엣세이

내가 만든 이불집 왜 부셔버렸어요?

푸른 섬 2010. 2. 17. 14:04

아이가 이렇게 말한다.

자신이 이불로 만든 집을 부셨다고 난리다.

 

20분동안  내 뒤에서 말한다.

 

그러면서  예를  하나 든다.

 

자신이 할머니를 위해 아빠가 만드신 집을 부셔버리면 기분이 좋겠어요.

 

내가 대답했다.

 

그래. 당연하지. 집보다 더 소중한 것이 있지.

 

그러자 아이가 말한다. 예수님이 더 소중해요.

 

예수님의 소중함을 자신이 만든 집을 위해 사용하는 아이.

 

결국 자신의 집을 무너뜨렸기 때문에 기분나쁘고 화가 났다는 것이다.

 

성도는 여러가지 상황속에서 자신이 발각되어지는 자이다.

 

그래서 십자가로 인도함을 받는 자이다.

 

그런데 어떤 자는 이렇게 말한다.

 

십자가가 다 용서했는데 내가하는 행동이 무슨 의미가 있냐고?

 

이렇게 해도 되고 저렇게 해도 되고 그 어떤 행동에 대해 이미 용서 다 받았는데

 

내가 아무렇게나 하는 행동에 당신은 시비를 걸지 말라고 한다.

 

 

이런 자는

 

죄용서가 누구를 위한, 무엇을 전하기 위한 죄 용서인지 도무지 깨닫지 못하는 자다.

 

성도는 자신의 어떤 행동이나 말도 자신을 위해 정당화 시킬수 없는 자이다.

 

왜냐하면 성도의 주인은 따로 계신다.

 

그런데 십자가 지신 주님이 살아 계시는데 이런 인간은 십자가 지신 주님이 살아 계신 것이 아니라

 

그 십자가를 등쳐 자신이 살아 있음을 즐기는 자이다.

 

결국 십자가를 이용해 자신의 욕망대로 사는 자이다.

 

참 성도는 십자가지신 주님에 의해 자신의 욕망이 이용당하는 자이다.

 

베드로가 자신의 욕망이 십자가를 전하는데 철저하게 이용당했듯이,

 

그러나 예수님을 죽인 자들은 자신의 욕망을 위해 말씀을 철저하게 이용하는 자이다. 주님이 피 흘리신 그 십자가도..

 

이런 사람은 자신이 만든 것, 수고한것, 땀 흘린것 등등이 헛되고 헛되며 모든 것이 헛되다고 하면

 

안색이 변한다.

 

바리새인과 세리의 모습을 보면 바리새인의 자신이 말씀대로 산 것은 자신의 정당함을 증거해주는 삶이었다.

 

그러나 세리는 개판처럼 산 인생이 오히려 십자가를 전하는 삶이 되었다.

 

십자가 지신 예수님이 주님이심을 전하는 삶이 되게 해 주시는 은혜속에 사는 자와 

 

 십자자 지신 예수님이 주님이심을 전하는 삶의 차이는

 

결국 불쌍히 여겨주옵소서와 자기 정당화로 나누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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