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 강해

강해 53

푸른 섬 2009. 1. 18. 17:57

신접한 여인과 목사

사무엘 상28장3-25

3절을 보면 아주 독특하게 말씀합니다.

사무엘의 죽음과 장사지냄, 그리고 사울왕의 행동 즉 신접한 자와 박수를 그 땅에서 쫓아 냄입니다.


사무엘 선지자는 아주 독특한 선지자입니다.

엘리 제사장 시절에는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는 시절이었습니다.

사무엘 상3장 1절에 나옵니다.


그러니 어떻게 했다는 말입니까?

저거 마음대로 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사무엘 선지자의 등장으로 자기 마음대로 하는 것에 제동이 걸렸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해야 되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사무엘이 죽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야 뻔 하지요.

지 마음대로 하는 시절로 가는 것입니다.


이 시점에 사울 왕이 취한 행동을 보세요.

신접한 여인과 박수를 쫓아내는 일을 했습니다.


뭔가 한 것 같지 않습니까?

오랜 만에 제대로 된 일을 한 것 같지 않습니까?


그런데 레위기 20장을 한번 보겠습니다.

6절입니다.

“음란하듯 신접한 자와 박수를 추종하는 자에게는 내가 진노하여 그를 그 백성 중에서 끊으리니 ”

그리고 27절을 보겠습니다.

“남자나 여자가 신접하거나 박수가 되거든 반드시 죽일지니 곧 돌로 그를 치라 그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


신명기 18장9절에서 14절을 보겠습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 들어가거든 너는 그 민족들의 가증한 행위를 본받지 말 것이니 그 아들이나 딸을 불 가운데로 지나게 하는 자나 복술 자나 길흉을 말하는 자나 요술하는 자나 무당이나 진언자나 신접자나 박수나 초혼자를 너희 중에 용납하지 말라 무릇 이런 일을 행하는 자는 여호와께서 가증이 여기시나니 이런 가증한 일로 인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시느니라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완전하라 네가 쫓아낼 이 민족들은 길흉을 말하는 자나 복술자의 말을 듣거니와 네게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런 일을 용납지 아니하시느리라”


어떻습니까?

우리가 사는 여기에 도 점쟁이들이 많이 있죠.


점을 치는 것도 하나의 직업이지요.


이것으로 밥벌이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에 의하며 사울이 취한 행동이 어떻습니까?

박수받을 만한 행동입니까 아닙니까?


절대 아닙니다.

사울은 뭔가 여지를 남겨 둡니다.

완벽한 제거가 아니라 아쉬울 때 되는 찾겠다는 여지를 말입니다.


사울이 블레셋 사람의 군대를 보고 두려워서 그 마음이 덜덜 떨렸습니다.

그 때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사울이 여호와께 묻자오되 여호와께서 꿈으로도, 우림으로도, 선지자로도 그에게 대답지 아니하시므로 신접한 여인을 찾으라고 명합니다.


지금 사울에게는 굉장히 다급한 상황입니다.

왕의 자리를 보존하기 위해서 다윗을 죽이려 하지 않았습니까?


그런 그가 블레셋 군대를 보니 어떻게 되겠습니까?

위기입니다.


그런데 희한한 것은 사울이 여호와께 묻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물어도 물어도 대답이 없다는 것입니다.


지금 자신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자신의 나라가 망할지 모르는데 방법을 하나님께서 알려 주셔야 하는데 대답이 없다는 것입니다.


역대상10장13,14절을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사울의 죽은 것을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음이라 저가 여호와의 말씀을 지키지 아니하고 또 신접한 자에게 가르치기를 청하고 여호와께 묻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저를 죽이시고 그 나라를 이 새의 아들 다윗에게 돌리셨더라”


뭔가 이상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평가가 우리들이 보기에 옳습니까 옳지 않습니까?


분명 순서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딱 뒤집어 놓았습니다.


분명 사울왕은  여호와께 물었습니다.

그런데 여호와께서 대답이 없었습니다.


선지자로도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찾은 것은 신접한 여인이 아닙니까?


그런데 하나님의 평가는 사울왕은 처음부터 여호와께 물을 마음, 즉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 마음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처음부터 신접한 자의 말을 듣고 싶어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신접한 자가 어떤 말을 해 주기에 여호와의 말씀은 듣지 않고 신접한 자의 말을 들으려고 했을까요?


기대입니다.

뭔가 대안 방안에 대한 기대입니다.


점쟁이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렇죠. 풍수를 하는 사람들도 그렇고. 길한 일과 흉한 일을 동시에 말합니다.

무조건 길한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죠.


흉한 일도 말합니다. 그런데 그 흉한 일을 피할 길, 아니면 최소화 하는 일을 반드시 이야기 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말을 들으라는 것이지요.

자신의 말을 들으면 흉한 일도 덜 흉한 일로 , 아니면 길한 일로 풀릴 것이라는 것입니다.


사울왕의 마음속에는 오직 한 가지 생각밖에 없습니다.

살아야한다. 

나는 살아야 한다. 왕으로 , 이 왕 자리 빼앗기면 안 된다.


이것 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이미 다윗에게 기름 부으신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하겠습니까?


그런데 이상한 것은 신접한 자가 누구를 불러올립니까?

사무엘을 불러올립니다.

꼭 여호와 하나님의 뜻과 동일한 내용의 말을 전하고 있죠.


이 본문을 보면 우리는 또 휙 돌아버립니다.

그러면 신접한 자는 사무엘도 불러올린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뜻도 전한다.


이게 말이 됩니까?

레위기나 신명기에 의하면 어떻습니까?

죽여야 할 대상 아닙니까?


그런데 그런 사람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전할수도 있다.


여러분 속지 말라 말입니다.

성경에 이런 말씀까지 기록한 것은 인간의 마음속에 이런 죄가 꼬깃꼬깃 숨겨져 있음을 드러내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이런 본문을 보면서 인간의 죄악을 보아야지. 거참 신기하네로 보면 마귀에게 속는 것입니다.


이것도 모르고 사람들은 이런 질문을 합니다.

신접한 자도 신기한 능력 있네.

마귀가 무슨 짓을 못하겠습니까?


죽은 자도 살리고 하늘에서 불도 내리는데.

뿐만 아니라 예수님도 유혹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니 오늘 본문을 보면서 신접한자 초혼을 하는 것을 보면서 능력 있네로 보면 성도 아닙니다.


아하 저런 것이 죄구나.


그러면 불려 올린 사무엘은 진짜입니까? 그가 한 말은 뭡니까? 다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까?


그러니 속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 전 체를 통해 사울 너는 아니다라는 말입니다.


인간이 세운 왕. 인간을 대표하는 왕. 너는 돌에 맞아 죽어야 할 자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왕을 세운 인간들은 어떻습니까?

사울 왕과 똑 같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꾸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고 하는 말이 맞느냐 안 맞느냐에 관심이 있습니다.

실제로 일어났느냐 나지 않았느냐에 관심을 둡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맞다. 실제로 일어났다 하더라도 돌에 맞아 죽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맞고, 실제로 일어난 일이 죄라는 것입니다.


이걸 인간들이 생각지 못하는 것입니다.


사울왕은 여호와께 묻지 않습니다.

인간들이 그러하죠.


맞습니까? 실제로 일어났습니까에 관심을 둡니다.

이것은 곧 사울왕의 태도와 동일한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믿지 않는 태도이죠.

즉 여호와께 묻지 않는 태도입니다.


사울 왕에 대한 평가가 여호와께 묻지 않았다는 말은 자신이 버림받아도 좋습니다라는 태도가 없다는 것이지요.

가인의 길과 동일합니다.


제사 받지 않으셔도 좋습니다가 되어야 되고.


블레셋에게 망해도 산 인간입니다가 되어야 되는데 절대 그러면 안 되는 것이 사울 입장이었죠. 그러니 하나님의 말씀은 개떡같이 여기지 않습니까?


성도는 신접한 자를 추종하는 자가 아닙니까?

이게 무슨 말인고 하면 예수님 믿고 뭔가 느끼려고 하고 얻으려고 하고 뭔가 답답한 것을 풀려고 하는 자가 아닙니다.


신접한 자의 말을 듣는 자는 자신을 자꾸 잃어버리는 모든 것을 빼앗기는 예수님의 제자들이나 스데반을 싫어합니다.


오늘날 목사들이 이런 일을 하죠.

신접한 자의 역할을 목사들이 합니다.


또한 교인들은 신접한 자를 좋아하고요.


그래서 오늘날도 어떤 일이 일어나는고 하면 신접한 자를 찾는 사울 같은 자가 하나님께 묻는 성도들을 핍박한다는 사실입니다.


성도들은 자꾸 자꾸 십자가 십자가만을 내세우는데 사울왕 같은 자들은 그건 좀 내려두고 신접한 자의 말을 들어보자. 우리에게 도움 되는 이야기를 , 사는 대 도움 되는 이야기, 세상살이 하는 데 도움 되는 이야기, 내가 왕 되는데 도움 되는 이야기를 들어보자가 발악을 합니다.


이들로 인해 오늘도 주님의 백성들은 욕얻어 먹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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