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 강해

강해42

푸른 섬 2008. 10. 21. 21:39

미치광이 성도

사무엘상 21장10-15

얼마 전에 한국에서 유명한 탤랜트가 자살했습니다.

죽기 전에 그녀가 한 말 중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왜 나만 미워하냐고.

그리고 자살했습니다.


사람들은 이 땅에서 자신이 당연히 대우받고 살아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타인이 자신에 대해서 좀 나쁜 소리를 하면 견디지 못하지요.


이것은 어떤 본성에서 기인하는고 하면 하나님께서 가인의 제사를 받지 않았을때 드러나는 본성입니다.

자신도 나름대로 아벨에 비해 결코 뒤 떨어지지 않는 제사를 드렸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것은 받지 않으시고 아벨의 것만 받으셨다는 사실입니다.


여기에 대해 가인은 살인의 충동을 느낍니다. 제거.

아벨을 제거하는 것이야 말로 나의 이 분함을 제거할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입니다.


실상 제거하고픈 대상은 따로 존재합니다.

누굽니까? 하나님이죠.


제거하고 싶은 것은 하나님인데 하나님은 자신의 손 밖에 있으니 그 대리자를 죽이는 것이야 말로 자신의 분함을 해소하는 것이라 생각한 것입니다.


자신의 존재가치를 무시하고 멸시하고 조롱하는 자는 용서할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마음은 아담의 불순종으로 드러나는 죄인의 본성입니다.


그래서 이 땅의 사람들은 자살이라는 것을 선택합니다.

자신의 힘으로 이길 수 없을 때 자신의 몸을 제거함으로 그 분함과 억울함을 제거해 버리겠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참으로 이런 현상과 너무나 다른 이야기가 나옵니다.

다윗이 미치광이 짓을 하고 있습니다.


다윗이 어떤 사람입니까?

이스라엘의 영웅아닙니까?

골리앗을 죽이고 이스라엘을 구한 영웅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장군이요, 사람들로부터 인정받는 사람입니다.

그런 그가 지금 이방나라로 가서 미친사람 행세합니다.


여러분 , 실컷 부려먹고 지금 쫓겨 다니면서, 이제는 남의 나라에 가서까지 미치광이 흉내를 내야 합니다.

무엇 때문에 그렇습니까?


기름부음받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그렇게 사용하시기 때문에 다윗은 사울왕으로부터 미움을 받아 도망 치게 되었고, 이제는 남의 나라로 가서 살기 위해 미치광이 흉내를 내야 합니다.


조롱을 받아야 하는 입장에 있습니다.


참으로 억울하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자신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기름붓지 않았다면 자신이 이렇게까지 살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물론 이렇게 말하면 그래도 사람들에게 인기도 얻고 장군질도 해 보고 많이 해 봤지 않느냐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면 자살한 그 사람은 좋은 시절이 없었습니까?

있었지요. 그런데 왜 자살합니까? 사람이라는 것이 이런 제한된 삶을 산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다윗은 미치광이 행세를 해야 하는 입장입니다. 그것도 살기 위해서 말입니다.

그 마음이 어떨까요?


하기야 우리들은 워낙 영화나 드라마를 많이 보아서, 미치광이 행세하는 것이 무슨 대수라고 할 것입니다. 암행어사 이몽룡도 거지 행세를 했지 않느냐.


다윗이 나중에 왕이 되어 얼마나 떵떵 거리고 사느냐라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게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를 한번 생각해 봅시다.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살지 알고 있습니까 없습니까?


주님과 함께 천국에서 영원히 살 것입니다.

그렇지 않나요.

영생을 받았습니다.


그러면 현재 우리의 삶에서 갈등과 고민과 고통과 슬픔이 없습니까?

똑 같이 있습니다.


다윗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이 지금 겪는 것은 단순히 자신이 살기 위해 겪는  고난이 아닙니다.

우리야 우리 자신이 살기 위해 갈등, 고민, 고통, 괴로움 속에 살아갑니다마는 다윗이 겪는 고통은 그런 종류가 아닙니다.


기름 부음 받았다는 이유에서 겪는 고난입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예수님을 믿기 때문에, 오직 이것 하나 때문에 고난받는다는 말입니다.

미치광이 행세도 해야하고, 거지 행세도 해야 하고, 율법을 무시하는 놈이라는 말도 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복받은 사람입니다.


사람들이 분을 내고, 화를 내고, 자살하고픈 충동, 살인하고픈 충동을 갖게 되는 것은 오직 한가지 이유에서입니다.


누구를 위해 살아야 하는지를 몰라서 그렇습니다.


인간은 누구를 위해 살아야 합니까?

예수님입니다. 


이 땅의 인간은 오직 예수님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 예수님이 없으면,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인간들은 누구를 위해 살까요?

오직 자기 자신을 위해 살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첫째 아담안에 있는 인생들의 꼬라지입니다.

이 꼴안에서 벗어날 인간 아무도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들 앞에서 미치광이 행세하며 사는 것은 자살하고 싶을 정도의 마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거하든지 스스로 자신을 제거하든지 해버립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어보게되면 바울은 뭐 먹고 살았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도대체 무슨 낙으로 살았지, 이런 생각들지 않습니까?


바울이나 예수님의 제자들은 모두 미친 사람들, 예수쟁이들, 광신도들이 아니고 무엇이냐 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우리들은 그들과 거리를 두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내가 그렇게 살게 되면 이 세상에서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볼것이냐가 두렵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거하죠. 성경말씀의 내용들을 제거합니다.


그래서 마음 속에 남아 있는 것들은 오직 내가 이해되고, 수용되고 인정할 수 있는 것들만 남겨 두려고 합니다.

그래서 성경 안보기 운동을 해 버리는 것이지요.


그러나 성도는 그렇지 않습니다.

어찌되었든지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으려고 합니다.


다윗처럼 예수님을 믿는 그 믿음 때문에, 예수님 이름 때문에 쫓겨 다니기도 하고, 미움받기도 하고, 사람들로부터 무시당하고, 멸시당하고, 미치광이라는 이야기를 들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기를 위해 사는 자입니다.


로마서14장7-9절을 봅시다.

“우리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해 사는 도가 없고 자기를 위해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해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으셨으니 곧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려 하심이니라”

놀랍지 않습니까?

죽은 자와 산 자의 주님이 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산사람이나 죽은 사람이나 무두가 다 주님되신 예수님을 전하게 하기 위해서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것입니다.


그러니 인간들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성도는 그렇지 않습니다.

이런 놀라운 비밀을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성도가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살고 죽어야 하는지를 말입니다.

성도는 오직 살아계신 예수님을 전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니 여러분 제발 나 하나 살려고, 자존심 살리려고 바락바락 살지 마세요.

내가 죽어야 주님이 증거됩니다.


뿐만 아닙니다. 그 죽는 자리에서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또 한번더 무시 당하고 조롱당하는 일이 벌어집니다.


심지어 미친놈이라하여 쳐다 보지도 않는 일이 일어납니다.


성경을 읽어보세요.

바울이 마치 잘 된 것 같습니까?

대다수의 사람들은 바울을 비웃고, 쳐다보지도 않죠.


예수님을 보세요.

어떻습니까?

사람들의 조롱거리고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시지 않았습니까?


이 일을 성도들도 당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 이름 때문에 다윗처럼 쫓겨 다니고, 미치광이 행세를 하는 입장에 우리들이 처했으면 합니다.

복음 전하면서, 기도하면서, 헌금하면서, 성경보면서 이런 소리를 듣는 주님의 백성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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