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모데전서

강해10

푸른 섬 2008. 8. 28. 11:24

존경

디모데전서5장17

디모데전서는 흔히 목회서신이라고 합니다.

왜 그렇게 불리는고 하면 목회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바울이 디모데에게 말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생각은 어떻습니까?

실제로 디모데에게 교회를 어떻게 섬길지를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문제는 이것입니다.

 

 

목회서신이라고 말하게 되면 우리는 당장 아, 그렇다면 디모데 전후서 같은 경우에 우리들이 교회를 어떤 식으로 섬길지를 알려 주고 있는 말씀이구라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들이 실제로 적용할 거리가 너무 많다는 생각을 같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디모데전후서와 같은 목회서신을 어떻게 이해하는 것입니까?

그래, 이 말씀은 우리가 어떻게 행할 것들에 대해 기록한 말씀이구나. 그러니 이 말씀대로 목회를 하면 되겠구나 생각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디모데 전후서와 같은 곳에서 우리는 얼마든지 이상적인 교회의 모델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우리들이 디모데 전서 5장까지 살펴보면서 말씀을 보면서 우리와 거리가 점점 더 멀어간다는 것을 느꼈을 것입니다.

말씀이 왜 그리 우리와 거리가 멀게 느껴지는지.

말씀을 안 볼 때에는 그런대로, 대충 읽을 때에도 그런대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같이 느껴졌을지 모릅니다마는 말씀을 보면 볼수록 우리 자신에 대한 답답함이 너무 많이 밀려 올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아도 그렇습니다.

잘 다스리는 장로들을 배나 존경할 자로 알아라고 합니다.

이렇게 말씀하면 당연히 누구 좋아라고 소리를 지를까요?

당연히 장로나 목사들이겠죠.

 

자신들을 다른 사람들보다 배나 존경하라고 했으니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니 일반 성도들을 부리기에 얼마나 쉽겠습니까?

아직도 교회 다니는 많은 사람들이 이런 말씀을 보면서, 목사나, 장로는 존경해야 돼.

그러면서 그들이 잘 다스리는 것과는 상관없이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런 말씀을 조금만 더 생각해 보면, 어려운 문제에 부닥치게 됩니다.

잘 다스리는 장로를 배나 존경하라고 했는데, 그렇다면 잘 다스리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이 말씀을 듣게 되면 우리는 잘 다스리는 정치적 지도자를 생각하게 됩니다.

여러분 나라에서는 어떻습니까?

누가 잘 다스리는 사람입니까?

 

얼마 전 한국에서는 이순신이라는 장군에 대한 드라마나 나왔습니다.

사람들이 이순신에 미쳤습니다.

왜 그럴까요? 너무나 부하들을 잘 다스리는 장군이었거든요.

임금보다 더 사랑받는 장군이었습니다.

그러니 임금이 시기가 나서 죽이려하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교회에서도 잘 다스린다고 하면 이런 식의 사람을 생각하게 됩니다.

결코 십자가 지신 예수님을 생각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어떻게 다스렸습니까?

 

요한복음 13장을 보게 되면 예수님께서 십자가 지시기 전에 제자들의 발을 씻기십니다.

그러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14절에서 “내가 주와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고 하십니다.

이런 식으로 예수님이 교회를 다스렸습니다.

이런 말씀을 예수님이 하시니 교회에서 쇼를 합니다. 목사들이 장로나, 성도들의 발을 씻어 줍니다.

아니면 장로들이 그렇게 합니다.

 

제가 대학생들을 가르칠 때 이런 것을 해 보았습니다. 하나의 오락이지요.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13장에서 하신 말씀은 이런 의미가 아닙니다.

말씀으로 섬기는 것이지요.

 

사도행전을 보세요. 어떻게 교회를 다스립니까?

오직 십자가 복음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십자가 복음만이 죄가 용서 되고 구원이 되기 때문입니다. 발을 씻는 문제가 아닙니다.

지금 디모데 전서 5장17절에서 잘 다스리는 장로라 했을 때에는 행정적으로 행위로 본이 된다는 것이 아닙니다. 이순신처럼 사람들을 잘 통솔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십자가 지신 예수님만이 교회에서 증거되도록 하는 자를 말합니다.

그래서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도 역시 배나 존경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보면서 오늘날 교회는 또 흉내 냅니다. 덩치가 커지니 행정목사를 뽑습니다.

교회행정을 잘하려면 목사를 뽑지 말고 행정을 잘하는 사람을 뽑으면 될 터인데 희한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교회가 무슨 정치집단입니까?

 

성경은 잘 다스리는 장로나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자들을 나누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공통점은 오직 십자가 지신 예수님만이 교회를 통해 증거하도록 하는 데 있습니다.

그러니 잘 다스리는 장로나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자들이 모두가 다 십자가 복음에 사로잡힌 자들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특별히 어떤 사람은 장로로 세움을 받았습니다.

디모데 같은 경우에 그러하지요. 그런데 디모데가 하는 일이 무엇입니까?

십자가 복음을 전하는 일이 아닙니까?

그러면 이제 우리가 어느 정도 어떤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오늘날 이런 잘 다스리는 장로나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자들이 있는가를 따져야 합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제가 보기엔 없습니다.

제 입장이 아니고 주님의 입장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다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장로의 조건을 보셨지요.

3장 1절부터 나오지요,

이런 조건에 부합하는 장로는 없습니다.

돈을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어디 있습니까?

 

그러니 오늘 말씀을 보면서 목사가 장로가 좋아할 일이 아니라 회개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이런 사람이 정녕 없습니까?

주님께서 세워 놓으신 사람이 있습니다.

성도가 이런 사람을 알아보지요.

 

그래서 성도는 이런 사람을 배나 존경할 자로 여기면서 살 것입니다.

성도 또한 마찬가지지요. 본성은 결코 십자가 복음만을 증거하는 자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자기 자신 밖에 모르는 자가 죄인인데 어떻게 예수님만을 전하는 자를 존경하겠습니까?

예수님도 이용해 먹는 죄인들인데.

 

그러니 주님의 영이 아니면 결코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 본문을 보면서 우리의 죄악을 알게 되며, 주님의 영의 역사하심을 보게 됩니다.

주님이 지금도 살아 계셔서 늘 활동하게 계심을 알게 됩니다.

우리는 평소에 누구를 존경합니까? 이순신같은 사람을 존경하지요.

 

스데반은 존경의 대상이 안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복음 전하다고 돌 맞아 죽었거든요.

그러나 이순신은 그렇지 않지요.

 

용감하게 왜군과 싸우다가 죽었잖아요.

이것이 우리의 본성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오늘도 말씀을 통해 다시 한번 우리의 죄를 알게 하시고, 그 은혜를 깨닫게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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