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강해

고린도전서강해 23

푸른 섬 2015. 1. 21. 23:38

쓰레기 인생

고린도전서410-13

죽음을 이기신 분이 주님이시다고 했을 때 우리가 기대하는 바가 큽니다. 지구상에 사는 어떤 사람도 죽음을 이길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죽음을 이기셨습니다. 그렇다면 그 죽음을 이긴 분이 우리의 주님이라면 그 주님이 우리에게 어떤 대우를 해 주기를 바랍니까?

 

평탄한 길로 인도해 주기를 바랍니다. 물론 어려운 일을 당할 수도 있겠지만 그 어려운 일도 좋은 결과로 나오게 해 주시기를 원하지요.

 

사람들이 드라마를 좋아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마지막은 내가 바라는 대로 결말을 보여줍니다.

 

악한 시어머니는 반드시 벌을 받게 해 줘야 시청자들이 텔레비전 보는 맛이 나지요. 그런데 만일 드라마 마지막 회에도 악한 시어머니는 더욱더 부자가 되고 더 많은 권세와 영광을 얻고 행복하게 살았다고 끝내 보세요.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겠습니까?

 

성경에도 룻이나, 요셉이나 욥 같은 사람들의 삶을 보게 되면 드라마 이야기나 별반 다르지 않아요.

 

십자가 지신 예수님을 믿는다고 했을 때 우리의 몸은 저절로 요셉과 같은 결말을 원합니다. 물론 죽어서도 천국 가는 것은 당연하지요. 중요한 것은 죽기 전에 이 땅에서 좋은 결말을 보고 싶어요.

 

목사가 되더라도 꼭 성공한 목사가 되고 싶어 합니다. 얼마 전에 어떤 목사가 이런 글을 보내 왔어요.

사들 당신들은 다윗과 같은 야전사령관입니다라고 말이에요.

 

무슨 말입니까? 목사들이 지도자라는 말이지요. 뿐만 아니라 다윗처럼 수많은 죽음의 위기를 당해도 주님이 건져 주시고 반드시 목회 성공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예수님께서 찾아오신 후 지금까지도 주리고 목마르며 헐벗고 매 맞고, 정처가 없답니다.

직접 수고하여 일해서 생활비를 충당합니다. 욕을 얻어먹고, 핍박당하고 비방당하고 살고 있답니다.

 

사도바울의 표현이 세상의 더러운 것 즉 쓰레기처럼 살고 있답니다.

 

예수님이 찾아 오셔서 구원해 주셨는데 그 인생이 쓰레기라!

 

여러분은 이런 것을 기대하고 예수님을 믿었습니까? 본인이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절대로 이런 인생을 기대하지 않았을 겁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은 구원은 기본이고 이 땅에서 아주 존귀히 대접받는 인생을 기대할 겁니다.

 

사람들로부터도 인정받는 인생, 절대로 욕 얻어먹지 않는 인생을 기대하지요. 그래서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은 복음을 전하지 않습니다. 물론 복음을 듣지도 않지요.

 

왜냐하면 자기 인생은 고귀하거든요. 자신이 고귀하기 때문에 복음에 접근하기 싫어합니다. 복음에 접근하게 되면 자기 자신이 쓰레기 취급 받는 것을 알아요. 그래서 복음을 듣기도 싫어하고 혹시 복음을 들었다 하더라도 복음을 멀리합니다.

 

나를 귀히 여겨 주어도 내가 믿을까 말까 한데 나를 귀히 여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세상의 웃음거리, 쓰레기로 만들어 버린다니 그런 예수님은 내가 믿을 수 없다는 겁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탈출 했을 때야 좋았지만 결국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광야에서 애굽에서 인도하신 여호와 하나님에 의해 진멸 당했습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그런 여호와 하나님 믿고 싶겠습니까? 믿기 싫지요. 광야에서 진멸시키기 위해 그렇게 개 고생 시켰는가 말입니다.

 

주리고 목마르고 직접 일해서 생활하고, 핍박받고 욕 얻어먹고 그다음은 뭡니까?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사람들이 사도바울을 칭송했더라가 나와야 하잖아요.

 

그런데 쓰레기랍니다. 이건 해도 너무 하잖아요.

구약 이스라엘이 자신들이 쓰레기임을 제대로 보여 주었습니다.

 

그래서 자신들은 치워야 할 쓰레기 진멸되어야 할 쓰레기임을 제대로 보여 주는 기능을 했습니다. 왜 그런 기능을 했을까요? 그래야만 쓰레기 아니라고 우기는 자들이 쓰레기를 보면서 비웃을 거 아닙니까?

왜 심판받아야 마땅한지를 제대로 보여주는 역할을 이스라엘이 했습니다.

 

그래서 십자가 지신 분만이 쓰레기들의 죄를 용서하고 구원해 주셔서 영원한 안식으로 인도하실 유일한 분임을 증거하며, 또한 그분이 심판 주이심을 증거하는 역할을 한 겁니다.

 

그렇다면 사도바울은 저들과 다르지 않습니까라고 우리들이 반박할 수 있잖아요. 사도바울은 예수님이 만나 주셨고 예수님을 위해 많은 수고를 한 사람이잖아요. 오늘 본문에서처럼 예수님을 위해 얼마나 많은 일을 했습니까? 그렇다면 사도바울이 쓰레기 취급당하는 것은 좀 불합리하잖아요.

 

그런데 주님을 사도바울을 쓰레기 취급당하게 하셨어요. 아무 쓸데없는 놈이 되게 만들었어요. 왜 그렇게 하셨습니까? 그것은 이 세상 자체가 복음을 원하지 않는 세상 구조임을 들추어내기 위함입니다.

 

광야 이스라엘의 진멸을 보면서 자신을 도무지 그 속에 들어가지 못하는 자들은 얼마나 자신이 자랑스럽겠습니까? 난 얼마든지 안식에 들어갈 수 있어. 천국에 들어갈 수 있으라고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사도바울은 이렇게 생각하는 자들로부터 쓰레기 취급 받았습니다.

 

세상은 돈이 지배하는 세상이잖아요. 돈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사람에 대한 평가가 달라집니다.

어떤 직장에 다니느냐에 따라 상대가 대하는 태도가 달라집니다.

 

어떤 직장이냐에 따로 돈의 액수가 다릅니다. 그래서 결혼 상대는 돈 많은 사람이나 아니면 돈을 보장하는 직장이나 부모가 있는 사람을 선호하지요.

 

지금은 돈 없으면 쓰레기 취급 받아요. 그런데 복음을 전하는 사도바울도 쓰레기 취급 받았어요. 왜 일까요? 돈이 없어서 일까요? 아닙니다. 돈 안 되는 이야기를 하니 쓰레기 취급 받습니다.

 

이 세상에 살아가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이야기를 하니 쓰레기 취급 받는 겁니다. 조금이라도 쓸모가 있으면 쓰레기 통에 버리지 않습니다.

 

우리 아파트 쓰레기통 주변을 보면 항상 매의 눈으로 응시하는 사람이 있어요. 다른 사람이 쓰레기를 버리고 나면 그 쓰레기에 쓸모 있는 것이 없는가 찾는 거죠.

조금이라도 쓸모가 있다면 쓰레기를 뒤져서라도 끄집어내어 폐품으로 팔수 있어요.

 

그런데 복음을 전하는 사도바울은 조금도 쓸모가 없어요. 사는데 도움이 전혀 안됩니다.

 

여러분 생각엔 어떻습니까?

성경말씀이 사는데 도움이 됩니까?

 

도움이 되려면 우리를 쓰레기 취급하면 안 되잖아요.

쓰레기야 뒤질 것이라도 있지만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라고 하잖아요.

 

그러니 당장 밥을 먹어야 하고 좋은 차도 타야하고 자녀 학교도 좋은 곳에 보내야 하는데 성경 말씀이 무슨 도움이 됩니까? 친구를 만나도 성경은 걸림돌이잖아요.

 

친구끼리 커피마시면서 자녀 교인이야기나 아니면 돈을 어떻게 버는가, 아니면 어디가면 좋은 스타일 나오는 머리를 할 수 있는가 아니면 어떤 화장품이 얼굴에 좋은가 그런 이야기가 쓸모 있잖아요.

 

그런데 복음은 어떻습니까? 쓸데없어요. 공감을 끌어내지를 못합니다.

 

김제동이라는 방송인이 이런 말을 했어요.

밤에 연예인들이 나와서 하는 프로그램을 보면서 자기들끼리만 웃고 즐기는 나라고 말입니다. 자기는 지금 장가도 못하고 노총각으로 혼자 집에 있는데 .

 

복음이 그래요. 지금 장가가는 것이 급하고 시집가는 것이 급하고, 자식 학교 보내고 시집장가 보내는 것이 급하고, 노후자금 준비하는데 급한데 성경 공부할 시간이 어디 있습니까? 주일날 한번 있는 예배드릴 시간도 없는데.

 

사도바울의 인생이 쓰레기 인생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사도바울을 찾아오신 후 그의 인생은 쓰레기 인생이 되어 버렸습니다.

 

예수님이 찾아오시기 전에는 전혀 쓰레기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이 찾아오시기 전에는 자기 자신이 얼마나 훌륭하고 대단하지 모릅니다. 얼마나 가치 있는 인간인지 몰라요. 그런데 예수님이 찾아오시니 그 인생이 똥이었습니다. 그 후 인생도 똥이었습니다.

 

자기 인생이 쓰레기 인생으로 살고 싶은 사람 있겠습니까?

조금이라도 더 가치 있고, 사람들로부터 존경받고 인정받는 인생을 살고 싶은 것이 우리들의 본성입니다. 남들이 나를 어떤 식으로 보는가? 타인의 눈을 무시하고 살 수 있는 사람 있을까요?

 

복음을 받았다. 주님의 사도가 되었다고 했을 때 주변 사람들이 기대하는 바는 상당했을 겁니다. 목사가 된다고 하면 무슨 기대를 할까요?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기대를 할 겁니다.

요즘은 워낙 경쟁률이 치열해서 웬만한 교회에 들어갈 수 없거든요.

 

아주 가까운 사람이 신학교를 간다고 했을 때 전 말렸습니다. 물론 말린다고 가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아버지가 장로님, 어머니가 권사님이신데 그 부모님이 거는 기대가 무엇일까요?

 

언젠가는 자신이 다니는 교회 정도의 목사는 되지 않아도 밥벌이는 하지 않겠느냐는 기대는 하지 않겠습니까?

물론 이정도의 기대는 아니겠지요. 사람들로부터 존경받는 인정받는 목사가 되기를 원할 겁니다.

 

목사가 되면 이제 쓰레기 취급당할 것이다라는 기대를 할 부모가 있겠습니까?

복음이 목사의 인생을 성도의 인생을 쓰레기 취급당하는 인생을 살게 한다는 것을 꿈에도 생각할 수 없을 겁니다.

 

주님이 명명백백하게 말씀하셔도 사람들은 그 말씀이 자신의 말씀이 되지 못합니다. 물론 흉내는 낼 수 있겠지요. 그러나 쓰레기 인생은 흉내 내는 인생이 아니라 복음이 쓰레기 인생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얼마 전 한국 어린이집에서 선생님이 세 살 아이를 강타하는 사건이 일어났어요. 그러자 사람들이 분노합니다. 어떻게 선생님이 어린아이를 때릴 수 있는가 말입니다. 그런데 복음 때문에 매 맞는 것에 대해서는 당연한 걸로 생각해요. 내 아이가 혹시 맞지 않을까에 대해서는 목소리를 높이지만 복음에 대해서는 쓰레기 취급합니다.

 

이건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 자식이 얼마나 소중한지, 복음보다 더 소중해요. 그러니 복음 때문에 내 자신이 쓰레기 취급 받는 것만큼은 없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아주 요령 있는 인간으로 키우려고 하지요. 그래서 복음을 본인도 듣지 않지만 자식들도 듣지 못하게 하는 겁니다.

 

자녀가 복음을 듣게 되면 당장 그곳을 이단이라 해서 그곳에 접근하지도 못하게 합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목사들이 외치는 설교는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복음이 아니라 사람을 기쁘게 하는 복음만이 외쳐집니다. 사람을 기쁘게 하는 복음이란 이 땅에서 어떤 일을 당해도 결국 하나님께서 더 좋은 것을 이 땅에서 주실 것이라는 복음입니다.

 

광야 이스라엘이 그렇게 불평하다가 진멸당한 이유를 자신에게서 찾지 못해요.

 

광야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을 그리워 하다가 진멸 당했습니다. 애굽이 여호와께서 인도하시는 광야보다 훨씬 좋다는 겁니다.

 

사람들은 애굽이 좋아요. 주님이 인도하심이 싫어요. 다르게 말하면 복음이 싫어요. 십자가 복음이 싫기 때문에 애굽을 사랑하는 겁니다. 그들이 말하는 주님의 인도하심이란 곧 애굽에서 애굽으로의 인도하심입니다. 애굽에서 뿌리를 내리고 살 수 있게 하실 때 그 하나님은 참으로 자신을 구원하신 하나님이라 생각하는 겁니다.

 

그러나 주님이 만나주신 사람은 그렇지 않습니다. 광야길을 즐기는 사람입니다. 즐긴다고 표현하면 이상한가요? 주린 것을 좋아할 사람 있습니까? 목마른 것을 좋아하는 사람 있을까요?

헐벗고, 매 맞고,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는 나그네로 사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직접 일해서 먹고 삽니다. 욕을 얻어먹고, 비방을 당합니다. 이런 인생을 누가 원합니까?

 

그런데 이렇게 만드시는 분이 계십니다. 바로 바울을 부르신 주님입니다.

바울을 부르신 주님이 만물의 쓰레기로 만드십니다. 그러니 바울 자신도 이것을 피할 길이 없습니다.

 

앞서 인도하시는 분이 따로 계시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전하기 싫어도 복음을 전하게 하시는 분이 따로 계십니다. 바울의 인생은 자신의 인생이 아닙니다. 주님의 인생입니다. 주님에게 빼앗겼습니다. 그러니 십자가 복음 때문에 살게 되는 쓰레기 인생은 어느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인생입니다.

 

그러면 나는 왜 이런 일을 당하지 않을까 하지 마세요. 주님의 백성은 이미 이 말씀 속에 들어간 인생입니다. 그래서 복음을 내뱉게 하시는 겁니다.

 

쓰레기 인생은 어느 누구도 뺏을 수 없는 주님이 축복하신 인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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