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 강해

강해28

푸른 섬 2008. 6. 11. 10:23
 

하나님과 함께 일함

사무엘상14:24-30

사람은 누구나 가진 것이 있으면 기고만장합니다.

이런 모습을 제일 잘 볼 수 있는 곳이 사업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모인 곳에 가보면 모두가 그래도 내노라 하는 사람들 아닙니까?

그러니 이들의 모습은 너무나 당당하고 다른 사람을 볼때에도 주눅들지 않습니다.


오히려 타인에 대해서 은근히 무시하는 그런 모습을 보입니다.


이곳에 살면 가끔 영사관 사람들을 봅니다.

물론 제가 개별적으로 만나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모임에 가면 이들의 자리는 항상 일등석입니다.

VIP 석입니다.


그저께 이곳에  대통령이 왔다 갔습니다.

그곳에 갔다 온 사람을 어제 만났는데 아주 재미있는 이야기를 저한테 해 주었습니다.


테이블에 여러 명이 앉아 있었는데 그곳에 총영사가 앉아 있었나 봅니다.

그 자리에 경호실장이라는 사람이 왔답니다.

그러고는 이곳 총영사를 찾더라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자기 후배가 이곳에서 사업을 하는데 소개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러자 총영사가 90도로 그 후배에게 인사하면서 명함을 하나 달라 하면서 한번 찾아 뵙겠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자신이 갖고 있는 것과 타인이 소유한 것을 비교해 보고 자신이 가진 것이 빈약하게 보이면 인간들은 곧장 머리를 숙여 버립니다.


반대로 자신의 지위가 타인의 지위보다 더 높으면 고개를 쳐 들죠. 그리고 타인을 은근히 자기 발 아래 둡니다.


인간들은 이런 인간을 두고 아주 질 나쁜 인간이라고 평가를 합니다. 그러나 사실 이 땅의 모든 인간이 이런 모습으로 살아갑니다.


요즘 우리들이 사울왕과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을 보고 있습니다.

이들의 모습이 어떤 모습입니까?


방금 제가 말씀드린 그런 태도를 보이지 않습니까?


지난주 본문을 잠시 언급해 보겠습니다.

요나단이 블레셋 진영으로 들어갔습니다.

단 둘이 들어가서 그곳을 혼란스럽게 만들었습니다.


요나단이 블레셋 진영으로 들어가면서 뭐라고 했습니까?

“우리가 이  할례 없는 자들의 부대에게로 건너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일하실까 하노라 여호와의 구원은 사람의  많고 적음에 달리지 아니하였느니라”

너무나 다른 사고 방식입니다.

여호와의 전쟁은 절대로 인간이 무엇을 더 많이 소유했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아닙니다.


사람들의 상식을 완전히 뒤 없는 말이지요.


오늘 본문에서는 요나단의 아버지 사울이 등장합니다.

사울은 이 전쟁에 어떻게 임했습니까?


24절입니다.

“이 날에 이스라엘 백성이 피곤하였으니 이는 사울이 백성에게 맹세시켜 경계하여 이르기를 저녁 곧 내가 내 원수에게 보수하는 때까지 아무 식물이든지 먹는 사람은 저주를 받을 지어다 하였음이라 그러므로 백성이 식물을 맛보지 못하고”


요나단이 블레셋 진영을 흔들어 놓았습니다.

 전쟁의 승패가 사울쪽으로 기울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사울이 내린 결정이 무엇인고 하면 금식하고 전쟁에 임하는 것입니다.


금식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아무 식물도 먹지 않는 것입니다.


한번 상상해 보세요.

전쟁을 하는데 아무것도 먹지 않고 전쟁을 한다. 이것이 말이 됩니까?


옛날 전쟁이냐 힘이 있어야 전쟁에서 승리할수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사울왕은 힘을 써야 하는 전쟁에서 그 힘을 제거시키려고 합니다.


오히려 신앙심으로 전쟁에 임합니다.


우리들이 보기에 어떻습니까?

대단하지 않습니까?

사울왕도 요나단과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는것 같습니다.


저녁까지 즉 원수에게 보수하는 때가지는 어떤 식물도 먹지 않는 것입니다.

여호와 전쟁에 철저하게 동참한 것 같지 않습니까?


여러분 어떻습니까?

사울의 결정이 잘못되었습니까?


아니지 않습니까?

우리는 무조건 사울을 나쁘다라고 보니 사울의 행동은 다 잘못되었다고 결정하고 사울의 행동을 봅니다.

그런데 한번 잘 생각해 보세요.


오늘날 신앙생활하는 사람들 중에 이렇게 신앙생활 하지 않는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물론 있긴 있습니다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울왕처럼 신앙생활하지 않습니까?


어려운 일이 생기거나 무슨 문제가 발생하면 교회가 , 목사가, 아니면 개인이 결단을 내리지요.

금식의 결단, 아니면 자신의 시간을 쪼개는 결단, 아니면 자신의 잠을 쪼개는 결단, 아니면 돈을 쪼개는 결단을 내리지 않습니까?


그래서 원하는 바를 얻으려고 하죠.

물론 이것은 절대로 자신의 탐심을 위해서, 사심을 위해서가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그렇게 합니다.


사울왕도 그렇지 않습니까?

내가 내 원수들을 보수하는 때까지 식물을 금한다는 것입니다.

왕의 원수이니 곧 이스라엘의 원수요 하나님의 원수가 아닙니까?


사실 블레셋은 하나님의 원수가 맞죠.

그러니 사울의 말이 틀린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블레셋 사람들과 전쟁에 나서는 모든 사람들은 이 명령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전쟁을 하는 중에 힘이 들고 배고 고파도 무엇을 먹을 수가 없습니다.


꿀을 보아도 먹을 수가 없습니다.

왕의 명령이요, 저주가 따라 붙었기 때문입니다.

명령을 어기면 왕에게 죽기 때문입니다.


사실 꿀을 먹고 힘을 내어서 더욱더 적군을 더 많이 죽일 수 있는데도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만일 이렇게 한다면 우리는 이런 사람을 뭐라고 하겠습니까?

애라 이런 믿음 없는 사람아. 배고 고프다고 금식하지 않고 먹으면서 전쟁을 하느냐?


조금 전에 예를 든 경우로 말해 보겠습니다.

밥먹을 것 다먹으면서,  돈 쓸거 다 쓰면서 주의일을 하겠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

돈도 쪼개고 시간도 쪼개고 밥도 쪼개야만 주의 일에 충성할수 있지 않느냐 말입니다.


그럼녀 밥 다 먹으면서, 돈 다 쓰면서, 시간도 다 쓰면서 주의 일을 한다고 하면 사람들이 비웃지 않겠습니까?


새벽기도도 안 나오면서 주의 일 한다. 헌금도 조금 하면서 주의 일한다. 금식도 하지 않으면서 기도 한다고 하면 사람들이 뭐라고 합니까?


그렇게 해서는 절대로 주의 뜻을 이룰수 없어라고 하지 않겠습니까?

지금 사울이 이런 말을 하는 것입니다.


배고 고파도 힘이 들어도 지금 여호와의 전쟁을 수행중인데 내 탐욕을 채울수 없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오히려 나를 부인하고, 즉 밥을 굶으면서, 헌신  희생하여 여호와의 전쟁에 참여할 때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승리를 가져다 주시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너무나 인간적인 사울이 아닙니까?


그런데 요나단은 어떻습니까?

이 명을 듣지 못했지요.

그래서 그는 꿀을 먹었습니다.


그러자 백성중 하나가 그 사실을 알려 줍니다.

사울왕이 오늘날 식물을 먹는 자는 저주를 받을 지어다 라고 명했다고 말입니다.


그러면서 한 가지 더 말하죠. 백성이 피곤하였나이다. 28절 끝부분입니다.


금식하고 더 신나야 하는데 백성이 피곤합니다.


사울왕의 명령에 대해 요나단이 뭐라고 합니까?

29,30절을 한번 읽어봅시다.

“요나단이 가로되 내 부친이 이 땅으로 곤란케 하였도다 보라 내가 이 꿀 조금을 맛보고도 내 눈이 이렇게 밝았거든 하물며 백성이  오늘 그 대적에게서 탈취하여 얻은 것을 임의로 먹었다면 블레셋 사람을 살육함이 더욱 많지 아니하였겠느냐”


사울왕과 너무나 반대되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요나단의 관심을 온 힘을 다해 블레셋 사람들을 죽이는 것이고, 사울왕은 금식하여 불레셋 사람을 죽이는 것입니다.


결국 이 일로 인해 사울왕이 요나단을 죽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백성들이 뭐라고 합니까?

45절 봅시다.

“백성이 사울에게 말하되 이스라엘에 이 큰 구원을 이룬 요나단이 죽겠나이까 결단코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여호와의 사심으로  맹세하옵나니 그의 머리털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할 것은 그가 오늘 하나님과 동사 하였음이니이다 하여 요나단을 구원하여 죽지 않게 하니라”


누가 하나님께 함께 일했는가를 백성들이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결국 사울의 명령은 무위로 돌아가죠.


이번 전쟁에서의 승리는 결코 사울의 금식선포로 승리를 가져온 것이 아닙니다.

요나단의 믿음이 전쟁의 승리를 가져온 것입니다.


사울왕의 명령 때문에 백성들은 오히려 율법을 범하는 죄를 저지릅니다.

너무 배가 고파 양과 소 , 송아지를 잡아 피채 먹었습니다.


금식으로 전쟁을 승리코자 했던 사울왕은 오히려 그 금식이 또 다른 범죄를 가져올 줄은 생각도 못한 것입니다.


믿음이라는 것을 결코 우리의 몸에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금식했기 때문에, 내가 기도 했기 때문에, 내가 전도했기 때문에, 내가 봉사했기 때문에 주님께서 나에게 무엇을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을 주시고, 복을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십지가 지신 예수님의 피공로로 성도는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받았습니다.

하늘에 속했다고 하니까 땅에 속한 것은 따로 있다고 생각지 마세요.

이런 생각을 하는 자가 사울왕입니다.


성도 아닌 자는 십자가로 뿌듯함을 느끼지 못합니다.

오히려 자신이 가진 것, 행동, 결단 , 쪼갬으로 뿌듯함을 느낍니다.



성도는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받았다는 것을 아는자이지요.

그러니 성도는 평생 자신의 결단, 행동을 근거로 뿌듯해 하지 않습니다.

오직 십자가의 피공로를 뿌뜻하게 느끼는 자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일한다는 것은 이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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