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강해

고린도전서 강해 29

푸른 섬 2015. 3. 22. 16:00

내쫓으라

고린도전서59-13

열왕기하 25장을 보면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신복 시위대장 느부사라단에 의해 예루살렘에 있는 여호와의 성전과 예루살렘의 모든 집을 귀인의 집까지 불살랐다고 합니다.

 

이런 내용을 읽으면서 떠오르는 생각 없습니까?

 

요즘에 하는 아침 드라마 황홀한 이웃을 보면 자기 남편, 자기 아내에게는 정말 못해요. 그런데 남의 아내, 남의 남편에게는 너무 잘해요.

아마 부부싸움 할 때 그런 말을 해 보셨을 겁니다. 남에게 하듯이 나에게 좀 잘해 달라고 말입니다.

 

아이들도 그렇지요. 다른 친구들에게는 다정하게 말하면서 나에게는 왜 이렇게 엄하게, 무섭게 하느냐고 말입니다.

 

남 유다가 망했습니다. 그것도 언약 없는 바벨론에 의해 멸망당했습니다.

 

만일 우리들이 그 속에 있었다면 뭐라고 말하겠습니까?

그래 나는 망해야 마땅해라고 할까요.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 저 바벨론은 얼마나 잘 났기에 우리를 멸망시킵니까라고 할까요?

 

예레미아 선지자가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을 섬겨야 산다고 외칠 때 어떤 마음이 들겠습니까? 예레미아 선지자를 미쳤다고 말하지 않겠습니까? 예레미아 선지자를 죽이고 싶을 겁니다. 왜냐하면 바벨론은 언약이 없는 나라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믿지 않는 나라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믿는 우리가 어떻게 바벨론 왕을 섬길 수 있느냐고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아무리 우리가 잘못했다 하더라도 노골적으로 우상을 섬기는 바벨론 보다는 상대적으로 더 나쁘지 않다는 겁니다.

아니 예레미아 선지자가 바벨론 왕에게나 가서 우상 숭배하지 말라고 외쳐야 하지 않을까요?

 

제가 너무 성경을 오버해서 해석하는 겁니까?

 

왜 유다 백성들이 예레미아 선지자를 미워할까요? 왜 예레미아 선지자를 죽이고 싶어 할까요?

자신들을 무시하는 발언을 하니 그런 겁니다. 우리가 좀 우상 숭배했다고 노골적으로 우상숭배 하는 바벨론에 의해 멸망당한다면 이건 너무 불합리한 처사가 되는 겁니다.

 

우리야 지금 바벨론이 멸망당했다는 것을 아니 별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그렇지 않아요. 바벨론 제국은 페르시아 제국으로, 알렉산드리아 제국, 로마 제국으로 쭉 이어지잖아요.

유대인들 입장에서 로마제국이 승승장구하는 것이 얼마나 기분 상하는 일일까요?

 

그리고 더 기분 나쁜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예수가 로마에 대해서는 어떤 비판도 하지 않습니다.

나름대로 율법을 잘 지키는 사람들, 제사를 제대로 드리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을 향해 마귀라고 하니 기분 어떻겠습니까?

 

쉽게 말하면 우리들이 복음 잘 알고 있고, 성경도 열심히 보고, 말씀을 사모하면서 기도하는데 예수님이 너희는 마귀새끼라고 하는 겁니다. 그런데 복음도 모르고, 성경도 안 읽고, 기도도 하지 않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어떤 비판도 하지 않아요.

 

그러면 여러분 어떤 기분이 되겠습니까?

기분 나빠요. 너무너무 나빠요. 인내심이 약해서.

 

오늘 본문이 그런 겁니다.

짜증나는 본문입니다.

 

음행하는 자들과 사귀지 말라는 말은 이 세상의 음행하는 자들이나 탐하는 자들과 사귀지 말라는 말이 아니랍니다.

속여 빼앗는 자들이나 우상 숭배자들과 사귀지 말라는 말이 아닙니다.

 

우린 예수님을 믿은 후에는 예수믿는 사람들과만 사귈 거야 라고 했을 겁니다. 여러분들도 아마 다 그렇게 생각했을 겁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우리에게 하십니다. 너무나 충격적인 말씀이지요.

 

우린 깨끗한 자들이고, 거룩한 자들이니 음행하는 자들, 탐하는 자들, 속여 빼앗는 자들, 우상 숭배자들과는 사귀지 않아야 된다고 생각하지요.

 

오늘 말씀에 의하면 이게 죄입니다. 희한한 죄지요?

 

나는 음행하는 자들과 사귀지 않겠다는 것은, 속여 빼앗는 자들, 탐하는 자들, 우상숭배자들을 사귀지 않겠다는 것은 오늘 말씀을 위반하는 말씀입니다.

 

참으로 이상한 말씀이 다 있지요.

 

그리고 하시는 말씀이 만일 그들과 사귀지 않는 다면 우리가 세상 밖으로 나가야 할 것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을 믿으면서 얼마나 이런 삶을 원합니까? 세상 밖으로 나가는 꿈 말입니다.

 

돈 버는데 머리카락 빠지지 않는 삶, 탐욕적인 인간들과 부딪치지 않는 삶, 음행하는 자들이랑 만나지 않는 삶, 우상숭배자들이랑은 눈도 마주치지 않는 삶을 꿈꾸지 않습니까?

 

아마 예수님을 믿는다고 주장하는 사람들 중 백에 백이면 모두 이런 삶을 꿈꿉니다. 그래서 이런 사람들의 세상 생활을 보면 빵점이지요. 사귀지를 못해요. 사귈 줄 알아야 하는데.

 

성경이 우릴 악한 자와 어울려 악한 자가 되라고 하는 것 같지 않습니까?

 

우린 이슬만 먹고 살고 싶어 해요. 더러운 돈은 내가 벌지 않기를 원해요. 하루 빨리 이 지긋지긋한 회사 생활을, 장사를, 직업을 집어 치우고 그냥 어디서 돈이 나오고, 기도하고, 찬송하며, 탱자탱자 놀면서 살고 싶어 합니다.

 

이게 탐욕입니다.

 

왜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이런 삶을 꿈꾸는지 아시나요? 그 이유는 피곤하게 살기 싫어서 그래요. 고생하면서 사는 것이 싫어서 그렇다고요. 내 몸에 불편을 주는 것이 싫어요.

 

그래서 세상 밖으로 나가서 살고 싶어 하는 겁니다.

 

그런데 주님은 이런 생각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주님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만일 어떤 형제라 일컫는 자가 음행하거나 탐욕부리거나 우상숭배하거나 모욕하거나 술 취하거나 속여 빼앗거든 사귀지도 말고 그런 자와는 함께 먹지도 말라고 합니다.

 

아니 형제 아닌 자들이 음행하거나 탐욕부리거나 우상숭배하거나 모욕하거나 술 취하거나 속여 빼앗아도 함께 먹고 사귀라고 하면서 왜 형제라 일컫는 자가 그렇게 살면 사귀면 안 됩니까? 함께 밥 먹으면 왜 안 됩니까?

 

좀 논리가 이상하지 않습니까? 만일 교회가 세상과 다르다는 것을 보여 주려면 형제라 일컫지 않는 자들과도 사귀지 않고 밥도 먹지 말아야 하지 않을까요?

 

오히려 형제라 일컫는 자가 그렇게 나쁜 짓을 한다면 함께 사귀고 밥 먹으면서 그들을 그 곳에서 돌아서게 해야 할 것 아닙니까?

 

그런데 주님은 내쫓으라고 합니다.

 

우리가 상상하는 그 이상이지요.

 

아니 형제 아닌 자들과는 사귀고 밥도 함께 먹으면서 왜 형제라 일컫는 자를 이렇게 해야 합니까?

 

너희 중에서 내 쫓으라는 말씀은 그 사람과 놀지 말라는 겁니다.

사귀지도 말고 밥도 같이 먹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우린 세상 밖으로 나갈 수 없다는 말씀과 내어 쫓으라는 말씀이 조화가 됩니까?

 

왜 그렇게 형제라 일컫는 사람을 내어 쫓아야 합니까?

 

구약은 어떻습니까?

진멸해라고 했잖아요.

 

신명기 72절을 보면 그들과 어떤 언약도 하지 말고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도 말라고 하셨습니다.

사귀는 것은 상상도 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함께 밥 먹는 것도 안 된다는 겁니다.

 

진멸의 대상인데 어떻게 사귀고 어떻게 함께 밥을 먹겠습니까?

 

그런데 오늘 본문은 이 본문과 완전 역전현상이 일어났습니다.

이방인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들과는 사귀고 밥도 먹어라는 겁니다.

 

그러나 오히려 형제라 일컫는 자가 이방인 행세하면 쫓아내고 밥도 함께 먹지 말고, 교제하지도 말아야 합니다.

 

구약과 신약성경이 어찌 이리 다를 수 있습니까?

 

예수님께서도 마태복음 18장에서 교회의 말을 듣지 않는 자는 이방인과 세리처럼 여기라고 하셨습니다. 지금 이 말씀이 여기에 그대로 적용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방인과 세리와는 사귀기도 하고 함께 밥도 먹어도 된다는 겁니다.

차라리 구약처럼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들과는 사귀지도 말고 밥도 함께 먹지 말라고 하셨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우린 그러고 싶잖아요. 그래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끼리 모여 놀잖아요.

 

회사에서 회식하면 빠지고 싶잖아요. 차라리 교회교인들과 밥 먹고 싶지요. 왜 그렇습니까? 예수 믿는 사람은 술 마시면 안 되고, 술 마시는 사람들과는 함께 자리에 앉아도 뭔가 죄짓는 기분이잖아요. 그런 사람들과 모여 있으면 좋지 않은 이야기들을 얼마나 많이 합니까? 나름대로 성도인데 예수님을 믿는 사람인데 그들과 어울리는 것이 늘 마음 한편을 찝찝하게 만들어요.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는 그들과 함께 먹고 사귀라고 합니다.

 

이제 이 말씀이 자유함을 줍니까? 아마 많은 사람들이 오늘 본문처럼 말하면 그래 성경 봐라. 예수 안 믿는 사람과도 사귀고 밥도 먹으라고 하지 않느냐? 그러면서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 할 것이 뻔합니다.

 

돈 벌려면 사람들과 밥도 먹어야 하고 사귀기도 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느냐고 항변할 겁니다.

 

그러면 오늘 본문이 과연 이것을 말씀하시는 걸까요?

 

그 이야기가 아닙니다. 사귀는 것이 정당하다는 것을 말씀하는 것도 아니고 사귀지 않는 것이 정당하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라는 것은, 성도가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잖아요. 따라서 나 개인적으로 생각하면 안 됩니다.

그리스도의 몸은 항상 그리스도만을 증거하는 겁니다.

 

따라서 형제라 일컫는 자가 음행하거나 후욕하거나, 속여 빼앗는다면 그를 내어 쫓음으로, 그를 이방인과 세리처럼 여김으로 그리스도의 몸의 기능을 제대로 보여주는 기능을 하는 겁니다. 즉 우리가 의로워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피를 증거하는 자로 구원받는 자들임을 증거하는 겁니다.

 

그러면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들과 사귀는 것은, 밥을 먹는 것은 뭡니까?

여러분 뭐라고 생각되세요?

 

살기위해 사귀고 살기위해 밥 먹잖아요. 구약 이스라엘 백성들이 왜 진멸하라는 자들을 진멸하지 않고 그들과 혼인하고 그들의 우상을 섬겼을까요? 그들은 생명에 관심 있는 것이 아니라 생존에 관심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구약 이스라엘백성들이 그러했다는 것은 우리들도 그 범주를 못 벗어난다는 말입니다. 즉 우린 사귈 수밖에 없고 함께 밥을 먹어야 하는 자로 살면서 주님의 피만을 자랑할 수밖에 없는 자리에 있다는 말입니다.

 

세상 밖으로 나갈 수 없잖아요.

물론 이단들이 자기들끼리 집단을 만들어서 물건도 만들고 팔고 하지요. 결국 파는 것은 다른 사람들에게 팔거든요. 이 세상에서 못 벗어나요. 그러면서 자신들은 구별된 집단이라 우깁니다. 사람들은 자기를 잘 속입니다.

 

오늘날 교회도 그래요. 교회는 특별한 집단이요 교회 밖은 마귀집단이라 생각하잖아요. 그러면서 자신은 마귀집단에 속하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사실은 마귀 집단이 주는 돈으로 먹고 살면서. 실은 주님이 마귀를 사용하시는데 그걸 몰라요.

 

그러면서 자신들은 오늘 본문말씀을 자기 마음대로 해석해서 아주 괜찮은 집단이라고 상상합니다. 목사가 이 상상에 힘을 보태어 줍니다. 그러니 이들에게서 주님의 피를 자랑하는 것을 기대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왜 주님께서 우리에게 이렇게 어려운 말씀을 주신 줄 아시겠지요.

 

우린 에덴동산을 늘 꿈꾸고 그런 동산을 만들어 보려고 하기 때문에 이렇게 어려운 말씀을 우리에게 주신 겁니다.

아담안에 있는 자들은 주님의 피를 제거하려고 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주님의 몸된 교회는 주님의 이름으로 모이든지, 흩어지든지 주님의 피를 증거하는 몸의 지체입니다.

 

따라서 내어 쫓을 수 있어야 합니다. 달리 말하면 내어 쫓김을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다르게 표현하면 주님의 고난에 참여 하는 자가 주님의 몸입니다. 내어 쫓는 것이 쉽겠습니까? 그 사람이 내 아들이면, 내 딸이면, 내 아버지면, 내 어머니면 가능한 일입니까?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지 않는 교회는 주님의 몸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흘리신 피가 흘러나오지 않는 곳은 주님의 몸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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