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 강해

강해32

푸른 섬 2008. 7. 26. 23:05

힘과 믿음

사무엘 상17장1-11

성도는 이 땅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아갈까요?

많은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예수님을 잘 믿는다면 잘되어야 된다고 말입니다.

잘 된다는 것이 세상 사람들이 볼 때, 일반적인 눈으로 볼 때 잘 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로부터 조롱당하고, 무시당하는 것은 예수님을 잘 믿는 모습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마치 어떤 신제품을 내어 놓았을 때 불티나게 팔리듯이 팔려야 제대로 된 복음이라 생각합니다. 구름 관중이 몰려 오는 것이야 말로 복음다운 복음이라 여깁니다.

설교를 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고 따르는 것이 복음이지, 몇 사람이 따르면 복음이 아니라고 여깁니다.

현 시대는 자본이 얼마나 있느냐, 그리고 최소의 자본으로 최대의 효과를 나타내는 것이야 말로 진리라고 믿는 시대입니다.

그래서 복음이라는 것도 이 원리에 입각해서 해석합니다.

사람들은 예수님 자체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관심한 항상 외부적인 것에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블레셋 장수 골리앗이 이스라엘을 조롱합니다.

이스라엘을 조롱한다는 것은 곧 하나님을 멸시하고 조롱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석을 누가 하는고 하면 다윗이 합니다.

물론 이것은 하나님의 해석이고요.

골리앗이 무엇을 근거로 하나님을 조롱하고 멸시합니까?

힘입니다.

전쟁에서는 무엇보다 힘이지요.

요즘 적벽대전영화 광고를 많이 하는데, 10만으로 100만대군을 이긴 것 말입니다.

맞습니까?

뛰어난 전략의 승리입니까?

그 뛰어난 전략이 힘이지요.

어떨 때는 무기가 힘이 되고, 어떨 때는 돈이 힘이 되지요.

이 힘에 근거하여 하나님을 조롱합니다.

역대하18장에 보면 미가야선지자가 조롱당하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23절입니다.

그나아나의 아들 시드기야가 가까이 와서 미가야의 빰을 치며 이르되 여호와의 영이 나를 떠나 어디로 말미암아 가서 네가 말씀하더냐

둘다 선지자라고 우깁니다.

한쪽은 거짓 선지자요 한 쪽은 참 선지자입니다.

한쪽은 왕의 편에 서 있는 선지자입니다.

힘이 있는 선지자입니다.

다른 한 쪽은 하나님만 의지하고 사는 선지자입니다.

그런데 미가야 선지자는 흉한 일만 예언하는 선지자요. 왕의 편에 선 거짓 선지자는 왕에게 길한 일만 예언하는 선지자입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누가 누구를 핍박하겠습니까?

당연히 앞서 보았듯이 힘있는 선지자가 힘없는 흉한일을 말하는 미가야 선지자를 핍박하겠지요.

이 핍박은 곧 하나님에 대해 멸시이며, 조롱이며 핍박입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왕은 누구말을 들을까요?

당연히 좋은 말하는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않겠습니까?

이게 세상의 원리요, 힘의 원리입니다.

사도행전4장25-28절을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함께 보겠습니다.

“또 주의 종 우리 조상 다윗의 입을 의탁하사 성령으로 말씀하시기를 어찌하여 열방이 분노하며 족속들이 허사를 경영하였는고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함께 모여 주와 그 그리스도를 대적하도다 하신 이로소이다 과연 헤롯과 본디오 빌라도는 이방인과 이스라엘 백성과 합동하여 하나님의 기름 부으신 거룩한 종 예수를 거스려 하나님의 권능과 뜻대로 이루려고 예정하신 그것을 행하려고 이 성에 모였나이다”

이것은 예정이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힘있는 자들이 합동하여 예수님을 거스리는 것 말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을 전하는 것을 방해하는 것을 말합니다.

곧 핍박입니다.

세상은 이렇게 �팅이 되어 있습니다.

힘 있는 자들이 예수님을 핍박하는 것으로 말입니다.

이것은 곧 예수님을 전하는 자들이 핍박을 당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전하는 자들이 여기에 굴합니까?

굴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욱더 복음을 열심히 전합니다.

성도의 삶이라는 것은 이렇게 프로그램되어 있습니다.

힘 있는 자들로부터 핍박당하는 것으로 말입니다.

여기에서의 힘이라는 것은 돈이 많은 자들이다. 아니면 권력이 있는 자들이다가 아닙니다.

십자가의 복음을 믿지 않는 자들을 말합니다.

십자가의 복음은 자신의 행위를 내세우지 않습니다.

그러니 자신이 가진 어떤 것도 내세우지 않죠.

그러나 이 복음이 없는 자는 항상 이 복음 외의 것을 갖고 복음을 가진 자를 핍박합니다.

너 돈 많이 벌었니?

너 예수님을 믿는데 왜 그 꼴이니?

성도수가 왜 그렇지 적어. 저쪽 교회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지 아니?

너희 아들 공부 잘해?

항상 이 땅의 것을 갖고 이 땅의 것에 소망을 두지 않는 사람을 멸시하고 조롱합니다.

더 나아가서 이렇게도 말합니다.

이땅에 소망을 안 둔다면서 왜 돈은 버니. 왜 자녀를 학교보내니라고 말입니다.

이들의 눈에는 믿음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보이지 않고, 모르니 이렇게 밖에 말 못합니다.

이들에게 아무리 설명해 주어도 도통 통하지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세계가 다릅니다.

골리앗의 세계와 다윗의 세계지요.

다윗이 힘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비록 골리앗에 비해, 그리고 사울에 비해 덩치도 작습니다. 그래서 힘이 없어 보이지만 그가 맨손으로 사자과 곰을 잡았습니다.

그런데 그가 뭐라고 합니까?

여호와께서 나를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건져내셨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지금도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여호와께서 건져 내실 것을 믿고 있습니다.

힘이 없는 것이 아니죠.

믿음으로 살아가는 다윗아닙니까?

그러면 힘 있는 사람들이 뭐라고 할까요?

봐라. 다윗도 평소에 힘을 길렀으니 이렇게 하나님께서 크게 쓰시지 않느냐고 말입니다.

이렇게 성경을 해석해서 어떻게 적용합니까?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하게 하셨다고 믿고 힘을 길러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런 다윗이 시편 8편에서 뭐라고 하는지 아세요.

한번 봅시다.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주의 영광을 하늘 위에 두셨나이다 주의 대적을 인하여 어린아이와 젖먹이의 입으로 말미암아 권능을 세우심이여 이는 원수와 보수자로 잠잠케 하려 하심이니이다”

원수와 보수자의 특징은 힘입니다.

그러면 어린아이와 젖먹이의 입은 무엇입니까?

힘 없음의 대표아닙니까?

그러니 다윗을 말할 때 힘을 논하면 엉터리가 됩니다.

믿음을 이야기 해야 되죠.

십자가라는 것이 그렇습니다.

십자가는 힘을 말하지 않습니다.

믿음을 말하며 은혜를 말합니다.

사람들은 자꾸만 힘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성도는 힘 이야기를 하는 자가 아니라 믿음이야기를 하는 자입니다.

그러니 힘 이야기를 하는 자는 믿음이야기 하는 자를 공격합니다.

여러분 삶에서 믿음이야기를 빼버리면 사람들로부터 미움받을 일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들과 똑 같이 힘 이야기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그들과 한편이 되지 않습니까?

한편끼리 무슨 핍박을 하겠습니까?

우리 모두 힘을 이야기하며 내세우는 자가 아니라 믿음에 대해 이야기 하며 은혜를 내세우는 우리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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