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

사사기 강해 26

푸른 섬 2012. 6. 24. 23:59

                                 소돔과 베냐민지파

사사기19장1-26

1절을 봅시다.

이스라엘 왕이 없을 그때에 에브라임 산지 구석에 거류하는 어떤 레위 사람이 유다 베들레헴에서 첩을 맞이하였더니 라고 합니다.

이스라엘 왕은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계시지 않을 때가 한 번도 없었지요.

따라서 왕이 없을 그 때에라는 말은 왕이신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불순종한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보기엔 레위인이 첩을 취하였으니 문제 삼을 수 있겠지요.

그러나 신명기21장15절을 보면 첩을 취한 것을 여호와 하나님께서 문제 삼으시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이 두 아내를 두었는데 하나는 사랑을 받고 하나는 미움을 받다가 그 사랑을 받는 자와 미움을 받는 자가 둘 다 아들을 낳았다 하자 그 미움을 받는 자의 아들이 장자이면 자기의 소유를 그의 아들들에게 기업으로 나누는 날에 그 사랑을 받는 자의 아들을 장자로 삼아 참 장자 곧 이움을 받는 자의 아들보다 앞세우지 말고”

여호와 하나님께서 문제를 삼으시는 것은 장자를 누구로 삼는가를 문제 삼으시지 왜 두 아내를 취하였느냐를 문제 삼으시지 않으십니다.

왜 그럴까요?

그만큼 악한 죄인들이라는 말입니다.

따라서 레위 사람이 첩을 취했다는 것은 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레위기21장7절을 보면 “그들은 부정한 창녀나 이혼 당한 여인을 취하지 말지니 이는 그가 여호와 하나님께 거룩함이니라”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21장13절을 보면 처녀를 데려다가 아내를 삼아라고 하십니다. 그러나 레위기21장 말씀은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에게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민수기8장19절을 보면 “내가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레위인을 취하여 그들을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주어 그들로 회막에서 이스라엘 자손을 대신하여 봉사하게 하며 또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속죄하게 하였나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성소에 가까이 할 때에 그들 중에 재앙이 없게 하려 하였음이니라”

레위인은 제사장에게 속한 자들입니다. 따라서 레위인들에게도 레위기21장의 율법이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따라서 문제 삼는 것은 이 첩이 행음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율법에 의하면 행음한 여인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죽여야 합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 여인이 왜 행음했느냐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나오지 않지요.

그런데 우리 성경에서는 없지만 대항하여 라는 전치가가 있어요.

남편에 대항하여 행음한 이유가 뭘까요?

남편이 원인을 제공했을까요?

어찌되었든 레위인의 첩이 자기 친정 아버지집인 유다 베들레헴으로 돌아가 버렸습니다. 그리고 넉 달이 지났습니다.

넉달동안 레위인이 무얼 했을까요?

왜 곧장 첩을 데리러 가지 않았을까요? 율법을 두고 고민했을까요?

그 내용을 알수가 없지요. 그러나 넉달후 이 여자를 데리러 갔습니다.

그러니 율법은 멸시합니다. 중요한 것은 자기가 사랑하는 여인이지요. 누굴 보는 것 같습니까? 삼손을 보는 것 같지요.

아주 다정하게, 마음을 돌려놓는 말을 해서 데려 오려고 처갓집에 갔지요.

삼일동안 아주 융숭한 대접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떠나려고 했지만 장인의 간청으로 하루 더 머물게 되었고, 또 하루더 머물게 되었습니다.

다섯쨋 날 드디어 아내를 데리고 자기가 살던 에브라임 산지 구석으로 돌아갑니다.

문제는 여부스에 가까이 갔을 때 즉 예루살렘에 가까지 갔을 때 해가 저물어 가고 있었습니다.

베들레헴에서 여부스까지는 약10 킬로미터 됩니다. 두 시간 정도 걸으면 도착할 수 있는 거리이지요.

베들레헴에서 실로까지는 약42킬로미터 정도랍니다. 그러니 새벽 일찍 출발했으면 충분히 실로까지 도착할 수 있는 거리이지요. 그런데 여부스에 도착할 때 해가 저물어가고 있었으니 베들레헴에서 늦게 출발했겠지요.

그 때 종이 여부스 사람의 이 성읍에 들어가서 유숙하자는 제안을 합니다.

그러자 레위사람이 여부스 땅은 아직 이스라엘 자손에게 속한 땅이 아니니 기브아로 나가가자고 합니다.

기브아나 라마 중 한 곳에 가서 유숙하자고 합니다. 나름대로 경건하지요. 이방인과는 상종을 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나름대로 거룩하게, 구별되게 살려고 노력합니다.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거룩하게 사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에서 기브아까지는 6킬로미터 정도, 라마까지는 9킬로미터 정도랍니다.

드디어 베냐민지파에 속한 땅 기브아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누구하나 그를 집으로 영접하여 유숙하게 하는 자가 없었습니다.

신명기10장18-19절을 봅시다.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정의를 행하시며 나그네를 사랑하여 그에게 떡과 옷을 주시나니 너희는 나그네를 사랑하라 전에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되었음이니라”

베냐민 지파에 속한 기브아 땅에는 이 법을 지키는 인간이 없습니다.

자신들이 나그네 되었을 때에 유월절 어린양의 피로 구원받았음을 잊어 버렸습니다.

그러니 나그네를 영접할 마음이 눈곱만큼도 없습니다.

그런데 누가 이들 일행을 영접합니까?

에브라임산지 사람, 이 사람은 베냐민 지파 사람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에브라임 지파사람인가? 그것은 잘 알수 없어요.

16절을 보면 이 사람을 소개할 때 본래 에브라임 산지 사람으로서 기브아에 거류하는 자요 그 곳 사람들은 베냐민 자손이더라 라고 합니다.

이 말씀을 볼 때에 이 노인도 역시 객, 나그네와 같은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그곳 사람들은 베냐민 자손이더라라는 말씀과 대조하여 설명하는 것을 볼 때 이방인일 가능성도 있지요.

불량배들이 이 노인의 집에 왔을 때 하는 말을 보면 이방인인 것이 분명해 집니다.

그러니 베냐민 지파 사람들은 이방인 나그네 노인보다 더 못한 사람이지요.

레이인은 자신이 여호와의 집으로 가는 중인데 영접하는 자가 없다고 노인에게 말했습니다. 물론 잠만 재워주시면 된다고 했지요. 노인은 기꺼이 영접합니다.

문제는 집에 들어가 마음이 즐거울 때에 기브아에 사는 베냐민 불량배들이 찾아 와서 레위인을 내 놓으라고 합니다. 나쁜 짓 하겠다는 것이지요.

마치 어디를 보는 것 같습니까?

창세기19장을 한번 볼까요?

1절에서 11절을 봅시다.

“저녁때에 그 두 천사가 소돔에 이르니 마침 롯이 소돔 성문에 앉아 있다가 그들을 보고 일어나 영접하고 땅에 엎드려 절하며 이르되 내 주여 돌이켜 종의 집으로 들어와 발을 씻고 주무시고 일찍이 일어나 갈 길을 가소서 그들이 이르되 아니라 우리가 거리에서 밤을 새우리라 롯이 간청하매 그제서야 돌이켜 그 집으로 들어오는지라 롯이 그들을 위하여 식탁을 베풀고 무교병을 구우니 그들이 먹으니라 그들이 눕기 전에 그 성 사람 곧 소돔 백성들이 노소를 막론하고 원근에서 다모여 그 집을 에워싸고 롯을 부르고 그에게 이르되 오늘 밤에 네게 온 사람들이 어디 있느냐 이끌어 내라 우리가 그들을 상관하리라 롯이 문 밖에 무리에게로 나가서 뒤로 문을 닫고 이르되 청하노니 내 형제들아 이런 악을 행하지 말라 내게 남자를 가까이 아니한 두 딸이 있노라 청하건대 내가 그들을 너희에게로 이끌어 내리니 너희 눈에 좋을 대로 그들에게 행하고 이 사람들은 내 집에 들어왔은즉 이 사람들에게 아무 일도 저지르지 말라 그들이 이르되 너는 물러나라 또 이르되 이 자가 들어와서 거류하면서 우리의 법관이 되려 하는도다 이제 우리가 그들보다 너를 더 해하리라 하고 롯을 밀치며 가까이 가서 그 문을 부수려고 하는지라 그 사람들이 손을 내밀어 롯을 집으로 끌어들이고 문을 닫고 문 밖에 무리를 대소를 막론하고 그 눈을 어둡게 하니 그들이 문을 찾느라고 헤매었더라”

이 본문이 무슨내용인지 아시지요.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소돔과 고모라를 불로서 멸하실 것을 말씀하신 후 천사들이 방문하여 확인하는 과정이지요.

지금 이스라엘 백성가운데 이런 똑 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베냐민 지파 사람들이 소돔사람처럼 행동하고 있지요.

오히려 이방인인 노인이 레위인 나그네를 보호하려고 합니다.

롯이 말했던 것과 흡사하게 말을 하지만 베냐민 사람들은 막무가네입니다.

소돔사람들과 똑 같지요.

결국 첩에게 나쁜 짓을 했고 첩이 죽었습니다.

율법을 따르지 않는 레위인의 움직임을 통해 베냐민 지파가 소돔과 같이 악한 자들임을 고발하고 있습니다.

이정도 되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셔야 합니까?

심판하셔야 하지요.

소돔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불로써 심판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베냐민 지파도 불로써 심판 하시든지 어떻게 하셔야 하지 않습니까?

사사기에 불로 사르는 이야기가 많이 나오지요.

정작 불사름을 당해야 하는 자들이 누구입니까? 베냐민 지파입니다. 그런데 왜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심판하시지 않느냐는 말입니다.

여러분 제가 항상 말씀드리지요. 베냐민 지파가 이러하다는 것은 다른 지파도 볼 것 없다는 말입니다.

20-21장을 보면 다른 지파도 똑 같습니다.

오늘 본문이 너무나 충격적이지 않습니까?

유월절 어린양의 피를 경험하였고, 율법을 받은 자들의 삶이 어떻게 소돔과 고모라 같은 삶을 사는가입니다.

이게 상상이 갑니까?

워낙 경건한 사람들이라서 상상이 가지 않습니까?

문제는 왜 이들을 심판하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우리들 마음은 어떻습니까?

이런 나쁜 놈들은 심판해야 하지요. 소돔과 고모라가 불로 심판받았듯이 이런 인간들을 불로서 심판해 버려야 내 속이 시원할 것 같지 않습니까?

오늘날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라면 모두가 이런 생각을 할 것입니다.

이런 놈들은 살려 두지 말아야 한다고 말입니다. 왜 그럴까요?

나는 베냐민 불량배들과 다르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지요.

자신은 십자가의 피로 죄용서 함을 받아 거룩한 삶을 사는 자라고 자부하기 때문이지요.

그러니 이런 자들에게는 오늘 본문에 나오는 레위사람이나 베냐민 불량배는 자신과 상관없는 자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음행한 여인도 그러하고요.

자신은 노인과 같은 자라고 생각해요. 그러니 에브라임 산지 출신의 노인을 이 본문에 배치한 이유를 모르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3장 10절을 봅시다.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에 있나니 기록된바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모든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에 있는 자니라 하였음이라”

레위 사람 한번 보세요. 율법을 편리하게 지키지요. 조금 지킨 레위 사람이나 소돔 사람처럼 행한 베냐민 불량배나 갈라디아서 3장10절 말씀에 의하면 모두가 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입니다.

그런데 레위사람은 아직 그것을 모르지요.

지금 우리는 이미 성령을 받는 입장에서 사사기를 보고 있지요.

그래서 우린 알지요. 그래요. 내가 베냐민 불량배와 같은 죄인이고 레위 사람과 같이 내 편리한대로 말씀을 지키는 자임을 말입니다.

오늘 본문 같은 말씀은 성경에 없으면 좋지 않겠습니까?

이스라엘 백성 중 베냐민 지파가 소돔 사람처럼 살았다.

이게 오늘을 사는 성도에게 무슨 도움이 됩니까? 전도하는데도 도움이 안 되지요.

물론 이렇게 말할 수 있겠지요. 우리는 베냐민 사람처럼, 레위사람처럼 살지 말자고 말입니다.

히브리서에서도 비슷한 말씀을 하시지요. “형제들아 너희는 삼가 혹 너희 중에 누가 믿지 아니하는 악한 마음을 품고 살아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조심할 것이요“히3:12

물론 이 말씀은 그런 뜻이 아니지요.

사람들은 성경이 예수님을 전하고 있음을 믿지 못해요.

십자가 지신 예수님이 주님이심을 성경이 전하고 있음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성경이 예수님을 전한다는 것은 세상모든 것들이 다 십자가 지신 예수님을 전하는 도구들입니다.

그러나 성령을 받지 못한 자들은 마귀의 지배를 받기 때문에 예수님의 주되심을 거부합니다.

그래서 자신이 주의 자리에 꼭 앉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말씀을 주님이 이루심을 믿지 않고 자신이 말씀을 이룰 수 있다고 전하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공로가 있다고 말합니다.

레위 사람과 베냐민 불량자들을 보면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예수님의 피가 고맙고 감사함이 나와야 해요.

이렇게 살았던 자들이 누구를 죽입니까?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입니다.

이러한 삶의 모습들이 예수님의 주되심을 거부하는 행위들입니다.

이런 모습이 죄입니다.

문제는 죄의 기준을 십자가 지신 예수님에 두지 않고 이런 행위에 둔다는 사실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모든 내용들이 십자가 지신 예수님 한분께로 모아져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주님이심이 전파되어야 합니다.

선악과를 따먹은 기준으로 성경을 보니 예수님이 보이지 않고 반성의 태도와 결심의 태도를 보이는 것입니다.

물론 예수님도 언급하지요.

그러나 자신이 주의 자리에 않아 있고 예수님은 자신의 소원을 들어주는 신에 불과합니다.

레위사람이 ,베냐민 지파 불량배들이 왜 이렇게 살아갑니까? 이유는 한가지입니다. 왕이 없기 때문입니다.

성도에겐 왕이 계십니다.

주님이 계십니다.

바로 십자가 지신 예수님입니다.

여러분에겐 어떤 왕이 계십니까? 왕이 있는 자들은 그 왕을 전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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