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장 지글러
1919년 막스베버가 ‘부란 일하는 사람들이 산출한
가치가 이어진 것이다’를
지금은
‘부란 다혈질적인
투기꾼들이 벌이는 카지노게임의 산물이다.’
여기에 대해 피에르 신부가 쓴 '단순한 기쁨'에서는
홀로 서고자 하는 자가 공감하는 자로 바뀔 때
천국의 백성이 된다고 한다.
이것은 고통을 함께 나누고 받아 들이는 자로서의 삶이다.
어떤 신자들은 홀로 족한 자들이며 어떤 비신자들은 공감하는 자이다.
여기에서 공감하는 자들은 천국백성이요 홀로 족한 자들은 지옥백성이다.
피에르 신부가 규정하는 죄란 자만심이다.
“나는 앞으로 하나님에게 의존하지 않으며 홀로 자족하리라,
그 어떤 구원자의 도움도 내게 필요치 않으며,
누군가에게 설명할 필요도 없이 내게 좋다가
여겨지는 것을 하는데 나의 자유를 사용하고 싶다.”
결국 지금 세계의 절반이 굶주리는 이유는 이런
죄 속에 사는 자들이 주류를 이루기 때문이리라.
피에르 신부는 과거 ‘착하지 않으면 지옥가리라’는
가르침이 잘못된 것이며 사랑하는 것이야 말로 참 진리라고 주장한다.
불교이든, 이슬람이든, 유대교든, 기독교든 아무상관없다.
첫째 아담 안에 있는 자들이 꿈꾸는 세상이 이런 세상이 아닐까?
그런데 어쩌나? 이 두가지 욕망이 함께 작용하는 사실을.
두 욕망이 모두 지향하는 바는 하나이다.
인간의 자유....
피에르 신부가 규정한 죄론에 딱 일치하는 자유.
하나님처럼 되고자 하는 높고 높은 포부.
에덴을 꿈꾸는 것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는 짓임을 알지 못한다.
그는 예수님께서 왜 십자가에 달려 피흘려 죽으셨는지를 모른다.
왜 삼일만에 부활 승천하시어 주님이 되셨는지 알지 못한다.
십자가의 피 공로를 무로 돌리는 것이 죄임을 알지 못한다.
예수님은 괜히 죽으셨다.
그냥 본만 보이시고 하늘로 가셔도 되는데.
예수님을 만나보지 못한 자들은 자신의 목숨을 다한다.
사회의 부조리를 제거하기 위해, 아니면 공유하는
세상을 위해, 아니면 자신의 탐욕을 위해 타인을
짓밟아 가면서까지도, 타인을 죽이면서까지도.
아니면 도피하여 산으로 가든지........
이들로 인해 주님의 피는 조롱받는다.
성도들은 알아야 한다.
하나님의 아들되신 예수님이 왜 십자가에 달려 피를 흘리시는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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