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

사사기강해 25 단지파

푸른 섬 2012. 6. 17. 13:36

단지파

사사기18장1-31

본문을 살펴 보기 전에 먼저 로마서5장12-14절을 봅시다.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죄가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기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에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 위에도 사망이 왕노릇 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표상이라”

율법은 모세를 통해 주셨습니다. 따라서 모세전에는 율법이 없었습니다.

이게 제 이야기가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만일 율법이 없다면 죄가 있습니까 없습니다.

율법이 없으면 죄가 없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법이 없으면 법을 범하는 것이 없습니다. 법이 있어야 법을 범한 죄를 말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 인간들의 생각이지요. 그런데 성경은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율법이 없을 때에는 죄를 범하지 않았다고 합니까? 죄가 없다고 합니까?

아니지요. 죄를 죄로 여기지 않았다고 합니다. 죄를 죄로 여기지 않았다는 말 속에 죄가 있다는 말을 포함하고 있지요. 단지 율법이 없을 때에는 죄는 있는데 그 죄를 죄로 말할 기준이 없었다는 말이 됩니다.

그래서 성경은 율법이 없던 시절에도 너희들이 죄인이라는 증거물을 제시합니다. 바로 사망이 왕노릇했다는 사실입니다. 14절을 보면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 위에도 사망이 왕노릇했다고 합니다.

아담의 범죄가 무엇입니까? 불순종이지요. 선악과를 따먹었잖아요. 아담 이후에는 선악과를 따먹었습니까 따먹지 않았습니까? 선악과를 따먹지 않았지요. 그런데 이들 위해도 여전히 사망이 왕노릇했습니다.

이 말씀의 뜻은 곧 아담이후 모든 사람들은 첫째 아담의 확산입니다. 즉 사망이 아담의 후손위에 왕노릇하는 것을 볼때 이들은 아담과 똑 같이 불순종 가운데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자신들이 아무리 선악가를 따먹지 않았다고 해도, 난 불순종하지 않았다고 우겨도 사망이 왕노릇 하는 이상 모두가 다 죄인이라는 말입니다. 사망이 왕노릇한다는 말은 죄가 왕노릇한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로마서 5장에 나온 이 말씀에 의하면 율법 없는 시대를 살던 율법 있는 시대를 살든 모두가 다 죄의 종노릇하는 자들입니다. 사망이 이들위에 왕노릇합니다.

사사기 본문으로 들어가기 전에 로마서 5장을 말씀 드린 이유는 오늘 본문 말씀도 여전히 오늘을 사는 우리에 대한 말씀이라는 사실입니다. 물론 성도에게만 오늘 말씀이 들려지겠지만 말입니다.

아담 한사람을 길게 늘여뜨려 놓은 것이 역사입니다.

그러니 오늘 본문에 나오는 단 지파의 경우에도 역시 첫째아담의 역사로 보시면 됩니다.

그런데 우리들이 먼저 생각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이들은 누구입니까?

이스라엘 열두지파중 한 지파라는 사실입니다.

이스라엘은 어떻게 만들어졌습니까? 유월절 어린양의 피로 애굽을 심판하시고 만든 자들입니다.

이들은 출발점은 애굽 사람들과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뿐만아니라 가나안 족속들과도 근본이 다릅니다.

이들은 유월절 어린양의 피로 구원받았을 뿐만 아니라 율법도 받은 자들입니다. 하늘에 있는 성전의 모형도 받은 자들이지요. 그러니 이들은 우리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소위 보통 사람들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들의 삶의 모습을 보면 어떻습니까?

지난 두 주간은 미가개인 가정이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단지파가 어떻게 집단적으로 행동하는지를 살펴 봅시다.

꼭 기억하세요. 이들이 어떤 자들이다. 유월절 어린양의 피로 구원받은 자들이요 율법을 받은 자요, 성막도 실로에 있는 자들이라는 사실입니다.

18잘1절을 보면 그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고 단 지파를 그 때에 거주할 기업의 땅을 구하는 중이었으니 이는 그들이 이스라엘 지파 중에서 그 때까지 그들의 기업을 분배 받지 못하였음이라

분명 여호수아 때에 땅은 모두 분배되었습니다.

여호수아19장40-46절을 한번 찾아 봅시다.

“일곱째로 단자손의 지파를 위하여 그 가족대로 제비를 뽑았으니 그 기업의 지경은 소라와 에스다올과 이르세메스와 사알랍빈과 아얄론과 이들라와 엘론과 딤나와 에그론과 엘드게와 깁브돈과 바알랏과 여훗과 브네브락과 가드림몬과 메얄곤과 락곤과 욥바 맞은 편 경계가지라”

이 지역이 단지파과 여호수아로부터 제비뽑아 기업으로 분배받은 땅입니다.

물론 47절에 “ 그런데 단 자손의 지경이 더욱 확장되었으니 이는 단 자손이 올라가서 레센을 쳐서 취하여 칼날로 치고 그것을 얻더 거기 거하였음이라 그 조상 단의 이름을 따라서 레센을 단이라 하였더라”

여기에서 나오는 레센은 곧 라이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지명이름입니다.

따라서 여호수아는 오늘 본문 사건 이후에 기록되었다고 볼수 있지요.

중요한 사실은 왜 아직까지 단지파가 기업을 분배받지 못했느냐는 말입니다.

표현이 재미있지요. 기업을 분배받지 못했다. 꼭 누구 탓 때문에 기업을 얻지 못했다고 말씀하는 것 같지요.

여호수아가 이미 제비뽑아 땅을 나누어 주었는데 왜 아직 까지 기업을 얻지 못했을까요?

이들이 차지해야 할 땅은 누가 사는 곳입니까?

삼손할 때 나온 지명이 나오지요. 소라.

사사기13장2절에 나오지요. 소리 땅에 단 지파의 가족 중에 마노아라 이름하는 자가 있더라

마노아는 삼손의 아버지입니다.

삼손이 누구로부터 이스라엘을 구원한다고 합니까? 블레셋이지요.

그렇습니다.

블레셋 족속이 단지파가 기업으로 받은 땅을 강하게 영향을 미치고 있었습니다.

삼손이 죽은 후 시간이 좀 흘렀는지 단 지파는 블레셋이 두려워 거할 곳을 찾아 헤메는 중입니다.

사사기1장 34절을 보면 아모리 자손이 단 자손을 산지로 쫓아들이고 골짜기에 내려 오기를 용납지 않았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을 볼때 단 지파는 블레셋과 아모리족속의 힘에 의해 기업을 얻지 못한 것입니다.

분명 이들을 모두 진멸하는 것이 이들이 해야 할 일인데 이들은 여호와의 말씀을 믿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힘을 두려워했습니다.

여호수아13장3절을 보면 블레셋 땅도 이스라엘백성이 얻어야 할 땅임을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역대하18장1절을 보면 다윗왕이 블레셋을 쳐서 항복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들 단 지파는 여호와께서 주신 땅은 버려두고 다른 땅을 찾아 나섰습니다. 손쉽게 얻을 수 있는 땅이 없는가?

여호와 하나님이 말씀보다 자신들의 판단을 믿겠다는 것입니다.

물론 여호수아19장47절에서는 이런 행동을 긍정적으로 표현했습니다 마는 그것은 다르게 보아야 부분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보면 이들이 라이스 땅을 차지한 것은 분명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불순종의 모습니다.

자 그러면 구체적인 내용으로 들어가 봅시다.

2절입니다. 용맹스런 다섯 사람의 정탐꾼을 보냈습니다.

왜 이들은 자신들이 받은 땅에 대해서 이런 식으로 하지 않았을까요?

아모리와 블레셋에 대해서 이렇게 했으면 좋았을 텐데.

이들은 에브라임산지 미가의 집에 유숙하게되었습니다. 왜 하필 미가 집인지 설명이 나와 있지 않습니다.

중요한 사실은 이들이 미가 집에 있는 레위소년의 음성을 알아 들었다는 사실입니다.

경상도 사람이 말하면 금방 알아 차리지요. 아니면 전라도 사람이 말하든지.

레위소년의 출신이 어디입니까? 유다땅 베들레헴 아닙니까?

그러니 말투도 에브라임사람 말투가 아닌것이 금방 드러났겠지요.

중요한 사실은 그가 제사장이라는 사실입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제사장 목소리가 독특했던 모양입니다. 오늘날도 목사들 목소리가 그렇잖아요.

목소리 쫘 깔고. 중요한 것은 단지파 정탐꾼의 호기심을 사기에 충분했다는 사실입니다.

질문을 볼까요?

누가 너를 이리로 인도하였으며 네가 여기서 무엇을 하며 여기서 무엇을 얻었느냐?

이미 미가 집의 형편이 어떤지를 알았을 것이 아닙니까?

부잣집 제사장. 뭔가 느낌이 오지요.

레위소년이 대답합니다. 미가가 여차여차히 나를 대접하여 나를 고빙하여 나로 자기 제사장을 삼았느니라

표현이 재미 있지요.

자기를 대접하여 자기를 고용해서 지금 자기 제사장으로 삼았다고 자랑스럽게 말합니다.

미가집 생활이 짭짭한 모양입니다.

그러자 정탐꾼이 레위소년에게 요청합니다. 우리를 위해 하나님께 물어보아 우리의 행하는 길이 형통할 지 우리에게 알게 하라고 합니다.

그 제사장이 평안히 가라 너희의 행하는 길은 여호와 앞에 있느니라

여호와께서 앞길 환하게 열어주신다는 말입니다.

묻자 말자 답이 나왔지요.

레위소년이 뭐 알아서 이렇게 말했겠습니까?

제사장 역할을 충실히 했을 뿐이지요. 무당역할말입니다. 오늘날 목사들같지 않습니까?

그는 그들이 원하는 답을 해 주었을 뿐입니다.

그런데 이게 왠일입니다. 라이스에 이르러 보니 백성들이 염려없이 거하고 시돈 사람같이 한가하고 평안했습니다. 그 땅에는 권세 잡은 자가 없어서 무슨 일에든지 괴롭게 함이 없고 시돈 사람과 거리가 멀어 아무사람과도 상종하지 아니함이라.

한마디로 말하면 뺏앗아 살기 좋은 땅이라는 말입니다.

정말 레위소년의 말처럼 되어 버렸네요.

그러면 그다음 단계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정탐 보고를 합니다.

“일어나서 그들을 치러 올라가자 우리가 그 땅을 을 본즉 매우 좋더라 너희는 가만히 있느냐 나아가서 그 땅 얻기를 게을리 말라 너희가 가면 편안한 백성을 만날 것이요 그 땅은 넓고 그곳에는 세상에 있는 것이 하나도 부족함이 없느니라 하나님이 너희 손에 붙이셨느니라”

마치 민수기13,14장에 여리고를 정탐하고 돌아온 갈렙의 보고와 흡사하지 않습니까?

오직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 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 밥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 말라 (14:9)

내용의 의미가 거의 동일하지요.

단지파 육백명이 병기를 갖고 출발합니다.

기드온의 삼백용사가 생각나지요. 나름대로 최선을 다합니다.

그런데 라이스를 치기 전에 먼저 들러야 할 곳이 있지요.

에브라임산지 미가의 집입니다.

이유는 간단하지요. 에봇, 드라빔, 새긴 신상, 부어 만든 신상을 빼앗으려고 합니다.

그러자 제사장이 묻지요. 그러자 그 입 다물라 라고 하지요.

우리와 함께 가서 우리의 아비와 제사장이 되라 네가 한 사람의 집의 제사장이 되는 것과 이스라엘 한 지파, 한 가족의 제사장이 되는 것이 어는 것이 낫겠느냐

괴가 솔깃한 제의아닙니까?

쥐꼬리 만한 사례 받기 보다 몫돈 나오는 것으로.

제사장이 마음에 기뻐하여 자기가 직접 챙깁니다. 에봇, 드라빔, 새긴우상을 .

돈되는 곳이면 어디든가 가겠다는 마음아닙니까?

아골골짝 빈들에도 .

돈만 많이 준다면 당신들이 원하는 설교, 제사, 예배 얼마든지 드리려 주겠다는 것이지요. 물론 기도가 빠지면

안되겠지요.

그러자 미가가 가만히 있겠습니까?

내것 내 놓아라 하겠지요. 그런데 어찌합니까?

힘이 딸리는데.

나의 피땀으로 만든 신상과 에봇, 그리고 나의 제사장을 왜 빼앗아가느냐 돌려 달라는 것이지요.

결국 살기 위해 자신의 소중한 것을 접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은 레위소년 제사장의 말대로 라이스를 쉽게 차지했다는 사실입니다.

27-28절을 봅시다.

“단 자손이 미가의 지은 것과 그 제사장을 취하고 라이스에 이르러 한가하고 평안한 백성을 만나 칼날로 그들을 치며 불로 그 성읍을 사르되 그들을 구원할 자가 없었으니 그 성읍이 베드르홉 가까운 골짜기에 있어서 시돈과 상거가 멀고 상종하는 사람도 없음이었더라 단 자손이 성읍을 중건하고 거기 거하며”

시돈 지배하에 있었는데 워낙 거리가 머니 영향력에서 벗어나 있었던 모양입니다.

이곳 이름도 바꿉니다. 단이라고

이정도 되면 드라빔과 에봇, 새겨만든우상, 부어만든 우상, 제사장은 어떤 대우를 받겠습니까?

보지 않았도 듣지 않아도 뻔하지 않겠습니까?

30절을 봅시다.

“단 자손이 자기를 위하여 그 새긴 신상을 세웠고 모세의 손자 게르손의 아들 요나단과 그 자손은 단 지파의 제사장이 되어 이 백성이 사로잡히는 날까지 이르렀더라”

레위소년 제사장은 어디로 갔을까요?

단 지파를 한수 더 높은 제사장을 고용합니다.

모세의 손자 게르손의 아들 요나단과 그 자손으로 단지파의 제사장을 삼았습니다.

본래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아론과 아론의 아들들 나답과 아비후와 엘르아살과 이다말이 제사장 직분을 행하라고 하셨습니다. 사사기20장28절을 보면 벧엘에 언약궤가 있는데 그곳에서 아론의 손자인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가 제사장으로 섬기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모세가 누굽니까? 아론의 형이지요. 그렇다면 그 직계 자손이 자신들의 제사장이 되어 자신들을 위해 기도해주고, 예배드려주고, 제사 지내 준다면 그 효과가 어느 정도일까요?

31절을 보면 하나님의 집이 분명 실로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가의 지은바 새긴 신상이 단 자손에게 있었더라고 말씀합니다.

이들의 관심은 오로지 축복축복밖에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 개인만이 그런 것이 아니라 이제는 단지파 전체가 단체행동을 하고 있지요.

이 단체 행동이 나중엔 이스라엘 전체로 확산됩니다.

제가 설교를 시작하면서 로마서 5장을 말씀드렸습니다.

첫째 아담안에서 산다는 것은 곧 사망이 왕노릇하는 세계속에 사는 것입니다.

죄의 종으로 사는 것입니다.

지금 단지파는 이스라엘백성가운데 한 지파로서 율법을 받은 상태에서 어떤모습의 죄인으로 드러나는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방인들은 율법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죄가 없는 것이 아닙니다. 사망이 왕노릇하기 때문이지요.

유월절 어린양의 피로 구원 얻고 율법을 받은 이스라엘 단 지파가 어떻게 살아가는가를 통해 아담안에 있는 자들에게는 신앙의 경험이라는 것이 무용지물임을 알려 주십니다.

예레미아31장31-34절을 봅시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맺으리라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조상들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맺은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의 내 언약을 깨뜨렸음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러나 그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들의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르쳐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알기 때문이라 내가 그들의 악행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요한복음19장30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고 영혼이 떠나가시니라 라고 말씀합니다.

요한복음5장39절을 보면 성경은 예수님에 대해 증거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16장14절을 보면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겠음이라” 예수님께서 보혜사를 보내주신다고 하셨습니다(요16:7). 그 보혜사는 곧 성령입니다.

성령님은 오직 예수님의 것을 가지고 오셔서 예수님을 전합니다.

성경이 예수님을 전한다고 하셨지요. 그렇다면 성령께서는 성경말씀을 통해 예수님을 전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중요한 것은 성령이 어디가운데 옵니까? 제자들 가운데, 예수님께서 선택한 자들 가운데 오게 되지요.

이것이 예레미라31장 말씀의 성취입니다.

성령받은 자는 말씀이 이미 그 사람속에 다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요한 일서 2장27절을 봅시다.

“너희는 주께 받은 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안에 거하라”

성령이 성도 안에 있기 때문에 어느 누구의 가르침에 의해 가르침을 받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주님께서 친히 가르치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을 보는 우리들은 예수님께서 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면서 다 이루었다라고 하셨는지를 확인하는 말씀입니다.

왜 옛언약은 안되고 예수님의 피로 이룬 새언약이어야 하는 지를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말씀을 보니 우리속에 단지파가 행하는 행동들이 담겨 있어요.

그게 자연스럽게 받아드려집니다.

그래서 성도는 십자가만 자랑할 수밖에 없어요.

성령께서는 성도들을 언제나 십자가 지신 예수님께로 인도합니다.

단지파는 지금 단지파를 전하면서 살아요.

그러나 주님께서는 이들의 행동을 통해 십자가를 전하셨습니다.

로마서 5장20절을 봅시다.

“율법이 들어 온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이는 죄가 사망안에서 왕노릇 한 것 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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