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 씨 하나님 이럴 수 있습니까?
“나는 기도했었네. 주님의 뜻을 따라 살겠노라고.
그리고 주님의 뜻을 따라 머나먼 타국으로 왔다네.
나의 소망대로 나의 자녀는 내가 기대하는 대로 커 주겠지 생각했었네
.
그런데 이게 웬걸. 나의 기대와 전혀 다르게 살아 가네.
그 때 나는 하나님께 원망했었네.
에이씨. 하나님. 어떻게 제 아들을 이렇게 만들어 놓으셨나요.
원망하고 또 원망을 했었다네.
내가 주님을 위해 이렇게 고생 고생 하는데 왜 나의 수고를 알아 주시지 않으시나요?
그러던 어느 날 성경공부시간이었다네.
(시 37:5)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시고
(잠 16:3)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너의 경영하는 것이 이루리라
나의 기대를 걸고 내 자녀를 키워 왔다는 것을 알았네.
이 말씀이 내게 다가 왔다네. 맡기라는 말씀이.
그리고 우리들은 함께 깨달았네. 나의 기대로 자녀를 양육한다면 내 수준 이상의 결과가 나
오지 않는다는 것을, 그러나 여호와께 맡기면 여호와 하나님의 수준만큼 자녀를 키워주시리
라고.”
그리고 이 사람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녀문제가 나오니까 하나님이고 뭐고 다 소용없더라는 것입니다.
오랜만에 듣는 솔직한 이야기였습니다. 여호와께 맡기는 것이 곧 우상숭배임을 꿈에도 생각지 못합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이 결국 내 소망 하나 이루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롬8:24,25
사람들은 처음부터 소망 아닌 것을 소망으로 붙들고 살아갑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이 소망을 확확 꺽어 버리십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결코 포기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눈에 보이는 것만이 이들에겐 유일한 소망이기 때문입니다.
성도의 소망은 보이지 않는 소망입니다.
그러나 성도역시 육을 입고 살아갑니다. 이 육으로는 늘 상 눈에 보이는 소망을 만들어 내고 그 소망을 위해 돈벌고, 사업하고, 자식 키우고, 밥하고, 결혼하고 , 기도하고 부르짖고, 헌금하고, 봉사하고, 눈물 흘리고, 금식하고,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성도에겐 성령께서 이런 모습이 죄 속에 살아가는 모습임을 십자가의 피를 갖다 대면서 깨닫게 하십니다. 그러면서 보이지 않는 소망을 더욱더 바라게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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