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 하

강해18

푸른 섬 2009. 7. 19. 16:28

암논이 여기 있네

사무엘하13장1-22

제가 설교를 준비하면서 참으로 고민이 많습니다.

왜 그런고 하면 그냥 우리 인간의 본성대로 성경을 읽고 해석하여 여러분들에게 말씀드리면 편할 텐데 그렇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오늘 같은 본문 경우에도 이렇게 설교하면 참으로 쉬울 것입니다.

다윗의 부주의로 인해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징계라고 말입니다.


그러니 우리들은 다윗처럼 되며 안됩니다. 바짝 정신을 차리고 다윗처럼 그런 실수, 잘못을 범하지 마세요. 그래야만 우리가 이런 일 당하는 것을 피할 수 있습니다.


얼마나 참혹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앞으로도 나단 선지자의 말대로 더 참혹한 일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의 출발점이 무엇입니까?

바로 다윗의 행동입니다.


다윗의 행위, 그 행동으로 인해 지금 자식들에게서 이런 엄청난 일이 벌어지고, 자식끼리 죽이고,  자식의 반란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 우리가 실수가 많고, 부족한 점이 많으니 열심히 기도하고 간구하며, 말씀을 열심히 묵상하여 이런 일을 피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자신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 지 모릅니다.


이렇게 설교하면 얼마나 편합니까?

물론 여러분들은 편하게 들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두려움 속으로 빨려 들어가기 때문이죠.


혹 나의 행위로 인해 내 자녀에게, 내 남편에게, 내 아내에게, 내 사업체에, 내 교회에 무슨 문제가 생기면 어떻게 하나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방법은 있죠.

정신을 바짝차리고 기도하며, 매일 아침마다 성경 묵상하고 , 기도하며, 가정예배도 드리고, 수요예비도 빠지지 않고, 새벽기도도 빠지지 않고, 주일날, 주일 오후, 저녁예배도 빠지지 않고 , 교회 봉사도 열심히 함으로 이런 일을 피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물론 피하지 못하더라도 다른 방법이 있죠.

돈으로 해결하는 것입니다.


요즘 사회적 문제도 돈이면 다 해결되는 시대 아닙니까?


그래서 부족한 행위를 결정적으로 매꿀 수 있는 것은 바로 헌금아닙니까?

왕창 하나님께 드림으로 말미암아 자신행위의 문제를 다 덮을 수 있습니다.

목사가 열심히 이런 것을 조장합니다.


물론 성도 자신의 마음속에 이런 맘이 기본적으로 깔려 있습니다.

목사가 방법을 제시하고 성도가 화답하는 것입니다.


죽이 맞습니다.

그러니 오늘같은 본문을 보게 되면 어떻게 결론을 내리겠습니까?


바쳐라라고 결론 내릴 수 있겠죠.

물론 이런 일이 닥치지 않게 행위를 조심하라고 명령합니다.


아니면 암논처럼 하면 하면 안된다고 가르칩니다.

어디 감히 근친 상간을 꿈꾸느냐고 말입니다.


여러분 절대 그러시면 안됩니다라고 하든지,

아니면, 좋아 했으면 책임을 져야지 왜 오히려 이전보다 더 미워하여 압살롬의 미움을 싸게 하느냐라고 말입니다.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 서리가 내리는 것이 아니라 오빠가 한을 품으니 살인이 일어납니다.

그러니 여러분 사람들에게 한을 품게 하는 일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되면 계속해서 설교가 어떻게 됩니까?

윤리 설교가 됩니다.

아니면 세상 사랑 설교가 되죠.


윤리 이상의 설교가 나올 수가 없습니다.


물론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삶. 코람데오라는 말이 있는데,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삶이면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우리아의 아내를 범하고 우리아를 죽인 다윗처럼 살수 있습니까?

아니면 자신의 이복 여동생이 맘에 들어 강제로 범하는 죄를 저질럴 수 있습니까?


아니면 자신의 여동생이 억울한 일을 당했다고 그 원수를 친히 갚을 수 있겠습니까?


완전히 도인을 만듭니다.

그렇지 않나요.


사실 이런 사람이 교회에서 인정받죠.


그저께 이런 설교를 우연히 듣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우리 마음대로 살아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이 지시하시는대로 살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 말씀을 임의대로 사용하여 자신이 편한대로 해석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하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말씀이 원하는 대로 살아야 합니다.


얼마마 멋진 말입니까?

틀린 말이 있습니까?

문제되는 것이 있습니까?


그냥 보면 문제되는 것이 전혀 없습니다.

그런데 다 문제죠.


왜냐하면 하나님 말씀대로 산다는데 어떻게 사는 것이 하나님 말씀대로 산다는 것이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니 이 런 설교를 듣는 사람은 어떤 식으로 이 설교를 이해하고 받아 들일까요?

뻔하죠?


다 자신이 처한 상황에 맞추어 하나님 말씀을 자신의 입맛에 맞게 해석하여 적용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대입시험을 준비하는 아들이 있다면 대학 입학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 생각하여 기도하고 난리 법석을 떨지 않겠습니까?


아니면 사업이 망해가면 어떻게 됩니까? 사업 망하는 것이 주의 뜻이 아니라는 사람은 어떻게 기도할까요?


아니면 사업이 망했다라고 하면 또 어떻게 해석할까요?

다 주의 뜻이 있어서 그렇게 하셨겠죠. 이렇게 말합니다.


얼마나 믿음이 좋아 보입니까?

말에 문제가 없죠.


그런데 문제가 무엇입니까?

주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뜻은 오직 한가지입니다.

우리가 사나 죽으나 망하나 망하지 않으나, 대학에 들어가나 들어가지 않으나 주님의 뜻은 결정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주되심, 십자가 지신 예수님이 주님되심을 증거하게 하시는 것이지요.

이런 매 순간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방금 전에 말씀드린 그런 사람들은 십자가의 은혜를 만나는 것이  주님의 뜻이 아니라 더 나은 환경, 더 나은 사업체, 더 좋은 학교를 하나님의 뜻으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사실 교회에서도 이런 사람들이 환영을 받지 않습니까?

십자가의 은혜로 산다고 말해 보세요.


그러면 뭐라고 하는지 아십니까?

말장난 하지 말라고 합니다.


행위를 보이라는 것이지요.

결과물을 보이라는 것이지요.


믿음은 눈꼽만큼도 찾을수 없습니다.


믿음이란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한 믿음입니다.

그런데 이런 자들의 믿음은 도인의 삶, 세상 누구나 보기에 인정할 만한 삶, 환경에 놓여지게 되는 것을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 들입니다.


그러니 암논의 행동은 지탄 받아 마땅한 행위로만 보여 질 뿐입니다.

이 속에서 예수님께서 왜 십자가를 지셔야 하셨는지를 못 봅니다.


이들 눈에는 이런 사건을 덮기에 급급할 뿐이지요.


그러나 주님은 암논의 행위를 이곳에 고스란이 기록해 두셔놓고 십자가 사건이 왜 일어나야 하는 지를 말씀해 주고 계십니다.


우리가 암논보다 나은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오히려 우리는 가해자죠.


예수님을 우리가 어떻게 대하고 살아갑니까?

과연 암논이 다말에게 대한 것 보다 낫습니까?


물론 구원해 준다고 하니 예수님을 믿긴 믿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루 하루를 살 때 예수님을 어떻게 대합니까?


예수님이 어찌 그리 밉습니까?

예수님을 수도없이 죽이지 않습니까?


앞서 그런 설교를 하는 목사들 한번 보세요.

십자가를 완전히 무로 돌리지 않습니까?


암논이 나쁜짓 한 것보다 더 나쁘지 않습니까?

십자가의 피를 얼마나  조롱합니까?


여러분 성도란 항상 십자가에서 피흘리신 주님을 마주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삶이 성도의 삶입니다.


그러나 마귀는 주님의 피흘리심을 끊임없이 없애는 일을 합니다.

그래서 윤리적 설교가 나오고, 도인이 나오고 근사함이 나옵니다.

사람들의 존경이 나옵니다.


성도는 예수님의 피를 자랑스러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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