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모데전서

강해15

푸른 섬 2008. 8. 28. 11:34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는 성도

디모데전서 6:11-16

주님께서 왜 우리를 부르셨습니까?

성도를 왜 부르셨습니까?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주님의 증인이 되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피로 우리의 죄를 사하시고 우리를 구원하신 이유는 복음의 증인이 되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결코 우리 탐욕을 좇아 살아가는 우리 자신의 증인이 되게 하기 위해 부르신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오늘 본문을 통해 성도가 도대체 어떤 모습으로 이 땅에서 살아가는 지를 말씀해 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3-10절을 보게 되면 다른 복음, 즉 다른 교훈을 좇아 살아가는 자들의 특징을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자들의 관심은 오직 힘이 되는 돈에만 마음이 가 있다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성도는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결코 사람의 사람이 아닙니다. 사람에 의해 움직여지는 존재가 아닙니다.

 

그런데 오늘날 성도라고 하는 자들이 사람에 움직여지는 것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사람의 눈치를 보고, 사람을 의식하며 살아가는 것이지요.

그래서 주님의 복음과 다르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것을 따라 갑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하나님의 사람이다. 그러니 이것들을 피하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오히려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좇으라고 하십니다.

믿음의 선한 싸움을 하라고 하십니다.

성도가 싸워야 하는 것은 돈을 얻기 위해 세상과 싸우는 것이 아닙니다.

 

성도는 오직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선한 싸움을 하는 자입니다.

성도의 관심은 이 땅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땅에 관심을 갖고 살아가고, 이 땅의 것을 얻기 위해 싸움을 벌인다면 결코 영생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물론 영생은 노력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성도는 믿음의 선한 싸움을 하는 자입니다.

도대체 성도가 무엇을 믿습니까?

십자가지신 주님을 믿지 않습니까?

십자가 지신 주님을 믿는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십자가 지신 주 예수 그리스도만이 참소망이라는 것이 아닙니까?

하늘 우편에 계신 그분만이 진짜 소망이라는 것이 아닙니까?

 

그럼 당연히 믿음의 선한 싸움을 하는 것이 정상이지요.

13절을 보면 “만물을 살게 하신 하나님 앞과 본디로 빌라도를 향하여 선한 증거로 증거하신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내가 너를 명하노니”

예수님은 실상 목숨을 취할 권세도 버릴 권세도 있으신 분입니다.

만물을 살리게 하시는 능력이 있으신 분입니다.

그러나 십자가에 달려 돌아 가셨습니다.

자기 백성을 위해 말입니다.

 

성도는 이십 자가 지신 주님 앞에서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뿐만 아닙니다. 주님 되신 예수님이 나타나실 때에 책망 받을 것이 없는 자로 살아가야 하는 자들입니다.

이런 자가 참 믿음의 선한 싸움을 한 성도입니다.

14절을 보면 우리는 또 한번 마음이 움찔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나타나실 때까지 점도 없고 책망 받을 것이 없이 이 명령을 지키라”

명령을 도대체 어떻게 지킵니까? 점도 없고 책망 받을 것이 없을 정도로 주님의 명령을 완벽하게 지키라고 합니다.

이 말씀을 우리 속에 있는 본성과 연결될 때에는 우리는 곧장 율법으로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믿음의 선한 싸움에 관한 것입니다.

행함의 선한 싸움이 아닙니다.

 

영생은 결코 행함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으로 영생이 주어집니다.

이 말은 곧 우리가 구원받고 싶어서 구원받은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구원해 달라고 해서 구원해 주신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직 주님께서 부르셨기 때문에 구원을 받았고 영생을 얻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당연히 믿음의 선한싸움을 하는 것이지 행함의 싸움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선한 싸움은 끝이 없는 싸움이 아닙니다.

끝이 있는 싸움입니다.

 

이미 약속하신 그 약속의 때가 되면 주님 되신 예수님이 다시 오신다는 것입니다.

이 약속은 인간이 한 약속이 아닙니다.

복되신 하나님, 홀로 한분이신 능하신 분,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이신 분이 하신 약속입니다.

오직 이분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습니다.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고 아무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 없는 자시니 그에게 존귀와 영원한 능력을 돌릴 지어다 아멘.

 

이런 분이 우리를 부르시고 믿음의 선한 싸움을 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니 성도가 얼마나 든든합니까?

그러니 사람의 눈치를 보고 살아갈 필요가 없습니다.

사람을 의식하면서 살 이유가 없다는 것이지요.

사람을 의식하면 디모데전서 6장3절에 나와 있듯이 다른 교훈을 좇게 됩니다.

돈을 사랑하고 돈을 따라 가게 됩니다. 이것들이 마치 영생을 줄듯이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이런 자는 결코 주님이 다시 오신다는 생각지 못합니다.

만물을 살게 하신 분이, 빌라도를 살게 하시는 분이 빌라도의 신문을 받아야 하시는 이유를 전혀 모르는 것입니다. 아마 주님 되신 예수님께서 빌라도의 심문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는 것을 결코 용납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능력이 있는데 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셔야 합니까?

빌라도와 잘 타협을 해서 좋은 세상 만들면 되지 않습니까 하는 식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 성도는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는 사람들입니다.

성도는 십자가 지신 예수님만 의지하는 자들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 가운데서 계속해서 이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빼면 금방 넘어져 지옥 가게 하는 것들을 의지하는 어리섞은 자가 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모두 십자가 지신 예수님만 더욱더 의지하는 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런 자가 성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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