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의 하나님 찬양
단2:14-24
오늘 본문을 보게 되면 다니엘이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하는 것이 나옵니다.
여러분들이 보시기에 다니엘이 왜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한다고 생각하십니까?
18절에 보게 되면 다니엘과 그 동무들이 바벨론의 다른 박사와 함께 죽임을 당치 않게 하시기를 구했을 때 하나님께서 들어 주셔서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다니엘이 느부갓네살 왕이 꾼 꿈으로 인해 죽음의 위기에 처했을 때 하나님께서 그 위기를 모면케 해 주셔서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했을까요?
우리는 먼저 왜 다니엘이 그냥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하지 않고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한다고 했는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왜 찬송할까요?
20절을 보게 되면 지혜와 권능이 그에게 있기 때문입니까?
아니면 21절을 보게 되면 때와 기한을 변하시며 왕들을 폐하시고 왕들을 세우시며 지혜자에게 지혜를 주시고 지식자에게 총명을 주시고 깊고 은밀한 일을 나타내시고 어두운데 있는 것을 아시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빛이 그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까?
오늘 본문을 보면서 우리들이 만일 창세기부터 그 내용을 알지 못한다면 우리가 성경을 보면서 엉뚱한 생각을 하게 됩니다.
글자 그대로 보게 된다면 다니엘의 찬송 속에 담겨진 의미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습니다.
다니엘은 느부갓네살이 꾼 꿈을 은밀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긍휼히 여겨 달라고 기도를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긍휼로 살아갑니다.
이것은 평소에 다니엘과 세친구가 어떤 정신으로 살아왔는가를 보여줍니다.
단순히 죽음의 위기에 처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들이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는 것은 바벨론의 다른 박사와 함께 죽임을 당치 않게 해 달라는 차원에서입니다.
그렇다면 자신들은 누구라고 의식하고 있습니다.
마치 소돔과 고모라 땅에 살고 있는 롯과 같은 존재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자가 소돔과 고모라 땅을 멸하려고 할 때에 아브라함이 이렇게 기도를 합니다.
의인과 죄인을 함께 멸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분명 자기권속인 롯을 염두에 두었습니다.
결국 하나님께 아브라함을 생각하시어 롯을 구해 주셨습니다.
롯이 소돔과 함께 멸망당하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에 위배되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의 권속에게 복을 주신다고 약속하신 그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롯을 구해 주셨습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있습니다.
이들은 바벨론에서 평안히 거하다가 칠십년이 차면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가게 될 것을 약속받았습니다. 물론 이 말씀의 이면에는 아주 복잡한 내용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다음에 보도록 하겠습니다.
다니엘과 세친구는 비록 포로로 잡혀 와 있지만 이것은 재앙이 아니라 오히려 평안과 장래에 대한 소망이 있는 삶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만일 자신들이 하나님의 긍휼을 모르는 바벨론의 박수와 함께 죽임을 당하게 된다면 이것은 분명 하나님의 약속과는 다른 일이 됩니다.
그래서 다니엘과 세친구는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고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합니다.
그 찬송 이유는 지혜와 권능이 그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지혜와 권능이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계획하신 것, 즉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는 것에 대한 지혜입니다. 이것을 이루시기 위한 지혜와 권능이 하나님께 있다는 사실입니다.
즉 느부갓네살에게 꿈을 꾸게 하심이 하나님의 지혜속에 포함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단순히 느부갓네살이 꿈을 꾸었고, 이것으로 인해 다니엘과 세친구가 죽임을 당하게 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상황을 설정하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는 것, 즉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시는 일이 어떠함을 보여주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이 일을 이루시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때와 기한을 변하시고 왕들을 폐하시고 세우시는 것입니다.
이런 가운데 하나님께서는 지혜자에게 지혜를 주시고, 지식자에게 총명을 주시는 것입니다.
즉 때와 기한을 변하시고 왕들을 폐하시고 세우시는 그 이유를 지혜자에게는 다 알려 주시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을 지식자가 다 분별할 수 있게 하십니다.
다니엘은 지금 놀라운 말을 하고 있습니다.
지혜자에게 지혜를 지식자에게 총명을 주신다는 말말입니다.
이것은 계시록22:11절을 보는 것 같습니다.
“불의를 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
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되게 하라”
물론 이 말씀은 마태복음13:12절 말씀과 일치하는 말씀입니다.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무릇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다니엘이 지혜자에게 지혜를, 지식자에게 총명을 주시는 하나님을 찬송함으로 말미암아, 다니엘이 비록 느부갓네살왕의 꿈을 해석해 준다 할지라도 그 왕은 하나님의 긍휼을 구할 자가 아님을 우리는 미리 알 수 가 있습니다.
우리의 생각에는 우둔한 자에게 지혜를, 어리석은 자에게 총명을 주어야 당연하다고 생각하지만, 이 세상에는 결코 그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때와 기한을 변하시고, 왕을 폐하시고 세우시는 이유에서도 나타납니다. 즉 주님이 누구냐는 것입니다.
다니엘은 하나님을 찬송하면서 하나님은 깊고 은밀한 일을 나타내시는 분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꿈을 생각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이것은 단순히 꿈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느부갓네살에게 꿈을 꾸게 하셔서 하나님의 깊고 은밀한 일을 나타내신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니 다니엘은 꿈 자체를 은밀한 것으로 본 것이 아니라 꿈이 말하고자 하는 것이 은밀한 일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제가 너무 비약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러나 다니엘이 처음부터 자신을 더럽히지 않기 위해 취하는 행동을 보십시오.
그러니 다니엘은 하나님께서 느부갓네살에게 꿈을 꾸게 하셨고, 그 해석을 결국 자신을 통해 알게 하실 것을 알았던 것입니다.
이렇게 됨으로 말미암아 자신은 지혜자요 지식자임이 드러나고, 느부갓네살왕은 그렇지 못한 자임이 밝혀지는 것입니다.
사실 이 은밀한 일이란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통일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다니엘이 찬송하는 하나님의 이름은 그 약속을 반드시 이루시는 분으로서 그 일을 착착 이루어 가시는 그러한 분을 찬송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지혜와 권능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지혜와 권능을 말함에 있어서 우리들은 그냥 무한한 지혜, 무한한 능력으로 생각해서는 결코 안 됩니다.
지혜와 권능은 하나님께만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하나님께서 느부갓네살에게 꿈을 꾸게 하신 것은 참 지혜와 권능은 하나님께만 있음을 천명하는 것이 됩니다.
다른 말로 하면 가장 강력한 힘을 소유한 느부갓네살 왕은 지혜가 없고, 또한 권능도 없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되면 또한 어떻게 됩니까?
다니엘이 느부갓네살 왕을 두려워하겠습니까?
두려워 할일이 없지요.
왜냐하면 그는 짐승에 불과하니 말입니다.
세상권력을 다 잡고, 모든 것을 자신의 의지대로 할 수 있다고 여긴 느부갓네살왕은 꿈을 통해 아무것도 아닌 자임이 천명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세상은 예수님 중심입니다.
온 세상은 주님 되신 예수님 중심입니다.
결코 눈에 보이는 것들이 중심이 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하심으로 하나님의 이름이 예수님을 통해 완전히 드러났고, 이 세상은 사실 아무것도 아니다는 것이 다 밝혀졌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이 어떤분이신가를 증거하는 도구로 느부갓네살은 존재하고, 세상은 존재할 뿐입니다.
그러면 다니엘과 세친구는 어떤 의미입니까?
물론 성도들의 믿음을 말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이전에 예수님이 어떠하신 분이신가를 증거하는 자로 살았던 것입니다.
다니엘은 찬송을 통해 희미하게나마 예수님 안에 통일 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증거한 것입니다.
여러분 찬송이라는 것은 노래를 부르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입니다. 약속을 믿는 믿음이지요.
그 약속은 예수님입니다.
따라서 찬송이란 예수님을 믿는 믿음입니다.
이 믿음이 참 찬송이 됩니다.
그런데 이 믿음을 누가 가질 수 있습니까?
그것은 택한 자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에게 그러한 사실을 알려 주십니다.
이렇게 하시는 이유는 , 택한 자만 예수님을 믿게 하시는 이유는 예수님이 주님이심을 증거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참 복잡하지요. 그런데 우리는 성도는 이러한 행운을 잡았습니다.
우리 가운에 이러한 일이 일어난 것이지요.
그러니 성도는 항상 기뻐할 수 있고, 범사에 감사하며 쉬지 않고 기도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은혜 속에 살기 때문입니다.
다니엘과 세친구는 그 은혜 속에 긍휼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얼마나 자유인입니까?
여러분도 자유인입니까?
그러면 마음껏 찬송하며 사시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