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강해

로마서강해2 로마서1장2

푸른 섬 2012. 10. 7. 22:29

미리 약속하신 것

로마서1장2

교회를 다닌 사람들은 성경을 본 사람들은 현재 교회가 왜 이럴까? 왜 교회가 성경적인 교회가 아닐까?

왜 우리는 성경적인 교회가 될 수 없는가? 이런 질문을 하고, 의문을 갖고 살아가지요.

그래서 역사적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성경적인 교회를 만들어 보려고 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요즘 조금 뜬다는 가정교회라는 것입니다.

가정교회 하나를 보면 역사적으로 인간들이 성경적 교회를 왜 만들려고 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며칠 전에 가정교회 세미나가 있었습니다. 그들 말로는 입문이랍니다. 이 말은 곧 자기들에게 와서 한수 배워라는 것이지요.

가정교회라는 말 자체를 끄집어낸다는 것은 그 사람들의 강의를 듣지 않더라도 그들의 꿈꾸는 교회상은 사도행전에 나타난 교회, 즉 성경적 교회를 꿈꾸고 있음을 알 수 있지요.

아마 여러분들도 이 강의를 들으면 야 그런 모임이 되면 정말 좋겠다고 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목사들도 이런 시스템을 너무나 환영할 만합니다. 시스템이 돌아가면 골치 아픈 것들이 이전보다 훨씬 줄어들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자신은 여전히 제왕적 위치에 머무를 수 있어요.

조직을 보면 피라미드 구조입니다. 제일 아래 조직을 보면 목장모임이라고 하는데, 여기에 구성원들은 6-12명입니다. 조직을 제대로 아는 사람이지요. 가장 적절한 소모임아닙니까?

중요한 것은 이들 구성원 모두가 하나의 직분을 갖게 한다는 사실입니다.

목자도 있습니다. 이 사람은 목사 역할을 합니다. 또한 교사가 따로 있어요. 성경 배워서 가르칩니다. 물론 교제가 있어요. 그리고 회개도 있고, 선교부장도 있고, 찬양인도자가 있고. 초신자가 되었던 누구든지 이 모임에 오면 직분을 맡게 됩니다.

확실히 소속감을 주지요. 그리고 매주 각 가정에서 돌아가면서 모입니다. 모일 때 정성을 다해 준비한 식사를 하고, 섬김이 기본입니다. 그리고 이 섬김을 통해 남에게 감동을 주고 남도 섬기는 것을 배우게 합니다.

식사시간은 30분-1시간. 그리고 찬양을 25분, 광고 5분, 성경공부20분, 이것은 지식전달목적이랍니다.

그리고 나눔 시간이 1-3시간, 이시간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수칙이 있어요. 그리고 중보기도 10-15분, 선교와 전도 도전 5-10분으로 시간을 구성합니다.

최소한 두 시간 반 정도 걸리지요.

이렇게 하면 어떤 결과가 도출될까요?

성도간의 구체적인 필요가 채워지고, 내적치유가 이루어지고, 비신자 전도가 이루어지고, 성도 모두가 그리스도의 지체가 된답니다.

믿지 않는 사람을 이 모임으로 초청하고 나중에 예수님을 믿겠다고 하면 목사에게나 아니면 담당자에게 연결을 해 주어 성경공부를 하게 한답니다.

여러분 이런 모임 어떻습니까?

좋지 않습니까?

그런데 가정교회라는 말을 들었을 때 이미 여러분들이 짐작했을 것입니다.

가정교회를 주창하는 목사가 꿈꾸는 교회는 그야말로 가정교회입니다.

최종목적이 영혼구원이라고 외치면서 가정교회를 주장하지요.

이 두 가지를 연결해 보면 이 사람의 노림수가 어디에 있음을 알 수 있습니까?

요한복음5장39절을 보면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느니라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 도다”

예수님께서 유대인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예수님 당시 그 시대 그 상황에 있던 유대인들을 말씀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유대인들, 더 나아가 모든 이방인들의 소망은 한 가지 임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바로 영생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창세기에서 아담이 선악과를 따 먹은 후 어떤 일이 벌어졌습니까?

죽은 자가 되었지요. 죽었다는 말은 하나님과 관계가 끊어졌다. 즉 영생이 없다. 지옥 간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아담 이후 인간들은 영생을 얻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창세기3장24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에덴동산 동편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화염검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셨다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은 곧 인간들이 무엇을 노리고 산다는 말입니까? 생명나무, 즉 영생을 노리고 살 것을 말씀하십니다.

즉 모든 인간들은 생명나무가 그리워 영생을 얻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지요.

그러나 생명나무로 가는 길은 막혀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인간들이 어떻게 할까요? 스스로 생명나무를 만들어 내는 방법을 사용합니다. 그 첫 번째가 라멕이 만든 에녹성입니다.

다시 요한복음으로 돌아와서 예수님께서 유대인들을 향해 하시는 말씀이 지금 이런 말씀입니다.

유대인들이 어떤 자들입니까?

유대인들은 구약성경을 잘 알고 있을까요 모를까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구약성경을 보는 관점, 그 중심이 어디에 있습니까?

영생에 있지요.

이 말이 이해가 됩니까?

분명 인간에게는 무엇이 중요합니까? 영생이 중요하지요. 그런데 그게 무슨 문제입니까?

구약성경을 보더라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이 중요하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당연히 그 축복을 받으려고 노력하고 애써야 하지요. 뿐만 아니라 그 축복의 마지막은 영생 아닙니까?

이게 무엇이 잘못되었습니까? 말씀에 순종하여 살아 에녹처럼, 엘리아처럼 영생하고 싶다는 것이 왜 문제가 되느냐 말입니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면 축복이 따라오고 영생이 따라온다는 말씀을 믿고 행하는 것이 왜 문제냐 말입니다.

우리는 이미 유대인들을 삐딱하게 보는 시각이 만들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보면 그래 유대인들은 나쁜 놈들이야, 악한 자들이야 라고 할 것입니다.

악한 자들이니 예수님의 말씀을 못 알아들었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의 입장은 달라요. 성경 말씀대로 살아 영생 얻겠다는 것이 무엇이 문제가 되느냐 말입니다.

마태복음19장16-26절을 보면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와서 질문을 하지요.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예수님께서도 맞장구를 쳐 주십니다.

네가 생명에 들어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

유대인들이 입장이 잘못되었다고 하지 않으시지요.

그래 생명, 영생을 얻으려면 계명을 지키면 된다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이 사람이 어느 계명이오니이까 라고 하지요. 이렇게 말하는 것은 자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십계명을 말씀하시는데 앞의 네 가지는 빼고 나머지 여섯 가지 중 다섯 가지를 말씀하셨습니다.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 하지 말라, 거짓증거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니라 . 그러자 이 사람이 뭐라고 합니까? 이 모든 것을 내가 지켰다고 하지요.

그리고는 아직도 무엇이 부족하냐고 예수님께 묻습니다.

예수님께서 왜 앞의 네 가지 계명을 빼고 뒤 다섯가지 계명을 말씀하신 줄 아시겠지요?

다섯가지는 네 이웃과 관련된 말씀입니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을 하시기 위해서 다섯 가지 계명을 말씀하셨지요. 중요한 것은 그 다음을 말씀하시기 위해 이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아직도 무엇이 부족하냐고 묻는 청년에게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하시니”

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심히 근심하며 가니라.

이 부자 청년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율법을 지킨 이유가 무엇입니까? 영생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그 영생 중에 무엇이 포함되어 있었습니까?

율법대로 살면 복 주신다는 것, 즉 부자 된다는 것이 포함되어 있었지요?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 받은 재물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 주고 예수님을 좇으라고 하십니다.

두 가지를 말씀하셨지요?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고 예수님을 좇으라.

예수님께서 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까?

그 다음 말씀에 나오지요.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이 말씀의 뜻은 절대로 부자가 천국들어갈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러자 제자들이 듣고 심히 놀라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으리이까?

이 질문을 뜻을 이해하시겠지요?

부자 청년이 그냥 부자가 된 것이 아닙니다. 율법을 지켜 부자가 되었지요. 그런데 예수님 말씀 앞에서 그 사람은 율법을 지킨 자가 됩니까 되지 않습니까 ? 율법지킨자가 아니지요. 이웃을 사랑하지 않았잖아요.

율법은 율법을 지키게 하셔서 율법을 지키지 않은 자임을 드러내는 기능을 합니다.

제자들의 질문은 율법을 지켜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부자 된 자가 천국 못 간다면 아무도 구원을 얻을 수 없지요? 라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할 수 있느니라”

사람으로는 할 수 없다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곧 사람은 율법을 지킬 수 있다 없다. 없다는 말씀입니다.

율법을 지켰다면 당연히 영생을 주셔야 하겠지요. 그런데 유대인들이 지켰다는 율법은 어디까지나 자기가 할 수 있는 것, 자신이 이해한 수준에서 율법지킴입니다. 그러나 이 율법지킴이 역사상 가장 수준 높은 율법 지킴이었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예수님당시 한번 보세요. 이들이 어디에 우상 숭배했다는 말이 있습니까? 없어요.

이것은 주변에 사는 유대인들도, 제자들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천국못간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다고 했지요.

이 하나님이 누구입니까? 바로 십자가 지신 예수님이지이요. 십자가의 능력으로 천국에 넣어 주십니다.

인간이 말씀을 지켜 행해서 천국 가는 일은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뭐라고 합니까? 자신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좇았다고 하지요.

이 말은 곧 자신들은 구원 얻을 자격 있지 않습니까라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못 알아들었어요. 네 소유를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고 예수님을 따르라는 말씀을 육적으로 이해하면 제자들처럼 됩니다.

오늘날 이런 사람들이 있지요. 모든 것을 접고 예수님을 따르겠다는 사람. 그러면 이게 구원받는 조건이 됩니까?

그렇다면 이것은 사람으로 하는 구원이잖아요.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끼를 못 알아들어요.

28절을 보면 열 둘 이 나오지요. 열두 보좌가 있고, 여기에 가룟유대가 포함됩니까 아닙니까? 포함되잖아요. 그런데 포함되지 않지요.

그러니 열둘을 십자가의 능력으로 창조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29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또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 여기에 보면 또 율법이 나오지요. 예수님의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리면 여러 배를 받고 영생을 상속하리라고 하시잖아요.

부자청년이 이정도 못할까요? 해 냅니다.

그러니 이 말씀을 부자청년처럼 율법을 이해하듯이 이해하고 해석하면 영생을 받을 수 있을까요 없을까요? 없어요.

그래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때 제자들이 다 도망하고 저주하고 팔아먹고 자살하고 두려워하고 했던 것입니다.

말씀은 말씀하신 분이 이루십니다. 그래서 사람으로는 할 수 없고 하나님으로는 하실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십자가의 능력으로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결국 영생을 꿈꾸는 자는 지옥 갑니다.

가정교회이야기를 다시 해 봅시다. 가정교회가 우리들이 꿈꾸는 교회상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들의 최종목표가 영혼 구원이지요. 이렇게 되면 누구와 똑같은 입장입니까? 부장청년과 똑 같은 사고방식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영혼 구원이 최종목표가 되었다는 말은 자신들의 구원이 가장 귀하다는 말의 다른 표현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도 결국 영혼구원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되어 버려요.

그런데 성경은 누구에 대해 증거한다고 합니까?

예수님에 대해 증거합니다. 그 예수님 안에 영생이 있지요. 뿐만 아니라 뭐도 있습니까? 심판도 있습니다.

오늘본문으로 들어가 봅시다.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사람들은 구약성경 전체가 예수님 즉 하나님의 아들에 관하여 말씀하신 약속이라고 말은 합니다.

그런데 믿지는 않아요. 로마서나 히브리서에 나오기 때문에 구약이라고 명칭을 붙이면서 하나님이 아들에 관하여 말씀하신 약속이라고는 하지요.

그런데 구약을 해석할 때 아들에 대한 약속이라면 아들을 보여 주어야 하는데 아들은 가끔 보여주고 사람에 대해 이야기 하려고 하지요.

우리가 하나님 백성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생각하면서 구약을 대하는 것입니다.

로마서1장2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이유는 앞으로 말하는 모든 내용이 구약이 예수님을 전하고 있음을 전제하고 말하고 해석하겠다는 것입니다.

로마서와 요한복음의 차이가 없어요. 요한복음입장에서 보면 로마서는 너무나 당연한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야고보서도 당연하고요.

성경이 예수님을 전한다는 말씀을 통해 모든 인간은 죄인임을 선언해 버리는 것입니다.

그 죄인 됨이 율법을 지켜서 죄인으로 드러나 버립니다.

교회가 예수님이 주님이심을 전하려면 교회가 무엇으로 드러나야 할까요? 십자가 앞에서 죄인으로 드러나야 하지요.

십자가만 자랑하고 전하는 교회가 주님께서 십자가의 능력으로 만드신 교회입니다.

인간들을 위한 교회는 사단의 회입니다. 아무리 십자가 이야기하고, 성경말씀들을 언급하더라도.

예수님당시 유대인들이 그런 행위를 완벽하게 다 했습니다. 무엇을 위해. 자기 구원을 위해.


'로마서강해' 카테고리의 다른 글

로마서강해 6 1장16-17  (0) 2012.10.28
로마서강해 5 1장8-15  (0) 2012.10.21
로마서강해 4 1장5-7  (0) 2012.10.14
로마서강해 3 로마서1장3-4  (0) 2012.10.07
로마서강해 1 로마서1장1  (0) 2012.1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