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모데전서

강해12

푸른 섬 2008. 8. 28. 11:26

일꾼과 삯

디모데전서5:18

오늘 본문은 신명기 25:4절에 나오는 말씀을 인용한 말씀입니다.

“곡식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지니라”

이 말씀은 우리가 간단히 알 수 있는 말씀이지요.

 

먹을 곡식을 떠는 소에게 망을 씌우게 되면 어떻겠습니까?

 

그런데 먹을 곡식을 떠는 소에게 망을 씌운다는 것은 어떤 마음을 드러내는 것입니까?

탐욕이지요.

이스라엘 백성은 항상 유월절 정신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자신들 대신 죽은 흠없는 어린양을 생각해야 하는 것이지요.

 

실상 자신들은 곡식을 수확할 입장이 될 수 없는 자들이었습니다.

이미 죽은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긍휼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은 삶의 모든 곳에서 하나님의 긍휼히 담겨 있는 삶이어야 합니다.

실제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곡식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러며 무엇 합니까?.

그들 마음은 오히려 강퍅합니다.

예수님을 어떻게 대하였습니까?

예수님을 거절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긍휼을 바라는 마음이 있는 자들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들이 얼마나 잘 낫는지를 자랑하고 있었습니다.

율법을 자신들이 지킬 수 있는 것이라 여겼던 것입니다.

 

곡식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라는 것은 사람들의 마음이 어떤 마음인가를 확 드러내는 말씀인데, 이스라엘 백성은 회개하기는커녕 손쉽게 그 말씀을 지켜버립니다.

간단한 일이 아닙니까?

오늘 본문은 어떻습니까?

 

역시 곡식 떠는 소를 위해 하시는 말씀입니까?

아니지요. 장로에 대해 하는 말씀입니다.

장로를 곡식 떠는 소에 비유한 것입니다.

 

고린도 전서 9:9-11절을 봅시다.

“모세 율법에 곡식을 밟아 떠는 소에게 망을 씌우지 말라 기록하였으니 하나님께서 어찌 소들을 위하여 염려하심이냐 전혀 우리를 위하여 말씀하심이 아니냐 과연 우리를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밭가는 자는 소망을 가지고 갈며 곡식 떠는 자는 함께 얻을 소망을 가지고 떠는 것이라 우리가 너희에게 신령한 것을 뿌렸은즉 너희 육식의 것을 거두기로 과하다 하겠느냐 ”

 

신령한 것, 즉 말씀으로 잘 다스리고 가르치는 자들은 연보를 받는 것이 당연하다는 말씀입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사례금이지요.

그러면 주님께서 바울을 통해 왜 갑자기 이런 말씀을 하시는 것일까요?

아마 디모데나 그 당시 장로들이나 말씀으로 가르치는 자들이 직업이 없이 교회의 연보로 생활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양심이 있지 않습니까?

괜히 미안한 마음이 있고 말입니다.

이러다 보면 말씀에 전무하여 복음을 전할 수가 없습니다.

 

자꾸 관심이 다른 곳에 가 버립니다.

십자가의 복음에 가는 것이 아니라 연보라는 것에 집착하게 됩니다.

그래서 바울이 일꾼이 그 삯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사역자들이 받는 연보는 마땅하다는 것이지요.

 

자 이렇게 되면 누가 좋아라 하겠습니까?

오늘날 목사들이지요.

그래서 목사들이 헌금설교를 할 때 이런 본문을 갖다 대는 것입니다.

여러분 목사들에게 사례를 주는 것은 마땅합니다.

그런데 과연 오늘 본문이 이것을 옹호해 줍니까?

아니지요.

 

말씀 전하는 자는 오직 주님의 은혜로 살아가는 자입니다.

주님의 은혜로 살아가는 자가 연보에 목숨을 걸 일이 있습니까?

연보를 받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은 주님이 그렇게 먹여 살려 주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긍휼로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10장 10절을 보세요.

“여행을 위하여 주머니나 두벌 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를 가지지 말라 이는 일군이 저 먹을 것 받는 것이 마땅함이니라”

 

제자들은 누구의 일꾼입니까?

주님의 일꾼이지요.

그러니 누가 먹을 것을 주신다는 것입니까?

주님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오늘 본문을 보면서 연보 받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에 초점을 두면 안 됩니다.

주님이 먹여 살리신다고 생각해야 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래서 혹 사역자들이 사례를 받으면 성도들이 주었다 생각하지 말로 주님이 주셨다고 생각하며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제대로 말씀을 전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성도들이 사례를 준다고 생각하면 설교가 성도들 눈치 보는 설교가 되지 않겠습니까?

이제 한 가지만 더 생각해 봅시다.

 

그러면 사역자가 아닌 자들은 이 말씀을 보면서 무슨 생각해야 합니까?

연보를 하는 것이 주님이 하게 하셨다라고 생각해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연보했다고 하면 어떻게 됩니까?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게 되지요.

 

 

이게 오늘날 교회들의 문제점 아닙니까?

교회가 마치 자기 개인의 교회처럼 간주되고 있지 않습니까?

헌금 많이 한 사람이 주인행세 하잖아요.

헌금 적게 한 사람은 찍 소리도 못하고 말입니다.

주님이 다 먹이시고 입히시고 살려 주시는데, 우리들은 자꾸 딴 생각을 합니다.

내가 수고해서 먹고 입고 살수 있다고 말입니다.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입니까?

 

주님께서 특이하게 연보를 하는 자와 그 연보를 받고 생활하는 자를 세우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과연 십자가의 긍휼로 살아가는 자들인가를 물으시고 계십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서 다시 한번 우리가 얼마나 탐욕적인 죄인인가를 알았습니다.

제발 늘 주님의 긍휼로 살아간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고 하루하루를 사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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