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모데전서

강해13

푸른 섬 2008. 8. 28. 11:30

상전과 종

디모데전서6:1-2

예수님을 믿게 되면 그 사람이 과거에 어떤 사람이었든지 십자가 앞에서 죄인으로 드러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공로로 살아가는 자들이 예수님을 믿는 자들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만 보더라도 그렇습니다. 고기잡이 어부에 불과한 자나, 아니면 사람들의 욕을 얻어먹는 마태 같은 사람이 사도가 되어 주님의 복음을 담대히 전합니다.

뿐만 아니지요, 사도바울은 어떻습니까?

 

그는 예수님을 믿는 자를 핍박하는 자였고, 뿐만 아니라 우리가 그렇게 존경하는 스데반 집사님을 죽일 때 증인으로 있었던 사람이 아닙니까?

 

그러니 사람들이 성경을 보면서 매력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공부를 잘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무엇인가 특별한 기술이 있어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예수님만 믿으면 얼마든지 자신도 베드로처럼, 사도바울처럼 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물론 이것에 앞서서 먼저 갖게 되는 생각은 예수님 안에서는 모두가 다 한 형제자매이니 뭐 잘난 사람도 없고, 못난 사람도 없고, 높은 사람도 없고 낮은 사람도 없다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노예제도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바울 당시만 해도 노예제도가 있었고, 우리도 얼마 전까지만 해도 머슴이라고 있지 않습니까?

요즘은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면 직원이 있겠고, 집에 가정부를 두고 있다면 가정부가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습니다.

 

바울 당시 예수님을 믿는 노예들도 많았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어떤 문제가 발생했는고 하면 예수님을 믿고 모두가 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모두가 다 천국 백성인데 이 세상에서 왜 차별이 있어야 하는가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어떤 일이 발생합니까?

주인을 주인대접하지 않게 되지요. 물론 성경에서는 상전이라는 표현을 섰습니다.

 

물론 주인은 주님되신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상전이나 노예나 모두가 다 주인은 예수님입니다.

그러니 당장 생각되는 것이 그래 내가 나의 진정한 주인이신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면 그만이지 왜 이 땅의 상전의 말을 들어야 하나?

이런 생각을 하지 않겠습니까?

 

가만히 생각해 보세요.

물론 상전이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이라면 감히 이런 생각을 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 상전이라는 이런 생각을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상전이 십자가의 긍휼을 알고 있기 때문이요, 은혜를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상전도 자신의 노예의 참 주인이 예수님임을 안다면 자신을 결코 집의 종으로 부려 먹지 못할 것이다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모든 사람이 다 주님의 자녀인데, 내가 이 땅에서 돈 좀 많다고, 사람에게 일을 시키면 그것이 옳은 일이라 여겨집니까?

이것은 누가 보아도 옳지 못한 처사가 아닙니까?

상식적인 이야기지요.

그러니 예수님을 믿는 노예가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어떻게 됩니까?

지금까지의 사회 제도가 무너져 버리지요.

그래서 나온 제도가 무엇입니까?

공산주의가 아닙니까?

 

모두가 다 할 수 있는 만큼 일하고 필요한 만큼 가져 가자는 취지 아닙니까?

여러분 공산주의라고 하면 구소련이나 중국을 생각하기 쉬운데, 사실 공산주의제도를 시행했던 것은 초대교회 때부터 지금까지 수없이 생겼다가 없어져 왔습니다.

너무나 아름다운 제도가 아닙니까?

사람위에 사람이 없고, 사람 밑에 사람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탐욕이라고 주님을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결코 사회 제도를 무너뜨리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럴 것 같으면 제자들이 원했던 제국을 건설하셨을 것입니다.

로마제국을 멸망시키고, 새로운 나라, 가난한 자가 없고, 고통 받는 자가 없는 나라, 노예가 없는 나라를 세우는데 힘을 기울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에 대해 오해하는 것 중에 하나가 이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자세히 들어 보지도 않고 미리 결론을 내려 버립니다.

복음을 안다고 생각하니 이제 상전이 더 이상 상전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물론 자신이 남 밑에서 일하기 싫은 탐욕에서 출발 되었는데.

자신이 상전이 되면 또 다르게 할 것입니다.

복음을 이용하여 더더욱 종을 부려먹을 생각만 할 것입니다.

6장1절에서 종은 상전을 마땅히 공경할 자로 알아라고 합니다.

참 이상하지 않습니까?

 

우리들 생각에는 예수님만 공경의 대상이지 왜 상전을 공경해야 하냐고 반문할 것입니다.

그 이유는 이렇습니다. 하나님의 이름과 교훈이 훼방을 받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십자가이지요.

십자가란 십자가를 이용한 남위에 올라서고, 남을 짓밟기 위해 사용되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을 더욱더 낮추는 것이요, 어느 형편에 처해서든지 십자가의 은혜를 증거하는 자로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며 종이 하나님의 이름을 안다고 했을 때, 예수님을 믿는다고 했을 때, 주인을 공경하지 않으면 어떻게 됩니까?

사람들이 그럴 것입니다. 저 놈 봐라. 십자가 이용해 제 주인을 무시하고 자신의 탐욕대로 하는구나라고 할 것입니다.

 

사실 그렇지요. 왜 자꾸 종이 주인과 같이 되고자 합니까?

여러분들이 왜 돈 많은 사람과 같은 사람이 되려고 합니까?

아니면 건강한 사람처럼 되기를 바랍니까?

왜 부러워합니까?

 

속에 탐욕이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의 능력이 얼마나 큽니까?

종과 상전의 관계에서도 인간의 죄가 꼭꼭 숨어 있는 사실을 샅샅이 들추어냅니다.

2절에 보면 믿는 상전이 있는 자들은 그 상전을 형제라 하여 경히 여기지 말라고 합니다.

이 말씀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얼마든지 믿는 상전을 경히 여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앞서 말씀드렸지만 이제 같은 급인데 내가 상전을 공경할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우리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

“유익을 받는 자들이 믿는 자요 사랑을 받는 자임이니라”

믿는 종이 믿는 상전을 잘 섬기게 되면 결국 형제가 유익을 받게 되는 것이 아닙니까?

그런데 형제라고 잘 섬기지 않으면 결국 누가 손해를 입게 됩니까?

 

형제가 손해를 입게 된다는 것입니다.

좀 이상하지요. 같은 형제인데 꼭 종으로 상전을 잘 섬겨야 합니까라는 반문이 들지 않습니까?

그래서 제가 말씀드린 것입니다.

탐욕을 말입니다.

같은 형제인데 종으로 섬겨야 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라는 생각을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자신의 처지가 억울하다는 것입니다. 은혜인 줄 알아야 하는데.

십자가로 영생을 주셨으면 감사할 일인데 이 일은 별로 감사할 것이 못된다는 것입니다.

당장 내 육신에게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러면 상전은 종을 어떻게 대우해야 합니까?

오늘 본문엔 나오지 않지만 다른 본문에 나옵니다.

 

에베소서6:5-9절을 봅시다.

“종들아 두려워하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하여 눈가림만 하여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처럼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들처럼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여 단 마음으로 섬기기를 주께 하듯하고 사람들에게 하듯하지 말라 이는 각 사람이 무슨 선을 행하든지 종이나 자유하는 자나 주에게 그대로 받을 줄을 앎이니라 상전들아 너희도 저희에게 이와 같이 하고 공갈을 그치라 이는 저희와 너희의 상전이 하늘에 계시고 그에게는 외모로 사람을 취하는 일이 없는 줄 너희가 앎이니라”

종이나 성전이다 모두가 다 주께 하듯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게 어디 쉽습니까?

간단히 생각해 봅시다.

한 가정에 남편과 아내가 있습니다.

 

남편과 아내는 종과 상전의 관계가 아닙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주께 하듯 합니까??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하지 못하잖습니까?

주님의 말씀을 대하면 대할 수로, 또 우리가 살면 살수록 십자가가 더 커질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상전이든 주인이든, 오늘날로 말하면 회사의 사장이든 직장이든, 아니면 남편이든 아내든, 먼저 주께 하듯 한다면 얼마나 아름다운 관계가 되겠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결코 그럴 수 없습니다.

물론 그렇게 하는 것처럼 할 때는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항상 그럴 수 없습니다.

우리는 다시 한번 오늘 말씀을 대하면 우리의 마음을 찢고 주님께 긍휼을 구할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알았습니다.

여러분 주님께 하듯 모든 사람에게 대하려고 애써 보세요. 그러면 십자가가 더욱더 뚜렷이 보일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 하듯 하지 않는 사람은 결코 십자가가 보이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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