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 하

강해20

푸른 섬 2009. 8. 23. 13:16

사람의 마음을 도적질 함

사무엘하 15장1-12

어떤 문제가 발생하면 생각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왜 미리 막지 못했을까?


미리 미리 준비 했더라면 이런 일을 당하지 않을텐데 라고 말입니다.

좀 미리 미리 대화도 하고 상담도 하고 교제도 열심히 했으면 지금의 문제에 부닥치지 않았을 텐데..


사람들은 새로운 문제에 부딪혔을 때 이렇게 후회를 하는 일이 많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다시는 이런 문제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러나 사람에게 일어나는 일이 어떻게 준비함으로 피할 수 있을까요?

마치 물을 가득 채운 주머니 같이 이곳을 눌렀다 싶으면 저쪽이 쭉 솟아오르고 , 그쪽을 누르면 또 다른 쪽이 솟아 오라고,,


도무지 예측이 안 되는 일들이 우리의 인생 중에 일어나고 펼쳐집니다.


그런데 인간들은 늘 미리 준비했더라면 했더라면 이라고 합니다.


왜 이런 말을 하고 이런 생각을 할까요?

그것은 인생이 자기 손안에 있다는 말입니다.


행복에 관해 쓴 책이 있습니다.

제가 내용은 읽어보지 않고 소제목만 쭉 보았습니다.


물론 대충 보았지만.


핵심이 이것입니다. 사람들이 왜 행복하게 살지 못하는고 하면 행복해지기 위해 노력을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게 말이 될까요 안될까요?


책 내용의 구구절절이 다 맞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옳은 말을 하고 있어요.

그래서 제가 제 아내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야 이거 한 단원씩 떼어 설교하면 너무 좋겠다라고 했습니다.

얼마나 인간들이 그리도 바라는 내용을 이렇게 잘 썼는지 말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 책을 읽고 그렇게 한다고 해서 행복해 질까요?

약간은 행복해 지겠지요.


그런데 타인을 만나게 되면 그 행복이 박살납니다.


지난주 우리 식사 후에 성도들끼리 이야기 하다가 이런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나 혼자 살 때에는 별 문제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즉, 그럭 저럭 행복하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런데 친구를 만나고부터 친구집을 가보고 부터는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나는 소나타 타는데 친구는 비엠더블유  중 최고급으로 타고, 집도 200평방정도 이상되는 곳에 살고 등등.

그런데 이런 친구가 하나가 아니라 여럿이라는 것이 더 문제가 되죠. 삶의 동선이 다른 친구.


참으로 솔직하게 말씀해 주셨는데..

제가 설교소재로 이용해서 미안합니다.


제가 지금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행복이라는 것도 그 때 그 때 다르다는 것입니다.

즉 행복하다는 것에 대한 예측이 불가능한 것이 우리의 삶입니다.


그런데 인간들은 불확실한 미래를 확실한 미래로 만들기 위해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합니다.


다윗을 보면 미래가 참으로 암담합니다.

무엇 때문에 그렇습니까?

자신의 죄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업신 여긴 죄, 즉 gpt 사람 우리아를 죽이고 그 아내를 취한 죄로 인해 앞날에 저주가 퍼부어 졌습니다.


그러면 한번 생각해 봅시다.

우리 같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미리 준비하지 않겠습니까?

여러분 어떼요?


당연히 불행한 일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 모든 수단을 동원하지 않겠습니까?

조금이라도 기미가 보이면 그 불행의 근원을 제거하지 않겠습니까?


조금이라도 보이면 피해가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다윗이라는 분은 정말 이상한 사람입니다.


그냥 그 저주를 자신의 온몸으로 받아 버립니다.

이게 우리들로서는 참을 수 없는 행동이지요.


아무리 잘못했어도 피할 수 있으면 피해야 하지 않습니까?


다윗이 바보라서 압살롬의 반역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을까요?

저는 그렇지 않다고 봅니다.

다윗이 얼마나 머리가 잘 돌아 갑니까?


압살롬을 피해 도망갈때에도 첩자를 심어 두는 다윗인데 압살롬의 반역을 그렇게 오랫동안 눈치채지 못했을까요?

  

저는 그렇게 보고 싶지 않습니다.

그냥 지켜 보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압살롬은 이스라엘 사람의 마음을 도적질 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의 마음은 다윗의 말을 듣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압살롬은 이스라엘 사람들의 마음을 도적질하여 자기 말을 듣게 하고 있죠.

달려가서 말려야 될 상황아닙니까?


보고 받지 않았을까요?


보고 받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냥 둡니다.


그렇게 함으로 압살롬이 드디어 완벽하게 다윗을 몰아 냈습니다.


뭔가 반복되는 느낌 아닌가요?

자신이 우리아의 아내를 범해 놓고 그 죄를 감추기 위해 작전을 펼쳐 우리아를 죽여 버린 다윗의 일과 겹쳐지지 않습니까?


암논을 죽였고  죽인 후 잘못했습니다라고 하면 되는데 오히려 자신이 왕의 자리에 앉는 것을 꿈꿉니다. 그래서 거짓말 하여 이스라엘백성들의 마음을 도적질했습니다. 그리고는 결국엔 다윗 왕의 자리에 자신이 앉습니다.


성경이 참 재미있게 표현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의 마음을 도적질하니라.


그렇습니다. 

우리 중에도 이런 자가 있어야 합니다.

갑자기 무슨 우리가 압살롬이 되어라라는 말입니까?


그런 뜻이 아닙니다.

성도가 이 땅에 살게 되면 반드시 만나는 자가 있습니다. 물론 수도 없이 만나야 합니다.

어떤 자 말입니까?


압살롬 같은자 말입니다.

사람의 마음을 도적질하여 자기 편으로 만들어 다윗왕을 대적하게 하는 자를 만나야 합니다.


여기서 다윗왕을 대적한다는 것은 곧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우린 이런 자를 보면서 자신을 볼 수 있고 이런 자를 보면서 십자가 사랑이 얼마나 크고 놀라운지를 알게 됩니다.


그런데 우린 자꾸 이런 자가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들 모임에서는 이런 자가 절대 없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유는 무엇입니까?

내가 힘들고 내가 귀찮다는 말입니다.


다윗처럼 온전히 주님의 심판에 들어가기 싫다는 것이지요.

 

고난받기 싫다는 말입니다.

십자가 지고 예수님을 따르기 싫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사전에 이런 자들을 찾아 제거하려고도 하지만 그게 됩니다.

절대로 그렇게 안되게 되어 있습니다.


무럭무럭 자라서 성도와 엇비슷한 모습을 보여서 자신도 알곡인냥 행세를 하도록 해야 합니다.

아니 우리가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지요.

주님이 그렇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음 빼앗길 자들은 다 빼앗기게 하시고 그래서 한 무리를 지어 복음의 대적대로 세우십니다.

물론 이들이 내세우는 것도 복음이지요. 그러나 이들은 고난받는 복음이 아니라 고난 없는 복음을 내세웁니다. 즉 자신이 살아남아야 한다는 복음입니다.


반면에 선택된 자들은 고난받는 복음, 자신이 죽는 복음이기에 이들로부터 공격을 당해야 합니다.


고난 받는 복음이 아닌 자들의 우두머리는 항상 무엇을 꿈꾸고 있을까요?

하나님의 자리입니다.

주님의 자리에 앉아 주님 행세하는 것을 꿈꾸고 있습니다.


그래서 복음을 이용하여 자신이 인정받고, 존경받고, 우러름 받는 자리에 있기를 좋아합니다.

그래서 복음 때문에 싸움하는 것을 일지감치 포기했습니다.


해봐야 뻔한걸 다 알거든요.

나도 다 해 봤다는 것입니다. 그래 봤자 저들은 안들어. 그러니 할 필요 뭐 있어. 그러니 내 말 잘 듣는 동네로 가서 마음껏 설교하고 전도하고 봉사하면 되지 않겠어.


삶의 보람을 마음껏 누리는 것이지요. 목사의 보람, 성도의 보람을 제대로 누려보는 겁니다.


복음 이야기 하면서 결국 그가 꿈꾸는 세상은 자신의 설교가 묵어주는 교회, 자신의 주장이 관철되는 교회, 내 꿈과 동일한 현상이 일어나는 교회를 꿈꾸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성도는 이런 사람들이 교회에서 일어날 때 무슨 생각을 해야 할까요?

왜 미리 막지 못했을까? 그것 아닙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막을 수 없습니다.


주님이 그런 일을 만드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주님께서는 왜 이런 일을 성도 앞에게 일으키실까요?

나의 죄를 보게 하시고 그 큰 사랑을 알게 하시기 위해서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주님 되신 예수님만 믿으라, 예수님의 증인만 되어야 함을 알려 주시기 위해서 우리 앞에 이런 일들을 시도 때도 없이 일으키시는 것입니다.


우리가운데 자신이 대장되려고 하고 주님 노릇하려고 하고 그래서 한패거리 만들어 왕 노릇하는 자들이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혹 이런 일을 보시게 되면 감사하십시오.


그런데 사람들은 이런 일을 막기 위해 성경 열심히 가르칩니다. 열심히 목사 말, 장로 말 잘 듣도록 교육 시킵니다. 아무리 그렇게 하면 뭐합니까? 자신이 그렇게 되든지 아니면 그걸 배운자가 또 그 짓을 하는데 말입니다. 어디서 그런 자가 튀어 나올지 예측 불가능합니다.


압살롬 같은 자가 반드시 나타나야  십자가 사건이 발생할 것이 아닙니까?


우리 모두도 압살롬가 다르지 않습니다.


그런데 쏙 빼내었다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피로.


그리고 성도를 어디에 쏙 집어 넣어셨는고 하면 예수님 안에 쏙 집어 넣어셨습니다.

그래서 성도가 어디에 있나를 알려 주시기 위해 압살롬 같은 자를 오늘날도 계속해서 발생시키시는 것입니다.


성도는 핍박을 받겠죠. 고난을 받겠죠. 엄청난 쓰라림을 당합니다. 그래야 예수님 안에 있음이 확인되겠죠.


이와 반대로 압살롬같은 자는 더욱더 많은 사람의 마음을 도적질하고 힘을 키우고 힘을 키우겠죠..

그리고는 마침내 너 거는 내말 들으라 라고 할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주님의 십자가 사건은 계속해서 일어납니다.

주님의 십자가 사건에 얽힌 자 있으면 감사 많이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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