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3학년 때였습니다.
아주 무더운 여름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저 멀리 밭에서 일을 하고 계셨고 난 못(저수지)에서 물놀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수문을 잠그고 여는 곳 위에서 폴짝 폴짜 뛰면서 아래로 내려갔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푹 내려가버렸습니다.
수영을 하지 못했던 나는 정신없이 손짓 발짓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우연히 시멘트에 손이 닿아 밖으로 나올수 있었습니다.
나중에 어머니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수영 참 잘하네.
난 죽을 뻔 했는데.
그래서 그 후 나는 물속에 들어가는 것을 두려워 합니다.
지금도 바닷가에 살지만 십몇년동안 서너번 바닷속에 들어가 보았습니다. 그것도 바닷가에.
냇가에 가도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물속에 들어가면 그냥 죽을것만 같습니다.
그런데 요즘 물이 별로 두렵지 않습니다.
수영을 배웠습니다.
물속에서 두시간씩 몇일 놀아 보니 물에도 뜨고 십분 이상, 20분 정도는 헤험을 칠수 있습니다.
난 평생 물하고 친하지 않을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물속에서 오랫동안 놀면서 수영을 배우니 그 두려움은 사라지고 물과 친해집니다.
아담안에 있는 자들의 특징중의 하나입니다.
적응해 가는 삶. 환경에 적응해 갑니다.
특히 신앙생활도 적응할수 있습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 제사장들이 살았던 것처럼. 그래서 이들의 모습은 그야 말로 완벽한 신앙인의 모습을 보입니다.
그런데 하늘에서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그분이 피흘리셨습니다.
여기에서 적응은 다 깨어져 버립니다.
십자가의 피 능력은 적응성, 고정성을 인정치 않습니다.
늘상 새롭게 피 능력을 적용시키십니다.
그래서 주님만 자랑하도록 만들어 내십니다.
하나님 말씀에 적응하는 적응성은 주님만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자랑합니다.
예수님의 피가 잠시 필요했을 뿐 그 다음은 나의 적응성입니다.
주님은 이렇게 지금도 홀로 일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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