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 하

강해27

푸른 섬 2009. 10. 4. 17:15

돌가루입니까?

사무엘하 19장16-39

하나님 나라에는 누가 왕입니까?

십자가 지신 예수님이 왕이십니다.

십자가 지신 예수님이 주님이십니다.


이것이야 말로 하나님을 제대로 왕으로 모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일 하나님을 왕이라 하여 하나님이 왕이시다라고 해 버리면 하나님의 왕되심을 전적으로 부정하는 것이 됩니다.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이나 안 다니는 사람들이 착각하는 것이 이런 것입니다.

자신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하나님나라를 그대로 적용하여 성경을 읽고 이해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왕이시다라고 하면 뭔가 찜찜하다고 느낍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왕으로 모셔야 제대로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십자가를 이야기하기 보다 무엇을 이야기 하길 좋아합니까?

하나님 나라의 모습에 대해 이야기 하기를 좋아합니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가 오히려 사람들에게 전도할 때 더 잘 이해되어지게 하고 더 잘 먹힌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천국은 심령이 가난한 자의 것입니다.

애통하는 자의 것입니다.

온유한 자의 것입니다라고 가르치는 것이지요.


아니면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입니다라고 말하거나 아니며, 하나님 나라는 의와 평강과 희락의 나라입니다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듣기에 이런 말들이 어떻습니까?

듣기 거북합니까 아니면 듣기에 문안합니까?


거북한 것이 없죠.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도 별로 기분나쁘게 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런 것이야 우리가 꿈꾸는 곳이지요.


또한 심판에 대해서도 별로 거부감은 없습니다.

선한행실 착한 행실로 심판받는다.

어린아이들 동화책에 보면 많이 나와있지 않습니까?


착한 행실을 하면 극히 즐거운 곳으로, 즉 천국으로 가고 나쁜행실을 하면 지옥으로 간다는 것 쯤은 누구나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것이지요.


그래서 오늘 같은 본문을 보게 되면 그야 세상 나라에서도 언제나 일어나는 일들이니 그게 무슨 대수냐고 할 것입니다.


다윗왕이 예루살렘으로 돌아 왔을 때 여러 사람들이 취하는 행동이야 세상사에서도 수없이 나타나는 모습이 나입니까?


스므이 같은 사람, 이사람은 누굽니까?

이전에 다윗이 도망갈 때 잿가루를 날리며 저주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다윗왕이 다시 정권을 잡으니 와서 자신이 범죄했음을 인정하면서 살려달라고 합니다.


그리고 므비보셋이 나옵니다.

비록 다윗왕을  못 따라 갔지만 다윗왕의 처분을 그대로 받아 들일 뿐만 아니라 자신의 모든 재산을 거짓으로 자신에 대해 나쁘게 고한 시바에게 다 주라고 합니다.


이런 사람 이 땅에 없을까요?

바르실래는 또한 어떠합니까?

바르실래는 다윗왕으로부터 충분히 공궤를 받을 수 있지만 다윗왕에게 누를 끼칠 수 없다고 이를 사양합니다.

모든 것을 왕의 처분대로 하라고 합니다.


사람이 사는 세상에서 얼마든지 볼수 있는 현상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성경을 보면서 예수님을 믿을 이유를 찾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성경에 나오는 대로 살면 될 것이지 굳이 예수님을 믿어야 할 이유가 무엇이냐고 말입니다.


마태복음21장33-40절을 봅시다.

“다시 한 비유를 들으라 한 집 주인이 포도원을  만들고 산울로 두르고 거기 즙 짜는 구유를 파고 망대를 짓고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타국에 갔더니 실과 때가 가까우매 그 실과를 받으려고  자기 종들을 농부들에게 보내니 농부들이 종들을 잡아 하나는 심히 대리고 하나는  죽이고 하나는 돌로 쳤거늘 다시 다른 종들을 처음보다 많이 보내니  저희에게도 그렇게 하였는지라 후에 자기 아들을 보내매 가로되 저희가 내 아들은 공경하리라 하였더니  농부들이 그 아들을 보고 서로 말하되 이는 상속자니 자 죽이고 그의 유업을 차지하자 하고 이에 잡아 포도원 밖에 내어 쫓아 죽였는니라 그러면 포도원 주인이 올 때에 이 농부들을 어떻게 하겠느뇨?”


이에 저들이 뭐라고 답합니까?

이 악한 자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은 제 때에 실과를 바칠 만한  다른 농부들에게 세로 줄지어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가 성경에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이것은 주로 말미암아 된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하도다 함을 읽어 본 일이 없느냐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로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 이 돌 위에 떨어지는 자는 깨어지겠고 이 돌이 사람위에 떨어지면  저를 가루로 만들어 흩으리라 하시니”


45절입니다.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예수의 비유를 듣고 자기들을 가리켜 말씀하심인 줄 알고잡고자 하나 무리를 무서워 하니 이는 저희가 예수를 선지자로 앎이었더라


여기를 보아도 천국은 어떻게 하면 들어갑니까?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받는다고 합니다.

그러면 열매를 맺으면 되죠.


그 열매란 보내신 종에게 대접을 잘하면 되는 것입니다.


이게 우리 인간들이 가진 보통의 생각 상식적인 생각입니다.

그런데 이런 상식적인 생각을 깨 버리는 것이 22장1-14절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 자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다고 하시면서 말씀을 하십니다.

임금이 종들을 보내어 청한 사람들을 혼인잔치에 오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청한 사람들이 오기를 싫어합니다.


그래서 다른 종을 보냅니다.

내가 오찬을 준비하되 나의 소와 살찐 짐승을 잡고  모든 것을 갖추었으니 혼인 잔치에 오소서 하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저희가 돌아보지도 않습니다. 그리고는 하나는 자기 밭으로 하나는 자기 상업차로 갔습니다.

또다른 사람은 종들을 잡아 능욕하고 죽였습니다.


그러자 임금이 군대를 보내어 그 살인한 자들을 진멸하고 그 동네를 불살라 버립니다.


그리고는 혼인잔치는 예비되었고 청한 사람이 합당치 않으니 사거리 길에 가서  사람을 만나는 대로 혼인 잔치에 청하여 오너라 했습니다.


그래서 종들이 길에 나가 악한 자나 선한 자나 만나는 대로 모두 데려 오니 혼인자리에 손이 가득했습니다.

그런데 임금이 보러 올때에 예복을 입지 않는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묻자 저가 유구무언이었습니다.

임금이 명합니다. 그 수족을 결박하여 바깥 어두움에 내어 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니라 하니라.


그러면서 예수님께서 결론적으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


인간이 주님께 할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고 하면 주님의 종을 죽이고 청함을 거부하는 일입니다.


그러면 또 어떤 사람이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주님의 종을 죽이지 않고 청함을 받아들이면 안됩니까라고 말입니다.


그게 안되는 것이 인간이라고 예수님께서 지금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인간들은 복음에 대해 근본적으로 어떤 태도를 갖고 있는고 하면 거부입니다. 거부 정도가 아니라 살인 의지를 불태웁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야 속 시원한 것이 인간들입니다.


그래서 어떤 인간도 주님의 진노대상에서 벗어날 길이 없습니다.


종을 보내어도 안 되어 아들을 보내는 아들까지 죽여 버립니다.

이게 인간입니다.


그러면 누가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까?

바로 죽임을 당한 그분이 천국백성을 만들어내십니다.

택하신다는 것이지요.


죽음당한 그분에 의해 택함을 받은 자만이 천국백성이 될수 있습니다.


따라서 천국백성의 특징은 자신이 뭔가 할수 있다고 하는 자가 아닙니다.

오히려 나는 뭔가를 할 수 있었습니다. 즉 예수님을 거부하고 예수님을 죽이는 일을 할수 있었습니다.라는 고백이 나오는 자가 천국백성이요 예수님의 택함을 입은 자입니다.


모든 것이 십자가 지신 예수님, 죽으시고 부활하신 주님되신 예수님께 달려 있음을 믿는자가 천국백성입니다.


그런데 천국백성 아닌 자는 자꾸 자신이 뭔가 할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에게 결정권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주님의 초청을 거부도 할수 있고 거부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여깁니다.


그러나 주님은 누구나 다 초청해 버립니다.

거부하든 하지 않든 다 혼인 잔치에 집어 넣어버리고는 어떻게 합니까?


택함받지 못한 자를 골라 내 지옥에 보내 버리십니다.


인간이 어떤 주도권도 행세하지 못하게 해 버립니다.


그러나 그 속에 있는 택함받지 못한 자는 여전히 생각합니다.

나는 혼인잔치에 들어올 자격이 있어서 들어 왔어.


그런데 이게 왠일입니까?

임금이 예복 운운합니다. 언제 예복입으라고 했습니까?

분명 앞에 보면 예복에 대해서는 초월한 임금님 같지 않습니까?


다 혼인잔치에 넣어 줄것 처럼 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그게 아닙니다.

예복입지 않는 자는 지옥가야 합니다.


요한계시록 7장에 보면 흰옷입은 자들이 천국백성이 되어 있습니다.

이들은 어린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한 자들입니다.


바로 그렇습니다.

인간이 뭔가 할 수 있다. 주도권을 행세할 수 있다라고 생각하는 곳은 슬피 울며 이를 가는 곳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도 바로 이것을 우리에게 말씀하시려고 하는 것입니다.

십자가 지시고 부활하신 주님되신 예수님에 의해 완전히  가루로 만들어 버리시고 만들어지는 것이 교회요 천국입니다.

우리는 돌가루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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