룻기

룻기강해 9 4장18-22

푸른 섬 2012. 9. 16. 17:33

룻기강해 9 4장18-22

베레스의 계보



음성설교

룻기4장18-22

조금 있으면 추석이 됩니다. 추석은 추수감사절입니다.

이 때 주로 하는 일이 무엇인고 하면 조상을 기리는 것입니다. 조상덕분에 일 년 농사를 잘할 수 있어 감사 제사를 올립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조상 상에 올리는 제물을 햇곡식으로 합니다.

다르게 말하면 사람들은 죽은 조상이 신으로 존재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정성을 다해 조상신을 섬기면 조상신이 자신들을 잘 보호하고 인도해 줄 것이라 생각합니다.

서양선교사들이 복음을 한국 땅에 전했을 때에는 조상에게 제사하는 것을 금지했습니다.

당연히 성경에 근거하여, 우상 숭배하지 말라는 말씀에 따라 복음을 전했지요.

그런데 엄청난 반대에 부딪쳤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조상신을 섬기고 있는데, 제사를 지내지 말라고 하면 자신들의 축복이 날아가게 되잖아요. 또한 저주가 임할지도 모르지요.

그래서 제사를 허용하는 분위기에서 복음이 전파되었습니다. 지금도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 중에 제사를 지내는 사람이 많아요.

제가 대학다닐때 이런 이야기를 들었어요. 제사 음식 만드는 것은 괜찮으냐 괜찮지 않느냐?

아니면 추도예배는 어떤가?

돌아가신 할아버지 할머니, 부모님 돌아가신 날에 가족들이 모여 예배드리는 것은 어떤가?

이 정도에 우리들이 이해할 수 있지 않는가라고 할 것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마음이 없어요.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예수님을 믿지 않고 자기가 처음부터 믿는 것을 믿고 살아갑니다.

시편106편 28절을 보면 “그들이 또 브올의 바알과 연합하여 죽은 자에게 제사한 음식을 먹어서 그 행위로 주를 격노하게 함으로써 재앙이 그들 중에 크게 유행하였도다”

이 사건은 민수기25장에 나오는 사건을 두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우상은 생명이 없는 신입니다. 모압여자들이 자기 신들에게 제사할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청했습니다. 그러자 이스라엘 백성들이 제사한 음식도 먹고 그들의 신들에게 절을 했습니다.

민수기25장에서는 제사음식을 먹고 우상에게 절한 것이 문제가 되었지만 시편106편에서는 제사한 음식을 먹은 자체가 주님을 격노케 한 행위였다고 말씀하십니다.

인간들은 제사음식 먹는 것과 우상에게 절하는 것을 구분하고 싶어 하지요. 무엇을 하든지 자기 행위를 정당화 하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이 우상 제물을 먹었다는 말은 이미 그들이 모압여인들에게 어떻게 보여졌다는 말입니까?

여호와 하나님께 보시는 것과 똑 같다는 말입니다.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세요.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제사음식을 먹은 것을 두고 격노하셨다는 말씀은 곧 이스라엘 백성과 모압백성이 동일화 되었다는 말입니다.

이스라엘 남자와 모압여인이 제사장 아론의 손자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의 창에 동시에 죽임을 당했다는 것을 보면 분명히 알 수 있지요.

인간들은 꼭 이렇게 생각합니다.

제사 음식만 먹었지 그 다음은 단계로 넘어가지 않으면 안 되느냐고 말입니다.

그래서 늘 중간지점을 확보해 두려고 합니다.

그렇게 심하지 않는다면 그것을 죄로 여기지 않겠다는 심보지요.

그런데 민수기25장의 사건을 시편106편에서는 우리들이 이런 생각을 갖지 못하도록 하십니다.

죽은 자에게 제사한 음식을 먹었다는 자체가 이미 브올의 바알과 연합했다는 말입니다.

마태복음 5장27절 이하에서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음속의 음욕은 이미 간음한 것이다라고 말입니다.

이 말씀은 시작을 했다는 자체, 즉 제사음식을 먹었다는 자체가 우상숭배라는 말씀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고린도 전서8장을 보면 우상 제물에 관해 말씀하십니다.

여기에서 우상은 없다고 말합니다. 시편106편 말씀과 동일합니다.

죽었다는 말은 우상은 세상에 아무것도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오직 하나님 한분밖에 없다는 말씀입니다.(고전8:4)

문제는 우상제물을 먹는 나를 보고 믿음이 약한 자가 우상제물을 먹게 되어 결국 멸망당한다고 하십니다.

믿음이 약한 자는 자신이 우상을 섬겼다고 생각하다가 결국 멸망당합니다.

로마서14장22-23절에서는 “네게 있는 믿음을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가지고 있으라 자기가 옳다 하는 바로 자기를 정죄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의심하고 먹는 자는 정죄되었나니 이는 믿음을 따라 하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라 믿음을 따라 하지 아니하는 것은 다 죄니라”

20절에서는 만물이 다 깨끗하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니 우상제물이 되었던 아니든 다 깨끗한 음식이라는 말입니다. 문제는 우상제물이 무엇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우상숭배를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의심한다는 것은 믿음으로 먹는 것이 아니고 믿음이 없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되면 고린도전서8장에 나오는 믿음이 좋다고 우상제물을 먹는 자를 통해 오히려 믿음 없는 자를 가려내는 일이 되어 버립니다.

고린도교회에서는 우상에 대한 습관이 있어 우상의 제물을 알고 먹는 고로 그들의 양심이 약하여지고 더러워지는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믿음 있는 자는 우상이 없기 때문에 우상의 집에 앉아 먹어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이렇게 먹음으로 그는 우상이 없음을 전하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믿음이 약한 자, 즉 예수님을 믿겠다고 나서는 자들이 이것을 볼 때 믿음이 없으면서도 믿음을 흉내 내어 우상제물을 먹는다는 사실입니다. 이렇게 되면 믿음이 없기 때문에 그는 결국 멸망당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것은 말씀을 믿지 않고 자기가 옳다하는 바, 즉 사람이 옳다하는 것이 기준이 되기 때문에 믿음에서 파선합니다.

문제는 성도는 어떻게 사는 가입니다. 성도는 주님의 증인입니다. 그러니 음식 먹는 것도 주님을 전하는 음식 먹음이 되어야 하지요.

그래서 고린도전서10장31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무엇을 하든지 복음의 증인이 되는 자가 성도라는 말씀입니다.

조상제사가 왜 문제가 됩니까?

조상제사를 지낸다는 것은 자신의 죄를 모른다는 말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의 은혜, 즉 십자가 사랑을 모른다는 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죽은 자에게 제사한 것에 대해 주 하나님께서 진노하사 멸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은혜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우상 숭배했다가 문제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상 숭배했다는 것은 곧 자신은 죄인이 아니라는 말이 됩니다. 즉 자신은 복 받을 자격이 있다는 말이지요.

자신은 저주받을 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긍휼이 필요 없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진노하사 멸망시키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사건과 오늘 본문이 무슨 상관이 있을까요?

룻기에 나오는 계보를 보면서 여러분들은 어떤 생각을 합니까?

예수님당시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믿든 조상이 있었습니다. 누구입니까? 아브라함입니다.

얼마나 든든했을까요? 그래서 그들은 자기들 조상을 잘 둔 덕분에 당연히 천국갈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물론 자신들의 정성도 빼놓지 않았고요. 자신들의 열심, 수고, 봉사, 기도, 헌신을 아브라함이라는 조상에 덧붙혀질때 이들은 당연히 영생을 얻을 줄 생각했습니다.

이들은 아브라함을 믿음으로 천국 간다고는 생각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조상 잘 둬서 천국갈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지요.

오늘날 제사지내는 자들과 다르지 않지요. 뭐가 다르지 않습니까?

자신의 죄를 몰라요.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이 룻기 4장18-22절을 몰랐을까요?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면 이들은 룻기4장18-22절을 어떻게 이해했을까요?

자신들은 구원받을 만한 자격이 충분하다는 입장에서 이 본문을 이해했습니다.

이 계보를 보면서 얼마나 뿌듯하게 생각했을까요?

이 계보를 보면서 나는 죄인이다. 나는 죽어야 돼 라고 생각할 사람 있을까요?

베레스는 우리들이 잘 알지요. 유다가 며느리 다말에게서 낳은 아들입니다. 이방여인 다말이지요. 창세기38장에 나오지요.

하나님의 언약에는 관심이 없어 이방여인과 결혼해 살다가 첫째 아들이 죽으니 마지못해 둘째 아들을 며느리에게 주었습니다. 그런데 둘째 아들도 죽으니 이젠 자기 방식을 고수하지요.

이런 상황에서 며느리 다말이 기생분장을 하고 나타나서 시아버지와 동침해 아들을 낳습니다.

그 아들이 베레스입니다. 그러니 베레스라는 이름이 등장하면 이스라엘은 무엇을 생각해야 할까요?

죄를 생각해야겠지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룻기를 보면 이스라엘백성들은 베레스를 아주 자랑스럽게 이야기를 해요.

또 우리들이 아는 이름이 있어요. 보아스입니다. 보아스가 누구인지 아시지요. 룻기에 보면 유력한 자라 해서 믿음 좋고 돈도 많은 사람. 자신을 희생해서 기꺼이 기업을 무를 자로 드러났지요.

그런데 보아스가 누구 아들이지 아세요?

기생라합의 아들입니다.

이것은 마태복음1장에 보면 나옵니다.

정말 놀랍지 않아요?

기생라합은 여리고성 사람이지요. 진멸당해야 하는 자인데 정탐꾼을 숨겨줌으로 구원받았습니다.

그런데 그 많던 이스라엘백성들은 어디가고 지금 기생라합의 아들 보아스가 기업무를자로 등장하느냐 말입니다.

그러니 이스라엘의 죄가 제대로 드러나지요.

그리고 오벳이라는 이름이 나옵니다. 룻이 낳은 아들이지요.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조상들을 나열하시면서 너희들이 얼마나 죄인인지 아느냐를 물으십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가 얼마나 큰지를 아느냐고 물으십니다.

그런데 이스라엘백성들은 자신들이 얼마나 대단하고 훌륭한 민족인지를 자랑합니다.

시편106편6절을 보면 “우리가 우리의 조상들처럼 범죄하여 사악을 행하며 악을 지었나이다”

이것이 스데반 집사가 사도행전7장에서 설교하던 내용입니다.

결국 우리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다는 말을 시편106편에서 미리 앞당겨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기도로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 주님을 찬양하는 자가 되었음을 말씀하십니다.

조상에게 제사를 한다는 자체는 조상을 무엇으로 보겠다는 말입니까? 우상으로 봅니다. 우상으로 본다는 말은 조상이 죄인이라는 말입니까 아니라는 말입니까?

아니라는 말이지요.

하나님의 진노를 받은 자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다. 저주받은 자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조상이 자신을 위해 복 빌어주고 축복을 내려준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이런 자들에겐 십자가의 피가 어떻게 여겨질까요?

십자가의 피도 자기 조상을 위해 흘린 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들에게 소중한 것은 자신의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입니다.

그러니 복음을 전할 생각은 하지 않고 자기부모, 가족의 행복을 꿈꾸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목사들이 왜 강하게 제사문제를 부정하지 않을까요?

오늘날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가정이고, 개인입니다.

복음이 가정을 깨면 안 되지요. 그러면 사람들이 교회오지 않습니다.

복음이 개인을 깨면 안 되지요. 개인을 존중해 주어야지요. 그렇지 않으면 다른 교회가 가든지 다른 종교를 택해버립니다.

그래서 목사는 십자가의 피 앞에 이런 문제를 죄로 고발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합리화 시켜 줄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 주기에 분주합니다.

우리가 이스라엘의 계보를 본다는 것은 우리가 범죄한 자임을 깨닫게 하시고, 오직 십자가의 피가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구원해 주셨음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혈통적으로 이스라엘 백성이 아니지만 영적으로 이스라엘 백성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 나오는 열 명의 조상들은 곧 우리의 조상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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