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모데전서

강해8

푸른 섬 2008. 8. 28. 11:20

경건한 삶.

디모데전서4:6-16

성경을 보면서 우리들의 마음을 끄는 것들이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입니까?

아니면 선지자들이 고난 받는 것입니까?

아니면 악한 자들이 악을 행하는 것입니까?

 

물론 이런 것들에 우리의 마음이 끌리지는 않습니다.

우리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선지자들의 능력입니다.

죽은 자를 살리고, 잃어버린 도끼도 찾아 주고, 하늘에서 불을 내리게 하고, 까마귀로부터 양식을 공급받는 것들입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앉은뱅이를 일으키시고, 죽은 자를 살리시고, 눈 먼 자를 보게 하시고, 수고하지 않아도 오직 축복 기도로 양식이 많아지는 이런 기적들이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가끔 이런 생각이 불쑥 떠오릅니다.

내가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이런 기적이 일어나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말입니다.

하는 사업이 내 기도로 잘 되어 지고, 자식도 내 기도로 공부 잘하고 건강하게 잘 자랐으면 하는 바램이 얼마나 큽니까?

 

이 뿐 아니지요. 참으로 내가 예수 믿는 사람 같아서 나를 통해 수많은 능력과 기적들이 행해지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으면서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고 하면, 내가 기도 많이 하면 하나님께서 능력을 주실 것이야. 아니면 내가 전도하고 봉사 많이 하면 하나님께서 그렇게 해 주시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것 때문에 새벽기도 열심히 나가고, 전도 열심히 하고, 봉사 열심히 합니다.

아니면 어떻습니까?

 

이렇게 행하는 자체로 자신이 무엇인가 괜찮은 사람이 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보면 4장7절을 보게 되면 사람들이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좇는다고 나아 있는 것입니다.

신화가 무엇입니까?

 

우리의 이상이 아닙니까?

신화처럼 살고 싶다는 생각이 늘 꿈틀꿈틀 거리지 않습니까?

초인생활이라는 책을 보게 되면 예수님을 믿던, 불교를 믿던 어떤 종교를 가졌던지 예수님처럼 살수 있다고 말합니다. 물론 이 저자는 자신이 히말라야 산 부근을 직접 돌아다니면서 경험한 것을 기록했다고 합니다.

책 내용을 보면, 수십 킬로를 순식간에 다닐 수도 있고, 예수님처럼 병자도 낫게 하고, 영원히 사는 것에 대해서도 나와 있습니다.

 

예수님도 우리와 전혀 다르지 않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우리도 얼마든지 예수님 같은 초인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들이 꿈꾸는 신앙생활의 꼭지점이 아닙니까?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자신은 결국 예수님처럼 살고 싶다는 것입니다.

물론 십자가 지는 것도 포함합니다. 그래야만 예수님처럼 높은 경지에 도달 할 수 있으니 말입니다.

이런 것을 위해서는 육체의 연습을 해야 합니다.

 

음식도 먹지 말고, 결혼도 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래야 초인이 되지 않겠습니까?

이런 것을 가지고 4장 1절에서는 “믿음에서 떠나 미혹케 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좇는” 자들이라고 합니다.

믿음과 정 반대로 달려가는 것이 초인이 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믿음이란 무엇입니까?

 

10절에 나와 있습니다.

“우리 소망을 살아계신 하나님께 두는 것”입니다.

이것이야 말로 제대로 된 믿음을 가진 자의 삶의 태도입니다.

초인이 되고 자 하는 자들은 소망을 자신에게 둡니다.

예수님을 이용해 자신이 초인이 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 있는 자는 소망이 자신에게 없습니다.

오직 살아계신 하나님, 즉 십자가 지신 예수님께만 소망을 두고 살아갑니다.

왜 그렇습니까?

 

십자가 지신 예수님께만 생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과 떨어져서는 결코 생명이 있을 수 없습니다.

이것을 믿음 있는 자는 너무나 잘 알 고 있습니다.

 

그러니 복음을 위해 수고하고 진력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저들, 즉 초인이 되고자 하는 자들이 복음을 위해 수고하고 진력하는 이유와 전혀 다릅니다.

8절을 보게 되면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

 

성도는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는 자입니다.

육체의 연습을 하는 자가 아닙니다.

여러분 우리는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해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것이 경건에 이르는 연습을 하는 것입니까?

가만히 있으면 됩니까?

 

주님께서는 바울을 통해 그렇게 말씀하지 않습니다.

11절에 보면 명하고 가르치라고 합니다.

이 말은 곧 열심히 듣고 배우라는 말씀입니다.

 

13절을 보게 되면 “내가 이를 때까지 읽는 것과 권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에 착념하라”고 합니다.

결국 말씀을 읽고 말씀대로 권하고 말씀을 가르치는 일에 전념하는 것이 경건한 자들의 모습입니다.

경건한 자는 항상 말씀을 가까이 하는 자입니다.

 

그 말씀은 경건한 자를 십자가 앞으로 인도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늘 육체의 연습을 하는 자일 것입니다.

희한한 일이지요.

 

동일한 성경을 보면서 한 쪽은 육체의 연습을, 한 쪽은 경건의 연습을 합니다.

그러니 우리가 생각하는 상식, 성경을 보게 되면 영생을 얻게 될 것이라는 착각을 완전히 깨어 버립니다.

오직 지금도 살아계신 십자가 지신 주님께서 자기 백성들을 말씀으로 십자가 앞으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착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을 열심히 보면 경건한 삶이 된다고 말입니다.

주님께서 경건한 삶으로 우리를 늘 인도하실 것을 믿고 살아가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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