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를 경영마인드로, 세상의 기법들로 목회를 해도 되는 건지?
먼저 거꾸로 질문을 던져봅니다. 왜 목회를 경영마인드로, 세상의 기법들로 목회를 하려고 할까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것은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오직 하나님의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 사람의 일은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일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가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께서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영적인 일은 영적인 것으로 분별하니느라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 신령한 자는 모든 것을 판단하나 자기는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아니하느니라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아서 주를 가르치겠느냐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도다” 고전2:9-16
육에 속한 자는 성령의 일을 받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날의 경영학 심리학을 몰라서 실패하셨을까요?
주님이 세우시는 교회는 인간이 만들어내는 조직, 경영, 심리학으로 만들어지는 곳이 아니라 십자가의 피능력을 전하시는 성령에 의해 만들어지는 교회입니다. 성령이 만드신 교회는 십자가만을 전합니다.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고전1:23-24
24절에서 그리스도는 23절이 어떤 그리스도인지를 정해 줍니다.
고린도 교회의 문제는 멸시 받는 십자가를 자랑하는 십자가로, 힘 있는 십자가로, 조직을 만드는 십자가로 바꿔치기 합니다. 나는 바울파, 아는 아볼로파라는 파벌이 생겼습니다. 이것에 대해 시기와 분쟁이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시기와 분쟁이 나오는 이유는 이 세상에서 자신이 지혜 있다고 생각하는데서 출발합니다. 자신이 어리석은 자요 멸시받는 자요, 미련한 자라고 생각한다면 이런 생각하지 않습니다. 물론 십자가 앞에서입니다. 그러하다면 조직이라는 것을 꺼집어 낼 이유가 없지요.
분명 이 세상 지혜는 하나님께 어리석은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고전3:19. 여기에서 말하는 이 세상 지혜는 성령과 대조되는 말씀입니다. 성령께서 주시는 지혜는 죄를 아는 겁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만 자랑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세상의 지혜는 죄를 아는 것이 아니라 힘을 만들고 조직을 키우고, 더욱더 강력한 권력을 만드는데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무로 돌리는데 있습니다.
그렇다면 주님께서 목회를 경영마인드로 하라고 하셨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져 봅니다.
사도행전20장을 보게 되면 사도바울이 밀레도에서 에베소에 사람을 보내어 에베소 장로들을 청하여 말씀을 전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28절을 보면
“여러분은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그들 가운데 여러분을 감독자로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느니라”
여기에서 포인트는 교회를 보살피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기 피만을 전하는 교회, 즉 주님의 사랑과 공로만 증언하는 교회를 위해 성령이 감독자로 삼았다는 겁니다. 성령의 하시는 일이 죄에 대해, 의해 대해, 심판에 대해 책망하시는 일입니다(요16:7,8). 성령이 감독자를 삼은 자들도 당연히 이런 일을 감당합니다. 이들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기준으로 복음을 전합니다. 고린도 전서에서 잠시 살펴본 바와 같이.
그런데 사도바울이 이렇게 말을 합니다.
“내가 떠난 후에 사나운 이리가 여러분에게 들어와서 그 양 떼를 아끼지 아니하며 또한 여러분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따르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줄을 내가 아노라”행20:29,30
사나운 이리가 오는 것은 막을 수 없는 일입니다. 사도바울이 이렇게 말하면 에베소감독들이 열심히 싸우겠습니다라고 다짐해야 하는데..
“이 말을 한 후 무릎을 꿇고 그 모든 사람들과 함께 기도하니”행20:36
사나운 이리는 자기를 따르게 하기 위해서 어그러진 말을 합니다. 즉 육의 말을 하지요. 즉 성령의 가르침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지혜를 전합니다. 사람의 지혜는 우리들이 잘 알다시피 가인의 후예 라멕에게서 가장 잘 드러납니다.
세상 최초의 조직이 여기에 있습니다. 가인이 에덴 동쪽에 성을 쌓고 그의 아들의 이름으로 성을 이름하여 에녹이라 합니다. 창4:16
자기 이름 내기 위한 성입니다. 그리고 라멕이 등장하지요.
라멕에게서 가축치는 자의 조상이 나옵니다. 그리고 수금과 퉁소를 잡는 자의 조상도 나옵니다. 뿐만 아니라 구리와 쇠로 여러 가지 기구를 만드는 자들이 나오지요. 정착생활의 시작과 청동기, 철기문화의 시작자들이 여기 속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런 것들을 모두 관리하는 자가 누군고 하면 라멕입니다. 대단한 조직을 갖추고 있지요. 이런 조직이 왜 필요할까요? 자기 이름을 내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가인을 위하여는 벌이 칠배일진대 라멕을 위하여는 벌이 칠십칠 배이리로다라고 자신 있게 말합니다.
그런데 이와 대조적으로 아벨은 가인에게 죽었고, 셋의 후손들을 낳고 죽는 일 밖에 없습니다.
사무엘 상8장을 보면 이스라엘의 모든 장로가 왕을 달라고 요구합니다.
“그에게 이르되 보소서 당신은 늙고 당신의 아들들은 당신의 행위를 따르지 아니하니 모든 나라와 같이 우리에게 왕을 세워 우리를 다스리게 하소서 한지라”5
하나님의 왕됨을 원치 않습니다. 그 이유가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왕이 되어 다스려온 결과 사사시대꼴이랍니다.
차라이 이방나라와 같이 왕을 주셔서 왕을 중심으로 조직을 갖추는 나라가 되면 이방나라처럼 잘 살수 있다는 이유입니다. 사사시대를 보면 조직이 제대로 가동하지 않잖아요.
결국 여호와하나님께 왕을 주셔서 그들이 원하는 왕중심국가를 만들어 주셨지만 솔로만왕이 바로의 딸 외에 이방의 많은 여인을 사랑하였습니다. 모압, 암몬, 에돔, 시돈, 헷 여인들입니다(열상11:1). 결국 여인들이 왕의 마음을 돌이켜고, 다른 신들을 따르게 했습니다. 결국 이 일로 이 나라를 솔로몬에게서 빼앗아 솔로몬의 신하에게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내종 다윗과 내가 택한 예루살렘을 위하여 한 지파를 네 아들에게 주리라고 하십니다.
북이스라엘 왕이나 남유다 왕들이 우상숭배 하다가 멸망당합니다. 이스라엘의 바람은 이렇게 사라집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앗수르나, 바벨론 제국, 헬라제국, 로마제국입니다. 이들은 강력한 힘과 조직을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인재를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나라를 이스라엘백성들이 꿈꾸었지요. 그런데 이 나라를 다니엘서에서는 짐승의 나라라고 합니다. 왕도 짐승이지만 그 곳에 사는 모든 자들도 짐승입니다. 어떤 짐승인고 하면 여호와의 백성을 핍박하고 죽이는 짐승들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짐승의 나라에 태어 나셨습니다.
그렇다면 포로에서 돌아온 자들은 짐승인가 아닌가? 그들의 짐승임이 밝혀지는 기간이 계시가 단절된 400년 기간입니다. 즉 흔히 말하는 중간사 기간이지요. 이들은 이 기간 동안 바벨론, 헬라, 로마제국속에 있으면서 자기들 나름대로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 이들은 예수님을 거부합니다.
그래서 세상을 어둠이라 하십니다. 다르게 표현하면 세상은 짐승입니다.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모두가 짐승입니다.
다르게 표현하면 마귀의 아들들이지요. 예수님께서 너희아비는 마귀라고 하셨으니 말입니다.
그러면 이들 마귀의 아들들은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 어떤 모습을 하고 있었는가?
각자의 위치에서 가장 멋진 조직들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그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여 예수님을 죽일 수 있었지요.
그런데 예수님은 왜 이들에 대항하는 조직을 만들지 않고, 경영을 하지 않으셨을까요? 예수님이 오늘날 목사들에게 한수 배워야 할 것 같습니다. 경영학 책 좀 읽으셨으면 참으로 멋진 교회하나 만드셨을 텐데...
조직 운영하는 것 조그만 배우면, 심리학 조금만 배우면 사람들을 어떻게 관리하고 휘어잡고, 조직에서 이탈하지 않게 하는 것을 배울 수 있는데....
그리고 많은 돈을 빼 낼 수 있는데...
주의 성전 건립합니다. 선교합니다. 교육관 짓습니다. 이 일들을 위해 특별새벽기도, 특별헌금 등등 일 년 내내 스케줄을 만들어 사람들이 잠시도 딴생각하지 못하도록 하면 사람들을 휘어잡는데 효과적인데. 그리고 세뇌를 시키시려면 삼년정도론 안되고 북한처럼 몇 십 년 세뇌를 시켜서 일을 시키시든지...
사람들이 알아듣는 말씀을 하셔서 많은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예수님을 위해 봉사하게 하시든지..
그런데 주님은 세상의 방식을 다 거부합니다. 오직 성령으로만 일을 하십니다. 오직 십자가의 피로만 일을 하시지요.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어리석게 밖에 안보이도록 일을 하시지요.
목회에 경영학을 동원하는 자체가 십자가의 피와 상관없는 일입니다.
그러면 반대로 교회에는 경영이 없습니까? 교회에는 경영이 없고 봉사가 있습니다. 십자가를 증언하는 봉사들로만 가득차 있지요. 이들은 십자가만 증언하는 것으로 그 역할을 끝냅니다. 오직 목적은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사수하는 일이지요. 그러면 교회에 있는 집사 장로 등등은 조직이 아닙니까? 조직이 아니고 은사입니다.
은사는 각각 다르지만 그 모든 은사를 통해 십자가의 피를 증언합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교회는 주님이 직접관리합니다. 그래서 은사입니다. 주님이 직접 관리한다는 것은 사도행전이나 서신서들을 통해 보면 십자가의 피만을 증언합니다. 이것이 주님이 직접 관리하는 증거입니다.
예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셔서 예수님에 대해 증언하게 하신다고 말씀하신대로입니다.
요한일서2장27절을 보면
“너희는 주께 받은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안에 거하라”요일2:27
경영하는 자들은 이런 말씀들이 가장 싫겠죠.
사람들은 자기 손안에 두어야 하는데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다고 하니 말입니다. 자신들이 가르쳐야 자기 말을 들을 텐데. 저들은 이 말씀을 믿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교회가 자신들 손안에서 움직인다고 생각하지요. 물론 그 종착점은 자기를 위한 종교놀이, 예수 믿기에 불과합니다. 사도바울이 말한 것처럼.
그래서 이들이 설교하는 교회의 공통점은 성경말씀에 관심이 없고 자기 목사의 말에 관심을 두는 자들이 대부분입니다.
자기 목사의 말은 하나님의 말씀이고 다른 목사가 성경을 풀면 콧방귀 낍니다. 십자가를 전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령이 없다는 증거지요. 성령님은 한결 같이 예수님의 피를 갖고 다가 오시는데 이들은 자신이 속한 조직, 교회를 갖고 나옵니다.
우리를 보내신 것은 교회를 경영하라고 보내신 것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라고 보냈습니다. 사도바울이 스데바나 집 사람에게 세례를 베풀었고 그 외에는 다른 누구에게 세례를 베풀었는지 알지 못하노라 고전1:16
“그리스도께서 나를 보내심은 세례를 베풀게 하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복음을 전하게 하려하심이로되 말의 지혜로 하지 아니함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고전1:17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헛되게 만드는 것은 그 어떤 것도 성령의 일이 아닙니다.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마18:20
말씀을 믿지 못하니 눈에 보이는 것으로 대체합니다. 그 최종 목적은 자기 종 만들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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