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모데전서

강해9

푸른 섬 2008. 8. 28. 11:22

교회에서 왕 노릇

디모데전서5:1-2

아담이 범죄한 이후 죄인들의 본성은 항상 남을 다스리려고 합니다.

남보다 높은 자리에 올라가 남에게 명령하고 시키고, 자신의 부하로 삼는 것이 죄인에게는 참 즐거움이라 생각 합니다.

 

사무엘 상 8장을 보게 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무엘에게 열방과 같이 왕을 세워 자신들을 다스리게 해 달라고 요청합니다.

여러분이 보기에 방금 제가 말씀드린 죄인의 본성과 정 반대의 모습으로 보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 속을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이들이 왕을 요구한 이유는 사사기에 잘 나와 있습니다.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들이 각각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이 말이 무엇을 말합니까?

 

왕이 없으니, 그 구심점이 없다는 것입니다.

각자가 다 왕 노릇하니 왕이 있는 다른 나라에 비해 힘이 강할 수가 없습니다.

왕을 중심으로 힘을 합쳐 왕의 뜻에 따라 일사천리로 행함으로 강력한 힘을 소유한 국가, 곧 자신을 만들어 보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이스라엘은 왕, 즉 사람의 왕이 필요 없는 국가입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의 왕은 살아계신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문제는 이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왕노릇함을 용납하지 않으신다는데 있습니다.

사사시대 때에 등장한 사사들을 보면, 힘은 있지만 그 힘으로 남을 지배하는 곳에 사용하지 않습니다.

만일 그 힘으로 자신의 욕심을 채우는 것으로 사용하게 되면 실패할 뿐이요, 오직 자신을 희생하여 남을 섬기기 위해 힘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런 왕이 필요하겠습니까?

필요 없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왕으로서 다스리심 이러한 방법이시니 이스라엘 백성들 마음에 들리 없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왕을 요구한 것입니다.

인간 왕이 있으면 우리도 얼마든지 남을 지배할 수 있고, 다스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왕의 제도 즉 왕이 자신들을 다스리더라도 얼마든지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이유는 자신들이 그 왕을 통해 남을 지배할 수 있으니 말입니다.

이런 모습이 어디에도 나타납니까?

 

마태복음20장에 보면 세베대의 아들의 어미가 자신의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해 달라고 요청합니다.

쉽게 말하면 치맛바람을 통해 자신의 아들들을 출세시켜 보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사고방식, 즉 주의 나라에서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자 하는 사고방식이 세베대의 아들의 엄마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의 열두 제자 모두에게 있었습니다.

그러니 어미에 말에 동조할 뿐만 아니라 나머지 제자들이 두 형제에 대해 분히 여기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배우고, 십자가의 길로 가셔야 한다는 말까지 들었는데, 이들이 예수님을 따르는 이유는 흑심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희한한 일이지요.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셨다면, 이런 마음들을 다 제거해 주시고, 순수하게 만들어서 예수님을 따르게 하셔야 할 터인데, 이런 제자들의 마음이 그대로 남아 있게 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게 죄인들의 본성임을 고발하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이 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셔야 하는지를 알려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을 따라 다니지만 이들의 마음속엔 남을 지배하고자 하는 마음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십자가 지신 주님의 나라에 가서까지도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이런 죄인을 구원할 길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바로 예수님께서 십자가 지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아니면 제자들의 구원은 불가능 합니다.

이제 오늘 본문으로 돌아와 보겠습니다.

 

1,2절을 봅시다.

“늙은이를 꾸짖지 말고 권하되 아비에게 하듯하며 젊은이를 형제에게 하듯하고 늙은 여자를 어미에게 하듯하며 젊은 여자를 일절 깨끗함으로 자매에게 하듯하라”

이 일이 쉬워 보입니까?

결코 쉽지 않습니다.

 

교회에서 집사가 되고 장로가 되고 권사가 되고, 목사가 되면 이런 마음으로 성도들을 대하기가 힘들어 집니다. 왜 그렇습니다.

죄인의 본성이 그러하기 때문입니다.

늙은이도 자기 눈 아래 있고, 젊은이도 그러하고, 늙은 여자도 그렇습니다.

젊은 여자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들은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그렇지 않다고 하실 것입니까?

그러면 이 성경은 찢어 버려야겠지요.

여러분에겐 이 성경구절이 필요 없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 말씀은 주님께서 특별한 상황을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죄인들의 마음이 무엇으로 가득 차 있는지를 고발하시는 것입니다.

마치 제자들이 예수님을 이용해 주님의 나라에서 한 자리 차지하고자 하듯이, 장로나, 목사나, 권사나, 집사 직분을 이용해 주님의 교회에서 왕 노릇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를 보면 딱 맞습니다.

 

교회에서 사람들은 자꾸 왕노릇하려고 합니다.

남을 지배하려고 합니다.

어떻게 말입니까?

섬기면서 말입니다.

 

기도 많이 하면서, 전도 많이 하면서 봉사 많이 하면서 남위에 군림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그렇지 하지 못한 사람들을 은근히 무시하고 조롱합니다.

그러면서 장로나 목사가 되었을 때 어떤 모습을 보입니까?

남을 지배하려는 모습을 보입니다.

 

늙은이든, 젊은이든, 늙은 여자든, 젊은 여자든 모두가 다 자신의 지배 하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라 여깁니다.

십자가가 이들 눈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주님께 긍휼을 구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어찌 이런 자들을 예수님을 믿는 자들이라 하겠습니까?

참된 성도도 여전히 이런 마음이 있습니다. 왕이 되어 남을 지배하고자 하는 마음 말입니다.

그러나 성도는 오늘 본문을 보면서 회개하는 자입니다.

나에겐 이런 모습이 없다가 아니라, 어쩌면 주님이 우리의 속을 그렇게 잘 아실까를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성도는 주님의 긍휼을 구하는 것입니다.

'디모데전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강해12  (0) 2008.08.28
강해10  (0) 2008.08.28
강해8  (0) 2008.08.28
강해7  (0) 2008.08.28
강해6  (0) 2008.08.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