쇼에 불과하다는 말입니다.
제가 그저께 어느 교회 3주년 기념 행사에 갔습니다.
왜 그런데 갔냐고요.
10년만에 동기친구를 만나려고 갔지요.
그런데 제가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한국에서 몇 손가락 안에 드는 교회인데 이 교회가 그 체인점 중 하나입니다.
물론 하나의 교단 소속입니다.
그런데 제가 왜 체인점이라고 하는고 하면 그 하는 설교나, 행사들이 다 그 본사의 지시를 받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기 때문입니다.
본사에서 나온 수석부목사가 설교를 했는데 너무나 놀라운 설교를 했습니다.
사도행전 전체를 언급하면서 성령으로만 교회가 세워진다고 말입니다.
맞는 말이지요.
그런데 놀랍게도 20분정도를 설교하면서 예수님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물론 언급하느냐 안하느냐가 별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고 하실 것입니다마는 성령께서 하시는 일은 오직 예수님이 주님이심을 증거하시는 일이 아닙니까?
그러면 성령을 증거하는 자가 아니라 예수님을 증거하는 자가 되어야 하는데 성령을 이용한 개척교회 성공을 자랑하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예배는 완전히 쇼입니다.
어찌그리 사람들이 좋아하는 요소들만 모였는지.
물론 재미 있고, 유쾌한 것이 나쁘다는 것이 아닙니다. 문제는 그 속에 십자가 복음이 없다는 것입니다.
오직 인간들의 즐거움과 성공만이 가득하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게 되면 사무엘이 나옵니다.
사무엘이 어떤 사람입니까?
하나님께서 태어나게 하신 선지자 아닙니까?
그가 늙었습니다.
그러자 그의 아들들이 사사가 되었습니다.
아마 자연스럽게 세습이 되었던 모양입니다.
사사는 결코 세습되는 것이 아닌데.
사사기를 읽어보면 그렇지 않습니까?
사사를 하나님께서 친히 세우지 않습니까?
그런데 왠일인지 사무엘을 이어 그 아들들이 사사가 됩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여기에서 우리는 약간의 상상을 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레미아15장에 보면 모세와 사무엘이 나옵니다.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모세와 사무엘이 내 앞에 섰다 할지라도 내 마음은 이 백성을 향할 수 없나니 그들을 내앞에서 쫓아 내치라 그들이 만일 네게 말하기를 우리가 어디로 나아가리요 하거든 너는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사망할 자는 사망으로 나아가고 칼을 받을 자는 칼로 나아가고 기근을 당할 자는 기근으로 나아가고 포로될 자는 포로 됨으로 나아갈지니라 하셨다 하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그들을 네 가지로 벌하리니 곧 죽이는 칼과 찢는 개와 삼켜 멸하는 공중의 새와 땅의 짐승으로 할 것이며 유다와 히스기야의 아들 므낫세가 예루살렘에 행한 바를 인하여 내가 그들을 세계 열방중에 흩으니라”(1-4)
히스기야의 아들 므낫세의 범죄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유다를 심판하시겠다는 말씀인데, 여기에서 모세와 사무엘을 하나님께서 언급하십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들은 대표적인 중보자들입니다.
그래서 언급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이 있다 해도 므낫세의 범죄로 인해 하나님께서 심판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모세와 사무엘이 얼마나 대단한 중보자인지를 유다가 다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에 근거해 볼때 사무엘이 사무엘 당시에 가졌든 위상이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아마 그 아들들이 자연스럽게 사사로 세워졌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아들들이 어떻게 합니까?
아버지 사무엘과 달리 이익을 따라 뇌물을 취하고 판결을 굽게합니다.
이스라엘은 아마도 사무엘처럼 그 아들들도 사사로서 제대로된 역할을 감당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게 웬일입니까?
그 아들들은 그 아버지의 행실을 그렇게 본받아 자랐는데 이익을 따라 판결을 굽게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아마 사무엘이 오늘날 우리 시대를 살고 있다면 욕을 엄청 얻어 먹었을 것입니다.
자신은 그렇게 훌륭한 목사인데, 그 아들들이 어떻게 그럴수 있냐고 말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인간입니다.
아담안에 있는 죄인들입니다.
노아를 보세요.
노아를 닮아 그 아들들이 모두가 다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인간들이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함이라는 작자가 튀어 나옵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는 거꾸로 생각해야 합니다.
함이라는 작자가 튀어 나오지 않는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아담안에 잇는 자들은 모두가 다 죄인입니다.
이들에게서 나올수 있는 것은 죄 밖에 없습니다.
은혜를 무시하는 것 밖에 없습니다.
눈으로 보았다고 해서 하나님을 잘 믿고 산다는 것은 다 헛소리입니다.
함이 홍수 심판을 눈으로 목격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그에게 미치는 영향이 어떠했습니까?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합니다.
우리가 그런 것을 경험했다면 어떨까요?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인간들은 자꾸 허황된 생각을 합니다.
이런 것을 경험하고 본다면 마음을 다잡아 더더욱 주님을 사랑하며 살지 않겠는가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노아의 아들이나 사무엘의 아들들이 어떻습니까?
예수님을 따라다니든 제자들 중 가롯유다도 그렇지 않습니까?
보면 뭐합니까?
수많은 군중들은 어떻습니까?
눈으로 십자가 지심을 목격하면 뭐합니까?
오히려 예수님과 더 원수가 될 뿐입니다.
그러니 아버지가 훌륭했으니 아들도 잘할 것이다라는 것은 말도 안되는 말입니다.
인간적으로야 아버지를 닮는다고 하지만 성경적으로 보면 결코 아버지가 잘했다고 해서 아들이 잘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받아야 되는 일입니다.
주님의 선택을 받지 않으면 아무리 좋을 것을 보고 배웠다고 해도 사무엘과 정 반대의 일을 행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이상한 집안에서 자랐다 해도 주님의 은혜가 임하면 오히려 주님의 은혜만을 증거하는 인생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사람들은 이것을 받아들이기를 싫어합니다.
은혜라는 말, 외부의 개입, 자신들의 노력과 환경과 열심을 배제하는 말을 싫어합니다.
그러나 성도는 오늘 본문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 주님의 은혜가 아니면 인생은 말짱 도루묵이구나.
아무리 좋은 목사님, 훌륭한 목사를 만나도 소용없구나. 성경공부를 아무리 열심히 해도 소용없구나 . 그래 오직 주님의 은혜로 살아가는 구나. 오늘도 주님의 십자가의 능력이 아니면 주님의 원수로 살 수밖에 없는 인생이구나라고 생각하셔야 합니다.
제가 이렇게 말하니까 어떤 인간은 또 이렇게 말합니다.
그렇다면 성경 볼 필요도 없고 성경 공부할 필요도 없고 예배에 참석할 필요도 없고, 기도 열심히 할 필요도 없겠네요.
그렇게 해 보세요. 그러면 은혜와는 전혀 상관 없는 자로 살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마음먹고 살아가는 인생은 은혜가 뭔지도 모르는 인생입니다.
사람들은 왜 자꾸 앞날의 것을 연속으로 이어가려고 합니까?
그것은 그 앞 시대가 좋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다음 세대도 그 앞세대처럼 좋은 시절을 보내고 싶은 것입니다.
그래서 세습을 하고 싶은 것입니다.
사무엘 처럼 당신들도 그렇게 이익을 따라 판결하지 않고 공명정대하게 판결해 다오.
그리고 우리의 시대를 사무엘 시대처럼 블레셋의 침략이 없는 시대로 만들어 주시오.
이게 세습을 바라는 인간속의 본모습입니다.
주님의 은혜를 증거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고 자신들의 태평성대를 영원히 누려 보겠다는 탐욕의 발로가 바로 세습의 원인입니다. 이것이 체인점을 만드는 이유이지요.
우리도 세습해 주려고 합니다. 많은 돈과 그리고 여러 학력들. 그래서 이것으로 너희는 고생하지 말고 살아라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자녀들에게 가르쳐야 하는 것은 그 평안한 시대를 사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은혜로 사는 인생임을 가르치고 물려 주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