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종과 제사
사무엘상14장52-15장1-9
살다보면 백화점이나 시장같은 곳을 가게 됩니다.
그런 곳에 가게 되면 어떤 마음이 듭니까?
평소 자신이 생각하든 것, 바라든 것이 있으면 갖고 싶습니다.
물건을 보지 않았을 때에는 별 생각이 없습니다.
그러나 물건을 보고 나면 돈만 있으면 구입하고 싶어지는 것이 우리들 마음입니다.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이 이렇습니다.
그러면 다른 것들에 대에서는 어떨까요?
마찬가지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고 자신이 손으로 만져 보지 않았을때에는 그런 것에 대해 갖고 싶거나 소유하고 싶은 생각이 없습니다. 그러나 눈으로 보게 되고 손으로 만져보게 되면 어디에서 나타났는데 소유하고 싶은 욕망이 툭 튀어 나옵니다.
과거 어린이 만화 영화에 보면 짱가라는 것이 있죠.
그 노래가사에 이런 것이 있습니다.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짱가가 힘이 생겨 나타난다는 내용입니다.
우리에게서 이런 일들이 일어납니다.
무슨 일이 생기면, 어떤 일에 부닥치게 되면 우리에게 평소 나타나지 않는 것이 불쑥 튀어 나옵니다.
마태복음15장을 보면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님을 향해 예수님이 장로들의 유전을 범했다고 책망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하나님을 잘 섬긴다고 하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에게 있어서 장로들의 유전은 율법과 동일한 법입니다.
그래서 예수님 당신은 하나님의 율법을 사랑하지 않지 않느냐고 정죄하고 싶어서 당신의 제자들이 어찌하여 장로들의 유전을 범하나이까라고 한 것입니다.
제자들을 정죄하는 것은 곧 예수님을 정죄하는 것이라 보면됩니다.
그 법이 무엇인고 하면 떡 먹을 때에 손을 씻는 것인데 제자들이 떡먹을 때에 손을 씻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밥 먹기 전에 손을 씻죠. 위생상 손을 씻습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손을 씻는 것은 위생상 손을 씻는 것이 아닙니다.
몸을 거룩하기 위해 손을 씻습니다.
물론 먹는 음식에 대해서도 율법을 따르겠죠.
그 뿐만 아니라 손도 씻어서 몸을 더럽히지 않으려고 합니다.
여러분 보기에 우습게 보이죠?
그러나 그 갸륵한 생각을 한번 따라 가보면 어떨까요?
얼마나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몸을 거룩하게 하려고 했느냐는 것입니다.
우리가 밥 먹을때 기도하는 수준보다 훨씬 더 높지 않습니까?
그러나 여기에 대에 예수님께서 뭐라고 하시는지 봅시다.
11절입니다. 입에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
8,9절을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외식하는 자들에 대해 이사야가 말한 말씀을 그대로 지금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에게 적용하여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우리는 간단히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저들은 외식했구나. 겉다르고 속다르구나.
우리는 외식하지 말자는 식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핵심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인간이라는 수준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사람이라는 수준의 최상은 외식외에는 나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듣기는 들었습니다. 그래서 지켜보려고 하는데 마음 따로 행동 따로라는 것입니다.
마음은 원과 행동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말입니까?
마음은 더러움으로 가득찼는데 그것은 본인이 어찌할 도리가 없으니 그냥 두고 행동으로 그 마음을 카바, 덮어보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이 얼마나 믿음 좋은 사람인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인가를 드러내 보고 싶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이 타인이 인정하게 되면 서로가 서로에게 대해서 믿음이 좋은 사람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다라고 생각하게 되죠.
물론스스로 속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떡을 먹을때에, 밥 먹을 때에 손을 씻지 않는 것을 문제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하나님의 율법을 잘 지켜 거룩한 삶을 사는데 예수 당신과 제자들은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몸이 거룩하게 되겠느냐는 것이지요.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들에 대해 뭐라고 하십니까?
18절입니다.
입으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 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무엇을 먹느냐.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사람의 마음속에 더러운 것이 있기 때문에 더러운 것이 입으로 나온다는 말입니다.
즉 씻지 않는 손으로 먹는 것이 결코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한다는 말이죠.
그러면 무엇이냐?
이미 마음속이 더럽기 때문에 사람이 어떻게 먹느냐,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그 마음을 바꿀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런 자들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저희는 소경이 되어 소경을 인도하는 자로다 만일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둘이다 구덩이에 빠지리라.
놀랍고 당황스러운 말씀아닙니까?
하나님앞에서 몸을 거룩하게 해 보려고 하는 것이 소경의 짓이요. 이런 가르침을 가르치는 것은 곳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는 것입니다.
둘다 죽음의 길, 즉 지옥으로 가는 짓을 한다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사무엘이 사울에게 하나님의 명을 전합니다.
아말렉을 쳐서 그들의 모든 소유를 남기지 말고 진멸하되 남녀와 소아와 젖먹는 아이와 우양과 약대와 나귀를 죽이라고 합니다.
아말렉은 과거 이스라엘이 출애굽할 당시 이스라엘을 대적했습니다. 그래서 이들을 진멸하라고 하나님께서 명하셨습니다.
이 멸에 대해 사울이 어떻게 했습니까?
9절입니다.
“사울과 백성이 아각과 그 양과 소의 가장 좋은 것 또는 기름진 것과 어린 양과 모든 좋은 것을 남기고 진멸키를 즐겨 아니하고 가치 없고 낮은 것은 진멸하니라”
꼭 우리의 마음 같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명은 명이고 나의 판단은 나의 판단이다.
이것이 앞서 살펴본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생각아닙니까?
자신이 말씀을 들었을 때 그 수행 능력에 따라서 그 말씀을 지키겠다는 것입니다.
즉 마음속에 들어있는대로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입니다.
만일 아말렉 쪽에 양들이 모두 마르고, 어린양도 병이 들어 다 죽어가는 것들이었다면 하나님의 명을 충실히 수행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말렉을 진멸하기에는 아까운 것들이 너무 많았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양과 소의 가장 좋은 것들은 남겨 둡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것을 즐겨하지 않습니다.
이것에 대해 사울이 뭐라고 변명합니까?
15절입니다. “사울이 가로되 그것은 무리가 아말렉 사람에게서 끌어온 것인데 백성이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려 하여 양과 소의 가장 좋은 것을 남김이요 그 외의 것은 우리가 진멸하였나이다.”
얼마나 멋지 변명입니까?
자신들이 갖고 싶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 제사하기 위해서 양과 소의 가장 좋은 것을 남겨 두었다는 것입니다.
이게 우리들이 마음아닙니까?
하나님을 위해서 우리가 이 일을 합니다라는 마음가짐.
그러나 사무엘이 뭐라고 합니까?
탈취하기에만 급하다라고 합니다.
좋은 양을 소유하고 싶은 욕망에 끌려 여호와의 목소리는 청종치 않고 좋은 것을 빼앗는 즐거움에 빠져 버렸다는 것입니다.
22,23절을 함께 봅시다.
“사무엘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거역하는 것은 사술의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고 합니다.
이게 무슨 말인고 하면 순종의 행동이 제사보다 낫다는 말이 아닙니다.
앞서 우리들이 살펴본 마태복음 15장을 생각해 봅시다.
사람의 마음이 자기 마음대로 됩니까?
물론 행동으로는 거룩한 모습을 보일 수 있습니다.
순종이라는 것으로 아니면 제사로 말입니다.
그러나 마음속에 있는 것은 반드시 언젠가는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마치 바리새인들이나 서기관들이 예수님을 죽인 것 처럼 말입니다.
우리의 실상이 이러합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9장12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 가셨느니라”
순종은 오직 예수님 홀로 행하셨습니다.
이 행함 때문에 성도는 구원을 얻었습니다.
예수님의 피 흘리심 때문에 성도는 죄 사함을 얻었고 구원을 얻었습니다. 피흘리신 예수님이 참된 우리의 왕이 되신 것입니다.
어떤 일을 만나고 부닥칠 때 피흘리심의 은혜를 먼저 떠올리는 주님의 백성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